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15 화

루시 – 15

도시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의 한 장소.

개천이 흐르는 곳의 한 작은 다리 아래에서 여러 명의 그림자가 달빛을 반사하는 물 표면에 비쳤다. 그림자들은 거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흐르는 물 위에서 마치 석상처럼 서 있는 듯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총 다섯의 그림자의 주인들은 다름 아닌 몇 시간 전까지 맨하탄에서 일을 벌이고 온 텔리와 그 분신, 그리고 알렉시스를 포함한 나머지 인간들, 갱스터들이었다. 그들은 차 2대를 나란히 세워놓고는 밖에 나와 조용히 서 있었다. 살랑살랑 부는 밤바람에 나부끼는 금발 머리를 한 번씩 손으로 쓸어올리고 있던 알렉시스의 표정은 왠지 초조해 보였다. 갱스터들 역시 서로 딴 곳을 쳐다보면서 서로 간에 말을 아끼고 있었다. 다만 한 번씩 서로 얼굴을 보며 조용히 소곤거릴 뿐이었다. 평소 말을 아끼지 않는 텔리와 지금은 그 분신과 함께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다만 둘은 늘 그랬던 것처럼 쉬지 않고 클로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그들이 출정할 때 보여주었던 시끌벅적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와 더불어 그들의 표정이 영 밝지 않았다. 알렉시스가 손목시계를 보며 혼잣말했다.

“3조..... 동쪽으로 갔던 그들이 너무 늦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그녀의 말대로 아직 텔리의 분신과 함께 행동했던 마르코와 까를로의 3조가 약속한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했다.

* * *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에 한 대의 차량이 도착했다. 순간,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3조가 도착했는 줄 알고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을 비껴 나갔다. 묘령의 한 여성이 차에서 내렸기 때문이었다. 생소한 인상의 여인이 등장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알렉시스와 텔리는 여인을 쏘아보며 일단 경계했다. 여인은 차 문을 요란스럽게 닫고는 처음 보는 그들에게 다짜고짜 신경질을 냈다.

“아이씨, 내가 딱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뭔 놈의 일을 그렇게 충동적으로 하냐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드라마는 뭔 드라마야. 드라마 제작을 강도질해서 마련한 돈으로 하는 게 말이나 되냐?”

이 여성, 외모는 분명 화장을 곱게 한 여자였는데 목소리가 영 이상했다. 여자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걸걸하고 낮았다. 갱스터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뭘 그렇게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봐. 나야, 나. 미스터 황. 아까 만나고 인사했잖아.”

그녀는 바로 미스터 황이 여장한 모습이었다. 아니, 지금은 미스 황이라고 해야 하나. 텔리는 씨익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여장한 미스터 황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인마. 너 꼴이 그게 뭐냐? 여장하고 돌아다니다니 미쳤어? 화장에 치마까지 걸치고 저거 완전 또라이네. 킥킥킥.”

예전 한국에서 한 번 미스터 황의 기억을 읽은 적이 있었던 텔리는 그의 은밀한 취미가 여자아이들처럼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과 여장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킥킥 웃어댔다. 돈테는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능글맞게 웃으며 미스터 황에게 슬금슬금 접근했다.

“맘마미아. 데에에엠! 디스 비치즈 화아아아~인!”

그는 큰 걸음으로 성큼 다가가며 한손으로 여장남자의 엉덩이를 꽉 쥐는 것이었다.

“꺄아악!”

그러자, 미스터 황은 마치 여자처럼 비명을 지르더니 손을 들어 번개같이 돈테의 뺨을 후려쳤다. 돈테는 순간 몸을 휘청거렸는데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그대로 뺨 두 대를 더 맞아야 했다. 그런데 그건 보통 여자의 힘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아아, 미안! 내가 잘못했어! 미.......”

“야, 이 변태새끼야아아!”

사실 미스터 황은 예전에 텔리로부터 능력을 부여받아 보통 인간보다도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가격하는 것이니, 아무리 뺨 몇 대라도 보통사람인 돈테에게는 보통 아픈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성추행을 당한 미스터 황은 몹시 화를 내며 신고 있던 하이힐을 재빨리 벗어 던지더니 다리를 돈테의 몸통을 향해 들어 올렸다.

“컥!”

그의 옆차기는 돈테의 몸통 대신 그의 팔을 찼고 능글맞은 갱스터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다시 발을 들어 돈테를 밟으려고 하자, 나머지 갱스터들이 전부 달려들어 미스터 황의 양팔을 잡고 진정시켰다.

“이봐, 진정해! 이러다 돈테를 죽이고 말겠어~!”

“놔! 놔! 이 쌍놈 새끼가 감히 내 엉덩이를 잡아? 아아악! 더러워. 기분이 정말 더럽다구!”

여장을 한 변태가 자신을 성추행한 변태를 밟아 죽이려는 이 이상한 상황을 보자, 알렉시스는 한 번 깊게 한숨을 쉬더니, 한 손에 불을 붙이고는 공중에 들어 올렸다.

“이 멍청한 놈들아! 그만 좀 해! 너희들, 정말 내가 손을 쓰게 만들 거야?”

화르르 불타는 그녀의 손을 보자, 모두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이 덜떨어진 멍청이들아. 지금 3조가 아직도 오지 않고 있는 거 몰라? 라디오에선 시티에서 큰일이 났다고 연신 보도하면서 난리가 났는데, 걱정도 안 돼? 조용히 잠자코 기다리고 있지, 왜 쓸데없이 시끄럽게 소란을 피워?”

그들은 즉시 소란을 멈췄다. 미스터 황은 여전히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렸지만 일단 뒤로 물러났고 갱스터들은 쓰러진 돈테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잠자코 지켜보고만 있던 텔리가 씨익 웃더니, 그녀에게 한마디 했다.

“야, 알렉시스. 걱정하긴 뭘 걱정해. 너 설마 내 분신이 혹시 어떻게 됐기라도 했을까 봐 걱정하는 거야? 그건 날 모독하는 건데.”

알렉시스는 텔리를 행해 바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신이시여.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모독하겠습니까? 전 다만 1조를 제외한 나머지 두 곳의 증거를 불태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 우려가 될 뿐입니다.”

텔리 옆에 서 있는 분신이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인마. 내 말이 그 말이야. 네가 그런 무리한 계획을 세웠고, 또 띨띨하게 처리하는 바람에 지금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처음에 누가 나한테 시간을 벌기 위해 하익티스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더라?”

“아, 그건...... 바로 제가......”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알렉시스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녀는 어떠한 사심도 없이 텔리의 사업을 이루고자 자신의 한 몸을 불사른 것뿐이었는데, 잘못되어가고 있는 모든 일이 전부 그녀의 책임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