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95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95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알렉시스는 폐 창고에서 나왔다. 그녀는 차로 가더니 트렁크에서 삽을 하나 꺼냈다. 그 삽을 들고 다시 건물에 들어가더니, 흙처럼 보이는 가루를 한 삽을 떠서 나왔다. 그러더니 땅 여기저기에 뿌려댔다. 그녀는 가만히 옆에 서 있던 죠셉에게 삽을 건네주며 말했다.
“방금 내가 하는 거 봤지? 지금부터는 너가 해.”
죠셉은 땅 바닥에 담배를 던지며 물었다.
“그게 뭐하는 건데? 설마 그거 그 두 놈을 화장한 가루 아니야?”
알렉시스는 대답대신 손가락으로 그 주변에 던져 놓은 담배 꽁초를 손으로 가리켰다.
“맞아. 그리고, 너. 그 담배 꽁초는 뭐야? 무슨 일이 있어도 증거를 남기면 안 된다는 거 몰라?”
“뭐? 담배꽁초?”
“그래. 전부 주워서 네 옷 주머니에 넣어. 그 따위로 증거물을 남겨 놓을 거야? 허술하기 짝이 없군.”
“뭐라고? 담배꽁초를 내 주머니 안에 넣으라고?”
죠셉은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는데, 그녀가 말도 안 되는 일을 주문하니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이 미친년아! 지금 나더러 냄새나는 담배꽁초를 주머니에 넣고 뼛가루를 처리하라는 거야?”
그는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더니 그녀를 겨눴다. 소호의 아파트에서는 맨손이어서 그녀에게 힘으로 제압당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권총을 손에 쥐고 있으니까 거리를 두고 그녀를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그녀는 ‘피식’하고 그를 비웃었다.
“아, 이런 총을 들고 계시네. 아유~ 무서워라. 설마 그걸로 날 쏠 셈이신가? 꼬마. 재밌네. 호호호.”
“뭐? 꼬마? 이 사이코 킬러년이 또 날 그렇게 불러?”
죠셉은 주저하지 않고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피윳-! 픽!’
하지만 뜻밖의 결과에 그는 경악했다. 총알이 발사됨과 동시에 그녀 주변에 옅은 노란색의 투명한 막이 펼쳐지더니 총알을 튕겨낸 것이었다.
“뭐... 뭐야! 총알을 튕겨냈어?”
그가 충격을 받고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알렉시스는 번개같이 몸을 날려 발로 그의 손에 들려있던 총을 차서 떨어뜨렸다. 그리고 오른 손에 힘을 집중시켜 불을 피웠다.
“자, 꼬마야. 이제 무기가 없는데 어떻게 할 거야? 맨손으로 덤벼볼 테야?”
“이... 이런!”
그는 불타고 있는 그녀의 오른 손을 보자 어쩔 줄 몰라 했다. 아까 그녀는 저 손의 불로 레스토랑에 화재를 일으키고 두 구의 시신도 화장했던 것 아닌가. 조금 전 의기양양했던 태도는 사라지고 자신에게 마지막 순간이 찾아온 것을 직감했다. 그보다 훨씬 힘이 강하고 불을 만드는 초능력까지 가진 그녀였다. 그는 더 이상 그녀와 싸우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인 것을 깨달았다.
“아.... 별 수 없군. 오늘은 저놈들뿐만 아니라 내 마지막 날이기도 했던 거야. 파비노처럼 나도 죽여라. 어서.”
죠셉은 손을 내리고 얌전히 목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알렉시스의 손이 자신의 목덜미를 잡을 것을 기다렸다. 그가 그렇게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큰 소리로 웃었다.
“호호호! 재밌네. 이봐, 멍청한 꼬마. 누가 널 죽인다고 했어?”
“뭐라고?”
죠셉은 고개를 내리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난 방금 네게 총을 쐈는데... 날 안 죽인다고?”
알렉시스는 손에서 힘을 풀고 대답했다.
“그래, 안 죽인다. 아니, 못 죽여. 뭣도 모르고 내게 총질을 한 너 같은 멍청이는 당연히 죽여 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지. 넌 내가 모시는 신이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인간이니까. 널 죽인다면 신께서 분노하실 테니까 말이다. 난 그분을 감히 거역할 자신이 없다. 이 세계나 우리 세계에서나 살육의 신을 분노하게 만들고 살아남을 사람은 한 명도 없어.”
그녀는 손가락으로 땅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를 가리켰다.
“자,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널 어디 한 곳 불구로 만들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니 더 까불지 말고 어서 담배꽁초를 주워.”
“.......”
죠셉이 군말 않고 담배꽁초를 주워서 겉옷 주머니에 넣자, 그녀는 그에게 삽을 건네주며 말했다.
“텔리님께서 나더러 널 데리고 여기 와서 일을 처리하라고 말씀하신 건, 내게 널 맡기신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내 말에 복종하는 게 좋을 거야. 다시 말하지만, 난 네 몸 어디 하나 부러뜨려 버릴 수도 있으니까. 알겠어?”
“응.”
“대답을 그따위로 할 거야? 내가 네 상관이라는 뜻이다.”
“아... 네.”
“이 자식이 끝까지! 대답을 그렇게밖에 못하겠어?”
“네? 넷!”
알렉시스는 죠셉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혀로 쯧쯧거렸다.
“어떻게 된 게 미스터 황보다도 덩치가 큰 놈이 그 인간보다도 패기가 없어. 멍청한 놈이로군.”
“죄송합니다....”
텔리에 이어 알렉시스까지 그를 멍청이라고 부르자 죠셉은 기가 죽어 어깨를 떨어뜨렸다.
“어서 빨리 유골을 여기저기에 흩어 뿌려. 인마. 아, 배가 고프다. 오늘 저녁은 코리안 포크 디쉬, 삽겹살이 땡기는군. 화장하면서 냄새를 맡아서 그런가? 구운 오징어도 먹고 싶어. 오삼불고기? 그래, 바로 그거야. 호호호. 미스터 황에게 준비해놓으라고 전화해야겠다.”
그녀의 말을 듣고 죠셉은 어이가 없었다.
‘진짜 미친년이로구나. 시체를 태우면서 오늘 저녁 메뉴 생각을 했었다고? 아아.... 난 사이코 무리에 잡힌 꼴이 되어 버렸잖아?’
* * *
알렉시스와 죠셉은 일을 끝내고 다시 퀸즈 플러싱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운전하고 있는 알렉시스는 정면을 주시하다가 혼잣말 했다.
“아, 여긴 참 평화롭고 좋은 동네네. 한적하고. 소란스럽지도 않고. 시티는 너무 복잡한데 말이야. 후안과 나중엔 이런 곳으로 와서 살기로 했었는데.....”
옆 자리 조수석에 타고 있던 죠셉이 그녀에게 물었다.
“후안이요? 그게 누굽니까? 그러고 보니 텔리님이 옛날 일을 말씀하실 때 한 번 언급하셨던 것 같기도 한데요.”
“넌 굳이 알 필요 없다. 그냥 나와 관련 있는 사람이야.”
그녀는 짧게 대답하며 얼버무렸지만, 쓸쓸해진 그녀의 눈빛을 본 죠셉은 분명 그녀와 깊은 사연이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만약 사람을 찾는 일이라면 그 나름대로 도울 수 있을 지도 몰라서 그에 대해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녀 얼굴의 우울한 표정이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본 알렉시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넌 이제 어떡할 거야?”
“네? 어떡한다뇨?”
“복수도 끝냈어. 널 데리고 있었던 보스도 죽여 버렸어. 그 다음은 뭐냐고?”
“그야 당연히 바빌로프죠. 그 개새끼가 제 아버지를 죽인 장본인이라잖습니까? 당신도 아까 로니란 놈이 하는 얘기를 들으셨잖아요?”
알렉시스는 계속 전방을 주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나도 들었어. 하지만 그건 떠도는 소문이잖아. 그 놈이 그랬다는 분명한 증거도 없는데.”
“아닙니다. 제가 압니다. 그놈이 맞아요.”
죠셉은 이를 갈며 대답했다.
“실은 그래서 벌써 몇 달 전부터 정보를 모으고 그 놈들이 하는 일을 방해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텔리님이 절 도와주신다고 하셨으니 제대로 복수할 겁니다.”
알렉시스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래서 문제인 거야. 아까 텔리님께서 말씀하셨잖아. 바빌로프라는 그 러시안 갱스터와 친한 사이라고 말이야. 내가 텔리님이 화내실 것이 두려워서 널 죽이지 못했던 것처럼, 그 러시안이 텔리님과 친한 사이라면 누가 그를 죽일 수 있겠어.”
“그... 그래도 그... 그건! 안 됩니다. 제 보스, 미스터 보로니... 아니, 제 아버지와 관계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전 제 복수를 포기할 수 없어요! 설사 텔리님께서 금지하신다고 해도 전 할 겁니다.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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