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22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22

건수가 방에서 본 것은 공간의 틈새에서 삐져나온 큰 비둘기의 머리였다. 그리고 그 틈새 주변은 무지갯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기들 몸만한 괴물 비둘기의 머리를 보고 너무 무서웠는지 둘이 부둥켜안고 덜덜 떨었다.

“아악!”

건수도 거대한 비둘기 머리를 보고 깜짝 놀라서 손에 들고 있던 면도기를 떨어뜨렸다. 무서워서 뒤로 몇 걸음 물러서는데, 비둘기가 건수를 보고 말했다.

“구구구구.... 아하! 저 녀석인가 보군. 인간아, 장소를 제대로 찾은 것 같다. 어서 나와. 구구구구....”

큰 비둘기 머리가 다시 안으로 쏙 들어가더니 무지갯빛의 틈새에서 검은 물체가 쑥 하고 빠져나왔다. 사람의 다리였다.

“우왁!”

건수와 그의 부모는 덜덜 떨면서 한 쪽 벽으로 기어갔다. 셋은 그들 등 뒤의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다. 그들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헴. 이렇게 불쑥 찾아오게 되어서 정말 실례했습니다. 전 오달희라고 합니다. 일전에 이 집의 아드님이 제 집에서 아주 큰 신세를 졌지요. 아주 먹고 자고.... 집도 부수고..... 허이구.”

“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세 식구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나이가 60은 넘었을 듯한 웬 아저씨가 옛날 산적마냥 짐승 털옷을 위에 걸치고 서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강원도 아저씨였다. 건수는 그를 보고 반가워서 벌떡 일어났다.

“아! 강원도 아저씨!”

그런데 강원도 아저씨는 한 눈에 모습이 바뀐 건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엥? 댁은 누구요? 날 알아요?”

“아저씨, 저에요. 건수에요. 모습이 바뀌어서 몰라보시겠죠?”

“와아... 건수구나. 그래. 정말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네. 그럴 거라고 할매가 그러더니, 그 말이 맞았어. 이거 진짜 신기하네.”

“할머니께서요?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 그리고 오늘 네가 돌아올 거라고 했는데, 진짜로 네가 여기 와 있었구나. 모습이 바뀌어 있어서 알아 볼 수 없을 거라고 했던 말도 진짜 그대로 딱 맞았네. 하여간. 그 노친네. 무서운 사람이야! 허어... 그래도 이렇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니 이거 진짜 놀랍다, 야.”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서 있는 건수 주위를 돌면서 달라진 모습을 확인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갑자기 방안에서 사람이 나타나자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그나마 아버지가 정신줄을 억지로 붙잡고 뒤에 어머니를 팔로 보호하면서 아저씨에게 소리쳤다.

“다... 다... 당신 누구야! 어... 어떻게... 어...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러자 강원도 아저씨가 쓰고 있던 모자를 살짝 벗으며 다시 인사했다.

“아, 이렇게 나타나서 놀라셨죠? 제 이름은 오달희라고 합니다. 일전에 아드님께서 저희 집에서 먹고 자고 아주 큰 신세를 졌지요. 물론 제가 그 값을 물어달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갑자기 방 한 가운데서 나타난 수상한 사람의 이상한 첫 인사였다. 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소리를 질렀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다... 당신 누구야! 왜 갑자기 남의 집에 나타나서..... 게다가 괴상한 옷까지 입고 말이야! 안되겠다. 여보! 어서 경찰을 불러! 어서!”

강원도 아저씨는 손사래를 치면서 경찰에 신고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왜 경찰은 부른다고 그래요? 나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어머니는 그 틈을 타서 방바닥을 기어가서 충전 중이던 핸드폰을 주운 후, 경찰에게 연락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러자, 건수가 어머니를 말리며 말했다.

“어머니, 괜찮아요. 바로 이분이 신기 할머니와 같이 오셔서 저와 도모를 강원도로 데려가셨던 강원도 아저씨세요. 이상한 분이 절대 아니에요.”

“아, 네 친구들도 얘기했던 그 아저씨로구나.”

어머니가 경찰에 신고하려던 것을 멈춘 것을 본 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역정을 냈다.

“여편네야! 빨리 경찰을 안 부르고 뭐해? 무단가택침입한 괴상한 사람이 있다고 빨리 신고를 넣으라고!”

그러자 아저씨가 아버지의 팔을 잡더니 자기 쪽으로 강하게 끌어 당겼다.

“난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니까 왜 자꾸 이 양반이 헛소리를 하고 그래! 일단 따라와보쇼!”

그러면서 아버지를 무지갯빛 틈새로 밀어 넣는게 아닌가. 아버지는 “어! 어!” 거리면서 틈새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아저씨가 건수를 보며 말했다.

“건수야, 너도 같이 가자.”

“예? 어디 가는 데요?”

“멧돼지 산신령님께 가자고.”

“예? 전 이제 겨우 집에 돌아왔는데요?”

“일단 따라와. 내가 가면서 설명할게. 거기 너희 어머니도 모시고 오너라.”

건수가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어머니, 같이 가요. 어차피 아버지도 이미 저 안으로 들어 가셨으니까요.”

하지만 어머니는 겁을 먹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이비 소굴로 가자는 거지? 아... 안 돼. 난 못 가.”

건수는 두 눈을 껌벅이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사이비 소굴이라뇨? 우린 지금 멧돼지 산신령님의 공간으로 간다고 하잖아요. 거긴 위험한 데 아니에요.”

그러자, 이번에도 아저씨가 건수 어머니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아유, 건수 어머니. 맨날 속고만 사셨수? 남편도 들어갔는데 같이 좀 갑시다. 사이비는 무슨 사이비야?”

“아아악! 왜 이래요?”

그는 어머니도 공간의 틈새로 재빨리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건수에게 말했다.

“네 부모님이 모습이 변한 널 아들로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할매가 얘기했었어. 그래서 나더러 멧돼지 산신령님께 데려오라고 하더라구. 아니면 절대 널 믿어주지 않을 거랬어.”

“할머니께서 그러셨어요?”

“그래. 자, 이제 너도 들어가. 이런 통로를 몇 개 거쳐야 강원도로 갈 수 있어.”

강원도 아저씨가 얘기한 것은 일전에 멧돼지 산신령의 장소를 방문했을 때 멧돼지 산신령과 스라소니 산신령에게서 들었던 얘기로, 각자의 영역이 구분된 신령들의 장소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연결만 된다면 세상에 못 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땐 말로만 들었던 것이었는데, 지금 그가 강원도에서부터 와본동까지 신령들의 장소를 연결해서 온 것을 보면 그 때 들었던 얘기가 사실이었던 것이다. 예전에 스라소니 산신령은 신들의 통로를 몇 십 번이나 통과해서 뉴욕도 가봤다고 했는데, 그 과정은 꽤 고생스러웠지만 단 서 너 시간만 들이면 지구 반대편까지도 갈 수 있다고 했다.

건수는 그것을 기억하며 공간 안에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주위가 바뀌면서 어떤 동네의 풍경이 펼쳐졌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뒤 이어 들어온 아저씨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뭐 별거 없어. 여기도 멧돼지 산신령님의 공간과 비슷한 곳이야. 그런데 아까 계셨던 비둘기 신령님이 어디 가신 거지? 보통 이런 공간의 문이 열리면, 외부에서 누가 들어올 땐 곧 바로 통로를 열어주시기 위해서 그 구역의 신령님이 딱 앞에 와 계시는데...?”

그 때였다. 건수와 아저씨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아아악! 사람 살려! 괴물이다!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엄마야~!”

강원도 아저씨는 한숨을 쉬더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건수도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