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00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00

좐슨의 프로레슬링 데뷔전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났다. 시합 후 뒷풀이 자리에서 건수와 싸이언스, 그리고 레슬러들 사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이 영 마음에 걸렸었는지, 좐슨은 친구들과 오해를 푸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녀는 미안한 마음에 자신이 시합에서 받은 개런티로 친구들에게 한 턱 쏘겠다면서 모두에게 연락했다. 싸이언스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흔쾌히 그녀의 부름에 가겠노라고 응답했다. 싸이언스는 아직도 그 날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인지, 그녀에게 한참 툴툴거리다가, 함께 가구점에서 알바하고 있던 건수의 요청에 따라 승낙하고 말았다. 건수와 싸이언스는 가구점 알바를 마치고 함께 약속 장소로 걸어가고 있었다. 좐슨을 보기 싫다고 툴툴거리는 싸이언스와는 달리 건수는 뭐가 좋은지 실실 웃고 걸어가고 있었다.

“건수, 넌 자존심도 없냐? 좐슨, 걔는 널 비웃던 놈들에게 단 한 마디도 뭐라고 안 했었다고. 그래놓고는 이제 와서 사과랍시고 술 한 잔 사주면서 어물쩡 넘어가려고.”

“하하하. 싸이언스. 그럼 좀 어때? 좐슨이야 레슬링을 계속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처신했어야지 옳지.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잖아. 만약 진짜 그 우락부락한 레슬러들과 주먹 싸움이라도 벌어졌어봐.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걸어 다닐 수 있겠냐?”

“어이구. 강원도에서 그 무시무시한 검은 늑대들을 때려잡던 녀석이 그깟 프로레슬러가 뭐가 무섭다고..... 아, 아차!”

순간 싸이언스는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건수의 표정은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미안하다. 건수야. 내가 또 말실수를 해버렸네.”

“음... 아니야. 괜찮아. 사실 이제야 원래 내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은데 뭐. 괜찮아. 그래도 이왕이면 자꾸 옛날 얘기는 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그래, 너도 자꾸 생각나면 힘들 텐데 내가 자꾸 쓸데없이 그런 소리를 한다. 아무튼 난 좐슨, 고게 부르는 자리는 절대 안 가려고 했는데, 너가 가니까 가는 거야. 흥!”

“내가 너한테 그 동안 못 모았던 마지막 슈가허니캔디 포토카드를 하나 줘서 그런 거 아니고?”

“아, 물론 그것도 있지. 그 마지막 하나로 미니 2 집 포카 컬렉션을 드디어 완성.... 야, 인마! 내가 밖에서는 그런 얘기하지 말랬지? 혹시라도 누가 들으면 덕후라고 놀린다고 했잖아! 너야 어떨지 몰라도 내 어디를 봐서 내가 덕질하는 놈으로 보이냐, 엉?”

“하하하. 그럼 내가 아까 준 포토 카드 다시 내놔. 넌 너무 쿨해서 그런 거 필요 없잖아. 아니다. 너가 모으던 거 다 나한테 줘. 내가 컬렉션을 완성할게.”

“아, 좀!”

싸이언스는 건수에게 달려들어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건수는 저항하려고 했지만 거의 목 하나가 차이나는 신장과 덩치 때문에 건수는 금방 제압당했다.

“어휴~ 인마. 하여간 나중에 술집에서도 그런 얘기는 절대 하는 거 아니다. 알겠지? 그리고, 너! 머리랑 수염 좀 깎아. 완전 씹덕 같아. 거기다가 사람들 많은 데서 슈가허니캔디나 스위티즈 같은 여자 아이돌 그룸을 좋아한다고 계속 떠벌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구! 다 커가지고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 듣는단 말이야.”

“우우웁! 우웁!”

건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싸이언스의 큰 손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 있어서 제대로 대답하진 못했지만, 그의 친구는 대충 대답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싸이언스가 건수를 풀어주자, 그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슈가허니캔디의 노래, “1,000% 당분 파워 업”을 흥얼거리며 빠르게 도망쳤다.

“힘이 들 땐 당분 섭취! 속상할 땐 당분 섭취! 너에게 보내줄게. 사랑을 담아! 1,000%! 당분! 파워 업! ♪♬”

“우아아악! 야! 쪽팔리니까 그 노래는 부르지 마! 다른 노래는 몰라도 그 오래 된 노래는 제발!”

싸이언스는 얼굴이 빨개지며 도망가는 친구를 잡으려고 뛰어갔다. 건수는 뒤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으며 친구를 더욱 놀려댔다.

“하하하! 넌 스윗 투스 1기 때부터 팬클럽 회원이었으면서 뭐가 부끄러워? 스윗 투스로써 자부심을 좀 가지라고! 오오오~ 당분 파워 업! ♪”

“오오오~ 당분 파워 업! ♬ 아... 이게 아니지! 야이씨! 진짜! 입 좀 닥쳐! 손건수, 이 미친놈아! 너 잡히면 죽여 버린다. 으이씨!”

건수는 싸이언스는 둘 다 20대 중반에 들어섰지만, 서로 장난치며 거리를 걷는 모습을 보면 마치 고등학생들 같았다. 4 명의 친한 친구들 중 특히나 이 두 명은 함께 있을 때 더욱 철이 없이 행동했다. 어쩌면 둘 다 제대로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던 것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일까? 또, 건수는 고등학교 때 일어났던 불의의 사고로 정신을 잃은 후 8 년만에 깨어났기 때문에 아직까지 정신적인 성장이 다 이뤄지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학창시절엔 서로 어울리지 않았던 이 두 사람은 운명적인 사건으로 인해 둘 다 시련을 겪은 후 다시 만나 지금은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과거에 둘 중 누가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 예상을 했겠나.

* * *

건수와 싸이언스가 약속 장소인 양꼬치 가게에 도착했다. 그곳은 예전에 건수와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모였던 추억의 장소였다.

“좐슨, 그 녀석이 여기로 부른 것 자체가 머리를 굴린 거야. 건수, 너가 여기서 먹었던 양꼬치를 좋아했었잖아. 일부러 네 기분 맞추는 거라고. 근데, 넌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고 있는 거냐? 흥!”

그래도 건수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싸이언스는 헤벌쭉 거리는 건수를 보고 속도 없는 녀석이라고 비웃었다.

“에이, 무슨... 여기 양꼬치가 맛있으니까 부른 거겠지. 그리고 예전에 여기서 재밌는 일이 좀 있었잖아. 오랜만에 그 신기한 양꼬치 기계도 볼 수 있겠네. 후후후.”

“재밌는 일이라... 그래, 여기서 순이에게 내가 좐슨이란 이름을 지어줬던 곳이긴 하지. 나름 뜻 깊은 장소긴 하네. 아무튼 좐슨이 한턱 쏜다고 하니까 사양 말고 한 20인분쯤 먹어치워야겠다. 아주 지갑이 텅텅 비고 거기에 눈물로 채워야 할 만큼 탈탈 털어주마.”

* * *

싸이언스와 웃으며 기분 좋게 가게로 들어간 건수는 들어가자마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좐슨과 도원광을 찾았다. 그런데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둘을 발견하자 건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둘은 서로 나란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오, 건수야. 왔냐? 생각보다 빨리 왔네?”

“어... 어. 빨리 왔어.”

자신을 보고 반갑게 맞아주는 오랜 친구, 도원광의 인사에 건수는 밝게 웃을 수 없었다. 뒤 이어 걸어온 싸이언스는 좐슨에게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별 다른 인사도 없이 의자에 앉았다. 찝찝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건수와 화난 얼굴의 싸이언스를 본 좐슨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마디부터가 그들에게 사과하는 것이었다.

“얘들아, 요전에 있었던 일말이야. 내가 미안했어.”

싸이언스는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짧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 아, 우리를 개무시하던 그 근육돼지들과 있었던 일 얘기하는 건가? 네가 무슨 죄가 있겠냐? 걔들과 같이 시합도 뛰고 돈도 벌고 해야 하니까 그랬겠지. 우리야 별 볼 일 없는 인생인데, 너한테 무슨 상관이겠어?”

좐슨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옆에 앉아 있는 도원광이 싸이언스를 달랬다.

“야, 그러니까 순이가 미안하다고 하잖아. 그 레슬러 선배들이 잘못한 건 맞아. 하지만 앞으로도 쭉 그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순이 생각도 좀 해주면 안 돼? 그만 용서해줘라. 좀. 우리 중에서 덩치는 제일 큰 게 왜 그리 속 좁게 행동해.”

“뭐? 속이 좁아? 넌 그 놈들이 건수한테 얼마나 심하게 말했는지 못 봤어? 사과를 할 거면 그 놈들도 다 같이 와서 사과해야지, 왜 좐슨만 사과해?”

싸이언스의 행동을 보고 건수도 도원광을 거들었다.

“그래. 싸이언스. 이젠 화 풀어.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봐봐. 난 화 다 풀었다니까?”

“그거야, 넌 속도 없는 놈이니까 그렇지! 그런 심한 일을 당했는데도 겨우 양꼬치 사준다고 하니까 헤헤 웃으면서 뛰어오는 게 정상이냐?”

그의 말을 들은 건수는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리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아아... 네 말이 더 아프잖아. 너도 레슬러 선배들 만큼이나 나한테 심한 말을 했으니, 용서하면 안 되겠다.”

“뭐야? 자식아? 유치하게.”

“그러니까 너도 이만 좐슨을 용서해. 아니면 오늘 내가 너한테 줬던 슈가허니캔디 포토카드 다시 내놓던가.”

그 말을 듣고 도원광과 좐슨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슈가허니캔디? 설마 그 걸그룹.....?”

싸이언스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화들짝 놀라면서 건수의 입을 틀어막았다.

“야, 이 미친놈아! 내가 식당에서나 사람 많은 데선 그 얘기하지 말랬지! 쪽팔리잖아!”

“우웁. 그게.. 우웁. 뭐가 쪽... 팔려? 우우웁. 너 스윗 투스... 1기부터 팬클럽... 우우웁.”

건수는 더 큰 목소리로 말하자 부끄러워서 얼굴이 시뻘게진 싸이언스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았어. 내가 용서할게. 제발 밖에선 그러지 마. 그런 얘기는 우리끼리 있을 때만 하자. 응? 제발. 어디 가서 덕후 냄새 좀 풍기지 말자고.”

건수가 나서준 덕에 싸이언스는 억지로라도 좐슨을 용서하게 되었다. 곧 4 명의 친구들은 다시 예전처럼 서로 왁자지껄 떠들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