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27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27

건수는 기이한 모습으로 땅속에 있는 할머니를 보고 스라소니 산신령에게 물었다.

“신령님, 할머니가 왜 저런 모습으로 있는 건가요?”

스라소니 산신령은 건수에게서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지면서 대답했다.

“할머니의 부상을 치료해보겠다고 해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걸세. 그리고 지금까지는 꽤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아직 죽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야. 나중에 들었는데, 할머니는 보름달이 떴었던 그 날, 스스로 다시 여기 들어왔다고 하더군. 그런데 몸이 약해질 데로 약해져서 그 상태로 다시 세상으로 나가게 되면 얼마 못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더군. 그래서 내 친구 멧돼지가 한 동안 이곳에서 그녀의 몸을 회복시키기로 결정했지.”

“그런데 모습이.... 왜 목 아래를 땅에 파묻고 있는 건가요?”

“이곳 땅의 힘을 이용하는 거야. 이곳은 멧돼지의 능력이 담겨있는 공간이거든. 그 안에 몸을 넣어놓으면 기력이 회복된다는 원리인데, 다만 왜 저렇게 눈을 감고 잠만 자는 지는 나도 궁금할 따름이야. 전해 듣기로는 여기 온지 얼마 안 돼서 자네에 대한 예언을 하고 난 뒤 계속 저렇게 잠을 자고 있다고 하더군. 그 뒤로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다고 해.”

그 말을 들은 건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께서 나에 대한 예언을 하시고 그 후부터 계속 주무신다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아니, 나에 대해 예언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너무 이상해. 내가 도대체 뭐라고.’

스라소니 산신령은 건수를 보고 말했다.

“만약 저 여자가 자네가 오늘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자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을 지도 몰라. 또한 내게 일어난 일도 알고 있을 수도 있고. 그래서 나도 자네가 오늘 온다고 하기에 때 맞춰 온 걸세. 함께 물어보려고 말이야.”

건수는 스라소니 산신령을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산신령님께서도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그래. 나도 자네처럼 그 어두운 구멍... 그러니까 자네가 검은 방이라고 부르는 곳에 들어갔었어.”

“검은 방에 들어가셨다고요?”

스라소니 산신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그리로 날 데려갔었다. 그리고 거기서 날 치료해주고 다시 밖으로 내보냈어.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보니까 난 밖에 쓰러져 있었는데, 전에 입었던 큰 부상은 모두 깨끗하게 치료가 되어 있었지.”

산신령이 검은 방에 있었다는 것과 그곳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는 얘기에 건수는 흥분했다. 자신의 몸에 대한 수수께끼도 풀린 것 같았다.

“검은 방에서 치료를 받으셨다고요? 그렇다면 저도 거기에 있었던 거군요? 그래서 제 몸이 이렇게 바뀐 거 아닌가요?”

“그럴 지도 모르지. 내 상처가 치료된 것을 보면 자네 모습이 이렇게 바뀐 것도 우연은 아닐 걸세. 그 어두운 곳의 누군가가 우리 몸을 고쳐줬는 지도 몰라.”

“그럼 검은 방의 그 누군가가 제 예전 몸으로 돌아가는 방법도 알 거예요. 그것 참 다행입니다!”

“응? 다행이라고?”

건수는 눈을 반짝이며 소리 질렀다.

“예. 왜냐하면 그 검은 방의 주인이신 분이 바로 그 늑대 신령님이시거든요! 그분이 고쳐주신 게 분명해요! 드디어 수수께끼가 풀렸어요. 굳이 할머니께 여쭤보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 구덩이가 늑대 신령의 집이었던 게로군. 그렇다면 그 늑대 신령을 내가 만날 수 있을까? 자넨 그와 친하니 지금 여기로 부를 수도 있겠지?”

“지금요? 아니요... 당장은 연락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음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가능합니다. 그땐 제가 검은 방으로 들어가서 직접 여쭤볼 수 있거든요.”

건수의 말을 들은 스라소니 산신령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비쳤다.

“그것 참 곤란하군. 난 당장이라도 그를 만났으면 좋겠는데.”

“네? 그렇게 급한 일인가요?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건수는 산신령이 왜 케르케로우스를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어 하는지 그 까닭이 궁금했다.

“자네만큼은 아니지만 내 몸에도 변화가 생겨서 그렇다네. 만약 그가 내 몸을 고쳐준 거라면 한시라도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고 싶은데 말이야.”

건수가 보기에 스라소니 산신령의 겉모습은 멀쩡했다. 그의 몸의 이상을 살피는 건수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산신령은 건수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실은 그 어두운 구멍에서 나온 다음부터 내 몸이 정상이 아니라네. 이렇게 겉보기엔 멀쩡하네만, 분명 이상해졌어. 일단 예전의 내 몸과는 느낌이 좀 달라.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걸 느끼고 있다네. 또 한 가지, 이건 좀 내게 큰 문제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내 집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네. 아무리 내 집의 문을 열려고 해도 전혀 열리지 않게 되었어. 그러니까 그게 벌써 몇 달이나 되었군.”

그 얘기는 스라소니 산신령이 다른 신령들처럼 자신의 공간에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집에 있을 땐 거의 먹지 않아도 되지만, 밖에 있을 때는 나도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세상의 동물을 많이 잡아먹어야 하거든.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녀야 하고 또 그러다보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띌 수도 있고 말일세. 하여간 요즘은 내 생활이 좀 불편하고 힘들어졌어.”

“그건 큰 문제인데요? 정말 급한 일이 맞네요.”

스라소니 산신령은 땅 위로 목만 내밀고 있는 할머니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늑대 신령을 당장 만날 수 없다면 일단 저 여자에게라도 물어보자고. 만약 여자에게서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다면 별 수 없지. 다음 보름달이 뜨는 밤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둘은 그렇게 서로 중요한 정보를 공유한 다음, 함께 할머니에게 걸어갔다.

* * *

가까이 가서 본 할머니의 모습은 다시 봐도 참 이상했다. 목 아래 전신이 땅 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누가 흙을 파내어 끌어 올려주지 않는 이상, 혼자서는 나오기 힘들 것 같아 보였다.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군가 할머니에게 해를 입히려고 한 것으로 착각하기 좋은 그림이었다.

“아니... 치료도 좋다지만 그래도 사람을 이렇게.... 어후. 보기 영 안 좋은데요?”

스라소니 산신령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반 사람들이 보면 놀랄만한 광경이지. 하지만 표정을 보게.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에 다가왔어도 깨지 않고 걱정 하나 없이 잠든 얼굴이 아닌가. 자, 건수 신선, 어서 할머니를 깨워보게. 지금까지는 누가 와서 깨워도 눈을 뜨지 않았어. 다만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뒤, 잠에 빠졌다고 하니까 어쩌면 자네가 깨울 수 있을 거야.”

“아... 예. 쩝.”

동화에 나오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아닌데, 건수는 졸지에 잠자는 할머니를 깨우는 왕자 역을 맡게 된 셈이었다. 그는 할머니의 머리 앞에 가서 한 쪽 무릎을 꿇은 다음, 할머니를 불러보았다.

“할머니. 할머니. 저 건수에요. 일어나보세요. 할머니.”

그가 할머니를 몇 번 부르자, 잠자고 있던 할머니의 눈꺼풀이 조금 꿈틀거렸다.

“으으응..... 하아암.”

할머니는 하품을 하며 눈을 떴다. 그녀는 건수를 보자 놀라워 하며 말했다.

“오오, 건수냐? 네가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