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4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4

창고에서 텔리의 머리카락을 입수한 후, 취객과 크로우필드, 즉 11번과 23번은 저녁을 먹기 위해 한 다이너에 들어가 앉아있었다. 그들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11번, 아까 자네가 내게 한 질문에 대해 이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우리가 생물이냐, 무생물이냐, 아니면 신이냐고 물었던 거 말이야.”

11번은 손으로 빨간 코를 잡아당기며 23번을 바라봤다.

“그래. 이제 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고? 그럼 말해봐.”

“일단 우린 생물이야. 왜나면 배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하니까. 배가 너무 고프면 이렇게 배에서 꼬르륵 거리고 소리도 나잖아.”

11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배고프면 뭐라도 먹어야지. 전에 죽으려고 꼼짝 않고 며칠이나 굶은 적이 있었는데,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식탁 위에 놔뒀던 곰팡이가 핀 식빵을 먹었던 적이 있었어. 그 때 그거라도 먹지 않았다면 난 아마 굶어 죽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린 분명히 생물이야. 인간.... 비록 인간은 아닐지라도.”

11번은 자신들 앞에 있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대꾸했다.

“그럼, 우린 인간이 아니지. 우린 인간처럼 늙지 않잖아. 몇 천 년째 이 모습 그대로 살아 있잖아. 마치 이 테이블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그럼 우린 신이 된 걸까? 내 말은, 이곳의 전지전능한 신 말고 우리 세계의 신 말이야. 그들도 늙지도 않고 죽지 않잖아.”

11번은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저었다.

“23번, 넌 진짜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거야? 몇 천 년 동안 뭘 생각하고 산거야? 일단 그 신들도 작자들도 죽을 수 있어. 병에 걸려서 죽은 신들도 있고 사고로 죽은 신들도 있으니까. 그것뿐인가? 전쟁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 죽은 신들도 있지. 다만 그들은 부활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어.”

“그래. 당연히 나도 알고 있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니까 영원히 사는 거 아냐.”

“우리는 신이 아니야. 그들과 달리 우리의 이 이상한 육체는 부활하지 못해. 우리 40 명 중 죽었는데 다시 되살아난 동료들이 있었어?”

“없었지.”

23번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귀에 단 은으로 된 귀걸이가 흔들렸다. 11번은 23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자, 내 말을 들어봐. 우린 신들과 인간 사이의 그 무엇인 거야. 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것들이야.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하면 되지 않는 것들인 거야.”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것들... 우리가 말이야?”

“우린 병기야. 텔리를 위한 병기. 그 개자식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 때 우리더러 그렇게 말했던 거 생각 안 나? 인간이지만 신들을 죽일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고 한 것 말이야.”

“글쎄. 너무 오래 된 일이라 난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네.”

23번 크로우필드는 손으로 턱을 긁으며 머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11번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테이블을 바라봤다. 그리고 몇 초 후, 눈에 초점이 다시 돌아왔을 때 입을 열었다. 잠시 옛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옛날, 엘리시움에서 난동을 부리던 괴수, 베토케로우스를 무찌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음에도 제대로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한 텔리와 형제들은 다른 신들에게 너무 화가 나서 자기들이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지. 특히, 텔리, 그 미친놈은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모든 신들과 신수들을 다 죽여 버리려고 했어. 그래서 우릴 병기로 만들어 사용한 거야.”

“그야 그는 살육의 신이었으니까. 오로지 목표는 더 많은 상대를 죽이는 일만 신경 쓰던 분이었으니까 그렇지.”

“그가 신들의 연합에 패하자, 그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 우리를 척살하기 시작했어. 다행히 자네와 난 그를 피해 이 세계에까지 흘러 들어왔지만, 그때 미처 피하지 못했던 동료들은 모두 그의 손에 죽임을 당했지. 나중에 그도 이 세계로 와 있다는 소식을 자네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내 기분이 어땠을 것 같나?”

11번의 질문에 23번은 자기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했는지,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 그 마음은 나도 이해가 가. 나도 정말 깜짝 놀랐었거든. 몇 십 년 전, 이곳 뉴욕에서 일어났던 한 무시무시한 살인 사건의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서 나도 정말 당황했었거든. 신문 기사를 읽어보니까 대충 감이 왔지. 사진 한 장 없이 달랑 기사만 읽었던 거지만, 한 눈에 알 수 있었어. 방식이 딱 그분의 것이더라고. 이곳의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분의 활동이 한 동안 잠잠해져서 내가 착각한 건가 싶었는데, 그 후에도 어쩌다 한 번씩이어도 활동을 이어가셨지. 심지어 최근 1 년 전까지도 흔적을 남기셨더라고. 물론 그건 모두 신문 기사를 통해 내가 추측한 거야. 좀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나도 그 분과 같은 주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신경이 많이 쓰였지. 감히 내가 상대할 수 있는 분도 아니니까 난 더 몸을 사리며 조심했고. 내가 뉴욕에 있다는 걸 그 분에게 들킨다면 날 제거하실 게 분명하니까.”

“아니, 이젠 아니야. 내게 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뭐?”

“더 이상 숨을 필요도, 도망칠 필요도 없어.”

11번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총알을 하나 꺼내 23번에게 보여주었다.

“이걸로 텔리 놈을 끝장낼 거야.”

23번은 그 총알을 슬쩍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봐, 그건 총알이잖아. 살육의 신께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분은 누구보다도 강력한 메이크바를 가지고 계시는데. 그거로는 그분의 방어막을 뚫을 수 없어.”

“그래? 그렇담 자네가 직접 한 번 자세히 볼테야?”

11번이 총알을 건네주자 23번은 그것을 자세히 관찰했다.

“이건... 큰 총알이군. 그런데 이게 뭐가 특별하다는 거지?”

그러자 11번은 친구를 보고 싱긋 웃었다.

“물론 겉으로만 보면 평범한 7.62mm지. 하지만 아까 버려진 웨어하우스에서 내가 했던 방식으로 그걸 확인해봐.”

11번의 얘기는, 능력을 사용해서 총알을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뭐라고? 미쳤어? 여기서 힘을 사용하란 말이야? 이 식당 안에서?”

“히히히. 겁이 많구만. 자, 내가 가려줄 테니, 총알을 쥔 손을 테이블 밑으로 가져가서 힘을 집중시켜 보게. 그럼 차이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뭐라고? 너무 조심성이 없잖아. 난 못해.”

23번은 손에 힘을 집중하게 되면 몸에서 빛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잘못하면 식당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체를 들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11번은 코웃음을 쳤다.

“흥! 자네는 정말 겁이 많군. 뭘 그렇게 주위를 의식하는 거지? 아까 말했잖아. 들키면 우릴 본 사람들을 다 죽여 버리면 된다고. 아니면 자네가 자유롭게 힘을 쓸 수 있도록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을 죽여줄까? 응?”

23번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후우... 자넨 정말 못 말리겠군. 알았어. 알았다구.”

23번은 총알을 쥔 손을 테이블 아래로 가져가더니 거기에 힘을 집중시켰다. 곧 그의 손에서 하얀 빛이 났다. 초조해 보이던 그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가득해졌다.

“이... 이거 뭐야? 11번, 이거 뭐야?”

그때, 웨이트리스가 둘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 23번은 재빨리 손을 테이블 위로 다시 올리더니 11번에게 총알을 돌려주었다. 당혹스러워 하는 23번의 얼굴을 보며 11번의 입가에는 미소가 흘렀다.

“히히히. 자네가 느낀 그대로야. 바로 신을.....”

“쉬잇!”

그가 대답하려는데 어느새 웨이트리스가 음식을 가지고 그들의 테이블 가까이에 와 있었다. 23번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는 11번더러 조용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웨이트리스는 쟁반 두 개를 들고서 11번과 23번에게 물었다.

“에그 플로런틴. 이건 누가 드시는 거에요?”

11번이 그녀를 보고 씨익 웃으며 손을 들었다.

“여기, 그건 내가 시킨 거야. 예쁜 아가씨.”

웨이트리스는 그를 보고 크크 웃었다. 그녀는 나이가 50도 넘은 숙녀였기 때문이었다.

“뭐요? 아가씨라고? 당신, 초저녁인데 술을 너무 많이 마셨네요. 내가 나이가 몇인데 날더러 아가씨라니. 호호호.”

“히히히. 팁 대신 하는 말이야. 그리고 내 나이에 비하면 당신은 갓 태어난 아기나 다름없어. 히히히.”

자기보다 10살은 어려보이는 11번의 황당한 헛소리에 짜증이 난건지, 아니면 그가 자기에게 팁을 줄 돈도 없다는 말에 실망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이든 웨이트리스는 눈알을 한 바퀴 돌리더니 대꾸했다.

“됐어요. 어쩐지 저녁인데도 아침 메뉴를 시키는 것부터가 이상했어. 혹시 아침부터 계속 굶었던 거 아니에요? 이봐요. 내 팁은 걱정하지 말고 혹시라도 오늘 밤에 돈이 생기면 내일 아침 식사라도 어떻게 해결해 봐요. 쯧쯧쯧.”

“히히히. 고마워. 예쁜 아가씨. 난 정말 너무 가난해서 팁을 줄 돈도 없거든. 당신 말대로 오늘 아침부터 못 먹어서 이제야 아침을 먹게 된 거라고. 오늘 만약 이 앞에 앉아 있는 내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밥 구경도 못할 뻔 했지. 아직까지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해서 아침 메뉴를 주문한 건 아니야. 난 원래 하루 종일 아침 메뉴만 먹거든.”

23번은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서 웨이트리스에게 건넸다. 꽤 많은 돈이라 웨이트리스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이거 받고 빨리 가요. 팁은 나중에 또 놓고 갈 테니 그것도 챙기고. 실은 지금 우리가 정말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거든.”

웨이트리스는 23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더니 11번에게 말했다.

“보니까 친구 분께서 저녁을 사시는 것 같은데, 이왕이면 당신 친구처럼 스테이크를 시키지 그랬어요? 호호호, 팁 고마워요.”

23번이 계속해서 손짓으로 물러가라는 신호를 보내자 웨이트리스는 웃는 얼굴로 물러갔다.

웨이트리스가 물러가자, 23번이 목소리를 낮추며 11번에게 물었다.

“이봐, 자네. 어떻게 그런 물건을 손에 넣은 거야? 그거 보통 총알이 아니던데?”

“히히히. 맞아. 신을 죽일 수 있는 물건이지. 직접 느껴보니까 어때? 가능할 것 같지 않나?”

“그거 어디서 어떻게 구했어? 아니, 맙소사! 난 그런 물건은 처음 봤어.”

11번은 돌려받은 총알을 다시 옷 주머니에 넣은 후 말했다.

“이디레이아.”

“이디레이아? 그게 뭐야?”

“자네는 이디레이아도 모르나? 운명의 여신, 이디레이아.”

“운명의 여신?!”

“히히히. 놀라기는. 히히히히히”

11번은 접시 위에 있는 자신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23번은 너무 놀랐는지 11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