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20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20

알고 보면 까를로는 그야 말로 자기가 맡은 임무를 충실하게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보이라는 알렉시스의 말을 잘 따른 것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녀가 말문이 막힐 때마다 위기를 모면하게 했으니 기대 이상으로 잘 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맘 편하게 웃을 수 없었다. 왜냐면 까를로의 입에서 뭐라고 말이 나올 때마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별다른 계획을 생각할 것도 없었다. 드라마에 미쳐있는 텔리 앞에서 엔터네인먼트 사업을 살짝 언급한 후 관심을 끈 다음에는 죠셉의 일과 그녀 자신의 일을 하도록 설득하려고 했던 것뿐이었는데, 희한하게도 상황은 이상한 방향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아무튼 텔리는 이제 완전히 알렉시스와 까를로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자, 어디 좀 더 들어보자구. 오, 영화라니. 그것도 천사의 오후를 영화로 만든다는 거 아냐. 이거 오랜만에 피가 끓는구만! 좋아, 까를로. 넌 뭔가 엔터테인먼트를 많이 알고 있는 눈치인데, 혹시 영화쪽의 일을 하고 있나?”

“그건 아닙니다. 전 에... 뭐... 자동차쪽의 일을 쭉 하고 있었습니다.”

“오, 일단은 그 업계 사람은 아니었구만. 흐음...”

까를로는 자동차를 훔치는 도둑이었지만 도저히 그대로 얘기할 수 없어서 그렇게 얼버무렸다. 아무래도 그쪽으로 더 자세히 대화를 끌고 가다가는 금방 밑천이 드러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알렉시스는 이제 대충 그 얘기는 마무리 짓고 죠셉과 관계한 얘기를 시작하려고 했다.

“텔리님, 그 얘기는 차근차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죠셉의 일을 먼저 말씀드려야겠는데요. 그간에 있었던 일도 설명을 드려야 할 것도 있고요.”

그런데 가만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할 미스터 황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자동차? 그럼 그 업계에 몸담고 있는 입장도 아닌데 드라마니 영화니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단 말이야? 어이없네. 게다가 영화라고 하면 역시 헐리우드잖아. 우리가 있는 곳은 서부도 아니고 동부인데.”

“여기 뉴욕에도 얼마나 많은 텔런트 에이젼시가 있는 줄 알아? 여기에서도 큰 산업이라고!”

알렉시스가 재빨리 달려들어 미스터 황의 입을 막았다. 그러자 곧 바로 까를로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한 때는 이곳 뉴욕에 많은 수의 스튜디오가 있었죠. 그런데 나중에 서부로 옮겨간 겁니다. 그러면서 많은 창조적인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과 프로듀서들이 거기로 발을 돌린 겁니다. 그러니 뉴욕은 전통적으로 그쪽 산업과 무척이나 관계가 깊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죠셉과 동료들은 놀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설마 까를로가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제야 미스터 황은 뒤통수를 긁으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으음. 그런 건 또 몰랐네.”

알렉시스는 잠시 목을 고르더니 말을 이어갔다.

“흠흠. 잠시 다른 얘기를 하게 되었지만, 다시 죠셉과 관계된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텔리는 죠셉의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 싫어. 한창 재밌는 얘기하다가 재미없는 얘기를 다시 꺼내는 거야?”

“사실 드라마니 영화니 엔터테인먼트 일을 굳이 말씀드린 이유는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과 관계가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 죠셉이 복수하겠다는 거랑 천사의 오후 영화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영화라는 게 아무래도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 아니겠습니까?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 천사의 오후라는 코리안 소프 오페라는 솔직히 텔리님 외에는 그렇게 열광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 아닌데? 그거 한 번 보면 정말 빠진단 말이야. 너도 한 번 보고 말하든가.”

“아, 그럼요. 텔리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저도 봐야죠. 그런데 대중적으로는 큰 인기를 얻기 힘든 드라마 아니겠습니까? 그걸 영화화 하겠다면 누가 투자하겠습니까? 투자 없인 힘들지요.”

“그래?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 알렉시스, 네가 가진 돈으로도 안 돼?”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제가 받는 느낌으로는, 텔리님께서는 높은 퀄리티로 만들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 그렇지. 일단은 내가 워낙 좋아하는 드라마니까, 굳이 내가 제작한다고 하면 정성을 기울이고 싶지.”

“그렇습니다. 역시 제가 예상한 그대로군요. 그럼 자금을 모을 방법을 생각해야겠지요. 오늘 텔리님께서 그 드라마 때문에 무척 속상해 하시는 것을 보고 저도 마음이 심란했는데, 마침 오늘 텔리님께 소개하려고 하는 죠셉의 동료들 중 이 까를로라는 친구가 엔터테인먼트쪽으로 관심도 많고 지식도 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 제가요? 읍읍...”

그 말을 듣고 까를로는 화들짝 놀랐다. 그가 뭐라고 말실수를 할까봐, 죠셉은 재빨리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알렉시스는 말을 이어갔다.

“그 자금을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죠셉이 열쇠를 쥐고 있더군요.”

“엥? 죠셉이?”

“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도우시면 자금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바로 그의 복수를 도와주시면 됩니다.”

“무슨 말이야? 얘가 복수를 하려는 건...”

“네. 바빌로프입니다. 지금 뉴욕에서 가장 부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에에.... 바빌로프? 음, 그놈은 내 의형제인데. 그리고 확실히 그놈이 보로니를 죽인 게 맞아?”

“지금 앤디가 증거를 모으고 있습니다. 곧 그 정보가 제게 전해지겠지만, 지금까지는 그 증거들이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번에 죠셉을 살해하도록 사주한 것도 분명히 그였습니다.”

“흐음...”

텔리는 입을 삐죽였다.

“증거야 뭐, 내가 직접 찾아가서 그 놈 기억을 읽어버리는 게 더 빨리 알 수 있겠지. 바빌로프가 정말 내 옛 사제를 죽였고 그 아들까지 노리고 있다면,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겠군.”

텔리는 끝까지 영화 제작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바빌로프를 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빌로프를 제거하는 주 이유는 아닐지라도, 중간에 그의 결심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장치는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러니까 알렉시스, 네 말인 즉슨,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일은 비단 죠셉을 돕는 것만이 아니라 내 일과도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거네. 그치?”

“예. 바로 그렇습니다.”

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일단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몸도 풀겸 다른 일을 하나 해야겠다. 알렉시스, 앤디 공에게 전화 걸어서 뭣 좀 빨리 알아봐.”

“예? 무엇을 말인가요?”

“도박장에서 만난 차이니즈 애들 말이야. 그놈들 윗대가리가 지금 어디 있는지 좀 알려달라고 해. 쥬니아의 딸, 펠리시아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놈들이니까 손 봐줘야 돼. 내가 직접 할 거야.”

“차이니즈 갱을요?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럼. 그것도 다 내 일인데 빨리빨리 해야지. 나머지 놈들은 가방을 가져와. 돈 많이 담을 수 있게 크은~ 걸로. 제작비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겠어? 차이니즈 놈들도 불법 지하 도박장을 경영하고 있는데 돈이 얼마나 많겠냐? 그걸 다 가져와서 제작비로 쓰는 거야.”

“세상에... 예. 알겠습니다. 당장 앤디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알렉시스는 손에 핸드폰을 들고 앤디에게 전화하기 위해 조용한 방으로 들어갔다.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집에 틀어박혀서 뒹굴거리던 텔리가 갑자기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단. 자기중심적으로 따지자면 세상에 첫 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성격을, 그와 오랫동안 같이 지낸 알렉시스가 제대로 파악하고 자극한 결과였다. 예전에 강원도의 산 속에서도 그녀의 의견을 듣고 그녀의 생각대로 텔리가 움직였던 것을 한 번 목격했던 미스터 황은 지금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보고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와... 알렉시스. 저 여자, 진짜 보통이 아니네. 무서운 텔리님을 자기 맘대로 움직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