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01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01

4 명의 친구들은 서로 서운한 감정을 버리고 다시 친한 사이가 되었지만, 건수의 속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그는 겉으로는 웃으며 얘기했지만 테이블 맞은편에 함께 앉아 있는 좐슨과 도원광을 볼 때마다 자주 웃음기가 얼굴에서 사라지곤 했다. 건수가 유독 자기를 볼 때마다 웃지 않는 것을 발견한 좐슨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건수야, 혹시 너, 아직도 나한테 화난 거야?”

건수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어버렸다.

“아, 아니. 그... 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 날 좀 불편하게 보는 거 같은데? 만약 아직 화가 안 풀린 거라면 내가 다시 사과할게. 그날 레슬러 선배들이 네게 실수한 거, 또 내가 네 편을 들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거, 정말 미안해.”

“아냐, 아냐! 진짜 그런 거 아니야!”

건수가 언성을 높이자, 옆에서 3 개의 양꼬치를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싸이언스가 입을 열었다.

“야, 좐슨. 건수가 그런 게 아니라잖아. 이제 다 괜찮은데, 괜히 너 혼자 민감하게 생각해서 자꾸 미안하다고 하면 괜히 분위기가 더 어색해진다니까. 그러니까 이제 사과는 이너프. 노 모어 어폴로지스(apologies). 오케이?”

“하하. 뭐라는 거야. 싸이언스, 이 녀석은 한 동안 영어 안 쓰더니 다시 쓰고 앉아 있네. 예전처럼 말이야.”

“내가 한 동안 영어를 쓰지 않았다고?”

싸이언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했다.

“음, 네 말이 맞아. 강원도에서 돌아오고 나서 9 개월 동안은 분명 그랬던 것 같네. 왜냐면 이젠 미국으로 가는 꿈은 버렸거든.”

“미국으로 가는 꿈?”

“그래......”

싸이언스는 손에 들고 있던 양꼬치를 내려놨다. 그리고 그가 왜 그 동안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는지 친구들에게 설명했다.

“오래 전 일이었어.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도 않는데, 어머니가 아버지와 날 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던 거야. 우리 아버지는 팔을 다치셔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지. 아버지 얘기로는 어머니는 미국으로 떠나셨다고 했어. 그래서 어머니를 만나러 미국으로 가려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 물론 어머니가 미국에 가셨다는 그 얘기를 이젠 더 이상 믿지 않아. 강원도에서 돌아온 다음에도 계속 의심하다가 지금은 완전히 포기했어.”

그의 얘기가 다 끝날 때까지 친구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언제나 유쾌한 싸이언스에게 그런 사연이 있는 줄 그들은 전혀 몰랐다. 좐슨이 한숨을 쉬었다.

“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왜 지금 얘기해? 우린 친구였다면서 전혀 몰랐잖아.”

“왜? 타이밍이 좀 안 좋았나? 그 동안 아무도 묻지 않으니까 말 안했지. 그나저나 너랑 원광이는 무슨 일이야? 지금 보니까 뭔가 말하지 않고 있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뭐... 뭐?”

“너랑 원광이 말이야. 내가 아까 음식점에 들어올 때 보니까 테이블에 서로 나란히 앉아 있던데? 아무래도 좀 수상해.... 너희 둘 말이야. 무슨 일이 있지? 그치?”

“무, 무슨 헛소리야? 워, 원광이랑 나랑 일이 있기는 뭐가 있어?”

좐슨이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하자, 싸이언스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녀를 보았다.

“아냐. 촉이 온다. 촉이 와. 너희 둘 사이에 분명 무슨 일이 있어.”

“초, 촉은 무슨! 똥촉인 주제에 함부러 넘겨짚지 마!”

“뭐? 똥촉? 똥촉! 그래. 어디 똥촉인지 아닌지 한 번 내 끝내주는 브레인 컴퓨터를 돌려보자. 위이이이잉~!”

혼자 이상한 대사를 읊으며 모노드라마를 찍고 있는 싸이언스를 보고 좐슨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다만, 도원광만은 지금 싸이언스가 하는 행동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같은 방식으로 그에게 속마음을 거의 들킬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하! 유레카! 그랬군! 좐슨, 도원광... 너희들... 크크크.”

싸이언스가 막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도원광이 손을 뻗어 테이블위에 올려놓은 좐슨의 손을 잡았다.

“그래! 나랑 순이랑 사귄다! 됐냐, 인마!”

그 말을 들은 싸이언스와 건수는 동시에 깜짝 놀랐다.

“헉!”

“뭐라고?”

좐슨도 도원광의 말을 듣고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곧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다.

“사귄다고! 나랑 순이랑 사귀는 사이라고.”

건수는 너무 놀라 먹고 있던 양꼬치를 내려놓고 좐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싸이언스는 좀 어색하긴 했지만 마치 제대로 추리하고 있었던 것처럼 반응했다.

“그래? 아, 그게 아니라.... 아, 뭐, 나도 그렇게 추리하고 있었어. 맞아. 으응. 아무리 봐도 너희 사이가 좀 수상... 하더라고. 지난 9 개월 동안 나만 빼고 둘이 같이 다니던 게 영 이상했었어! 필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디벨롭 되고 있다고 봤지. 그래, 난 꽤 오래 전부터 눈치 채고 있었던 거야. 아암.”

“사실 순이는 우리들 친구 사이가 좀 어색해질지 몰라서 나중에 때를 봐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오늘 이렇게 얘기하게 될 줄은 몰랐네. 암튼 속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는데, 이제야 얘기하게 되어서 좀 미안하다. 혹시 너희들 충격 받았냐?”

싸이언스는 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아아~니! 충격은 무슨! 방금 말했잖아. 난 다 알고 있었다고. 다만 너희들 입으로 직접 말할 때까지 기다려 준 거야. 충격이라면 건수가 먹었겠지. 괘... 괜찮냐, 건수야?”

건수는 꽤나 충격을 받았는지 얼굴이 빨갛게 되어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자... 잠깐만! 나 화장실에 좀.....”

그리고는 마치 도망치듯이 빠른 걸음으로 음식점 밖으로 나갔다. 등 뒤에서 싸이언스가 계속 그를 불렀지만 모른 척하고 재빨리 나가버렸다. 손짓을 하며 큰 목소리로 건수의 이름을 부르던 싸이언스는 손을 내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건수 녀석, 갑자기 배탈이 났나? 여기 화장실은 밖에 있어서 카운터에서 열쇠를 가져가서 문을 열어야 된다고 알려주려고 그런 건데. 그냥 막 뛰쳐나가버리네.”

도원광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건수가 나간 문을 보면서 말했다.

“그럼 어떡해? 혹시 우리 얘기 듣고 너무 놀라서 갑자기 배탈난 거 아냐? 그렇담 미안해 죽겠네. 어휴. 내가 지금이라도 열쇠를 받아서 건수한테 갖다 줄까?”

“아냐. 아냐. 됐어. 아마 화장실 갔는데 문이 잠겨 있는 걸 보면 다시 와서 열쇠를 받아가겠지. 하여간, 너희도 좀 그렇다. 갑자기 그렇게 핵폭탄 같은 얘기를 떨어뜨리고 그러냐? 그런 얘기는 살살 해야지.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나도 배탈 날 뻔 했잖아! 으이씨. 아.... 물론 난 알고 있었어. 그래도, 그 만큼 놀랄 수 있다는 거야. 내가 그 정도인데 아무 것도 몰랐던 건수는 어쨌겠냐? 앞으로는 조심해!”

싸이언스는 내려놓았던 양고기를 다시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간다고 했던 건수는 그 뒤로 10 분, 20 분이 지나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