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54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54

“처음부터 그 놈과 전 악연으로 시작했습니다. 으드득.”

바빌로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를 갈았다.

“거의 1 년 전쯤의 일이었습니다. 킹즈에 있던 제 부하들이 어떤 수상한 놈에게 공격당해서 몰살당하고 차와 돈까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당했는데, 그 중 살아 돌아온 녀석이 말하기를, 내 부하들을 그렇게 만든 놈이 이상한 향기를 풍기는 담배를 피운다고 했어요. 그래서 알아보니까 그건 클로브 담배였습니다. 그 담배를 파는 곳을 수소문 했는데 알고보니 여기 이 녀석의 가게에서 파는 물건이더군요.”

바빌로프는 손으로 옆에 앉아 있는 비피를 가리켰다. 11번은 23번을 보면서 물었다.

“23, 뭔가 신기한 담배라는데? 엘리시움에서 텔리가 그런 담배를 피웠던가?

23번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엘리시움에 그런 물건이 있을 리 없잖아?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옛날에도 그 분은 신전에서 피우는 향냄새 같은 걸 좋아하셨던 것 같아.”

바빌로프는 둘이 하는 얘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둘이 아주 오래 전부터 텔리와 무슨 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 부하들을 이 녀석의 가게로 보냈습니다. 거기로 그 살인범을 부르려고 했던 거지요. 처음엔 이 가게 주인 녀석을 죽이겠다고 해도 전혀 신경쓰지 않길래, 당연히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 클로브 담배라는 것을 다 없애버리겠다고 했더니 부리나케 달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 놈은 도대체 무슨 담배 귀신이라도 씌인 건지.... 하여간 진짜 이상한 놈이었습니다. 정신병자 같았어요.”

“그 새끼 미친 거 맞아. 그리고 워낙 비뚤어진 성격에다 이상한 집착 같은 게 있어서 하나에 꽂히면 그것 하나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지. 이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정신병자야.”

“예. 예. 그리고..... 그.... 그 미친놈이 스모크 샵에 보냈던 제 부하들까지도 아주 비참한 모습으로 다 죽여 버렸습니다.”

“당연한 거 아냐? 텔리, 그 새끼는 밥만 먹고 하는 짓이 남을 죽이는 건데? 그걸 모르고 부하들을 보낸 네가 멍청한 거지. 한 마디로 모닥불을 끄겠다고 하면서 거기에 장작을 더 넣은 셈이야. 그랬다가 주위에 있는 모든 걸 홀라당 다 태워먹는 꼴이 되지.”

11번의 말을 듣고 바빌로프는 입을 벌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형님 말이 모두 맞습니다! 차라리 킹즈에서 부하들을 잃었던 일은 그냥 재수 없었다 치고 넘어갔어야 했어요. 그를 너무 몰랐던 거죠. 왜냐면 그 이후에 그 녀석이 우리 사업장에까지 찾아오게 되었어요. 그 때 우린 폐차장에 100 명도 넘는 인원이 있었는데 저와 여기 있는 제 부하, 그리고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몰살당했습니다. 그때 저희가 봤던 것은..... 지옥! 지옥이었습니다. 사람을 괴물로 만들고 부풀게 해서 터지게 만들고.... 온 사방에 시체가 굴러 다니고 피가 무릎까지 찰 정도였어요.”

11번은 다시 23번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전형적인 장면이네. 텔리 그 놈이 지나간 곳은 어디든 지옥이 되지.”

“바빌로프의 부하 놈들을 하익티스로 만들었던 거야. 100명도 넘는 숫자였다고 하니 그 절반이라면 50 명도 넘는 괴물들이 온갖 난리를 다 피웠을 텐데 용케 살아남았군.”

바빌로프는 눈을 깜박이며 두 “형님들”에게 물었다.

“방금 말씀하신 하익티스가 뭡니까? 혹시 그게 괴물을 가리키는 건가요?”

“그래. 그게 텔리의 능력이다. 그가 적으로 파악한 인원의 절반을 그렇게 괴물로 만들어서 서로 싸우게 하는 거지. 그래서 텔리는 자기 혼자 얼마든지 많은 수의 적을 상대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로써 ‘one man army’인 거지.”

“세상에.....”

바빌로프는 텔리가 가진 능력의 한 가지를 알게 되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혹시 그는 무슨 마법사입니까? 아님 초능력자? 그럼 두 형님들도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우리가 네게 그의 정체나 능력을 설명해 준다고 해도 네 수준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어. 또한 우리에 대해서도 알려줄 수 없고. 그게 우리의 법이다.”

바빌로프는 텔리와 이 둘의 정체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당사자가 말을 안 해주겠다는데 별 수 없었다. 그저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며 자신이 하던 얘기를 계속해야 했다. 그는 폐차장에서 있었던 얘기를 좀 더 자세히 한 후, 어쩌다 보니 텔리와 친해져서 그에게 자신과 브라트바의 숙적인 마리오 보로니와 그의 패밀리를 밀어버린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히 보로니 사건은 꽤 크게 떠들썩했던 일이라 23번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텔리님이 남의 부탁을 들어주셨다고? 허어..... 그건 정말 의외로군. 확실히 세월이 많이 지나서 그 분도 조금 변하신 걸까? 자기 일 외에는 그 누구의 일도 신경쓰지 않으셨던 분이었는데 말이야.”

11번은 코웃음을 쳤다.

“흥! 텔리 새끼가 워낙 멍청해서 그래. 결과적으로 이 바빌로프 녀석에게 놀아났다는 거 아냐? 덕분에 이 녀석은 돈도 별로 안 들이고 부하들의 목숨도 희생하지 않으면서 손쉽게 자신의 적을 제거한 거고 말이지. 그나저나 얘기가 길어지니까 좀 지루하구만. 목도 마르고.”

“그건 그래. 바빌로프는 갱스터치곤 전략을 좀 쓸 줄 아네. 지금도 11번 자네에게 걸렸는데도 아직 살아 있잖은가?”

그 말을 들은 11번은 다시 도끼눈을 뜨고 바빌로프에게 말했다.

“너 이 새끼, 텔리에게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형님, 형님’ 하면서 우릴 속이려고 하면 알지? 아주 가루로 만들어 버릴....”

“아니! 11번 형님! 저 바빌로프를 뭘로 보시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절 보십시오. 제가 누굴 기만하는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전 50 년을 넘게 아메리칸 갱스터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내입니다! 네게 정직과 신용이 없다면 제가 어떻게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뭐? 적직과 신용으로 갱스터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고? 이게 무슨 개소리야?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바빌로프는 11번의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너 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앉아!”

“제 얘기가 지루하시다면서요? 목도 좀 마르시고요. 자자, 윗 층으로 올라가시죠. 좋은 술이 많습니다. 거기서 한 잔씩 하시면서 얘기를 마저 들으시죠. 헤헤헤.”

바빌로프가 배짱 좋게 넉살을 부리며 11번을 친근하게 대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11번만 빼고 말이다. 주정뱅이였던 그는 좋은 술이 있다는 얘기를 듣자 두 눈썹을 치켜 올렸다.

“우웅? 그래? 좋은 술이 있어? 그래. 그럼 2 층으로 가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