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98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98

자리를 떠나려던 그리고리는 동작을 멈추고 자신에게 이상한 말을 한 노파에게 물었다.

“할망구!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잠시도 보스 곁을 떠난 적이 없는 내가 혼자 어디를 간다는 거야?”

바빌로프 역시 그녀의 말에 감정이 상한 모양이었다. 11번과 23번의 눈치를 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예언자님, 아니, 여신님. 그리고리는 제게 충성을 다하는 부하입니다. 절 배신하거나 그러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디레이아의 말을 들어서 그런 것이었을까. 그는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리고리를 변호했지만 속으로는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디레이아의 한 마디가 그의 마음에 불안함의 씨앗을 심어놓은 것이다.

“쿠쿠쿠. 그럼요. 그리고리는 늘 당신에게 충성스러웠지요. 계속 그러길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도 말입니다. 보스를 놔두고 어디를 가려고 하는 거죠? 어떻게 당신의 보스를 우리 같은 완벽하게 낯선 사람들 사이에 놔두고 가버릴 수 있나요? 큭크크.”

“....아!”

듣고 보니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리고리는 자금도 바빌로프를 혼자 남겨두고 가버리려고 했던 거였다. 그는 바빌로프 옆에 다시 앉으면서, 자기를 보고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노파를 노려보았다.

“바빌로프, 혹시라도 이상한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요. 그리고리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는 편인 것 같으니까요. 지금도 바로 오류를 수정하는 걸 보세요. 쿠쿠쿠.”

그리고리는 계속 이디레이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바빌로프에게 말했다.

“보바, 저 기분 나쁜 할망구 얘기를 계속 들으실 건가요? 이상한 말이나 지껄이면서 보스와 제 사이를 이간질하는 게 안 보이십니까? 생전 처음 보는 저 이상한 늙은이 때문에 혹시라도 보스의 판단력이 흐려지시지는 않겠죠?”

“히히히히. 보바, 그리고리의 말이 맞습니다. 이 늙은이의 말에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마세요. 내가 뭐라고 내 말에 신경씁니까? 차라리 그리고리의 말만 듣는 게 훨씬 낫죠. 따지고 보면. 지금 당신이 이만큼 자리를 잡게 된 것도, 세를 키운 것도 다 그리고리 덕이지 않습니까?”

“음.....”

바빌로프는 현재 자신이 누리는 것들이 그리고리 덕이라는 말에 속으로는 무척 자존심이 상했지만, 감히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녀 곁에 있는 11번과 23번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들을 겁내지 않는 쪽은 부하인 그리고리였다.

“입 다물어! 어따 대고 수작질이야! 브라트바를 이렇게 강하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 모두 파칸이 한 일이다. 난 그저 내 할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이라구. 예언자? 여신? 웃기고 앉아 있네. 이게 어디서 감히 이간질이야?”

그리고리의 거침없는 말에 다시 한 번 23번이 분노했지만, 아까 자신의 몸을 마비시킬 정도로 타일렀던 이디레이아를 의식해서인지, 그저 주먹을 꽉 쥐고 테이블을 내리쳤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23번의 모습을 보고 바빌로프는 놀라서 어깨를 움츠렸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대범한 그리고리를 보자, 그는 속으로 부러운 마음이 생겼다. 이디레이아는 여전히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다.

“크크크. 그리고리가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한 것도 맞습니다. 왜냐면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열심히 할 사람이거든요. 아, 내가 말하는 건 여기 뉴욕에 있는 그의 식구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리고리는 참 바쁘게 삽니다. 두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니까요. 특히 러시아에 있는 그의 아들과 딸의 양육비를 제때에 맞춰 보내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러니 열심히 일해야죠. 특히 아들 이반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러니 더 더 열심히 일해야겠죠. 쿠쿠쿠.”

그 말을 듣자, 그리고리의 낯빛이 변했다.

“아니, 그걸 어떻게...? 그건 나와 보바만 아는 것인데?”

그는 곧 시선을 바빌로프에게 돌렸다. 바빌로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내가 말하지 않았어. 맹세컨대 아니라구.”

지금까지 꽤 침착함을 유지하던 그리고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늙은 할망구! 당신,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고 있는 거야? 당신 정체가 뭐야?!”

“크크큭. 그러니까 당신이 러시아에 버리고 온 가족들도 모르고 있는 사실을, 이 뉴욕에서 새로 갖게 된 가족들도 모르는 사실을 어떻게 내가 알고 있냐고 묻는 겁니까? 신기하죠?”

“이... 이 년이!”

그리고리는 옷에서 번쩍이는 은색 총을 꺼내 그녀를 겨누었다. 침착한 그리고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흥분해버린 것이다.

“어서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 말해! 너희들 내 뒷조사까지 하고 다닌 거냐?! 내 비밀을 캐고 다닌 거냐고!”

이디레이아는 씨익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리고리는 온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아... 아니, 내 몸이 안 움직여......!”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에게 겨눈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갖다 대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그의 눈에서 눈물을 한 방울, 두 방울씩 흘러 아래로 떨어졌다.

“내 손...! 눈... 눈물이 제멋대로.... 으으윽... 끄윽.....”

“크크크.....”

이디레이아가 손짓하자,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녀가 힘을 풀자, 그리고리는 다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헉... 헉... 헉... 내 몸...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러자 23번이 팔짱을 낀 채로 그를 꾸짖듯이 말했다.

“멍청한 인간! 이디레이아님은 운명의 여신님이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거야. 네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까지 전부 말이다. 그런 분께 감히 무기를 들이대다니. 여신님께서 네 무식함을 아시고 사정을 봐주셔서 망정이지, 우리 세계의 인간이었다면 절대 본 모습으로 죽을 수 없는 일이다.”

“헉헉.... 운... 운명의 여신....!”

이디레이아는 가방에서 천에 싸인 물건을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열어보세요. 그리고리.”

그리고리는 떨리는 손으로 천에 싸인 물건을 열어 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은색으로 번쩍이는 권총이었다.

“아니! 이건 총! 그것도 내가 방금 버린 것과 같은 콜트.....! 어떻게 이런 일이?!”

이디레이아는 그가 사용하는 총과 같은 것을 준비했던 것이었다. 마치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는 걸 미리 알기라도 했듯이 말이다.

“그래요. 당신이 사용하던 것과 동일한 모델입니다. 그러니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는 없을 거에요. 그런데 이 총은 많이 다를 겁니다. 왜냐면 좀 특별한 것이니까요. 바로 텔리, 그러니까 당신들이 말하는 그 미스닉을 죽일 수 있는 총알이 들어있거든요.”

바빌로프와 그리고리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미... 스닉을 죽일 수 있는 총알!”

“그래요. 보바와 당신은 이미 잘 알고 있죠? 당신들의 평범한 무기로는 텔리나 여기 두 사람에게 어떤 흠집도 낼 수 없다는 걸 말입니다. 하지만, 이 총은 다릅니다. 이걸 사용하면 그를 죽일 수 있습니다. 쿠쿠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