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7 화

루시 – 7

소호로 돌아가기 전, 마르코는 어디론가 차를 몰았다. 그가 차를 멈춘 곳은 한 어두운 골목 앞이었다. 텔리는 창문 너머로 골목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야, 여기가 소호야? 왜 이런 데로 왔어?”

마르코는 차문을 열면서 대답했다.

“옷과 차를 새로 구해야 할 것 아닙니까? 사람이나 차나 이꼴로 어떻게 더 다녀요? 까를로, 넌 어디서 차 좀 새로 구해와. 조심해.”

“알았어.”

까를로는 발 아래에서 길고 납작한 막대기를 하나 꺼내더니 문을 열고 나갔다.

“호오. 이 녀석들은 꽤나 조심성이 있는 녀석들이네. 그건 좋은 거지. 암. 이 녀석들, 나름 프로라는 건가? 제법 한 몫을 하려고 하는데? 훗훗.”

텔리는 차 밖으로 나가는 두 녀석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마르코는 어두운 골목 안으로 발을 들였다. 긴 골목의 반대쪽 끝의 밝은 거리를 보며 그는 생각했다.

‘소호를 나서면서 이런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어. 차라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 혼자라도 저쪽으로 몰래 도망칠까?’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왠지 그랬다가는 정말 큰일이 생길 수도 있어. 일단 저 초능력자 놈이 끝까지 날 따라올 지도 몰라. 지금 까를로와 죠셉, 돈테를 배신하는 건 쉽지만, 그들 역시 날 배신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내가 있을만한 곳을 저 초능력자 놈에게 알려줄 지도 모르지. 그래, 그런 일은 언제나 바이스 벌사(vice versa)라고.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반드시 그들보다 먼저 이 수렁에서 빠져나갈 거야.’

자신이 상대를 배신한다면 상대방도 그를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법. 그래, 그거야 당연한 거지. 마르코는 골목 안을 조금 걸어가더니 중간쯤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곳에는 몇 명의 노숙인들이 있었다.

“이봐, 친구들. 당신들에게 제안할 게 있어.”

골목의 양쪽에 가만히 앉아 있던 노숙인들은 고개를 들어 마르코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누구요?”

“나? 난 당신들의 친구지. 들어들 봐. 당신들이 입고 있는 그 외투들. 내가 돈을 주고 사려고 하는데 어때?”

“옷? 우리들 옷을? 이런 옷을 왜 산단 말이오?”

“한 벌에 100불에 주고 사겠어. 어때?”

“으음...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은 뭐가 어때서 우리 옷을 사겠다는 거요?”

“그건.... 아니, 그래서 100불씩에 사려는데 좋아? 싫어? 여기 봐봐. 난 농담을 하는 게 아냐. 진짜 돈을 보여주지.”

마르코는 노숙인들의 질문에는 즉답을 피하면서 그들에게 100불짜리 지폐를 보여주면서 옷을 팔 것을 연거푸 제안했다. 돈을 본 노숙자들은 자신들이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아니니, 그들은 하나 둘씩 겉옷을 벗었다.

“허허. 뭐 우리야 한 두 벌씩 옷이 더 있으니까, 하나 정도야 그 가격이라면 당연히 팔고 싶죠.”

“그나저나 별일이 다 있군.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을 그렇게나 큰 돈을 주고 사겠다는 사람을 만나다니. 혹시 바지랑 속옷을 포함한 값은 아니겠죠? 그건 좀 곤란한데....”

“아냐. 난 외투만 필요해.”

노숙인들로부터 외투를 건네받은 마르코는 지갑을 꺼내서 그들에게 100불 지폐를 한 장씩 손에 쥐어주었다. 흐뭇하게 웃는 노숙인들을 보며 마르코가 말했다.

“친구들. 오늘 밤은 좀 위험하니까 이렇게 거리에서 있지 말고 어디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야. 가급적 주위에 사람이 없는 실내로 말이야. 여기 길바닥에 있다간 무슨 안 좋은 일에 휘말릴 지도 몰라.”

“왜요? 비가 내렸지만 오늘은 길거리에서 자지 못할 만큼 그렇게까지 추운 날은 아닌데.”

“그냥 내말을 믿는 게 좋아. 오늘은 정말 날이 안 좋으니까 제발 실내로 들어가라고. 난 아까 당신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지옥 같은 곳에서 있다가 겨우 살아나왔거든. 그런데 어쩌면 그곳의 이상한 놈들이 여기까지 올 수도 있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당신들도 까딱하다가 시티 모르그에 한 칸씩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구.”

마르코는 그 충고를 끝으로 노숙인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가 자리로 돌아오자, 새로운 차 한 대가 타고 온 차 뒤에 서 있었다. 까를로가 그 짧은 시간동안 자동차 한 대를 어디서 구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돈 가방들을 미리 옮겨 놓기까지 했다. 마르코는 까를로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네. 까를로. 정말 차에 대해서는 널 따라갈 사람이 없겠다.”

“아냐, 어느 세상에 도둑질이 칭찬받을 일이냐. 넌 옷을 구해왔어?”

마르코가 그와 텔리에게 노숙인들의 옷을 건네주자 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특히 텔리는 화를 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니, 나더러 이런 걸 입으라고? 난 싫어. 안 입어. 아니, 못 입어.”

“가장 빨리 옷을 구하려고 그랬습니다. 여기저기 피 묻은 모습으로는 어디 가서 옷을 사기도 쉽지 않아요.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는 소호의 아파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요. 그리고 지금 당장 입지 않아도 돼요. 아파트에 들어가기 전에 아주 잠깐만 위에 걸쳐서 가리는 겁니다.”

“으익, 그거나 이거나.... 쯧.”

마르코는 타고 온 차량의 이곳저곳을 대충 닦은 후 이미 시동이 걸려있는 새로운 차의 운전석에 앉았다. 텔리와 까를로는 여전히 기분이 상했는지 그리 밝지 않은 표정으로 새로운 차에 올라탔다.

* * *

그 후, 마르코는 운전하면서 쉴 새 없이 텔리가 툴툴거리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또라이 새끼.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몇 명이든 몇 십 명이든 죽이는 악마새끼가 겨우 옷 때문에 저렇게 투덜거린단 말이야?’

몇 분이 지나도 계속되는 텔리의 불만 섞인 소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그는 룸미러로 뒤에 앉은 텔리를 보면서 물었다.

“이봐요. 옷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아까 말했듯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

“옷 때문이 아니야. 멍청아. 어떤 거지같은 년 때문에 그런 거다. 뭐? I’ve seen the future, baby. It is murder? 이 년이 아주 간덩이가 부었군. 날 상대로 그렇게 노골적으로 싸움을 걸어와? 스모크 샵의 비피도 그 지경으로 패놓고? 그건 도대체 무슨 의미야? 그리고 날짜와 스모크 샵의 주소는 왜 적어 놓은 거야? 설마 내게 결투 장소를 알려준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허.... 정말 어이없네.”

텔리는 옷 때문에 투덜거린 게 아니라 바로 폴라로이드 사진 속의 엉망진창으로 두드려 맞은 후 찍힌 비피의 모습과 사진 뒤에 적힌 글귀를 보고 그랬던 거였다. 그 말을 들은 까를로가 갑자기 눈알을 굴리며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따따 따따 따따... 잇 이즈 머더. 오, 이제 생각났다! 그거 노래에요.”

“노래?”

“예. 그 구절을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고 생각했는데, 개러지를 운영하던 우리 삼촌 로비가 샵에서 자주 틀었던 노래의 가사 같아요. 따따 따따 퓨처. 잇 이즈 머더. 따단딴. 분명 그런 노래가 있었어요.”

“이게 노래라고......?”

텔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손에 쥔 폴라로이드 사진의 뒷면을 잠시 응시했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이 났다는 것처럼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개구리, 라디오 좀 틀어 봐.”

“라디오요?”

“그래.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어. 라디오를 틀어.”

까를로가 아무 생각 없이 라디오를 틀자,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Destroy another fetus now.

We don't like children anyhow.

I've seen the future, baby: It is murder.....‘

“맙소사. 내가 얘기한 게 바로 이 노래에요. 아브 씬 더 퓨처, 베이비. 잇 이즈 머더. 따단딴. 이 부분의 가사잖아요.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

바로 까를로가 말했던 그 노래였다. 거짓말처럼 말이다.

“우연?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야. 이디레이아, 그 여신은 일부러 여기 저기에 자신이 예언한 일의 증거를 숨겨놓는 버릇이 있어. 한 마디로 잘난 척 하는 거지. 그녀는 아마 내가 지금쯤 라디오를 틀어서 그 글귀가 노래의 가사란 걸 확인할 거란 것도 이미 알고 있었을 거야. 정말이지 재수 없는 년이야.”

이제 이디레이아가 폴라로이드 사진의 글귀를 적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텔리는 더 이상 투덜거리지 않았다. 그리고 소호에 도착할 때까지 조용히 클로브 담배만 피웠을 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