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87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87

텔리는 잠시 죠셉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텔리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차분해진 태도와 눈빛에서 그의 진심과 각오를 느낄 수 있었다. 텔리는 다시 클로브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말했다.

“에이, 안 돼. 지금 나한테 걸린 일이 너무 많아. 네 애비 일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다.”

죠셉은 그의 대답에 크게 실망했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부탁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제 아버지는 당신의 사제였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여기 있는 이 자, 현재 당신의 사제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하면 텔리님께서는 그의 복수를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미스터 황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복수할 거냐고? 글쎄.... 이 새끼는 까칠하기도 하고, 내가 무슨 일이라도 시키면 늘 툴툴거리고, 또 항상 말대답하는 아주 싸가지가 바가지인 놈이라서..... 그래도 모르겠다. 일단 현재 상황으로 말하자면, 복수를 해줄 가능성은 50%야.”

미스터 황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 죠셉. 이 양반은 그렇게 의리파 타입이 아니야. 순 자기 맘대로만 행동한다구. 기분 좋으면 복수해주고 안 좋으면 관두고 그럴 거야. 내가 뭘 기대해. 헹!”

텔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스터 황을 쳐다보면서 일부로 담배 연기를 그의 얼굴에 뱉었다. 미스터 황은 그걸 들이쉬고는 ‘켁켁’ 거리며 기침했다.

“후우..... 봤지? 봤지? 이 새끼가 이렇게 싸가지 없게 말을 해요. 내가 진짜 오랫동안 살면서 이렇게 버르장머리가 없는 놈은 처음 봐. 이건 용기도 뭐도 아니야. 지 곁에 죽음이 늘 도사리고 있는 데도 그냥 간을 배 밖에 내놓고 사는 놈이라고. 내일은 없다 하고 사는 또라이야. 또라이. 알겠어? 그런데 내가 왜 이런 놈의 복수를 해줘?”

텔리는 단칼에 죠셉의 청을 거절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텔리님, 그 스모크 샵에서 당신에게 버릇없게 굴었던 러시아 놈 말입니다. 그가 제 아버지 보로니를 욕했을 때, 당신은 분노하시면서 그의 목숨을 취하셨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도 제 아버지에 대해 신경 쓰신다는 것 아닙니까?”

죠셉이 비피의 스모크 샵에서 텔리에게 시비를 걸다가 죽었던 러시안 갱스터, 닉의 일까지 예를 들며 그를 설득하자, 텔리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았다. 그는 클로브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 뱉으면서 말했다.

“후우우..... 그래, 그 땐 내가 분명 그 놈에게 경고했었지. 내 사제였던 보로니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고. 그걸 무시했던 그 놈은 죽게 된 것이고. 네 친구, 마이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 녀석에게 충분히 도망갈 시간을 줬지만 그 녀석은 끝까지 나를 죽이려고 미련을 떨었지.”

텔리는 일부러 다시 마이클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죠셉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죠셉의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예. 텔리님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전 몰랐는데, 상황을 자세히 알고 보니 마이클이 자기 운명을 재촉했던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도 저만큼 텔리님에 대해 알았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겁니다. 덩치만 컸지, 그렇게 미련한 녀석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텔리는 눈을 반쯤 감고 죠셉을 보더니, 느릿느릿한 말투로 물었다.

“그렇다면.... 넌 내가 마이클을 죽였는데도... 내 도움을 받고 싶다는 거야?”

죠셉은 다시 한 번 눈을 질끈 감았다고 떴다. 그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였습니다. 제가 텔리님의 말씀도 들어보니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텔리님의 말씀대로 그 일은 운명적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텔리님께서 제 아버지를 만나 그를 사제로 삼으셨던 것과 제 일을 도와주시는 것도 운명일 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건방졌다면 부디 절 용서해주십시오.”

운명이란 단어가 죠셉의 입에서 튀어 나오자, 텔리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는 전에도 그랬지만 그 ‘운명’이라는 단어에 몹시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니, 운명이라니. 네 아버지를 만난 것과 널 만난 것 모두 운명이라는 거냐?”

“예. 전 그렇게 느꼈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넌 신인 내가 운명을 따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아, 그건......”

텔리의 돌발적인 질문에 죠셉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텔리는 연속해서 또 다른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말해 봐. 이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믿는 신은 운명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난 왜 운명의 영향을 받아야 하지?”

죠셉은 당황했는지 무릎에 올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무언가 현명한 대답을 해야 자신에게 유리할 것 같은데, 당장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슬슬 흥분하기 시작한 텔리는 콧구멍으로 뜨거운 콧김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넌 잘 모르겠지만, 우리 세계엔 운명의 여신이 있다. 우린 그녀가 우리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뒤에서 조종한다고 생각해. 네 생각엔 모든 신과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내가 그녀의 영향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냐?”

“글쎄요. 아니, 전 자... 잘.... 모.. 모르겠습니.... 다. 텔리님이 오신 세계는 제가 전혀 모르는 곳이니까요. 아무래도 제가 말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죠셉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텔리는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언성을 높였다.

“그래! 넌 엘리시움이나 그곳의 신들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지! 나 원..... 이거 기분이 정말 더러워졌군. 이상하게 이디레이아, 그 년만 생각하게 되면 왠지 기분이 더러워져.”

“죄... 죄송합니다.”

죠셉은 텔리와 처음 만난 자리였지만, 그와 대화를 하다 보니 그가 얼마나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화를 내기 시작하자 주눅이 들어 계속 사과를 했다.

“아니다. 죠셉. 뭣도 모르는 네가 뭐가 미안하다는 거냐? 실은 나도 네 말처럼 그 운명의 실이 나를 당기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네 애비, 보로니를 만난 것도 지금 너를 만난 것도 다 운명의 이끌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아주 기분 나쁘단 말이야. 나도 모르게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그러자 지금까지 가만히 얘기를 듣고만 있던 알렉시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이시여, 혹시 이디레이아 여신이 그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텔리는 성질이 났는지, 클로브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몰라! 그 거지같은 년이 수레바퀴를 돌리는지 물레바퀴를 돌리는 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알렉시스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만약 이디레이아 여신이 그 운명의 바퀴를 돌린다면, 텔리님께서 그녀를 제거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

텔리는 알렉시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심기가 몹시 불편했는지 입이 몇 cm는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솔직히 이번에 텔리님께서 많은 갱스터들을 하익티스로 변하게 하시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전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에피로제님을 모시면서 전 그 분의 능력이 전 엘리시움을 덮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텔리님의 능력에는 비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 텔리님께서 의지만 있으시면 엘리시움 전체를 재패하실 수 있으실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텔리는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날 어디 비교해도 그깟 불새랑 비교해? 야, 너 몇 달 전에 못 봤어? 난 혼자서 그 전설의 괴수, 베토케로우스도 몇 번이고 때려잡은 신이야. 불새니 뭐니 하는 다른 신들이 모두 연합해도 상대하지 못하던 그 괴수 말이야. 알렉시스, 넌 인간이어서 신들의 관계를 모른다고 해도, 어떻게 날 에피로제랑 비교하냐? 자존심 상하게. 쯧쯧쯧.”

텔리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자 알렉시스는 좀 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신이시여, 그렇다면 운명의 여신이 신께 무슨 장애물이 되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텔리님께서는 엘리시움의 모든 신과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꼭 지금이 아니고 나중에라도 여신이 텔리님께 방해가 된다면 지금 이 세계에 계실 때 제거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텔리는 그 말을 듣고 새로운 클로브 담배 한 개비를 다 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렉시스...... 너가 잘 모르는 게 있는데, 생사여탈권을 가진 살육의 신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