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59 화

루시 – 59

시간이 좀 흐른 뒤, 11번과 23번이 탄 차가 퀸즈에 위치한 비피의 스모크 샵에 도착했다. 스모크 샵이 있는 거리는 평소엔 인적이 드문 곳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리를 비롯한 여러 브라트바 갱스터들이 스모크 샵 주변에 차를 대고 진을 치고 있었다. 11번과 23번은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만약 실제로 텔리가 저녁 7시에 나타날 거라면, 그들에겐 겨우 30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밖에 없었다. 그들은 헐레벌떡 차에서 내렸다. 그들을 보고 브라트바 갱스터 두 명이 길을 막아섰다. 11번이 그들을 째려보며 비키라고 하는데, 두 명의 갱스터는 암살단원에 대해 잘 몰랐는지, 세 사람 사이에 살짝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자, 브라트바의 한 차량에서 그리고리가 내렸다. 그리고리가 다가와 두 암살단원에게 인사하자, 그제야 뭘 잘 모르는 갱스터들은 뒤로 물러섰다. 23번은 손을 올리며 그리고리에게 인사했지만, 11번은 인사는 생략하고 대뜸 텔리에 대한 질문부터 했다.

“그 놈은, 그러니까 텔리는 벌써 도착했나?”

“아니. 아직은 아무도 안 왔어. 그런데 너희들, 왜 이렇게 늦게 도착한 거야? 온다고 했던 시간을 한참 넘겼잖아. 중요한 일을 하겠다면서 제 때에 맞게 와야 할 거 아냐.”

그리고리는 당당한 태도로 서서 약속한 시간에 늦은 암살단원을 꾸짖었다. 23번은 즉시 사과하려고 했지만, 11번이 먼저 대답했다.

“약속한 시간? 제 때에 오라고? 시끄러워. 우리가 온 시간이 바로 제 때인 거야. 알겠어? 지구의 나약한 인간놈아. 어디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이 입을 나불대고 있어.”

“뭐라고?”

“왜? 텔리를 해치우기 전에 네놈부터 해치워줘? 착각하지 마. 넌 몸풀기용도 될 수 없어.”

“으음······.”

글쎄. 겉으로만 봐서는 산더미만 한 덩치의 그리고리와 다소 작은 키의 11번은 마치 다 큰 어른과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청소년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겠지. 11번은 그저 키 작은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것뿐이니 말이다. 그리고리는 이미 11번이 어떻게 보바의 경호원들을 해치웠는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모욕을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11번은 피식 웃으며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건수가 결박된 채로 이불에 둘둘 말려 있었다. 그가 이불을 살짝 벗기자 건수는 마치 잠자고 있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여전히 엄청난 살기를 뿜어내는 건수를 보자, 11번은 눈살을 찌뿌렸다.

“이렇게 살벌한 기운이라니. 가슴이 다 서늘해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야. 컨시우스, 이놈. 몸 안에서 이디레이아님께서 이런 기운을 발산하시고 계신데도 용케 살아있군그래.”

다시 말하지만, 이건 11번이 착각했던 것이었다. 이 기운은 여신이 아니라, 그녀에게 분노한 건수가 내뿜고 있던 거였다. 만약 그가 그런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면, 그는 다시 건수에게 손찌검 따위를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리고리를 명령했다.

“야, 건방진 놈.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뒷좌석에 있는 이 녀석을 스모크 샵 안으로 옮겨.”

그리고리는 또 모욕을 당하자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꾹 참고 순순히 11번의 명령을 따랐다. 손을 들어 부하를 불러 건수를 스모크 샵으로 옮기게 했다.

* * *

11번과 23번이 건물 2층에 위치한 스모크 샵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리와 건수를 어깨에 짊어진 그의 부하가 둘의 뒤를 따랐다. 샵 안에는 그리고리의 부하가 하나 있었다. 그는 입에 재갈을 물리고 의자에 꽁꽁 묶어놓은 스모크 샵의 주인, 비피를 지키고 있었다. 11번은 비피를 보고 그리고리에게 한 마디했다.

“저건 또 뭐야? 쟨 또 왜 꽁꽁 묶어놨어?”

“미스닉을 여기로 끌어들이는 미끼잖아. 저 녀석이 그의 지인이라구.”

“쯧쯧쯧. 그런데, 저렇게 꽁꽁 묶어놨는데, 뭐가 걱정돼서 부하까지 붙여놨어? 부하랑 의자에 묶어놓은 놈, 둘 다 당장 치워.”

“치우라니? 저 녀석은 미스닉의 행동을 잠시라도 묶어 둘 인질이야. 너희도 알다시피 그놈이 좀 신출귀몰해? 그놈에게 총을 쏘든, 칼로 쑤시든 잠시라도 가만히 있게 만들어야 그럴 수 있을 거 아냐?”

그러자,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던 23번이 입을 열었다.

“당신, 아직도 텔리님을 잘 모르고 있군. 그분은 원래 인질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셔.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염두에 두시는 분이 절대 아니야. 그분의 일에 방해가 된다면 가까운 그 누구라도 순식간에 목숨을 끊어버리실 거야. 특히 당신 부하는 아주 위험해질 수 있어. 내 동료의 말대로 하는 게 좋아.”

“음. 알겠다. 그렇게 하지.”

그리고리는 암살단의 말을 따랐다. 그가 두 부하를 시켜 비피를 의자에 묶인 채로 옮기려고 했는데, 갑자기 11번이 마음을 바꿨다.

“아냐. 그 흑인 놈은 남겨둬. 생각해보니 텔리의 신경을 분산시킬 수 있는 요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텔리가 그 흑인 놈에게 잠깐 한눈파는 그 찰나의 순간도 난 충분히 사용할 수 있거든.”

하지만, 이건 11번의 큰 착각이었다. 그동안 이디레이아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녀가 미리 본 텔리의 최후 장면을 재연하려고 애썼는데, 그녀는 단 한 번도 비피가 그 장면에 등장한다고 언급한 적이 없었다. 즉, 그녀 예언의 무결성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이상한 것은, 왜 이때 11번보다 더 차분한 성격의 23번이 동료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를 막지 못했냐는 것이다. 글쎄. 그건 아마도 텔리와 조우할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옴에 따라 긴장감이 높아져서 실수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그저 그렇게 될 운명이었을 지도 모른다. 혹은 그것이 이디레이아가 그토록 걱정했던 혼돈과 불확실성이 가득찬 검은 방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텔리의 아버지가 검은 방의 지하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텔리는 여전히 그곳과 인연의 실이 닿아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 일은 운명의 여신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예측마저도 빗나가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리와 부하들은 의자에 묶인 비피를 옮기려다가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들은 신경질이 났는지 툴툴거렸다.

“제길. 사람을 놀리고 있어. 이러랬다가 저러랬다가 일부러 힘 빼려는 거야, 뭐야?”

그때, 그리고리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재빨리 핸드폰을 받았다.

“보스. 지금 저쪽에서 웬 놈이 혼자 걸어오고 있는데요? 보스가 얘기한 그 녀석이 아닐까요? 한 놈이고 다른 놈들을 끌고 오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쏴서 죽여버릴까요?”

“뭐라고? 누가 오고 있다고? 아냐. 절대 총을 쏘면 안 돼!”

그리고리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계의 초침이 거의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