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55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55

바빌로프와 11번, 23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2층으로 올라가서 소파에 앉았다. 바빌로프는 재빨리 보드카 한 병과 시가를 가지고 와서 11번에게 권했다. 11번은 술병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진작에 이런 것들을 가져왔으면 분위기가 좋았을 뻔 했잖아. 흐흐흐.”

“어휴, 형님. 분위기야 지금부터 띄우면 되죵. 하하하!”

그리고리는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굳게 입을 다물고 술잔들과 라이터와 재떨이를 11번 앞에 가져다주었다. 23번은 손을 흔들며 술 마시기를 거절했다. 잠시 동안 바빌로프와 11번은 잡담을 늘어놓다가, 23번이 눈치를 주자, 바빌로프는 다시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암튼 폐차장의 일과 보로니가 제거된 후, 미스닉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전 지금까지 그를 계속 찾았지만 얼마나 완벽하게 잠수를 탄 건지 그의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바빌로프는 그가 그 동안 한국에 있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 엉뚱하게 뉴욕에서 그를 찾았지만 흔적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늘 아침에 니콜라이가 살해당했던 일을 설명했다.

“정말 놀랐던 것은 오늘 아침 제 부하를 죽인 녀석의 진짜 정체가 바로 미스닉이었던 겁니다.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녀석의 증언에 의하면 겉모습이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신분마저도 다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바비 어쩌고 라는 마피아 놈의 신분으로 살고 있다는 건데, 그게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텔리님이니까. 그분은 그런 능력이 있으시거든.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사실 수 있지.”

23번은 별 것 아니란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바빌로프는 고개를 흔들며 두 손을 들어올렸다.

“인디언 형님께서는 그게 별일 아닌 것처럼 여기시는 군요. 여기 있는 스모크 샵의 주인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전 깜쪽 같이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절 죽이려고 찾아온다면 제가 당해낼 재간이 없지요.”

23번은 손가락으로 바빌로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분이 네놈을 죽이려고 결정하셨다면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어. 아니, 세상에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다. 그냥 그런 분이야. 그 자신이 곧 재판관이고 사형집행자라서 어떤 인간도 신도 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지.”

“오, 맙소사! 그야말로 죽음의 신이라는 거군요.”

“아니. 죽음의 신은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그분은 사신의 아드님이시다.”

“예? 사신의 아들이라고요? 아아..... 그럼 난 어쩌지....?”

바빌로프는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11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술병 째로 보드카를 들이키고 있던 11번은 코웃음을 치면서 입을 열었다.

“지랄하고 앉아 있네. 사신이든, 사신의 아들이든지 간에, 텔리 새끼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개자식이야. 두고 봐.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11번은 기분이 상했는지 반쯤 마시던 술병을 벽으로 던져 깨뜨렸다. 바빌로프가 그리고리에게 눈치를 주자, 그리고리는 냉큼 일어나 새로운 보드카 한 병을 다시 가져왔다. 11번은 새 보드카를 다시 병째 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듣자하니 너희 갱스터들은 그 놈에게 원한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그럼 여기 있는 이 흑인 녀석은 뭐야? 이 녀석이야말로 텔리의 조력자라는 것 아닌가? 이봐, 23. 자네가 한 번 이 녀석을 조사해보지 그래.”

23번은 일어나 비피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댔다. 그가 힘을 집중시키자, 그의 손에서 은은한 하얀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음... 음..... 이런.....”

몇 십 초 후, 23번은 비피ㅡ이 이마에서 손을 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소용없어. 나 역시 기억을 읽는 것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군. 하지만 우리가 봤던 환상에 이 녀석이 등장했으니까 앞으로 반드시 필요한 녀석일 거야. 일단은 텔리님의 조력자로 생각하자구. 그럼 이제부턴 어떻게 할 건가, 친구?”

11번은 입가의 술을 소매로 슥 닦으면서 바빌로프에게 말했다.

“네 말을 들어보니, 텔리 놈을 끌어낼 수 있는 장소는 아무래도 여기 이 녀석의 스모크 샵인가 뭔가 하는 곳인 거 같다. 어장은 정해졌는데, 마땅한 미끼가 없군.”

“그야 이번에도 클로브 담배로 꾀어내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거기에서 형님들께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처리해버리시면 되잖습니까?”

11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그 녀석이 보통 영악한 놈이 아니야. 네놈이 똑 같은 방식으로 그놈을 도발하고 거기로 부른다면 일단 의심하고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보고 움직일 거다.”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멍청아! 텔리, 그 녀석이 스모크 샵으로 오는 게 아니라 네놈에게 직접 찾아 올 거라고. 그래서 네 놈을 죽이기 전에 머릿속의 기억을 통째로 읽어버릴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가 오늘 찾아왔다는 것도 알게 될지 몰라. 그럼 일이 복잡해져.”

“음... 그렇군요. 그럼 어쩌지.....”

“혹시 클로브 담배 말고 텔리 놈이 또 푹 빠져 있는 게 없을까? 그 녀석이 완전히 물불 안 가리고 뒤쫓아 올 그런 거?”

“글쎄요.....”

바빌로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생각했다. 잠시 후, 그가 뭔가를 생각해냈는지 무릎을 치며 소리쳤다.

“아! 하나 있습니다!”

11번을 비롯한 모든 이의 시선이 바빌로프에게 집중되었다. 바빌로프는 피식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하하! 그래요. 그런 게 한 가지가 있었어요. 푸라 글로리아!”

지금 바빌로프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11번은 얼굴을 찡그리며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뭐라는 거야? 이 자식아! 좀 알아들을 수 있게 제대로 설명해 봐. 푸라 글로리아라는 게 대체 뭐야?”

“약입니다. 약. 어디 써먹을 데도 없는 아주 개똥같은 물건이지요. 그걸 텔리가 찾고 있었어요. 제게 그것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어요.”

바빌로프는 텔리가 폐차장으로 찾아왔을 때, 그에게 푸라 글로리아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텔리에게 알려줬던 모든 정보를 그대로 11번과 23번에게도 알려주었다. 그의 얘기가 끝났을 때, 11번과 23번은 잠시 동안 침묵했다. 둘 다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텔리 그 새끼가 왜 그런 약에 대해서 알아본 걸까?”

11번의 물음에 23번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모양인데?”

“그래.... 그거야. 23번. 그 푸라 글로리아인지 뭔지 그걸로 하자고.”

“응?”

11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신 후 손으로 비피를 가리켰다.

“그걸 미끼로 텔리를 나오게 하는 거야. 여기 있는 스모크 샵 주인 놈을 이용해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