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38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38
비피의 스모크 샵이 위치한 허름한 건물 앞에 알렉시스의 차가 조용히 굴러와 섰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텔리는 문손잡이를 당기며 알렉시스에게 말했다.
“알렉시스, 넌 여기서 이러고 있다가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말고 몇 블록 떨어진 곳에 가서 대기하고 있어. 내가 비피네 샵에 가서 상황을 보고 너한테 전화를 걸게. 그때 필요하게 되면 앤디 공한테 전화를 걸어서 청소부를 보내라고 해. 아, 전에처럼 가게가 많이 부숴질지 모르니까 위로금... 배상금도 좀 준비해 놓고. 비피 녀석은 내 좋은 친구야. 전에도 가게가 부숴져서 아주 낙심했었는데 오늘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그 녀석, 아주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실의에 빠지게 될 지도 모르니까. 알겠지? 위로가 될 수 있는 금액을 준비해.”
아니, 그러면 그냥 처음부터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알렉시스는 예방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시작해서 시간이든 돈이든 자원을 낭비하는 일을 벌어려는 텔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차라리 자신이 나서면 일이 더 원만하게 될 것 같았다.
“예. 텔리님. 귀찮은 일인데 정말 제가 처리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텔리는 한 쪽 눈을 찡긋거리더니 씨익 웃었다. 손을 입가에 가져가 수염을 만지려고 했는데, 원래 몸이 아닌 바비의 몸으로는 콧수염을 기르지 않아서 그랬는지 입가만 슬쩍 만지고 다시 손을 내리는 것이었다.
“아... 맞다. 지금 난 콧수염이 없지. 히힛. 아냐. 알렉시스. 이건 늘 내가 해오던 일이니까 신경쓰지 마. 지금 너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이 불쌍한 거지에게 클로브 담배를 사게 돈을 좀 주는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알렉시스는 잠시 사람의 목숨을 가져가는 것이 무슨 일이 될 수 있는가 싶어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녀 역시 군인으로써 전쟁터에 나가면 늘 죽음과 가까이 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런 쓰잘머리 없어 보이는 일에까지 살인을 일삼는 텔리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텔리는 손을 계속 내밀고 있는데도 알렉시스가 돈을 줄 생각을 하지 않자 그녀를 보챘다.
“돈 줘. 알렉시스.”
“아, 예예.”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재빨리 지갑을 꺼내더니 그의 손에 거의 천 달러나 되는 돈을 쥐어 주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뭐... 대충 일 주일은 버틸 수 있을 정도는 되겠군.”
“아, 그럼 더 드려야죠. 죄송합니다.”
다시 지갑을 열어 지폐를 꺼내려는 알렉시스에게 텔리는 웃으며 말했다.
“아냐. 농담이야. 이 정도면 비피가 가지고 있는 모든 클로브 담배도 살 수 있겠다. 그럼 내가 다녀올 테니, 전화 받을 준비해. 아, 맞다. 알렉시스. 여기 뉴욕에선 100 달러 같은 고액권은 가지고 다니지 마. 소매치기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그 말을 마치고 텔리는 차를 나와 둔한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알렉시스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씨익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아이구, 소매치기는요. 아마 그 전에 텔리님께서 다 가져다 쓰셔서 소매치기를 당해도 잃을 것도 별로 없을 것 같네요.”
* * *
텔리는 건물 2 층에 위치한 비피의 스모크 샵을 가려고 계단을 올랐다. 그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바비의 육체는 몸집, 그것도 복부를 포함한 상체가 상당히 비대해서 한 계단씩 올라갈 때마다 무릎이 아파왔다.
“아이고... 아야... 무슨 이런 거지같은 몸이 다 있냐. 아, 진짜 이 모습으로 계속 살기가 두려워진다. 빨리 검은 방에서 받은 원래 내 몸을 고쳐야 하는데, 이거 뭐, 그 늑대 녀석은 오랫동안 소식도 안 줘. 아직 부활하지 않은 건가?”
그는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힘겹게 올라갔다.
“어휴. 젠장. 이건 뭐, 나를 찾는다는 그 험악한 놈들을 만나기 전에 계단 때문에 죽겠다. 어휴어휴.”
* * *
‘딸랑.’
텔리가 스모크 샵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에 설치되어 있던 벨이 흔들리며 소리가 났다. 텔리는 고개를 돌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예전에 텔리가 일을 벌여 대대적인 공사가 들어가서 그런지 제법 새 가게 티가 났다. 가게 안에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그가 가게를 살펴보던 중 한 쪽 구석에 덩치가 산만한 두 빡빡머리 백인들이 서로 킥킥 거리며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 눈에 딱 봐도 물건을 구입하려고 온 손님들은 아닌데, 풍기는 인상이 무척이나 사나운 것이, 바로 미스터 황이 말한 수상한 그 놈들인 것 같았다.
“과연. 쾅식이 말이 맞네. 어휴, 겁나. 훗훗훗.”
텔리는 그들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시선을 느낀 두 덩치들은 농담하기를 멈추고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텔리를 노려보았다. 텔리는 천천히 시선을 가게 주인 비피에게 돌리며 말했다.
“이야, 잘 고쳤네. 이 정도면 그런 일을 당하고도 섭섭하진 않았겠는걸?”
카운터에 앉아 있던 비피가 씁쓸한 표정으로 바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텔리에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필요한 거 있어요?”
텔리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느릿느릿 카운터로 다가갔다.
“오랜만이네. 그런데 내가 뭐가 필요하냐고? 아니, 올바른 질문은 ‘네가 뭐가 필요하겠냐?’겠지.”
“네? 그게 무슨.....”
비피는 난생 처음 보는 손님이 자기와 말장난을 시작하자 인상을 구겼다.
“이 동네는 꽤 우범지역이야. 비피, 이렇게 맘 편하게 장사하다가는 어디 무서운 갱단 2 인조라도 찾아와서 오늘 번 돈을 다 털어갈 지도 모른다고.”
텔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몰래 손가락으로 뒤에 있는 험악한 인상의 2 인조를 가리켰다. 그러자 비피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텔리 쪽으로 몸을 앞으로 기대면서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당신, 지금 크게 실수할 뻔 했어. 그따위 말을 저 사람들 앞에서 지껄이다간 명대로 못 산다구. 빨리 물건이나 사고 나가요. 뒤의 저 사람들 정말 진짜 갱이니까. 알겠어요?”
텔리는 고개를 뒤로 빼면서 웃기는 표정을 지었다.
“어휴, 무서워. 이거 분위기가 험악해서 어디 제대로 쇼핑이나 하겠어? 좋아, 빨리 물건이나 사고 가야지. 이봐, 비피. 여기 클로브 담배 있지? 난 그걸 사러 왔어. 클. 로. 브. 담. 배.”
텔리는 일부러 뒤에 있는 덩치들의 귀에 들어가도록 크게 말했다. 그러자 두 덩치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피는 그들이 무서운 표정으로 텔리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는 잔뜩 겁을 먹었다.
“클로브라고요? 그런건 우리 가게에서 안파는 데요.”
“아니,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내가 몇 년 동안이나 당신한테서 그걸 사왔는데, 그게 없다고?”
비피는 펄쩍 뛰면서 말했다.
“몇 년 동안 뭘 누구한테서 샀다고요? 아니, 당신 날 알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텔리에게 소곤거렸다.
“쉿! 조용히 해. 이봐, 당신 진짜 내 조언을 듣는 게 좋을 거야. 그냥 빨리 아무 것도 사지 말고 여기서 나가. 저기 뒤에 있는 사내들은 클로브 담배를 사가는 사람을 귀찮게 한단 말이야.”
텔리는 씨익 웃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야, 주인장. 귀가 멀었어? 난 클로브 담배를 원한다고! 여기서 파는 거 아니까 당장 있는 대로 다 가지고 오란 말이야! 클. 로. 브. 담. 배!”
텔리가 소리를 지르자 그의 등 뒤에 있던 두 명의 사내들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카운터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텔리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띠며 비피에게 말했다.
“이봐, 비피. 내 조언을 듣는 게 좋을 걸? 당장 이 가게에서 나가. 왜냐면 여기에서 큰 일이 날 참이거든.”
“에엑? 뭐라고? 아... 안 돼! 내 가게에서는 안 돼!”
“당장 나가. 가게는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 네 목숨이나 챙기라고. 훗훗훗.”
비피는 텔리의 웃는 모습을 보고 뭔가 감을 잡았는지, 살짝 눈을 찡그렸다.
“서... 설마....? 당신은?”
“비피, 감이 좋은 편이네? 당장 나가. 멍청아. 훗훗훗.”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가게 출입문 쪽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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