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16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16

알렉시스와 죠셉은 세 명의 마피아를 이끌고 소호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들의 차량이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자, 알렉시스가 먼저 차에서 내리더니 죠셉과 동료들에게 말했다.

“모두 여기서 잠시 대기해. 내가 먼저 텔리님께 새로운 멍청이들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준비되면 연락할 테니 그 때 올라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턱에 걸쳤던 페이스 마스크를 다시 위로 올리고 건물로 들어갔다. 그녀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까를로가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긴가민가했는데, 저 알렉시스란 여자, 꼭 그 여배우 닮지 않았어?”

“여배우? 저 여자가? 그게 말이 돼. 여배우 중 누굴 닮았는데?”

역시 무표정으로 어디를 바라보고 있던 돈테가 알렉시스가 들어간 입구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마 자신을 힘으로 압도한 여자가 여배우와 닮았다고 하니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돈테, 넌 평생 영화 같은 거 안 보지? 언제 마지막으로 극장에 가봤어?”

“영화? 극장? 당연히 그런 거 안 보지. 심지어 TV도 안 보는데. 그리고 까를로, 이 자식아. 헛소리 하지 마. 저 괴물이 여배우라니? 크크크. 너야말로 하도 여자를 못 만나서 아무나 다 여배우처럼 보이는 거 아냐? 너 혹시 저 여자한테 반했냐?”

돈테의 말을 듣고 마르코는 함께 크크 소리를 내며 까를로를 비웃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하하하..... 아, 잠깐만.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어. 어쩌면 까를로 말이 맞을 지도 몰라. 실은 나도 아까 그녀를 처음 보고 같은 생각을 했긴 했거든. 첫 눈에 여배우 누구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알렉시스.... 알렉시.... 아, 그래! 작년에 나왔던 영화, 리벤져스에서 나왔던 그 여배우랑 너무 닮았어! 그런데 그 여배우 이름도 알렉시스야. 알렉시스 칼라스!”

돈테는 한심하다는 듯 두 동료들을 쳐다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이 멍청이들아. 너희들 정말 저 여자가 여배우라고 생각하는 거야? 여배우는 무슨! 아아... 이렇게 이성과의 만남을 간절히 원하는 루져들과 내가 함께 있어야 한다니, 정말 어이가 없군.”

“여배우 맞아.”

어느새 알렉시스의 차에서 내려 동료들의 차 가까이 온 죠셉이 말했다. 돈테는 품속에거 담배를 꺼내다가 잠시 멈추고 되물었다.

“뭐? 저 여자가 진짜 여배우야?”

“그래. 까를로가 제대로 봤어. 리벤져스 영화에 나왔던 유명한 헐리우드 여배우가 바로 알렉시스야.”

그러자 까를로와 마르코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내 눈이 정확했다니까! 역시 여배우였어!”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한 눈에 척하고 알아봤다니까. 리벤져스에 나왔던 레이디 오메가 피닉스! 그게 바로 저 알렉시스였다고!”

“진짜 여배우.... 저 여자가?”

그 말을 듣고 돈테는 놀랐는지, 다시 담뱃갑을 옷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마르코의 어깨를 쳤다.

“이 새끼! 너 방금 전엔 내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까를로를 함께 비웃더니 이제 와서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말하는 거냐?”

“에이, 그야 그냥 웃겨서 웃은 거지. 누가 누굴 비웃었다고 그래? 아무튼 까를로, 비웃어서 미안하다.”

그런데 까를로는 혼자서 잠시 생각을 하다가 뭔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이상하네. 알렉시스는 동생도 있잖아. 타블로이드지를 보니까 한 동안 본인도 그렇고 동생도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고 들었어. 그리고 파파라치들을 어떻게 따돌리고 저렇게 혼자 돌아다니는 거지? 도대체 칼라스 자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그 때, 먼저 위로 올라간 알렉시스로부터 죠셉의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메시지를 받은 죠셉은 친구들을 차에서 나오게 한 후,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끌었다.

* * *

죠셉과 일행보다 먼저 아파트로 올라온 알렉시스는 아파트 안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거실의 소파며 식탁 등 전부 부서져 있었던 것이다. 텔리는 창밖을 보며 클로브 담배를 피우고 있고 미스터 황은 연신 툴툴거리면서 덕트 테이프로 구멍 난 소파와 다리가 부러진 식탁을 고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쾅식. 이거 어떻게 된 일이야?”

미스터 황은 짜증이 났는지, 손에 들고 있던 덕트 테이프를 식탁 위에 세게 내려놓으며 일부러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텔리도 들으라는 식이었다.

“몰라! 이씨. 그 빌어먹을 이상한 코리안 소프 오페라를 보시다가 갑자기 광분하셔서 소파를 들어서 식탁에다 집어 던지고 그러셨어!”

“누, 누가? 아아.....”

“정말 누군지 몰라서 물어? 아주 분노하신 신이 그러셨겠지!”

텔리는 둘에게서 등을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클로브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알렉시스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달려가 말을 걸었다.

“신이시여. 알렉시스입니다. 죠셉과 함께 롱아일랜드에 다녀왔습니다.”

“......”

그녀가 말을 거는 데도 그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그녀는 미스터 황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미스터 황은 불만 가득한 말투로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면, 텔리님이 보시는 그 드라마가 이제 거의 다 끝으로 가고 있는데, 여주인공이 갑자기 큰 병을 얻어서 죽게 되었대. 그래서 ‘옛 남편에게 복수도 못하고 죽는 게 아니냐, 아니 복수를 하더라도 죽게 되면 무슨 소용이냐’면서 마구 화를 내셨어. 내가 막아보려고 했는데,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

“아니, 겨우 그 드라마 때문에 이렇게 물건을 부수셨다고?”

그러자 미스터 황은 깜짝 놀라면서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말조심하라는 의미였다. 불안정한 그를 더 이상 자극하면 상당히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입을 다물자, 미스터 황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게 권선징악이랄까... 한국 드라마에는 그런 정서가, 에... 뭐, 대충 그런 테마가 있으니까 가끔 주인공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거든. 이 드라마에서도 여주인공이 악역인 남편에게 복수하겠다고 어쩔 수 없이 나쁜 일을 저질렀으니까 벌을 받는다는 설정이 들어간 거지. 텔리님은 그 설정을 이해 못하시고 화를 내신 거야. 그 드라마 매니아로서 그런 스토리 진행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거야. 황당하지. 아이구.... 곁에 있다고 이렇게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는 난 무슨 죄야?”

텔리는 조용히 미스터 황의 말을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말이나 되는 거냐고? 그 나쁜 남편 새끼가 망하는 것만 바라보고 150개도 넘는 에피소드를 봐왔는데, 왜 여주인공한테 그런 황당한 일이 벌어져? 내가 당장 그 작가라는 년이랑 감독에게 달려가서 확 다 죽여 버릴까 싶다.”

드라마 천사의 오후의 작가와 감독을 죽여 버린다니... 누가 들으면 코웃음을 치며 비웃을 얘기다. 그런데 그런 남들과 달리, 텔리라면 정말 그러고도 남을 법 했다. 그의 혼잣말을 들은 미스터 황과 알렉시스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리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음......”

알렉시스는 텔리의 뒷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텔리님께서 겨우 드라마 따위를 보시고 이렇게까지 분노하실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드라마가 끝나면 행동을 계시하실 줄만 알았어. 일단 러시안 갱들을 벌주시고 곧 바로 다음엔 후안 일을 봐주실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 낭패다. 아! 그렇지. 밖에서 기다리는 죠셉과 그 일행도 있잖아. 이거 이런 무드라면 일이 잘 안 풀리겠어.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야....’

그녀는 혼자서 잠시 뭔가 골똘히 생각해보다가 좋은 생각이 하나 났는지, 그 자리를 떠났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서 핸드폰을 꺼내 죠셉에게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원론적으로는 안 되겠지만, 아무래도 양념을 좀 쳐야할 것 같네. 이대로는 오늘 죠셉 일뿐만 아니라 후안에 대한 내 일을 진행하는 것에도 큰 차질이 생기겠어.”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