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12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12

하루 종일 가을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이틀 전, 파비노와 그의 심복 로니를 제거한 죠셉은 다시 알렉시스와 함께 차를 타고 롱아일랜드를 향해서 495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목표로 하는 곳은 돈테의 거처였다. 죠셉은 미리 돈테에게 전화로 연락을 해서 간략하게 그가 생존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직접 찾아가는 길이었다.

겨우 이틀 만에 다시 찾아가는 롱아일랜드였지만, 죠셉이 느끼기로는 마치 몇 달 만에 다시 가는 길 같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죠셉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심지어 몸이 으슬으슬 춥게 느껴졌다가 갑자기 이마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딱히 감기나 몸살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증세는 비슷했다. 파비노와 로니의 마지막 모습만 생각하면 그랬다. 그리고 그는 이틀 전 자기 눈앞에서 너무 끔찍한 죽음을 맞은 파비노와 로니의 모습을 한시도 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때 정신적으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몸이 그 충격을 다 받아내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몸이 충격을 받아내지 못하긴.... 다 개소리지. 날 죽이려고 했던 놈들을 죽인 것 뿐인데, 뭐. 게다가 나로서는 내 원수들이 오히려 그렇게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죽었으니 더 통쾌해야 하는 것 아냐?’

하지만 파비노의 머리가 불에 타오르던 장면이 다시 연상되자 기분이 몹시 불쾌해졌다. 굳은 표정으로 옆의 조수석에 앉아 있는 알렉시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유심히 관찰해보니, 알렉시스는 그냥 미인은 아니었다. 이전엔 신경 써서 보지 않았기에 미처 몰랐는데, 입매라던가, 턱이라던가, 눈빛이 강해 보이는 것이었다. 체형도 그리 큰 편이 아니었지만 왠지 다부져보였다.

‘맙소사. 정말이지 알렉시스는 대단한 미인이군.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그런 끔찍한 짓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지. 이 여자는 외계에서 온 인간병기 아닌가. 총알도 소용없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알렉시스는 죠셉의 시선을 느끼고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 내게 할 말 있나?”

“아, 아뇨.”

“그런데 왜 날 보고 있는 거야. 그거 실례잖아.”

“죄송합니다.”

“나니까 망정이지, 만약 릴리카였으면 당장 손을 들어 네 뺨을 후려쳤을 거야. 그리고 넌 한 방에 나가떨어지겠지. 왜냐면 엘리시움에서 온 불새군의 군인들은 이곳에 있는 인간들보다 거의 두 배는 힘이 강하거든.”

불현듯 그녀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이 튀어 나오자, 그가 물었다.

“릴리카가 누구입니까? 아, 당신의 동생이라는 그 가수.....”

“동생이 아니야. 그것은 이 세계에서 하고 있던 위장이었을 뿐, 나와는 어떤 혈연관계도 아니다. 나와 함께 불새군에 있었던 장군...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내 위에 있었던 사람이다.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몇 십 년 동안 이 세계에서 100 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거두지 못했겠지. 하지만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죽었어. 한국의 산에서 말이야. 너도 자세히는 몰라도 텔리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으니 알 것 아니야?”

“예. 기억합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 릴리카란 여자를 언급하는 겁니까?”

알렉시스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어. 때때로 그녀가 갑자기 생각날 때가 있더군. 나와는 사이가 안 좋았는데,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 19년 전, 이 세계에서 처음 만났을 땐 서로 잘 통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거든. 이 세상 사람들은 그녀가 내 동생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내가 훨씬 나이가 많아. 태어난 해로 따지자면 난 그녀의 어머니 정도 되는 나이더군.”

“어머니요? 그렇게까지 나이가 차이나 보이진 않던데요?”

“왜냐면 내가 그녀보다 훨씬 먼저 이 세계로 왔기 때문에 그래. 나도 나중에나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구와 엘리시움은 시간의 차이가 조금 있는 모양이야. 내가 지구에 온지 거의 30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 엘리시움에선 그 열 배나 되는 시간이 흘렀던 거지. 1000년씩이나 사는 우리에겐 지구에서의 3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니까 난 별로 나이를 먹지 않았는데, 나중에 온 릴리카는 내가 지구에 온 이후에 태어났던 모양이야. 그래서 생체적인 나이는 비슷해보여도 실은 내가 그녀의 어머니 정도 되는 나이인 거지. 물론 엘리시움의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말이야.”

죠셉은 지금 알렉시스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눈을 끔벅거리는 것 외 다른 반응은 할 수 없었다.

“전 전혀 이해 못하겠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되는 일이지 않을까요? 200년 하고도 몇 십 년을 더 산 사람과 지금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말이 안 되잖아요?”

알렉시스는 피식 웃더니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지금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왜냐면 누구든지 엘리시움에서 온 우리의 비밀을 알게 된 자는 반드시 죽이게 되어있거든. 그러니, 널 죽이려고 마음먹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면, 이 대화는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던 거야.”

그 말을 듣고 죠셉이 몹시 당황한 얼굴로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뭐, 뭡니까? 그 말의 뜻은 지금 절 죽이겠다는 거 아니에요? 당신들의 비밀을 알려줬다는 건 죽이겠다는 거잖아요?”

“릴리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지금 당장 네 뺨을 후려치더라도 병사들은 그녀를 전혀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난 아냐.”

“왜요? 그런 게 아니라면 왜 내게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까?”

그러자 알렉시스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도대체 넌 나를 얼마나 멍청하게 생각하는 거냐? 지금 내가 널 때리거나 죽인다면 차 운전은 누가 하지? 우린 이렇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그럼 다 같이 죽겠다는 거잖아. 멍청아. 쯧쯧쯧.”

그녀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며칠 전 네가 나한테 네 아버지와의 일을 솔직하게 말해주길래, 나도 내 일을 한 가지 말해준 것뿐이다. 릴리카가 죽은 지 벌써 1 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냥 가끔씩 생각나서 말이야. 그땐 그렇게 밉고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왜 그랬나 싶어서. 따지고 보면 난 그녀보다 이전 세대의 사람인데 내가 너무 그녀를 견제만 했지, 전혀 이해하려고 시도하지는 못했던 건가..... 요즘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녀는 그렇게 간단히 말을 하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때마침 출구 표지판이 죠셉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가 핸들을 꺾자, 그들이 탄 차는 고속도로를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