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52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52

그리고리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11번의 주위에는 연한 노란 색의 방어막이 펼쳐지며 깜박거렸다. 그리고 11번은 태연하게 한 발짝씩 그리고리에게 다가갔다.

‘탕!’

그리고리가 권총에 남은 마지막 탄알을 발사했을 때도 총알은 어김없이 방어막에 튕겨져 나갔다. 포인트 블랭크 거리에서 발사한 마지막 총알마저도 소용없게 되자, 그리고리는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이 멍청이가! 네 놈의 총 따위는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했는데도 계속 쏘고 난리야!”

11번은 빛나는 주먹을 들어 그리고리를 가격하려고 했다. 그러자 23번이 소리치며 그의 동료에게 경고했다.

“멍청이는 너야! 11번! 여신님께서 하시는 일을 네가 망칠 셈이냐?”

11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주먹에서 빛을 거두고 그대로 덜덜 떨고 있는 그리고리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리는 11번의 손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공포에 몸이 얼어붙어서 그랬는지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멱살이 잡혔을 때도 그를 움켜진 손아귀의 힘이 너무 강해서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어... 어... 어... 뭐야! 이거 놔! 켁켁켁.”

11번은 자기보다 훨씬 큰 키의 갱스터를 그대로 번쩍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머리 위를 넘겨 바닥에 내다꽂았다.

‘쿵!’

바닥에 떨어진 그리고리는 ‘억’ 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그와 11번의 극명한 힘의 차이를 느끼자 너무 무서워서 입이 벌려지지도 않았다. 그는 11번 보다 키도 훨씬 크고 덩치도 컸는데, 이 신원미상의 침입자는 그를 마치 작은 고양이를 상자 안에서 집어 올리듯 했던 것이었다. 정말이지 놀라운 힘이 아닐 수 없었다. 또, 11번은 멈추지 않고 계단 위를 날아오르듯 올라갔는데, 그 동작이 너무 빨라서 눈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정도였다. 11번이 2 층에 올라가자 지금까지 아래층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경하고 있던 바빌로프가 그에게 총구를 겨눈 것을 발견했다.

“우... 움직이지 마! 그 자리에 있어! 아... 아니면 쏘... 쏜다!”

“너흰 정말 최소한의 머리도 없구나. 아무리 가까운 거리에서 어떤 총으로 날 쏴도 내겐 조금의 상처도 낼 수 없다. 나와 내 동료에겐 메이크바라는 게 있거든. 이 지구상에서 메이크바가 만들어내는 방어막을 뚫을 수 있는 탄환은 없단다. 넌 벌써 두 번이나 봤을 텐데도 학습효과가 전혀 없나 보네. 멍청한 자식.”

11번의 말대로 바빌로프는 벌써 몇 번이나 총이 이 침입자들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딱히 없었다. 되든 안 되든 가지고 있는 무기로 위협하는 수 밖에 없었다. 11번이 당당하게 자신에게 걸어오는 것을 본 바빌로프는 떨리는 손으로 신중하게 쥐고 있던 총의 총구를 11번의 얼굴에 겨눴다.

‘탕! 탕!’

바빌로프는 사람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거리에서 11번의 얼굴을 쐈지만, 그 때마다 11번의 주위에는 옅은 노란색의 방어막이 펼쳐지면서 그가 발사한 총알을 튕겨내었다. 이제 바빌로프의 안색은 창백해지다 못해 시퍼렇게 변했다.

“미... 미스닉! 당신도 미스닉과 똑같군!”

“미스닉?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11번은 손을 뻗었다. 그 손으로 바빌로프의 로브를 잡아당기더니 그대로 그를 던져 계단 아래로 밀어버렸다.

“어이쿠야! 억! 억!”

바빌로프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 쓰러지자, 그리고리가 달려가 그의 보스를 일으켜 세웠다. 11번은 한 쪽에서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벌벌 떨고 있는 비피를 보더니 말했다.

“너도 저놈들과 한패냐? 아래층으로 내려와. 우린 너희들 모두에게 할 말이 있다.”

* * *

바빌로프, 그리고리, 그리고 비피는 아래 층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바빌로프는 코가 부러졌는지 한 손으로는 코피를 흘리는 코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부지런히 핸드폰의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23번이 그걸 보고 말했다.

“소용없어. 밖에 통로에 있는 놈들은 우리가 들어오면서 전부 죽여버렸다. 당장은 너희를 구하러 올 놈들이 없을 거야.”

11번은 키득거리며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그는 난간에 기대어 비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넌 내가 본 적이 있다.”

“예? 절 보신 적이 있다고요?”

비피는 깜짝 놀랐다. 그는 이 수상한 듀오를 생전 처음 보는 것인데 그 중 하나가 자기를 안다고 하니 어디서 봤는지 애써 기억을 더듬었다. 11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신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에 네 놈이 있었어. 어디에선가 의자에 묶인 채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넌 여신님의 계획에 필요한 게 분명해. 하지만 나머지 둘은 보지 못했다.”

23번은 짧게 한숨을 쉬고 11번에게 말했다.

“11.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둘이 우리에게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니야. 여신님께서는 요리에 필요한 모든 재료가 다 있다고 하셨잖아. 그 얘기는 이 두 놈들도 필요하다는 얘기야.”

11번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세 명에게 다가오며 대답했다.

“글쎄. 그거야 우리가 알아보면 되는 것 아닌가? 친구, 그 녀석들의 기억을 읽어봐. 그래서 필요하면 살려두고 아니면 그 흑인 놈만 데려가고 나머진 죽인다.”

바빌로프는 11번이 자신을 죽인다는 말에 펄쩍 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아니, 안 돼! 난 당신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는데, 왜 죽인다는 거야? 너희들, 누가 보내서 온 거냐? 내가 너희가 받을 돈의 더블, 아니, 트리플을 주지! 날 살려줘!”

그리고리는 침입자들을 째려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보스보다는 훨씬 차분했다.

“보스, 소용없습니다. 이놈들 뭐라고 횡설수설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여기로 이렇게 쳐들어왔다는 건 처음부터 우리 목숨을 노리고 온 것입니다. 너희들! 어디서 누가 보낸 히트맨들이냐?”

그러자 어느새 그들 가까이에 온 11번은 바빌로프와 그리고리를 번갈아 내려다보면서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히트맨? 아... 그래. 물론 난 그 짓을 하면서 먹고 살고 있기는 하지. 난 시카고에서 온 럼버잭이다. 하지만 그건 지금 너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

“러... 럼버잭? 그게 뭐야? 왜 나무꾼이 숲속에 있지 않고 뉴욕에 와서 이 지랄이야! 웈!”

바빌로프는 자신을 나무꾼이라고 부르는 침입자를 보고 성을 냈다. 그는 부러진 코에서 터져 나오는 피를 한손만으로는 틀어막지 못하자 두 손으로 코를 잡았다. 11번은 바빌로프를 마치 벌레 보듯이 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네가 아는 그 누구에게서도 의뢰를 받은 게 아니라는 거다. 멍청아. 아, 굳이 의뢰를 받았다고 한다면.... 우린 여신님이 보내셔서 왔다.”

“쿨럭. 쿨럭..... 여신.....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미친놈들아! 너흰 무슨 이상한 컬트에라도 있는 놈들.... 아악!”

바빌로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11번은 발을 들어 그의 얼굴을 찼다. 바빌로프는 무기력하게 뒤로 쓰러졌다. 그의 코에서 겨우 멈추기 시작했던 피가 더 많이 흘러나왔다.

“조용히 해. 아무도 여신님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다. 알겠어? 하여간 너희들은 너무 예의가 없어. 계속 그렇게 굴다간 그땐 네 기억을 읽을 필요 없이 그냥 죽여 버릴 거야.”

11번과 23번은 각각 바빌로프와 그리고리 앞에 서서 그들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이제부터 네놈들의 기억을 읽을 거야. 그러니까 조금도 움직이지 마. 만약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바로 목을 잘라버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