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30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30
할머니와 강원도 아저씨, 그리고 싸이언스의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 앉았다. 할머니는 가게 안을 한 번 쭉 둘러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참 신기한 일이네. 이 가구점으로 나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건수와 전화통화를 마친 싸이언스가 커피 5 잔을 올려 놓은 쟁반을 가지고 걸어왔다.
“할머니, 여기 커피라도 한 잔 드세요. 아저씨도요. 그런데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신 거에요? 원래는 여기 오시려고 하셨던 게 아니었나 봐요?”
“아니야! 원래는 저어기 아래... 대전까지 가는 길이었어. 그런데 이 지역의 신령님께서 대전까지 가는 길을 열어주실 수 없다는 거야. 중간에 누가 강한 결계가 쳐놨다고, 길이 막혔다고 하시더라고. 그리고는 최대한 갈 수 있는 곳까지 통로를 열어주신다고 했는데, 문이 열리고 보니까 보이는 풍경이 딱 여기 가구점이지 뭐냐. 전에 한 번 와봤던 곳이니까, 당연히 도모, 널 찾았던 게지.”
강원도 아저씨는 킥킥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할매. 그 때는 할매가 앞 못 보는 장님이었잖아요. 그런데 그 때 보긴 뭘 봤다는 거예요? 히히히.”
“에라이. 급살 맞을 눔아. 뭘 알고 지껄여. 난 봉사였을 때나 눈 뜬 지금이나 보이는 건 비슷했다! 그런데 도모 애비는 왜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싸이언스의 아버지는 정체불명의 할머니와 아저씨가 가게 한 가운데서 갑자기 튀어나와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는 조금 전 할머니에게 힘으로 제압 당했기 때문에 분해도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 심경이 고스란히 얼굴로 다 드러난 모양이다. 싸이언스는 아버지 옆자리에 앉으며 아버지의 팔을 잡았다.
“아버지, 할머니와 아저씨는 제가 강원도에서 큰 신세를 졌던 분들이세요. 생각하시는 그 사이비 종교 녀석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시다고요.”
“그런데 신령... 따위를 자꾸 말하잖아. 아무래도 벽용두와 한 패 같은데, 혹시 네가 잘 못 알고 있는 거 아니냐?”
할머니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난 아까부터 이눔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이눔아, 내가 그 벽용두인지 벽창호인지 하는 놈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신령님이 뭐? 네놈이 신령님들 중 한 분이라도 뵙고 나서 그런 말을 지껄이는 게냐?”
“세상에 신령이 어딨어? 하! 신령은 무슨! 그게 다 악귀한테 영혼을 팔아서 그러는 거지!”
“어이구. 이눔 봐라. 신령님더러 악귀란다.”
“그럼 악귀지! 내 아들을 잡아가고 내 팔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신령 따위는 없어!”
아버지도 그 나름대로 과거에 겪었던 일이 있어 알 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는지, 할머니에게 대들었다. 할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알을 굴리면서 강원도 아저씨에게 말했다.
“오 선생, 거기 자네 주머니 안에 계신 신령님께 혹시 나와 주실 수 있는지 한 번 여쭤봐. 이젠 이눔이 신령님이 안 계신다고 그러네.”
싸이언스는 양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할머니와 강원도 아저씨를 말렸다.
“아아, 그건 안 돼요! 여기서 멧돼지 산신령님이 나오시면 우리 가게가 다 부서진다고요!”
“그럼 어쩌누. 네 애비가 자꾸 할미를 거지뿌래이 하는 실없는 사람으로 만든단 말이다.”
“그건 아버지가 신령님을 뵐 기회가 없으셔서 그래요. 제가 다 차근차근 설명할께요.”
“그래서 내가 단 번에 알 수 있게 멧돼지 산신령님을 뵙게 해준다니까.”
아버지는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손가락으로 출입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휴, 진짜! 산신령인지 산귀신인지 됐고! 두 사람 다 당장 내 가게에서 나가요. 영업 방해 하지 말고 당장 나가라고요!”
할머니는 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올리더니 말했다.
“못 가. 이걸 갖다 줬는데 다 마셔야 가지. 그리고 건수도 불렀는데, 잠시 만나보고 갈 거야.”
“뭐, 뭐라고요? 그걸 왜 당신 맘대로 하는데?”
할머니는 아버지로부터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애비와는 말할 필요가 없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애미쪽이야. 오 선생, 여기 도모 애미한테서 신령님 냄새가 났다고 했지?”
“네. 분명히 냄새가 짙은 걸 보니 최근까지 접촉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구만. 자, 도모 애미는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내게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어. 정말 어떤 신령님을 만나 뵈었던 거야? 그리고 여기 쳐져 있는 결계는 어떻게 된 거야? 왜 신령님들의 통로가 중간에 막힌 거지?”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할머니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벙어리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말 좀 해봐. 혹시 지축이 왜 흔들렸는지 아는 게 있어? 만났던 신령님께 뭘 들은 게 있냐고?”
“모... 몰라요. 전 무슨 말씀하시는 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신령님은 만났던 거잖아. 그치?”
“예, 예. 신령님들이 절 여기로 보내셨어요. 제 아들을 돌보라고 하시면서.”
할머니는 서 있는 아버지를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봐봐. 여기 자네 마누라는 신령님들을 만났다고 하잖아. 그런데 자네는 왜 신령님이 없다고 그러는 거야?”
아버지는 식탁을 손으로 내리치면서 분노했다.
“저 여자 말을 누가 믿는다고 그래요? 저 여자가 나랑 도모에게 무슨 짓을 했는데! 내 가족에게 무슨 짓을 했는데! 빨리 내 가게에서 나가요!”
할머니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아... 그랬구나. 그래. 알았어.”
꼭 옆에서 누가 그녀에게 말하는 것을 듣는 것 같이 행동했다. 다시 눈을 뜨며 아버지의 팔을 보고 말했다.
“자네 팔이 그렇게 된 것은.... 신령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누가 그러는구만. 아. 아. 알았어. 사고... 차 사고가 있었다는군. 도망가다가 차 사고.... 그리고 그놈들이 쫓아와서... 아, 그래. 또 다른 아들을 잃고, 나중에 마누라가 떠났다고 하네. 그래서 그 모든 걸 그 사이비 놈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거야? 그리고 나한테까지 분노를 퍼붓는 것이고?”
“아니, 그걸.... 어떻게?”
할머니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다 알고 있어?”
할머니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눔아, 내가 아까부터 그러지 않았더냐? 이 주변에 있는 영가가 내게 다 말해주는 게 있다고.”
아버지는 벌벌 떨면서 물었다.
“그... 그 귀신이란게 호, 혹시 백도입니까? 나 백도인가요? 제 아들입니까?”
“니 아들? 아닌데? 여자야. 이름이.... 응. 응. 그래. 영가가 말하길 자기 이름이 혜미였다고 한다.”
“혜미?”
그러자, 순간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혜미? 주 혜미요?”
할머니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름이 주 혜미였다고 한다. 도모 애미를 따라 왔다고 하네.”
“세상에 이럴 수가! 혜미 언니가... 혜미 언니가 귀신이 되었었다니. 나랑 줄곧 같이 있었던 거였어!”
“그래. 자긴 죽고 널 쭉 따라다녔다고 한다. 여기 같이 왔다고 하네.”
주혜미라는 귀신이 할머니에게 얘기한다고 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믿을 수 없어. 혜... 혜미씨는 우리 가족과 함께 사이비 놈들의 마을을 탈출하다 죽었던 사람인데.... 귀신이 되었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여보, 혜미 언니는 죽고 난 후 쭉 나와 함께 있었나 봐요.”
부부는 귀신의 정체까지 밝혀진 이상, 더 이상 할머니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의 넋 나간 표정을 본 할머니는 어머니가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오늘 여기에서 이 식구들을 만난 건 대단한 우연이구먼. 아니, 어쩌면 우연이 아닌 건지도 몰라. 그럼 내 얘기를 먼저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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