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57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57
일주일 전 멧돼지 산신령의 공간에서 돌아온 건수와 가족들은 대체로 평온하고 평범한 일주일을 보냈다. 건수는 최대한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일주일 동안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신생아처럼 잠만 잤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토요일이 돌아왔다. 이미 시간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는데도, 그는 집안에서 혼자 방에 누워있었다. 아, 얼마 만에 만끽하는 여유로움인가. 이젠 그를 쫓아오는 검은 늑대도 보이지 않고 무서운 촉수를 뻗으며 공격해오는 괴상한 모습의 노인도 없었다. 불 붙은 주먹을 휘두르며 공격해오는 무서운 여전사들도 없었다. 건수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자리에 누워 꼼짝 않고 있었다.
고요함.
평온함.
가끔씩 밖에서 차 알람 소리, 남의 집 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정도만 그의 귀에 들어왔다. 그 외엔 들리는 것은 그 자신의 숨소리뿐이었다. 그 평범한 하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며 감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미건조해 보이던 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적막감.
두려움.
겉으로 보기엔 가만히 누워있는 그의 모습은 꽤나 여유롭고 신세 좋아 보였지만, 그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해졌다.
‘이렇게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지속될까?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한시라도 어떻게든 빨리 내 원래 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건수는 손을 올려서 얼굴을 만져보았다.
‘이 거, 내 몸이지만 전혀 내 몸 같지가 않아. 원래 내 코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 그리고 이 두 눈.... 이상한 테두리 같은 것이 심어져 있는 이 눈 말이야. 도대체 왜 그런 게 눈동자에 박혀 있는 걸까? 이 이상한 일에 대해 케르케님께 여쭤봐야 하는데 아직도 보름달이 뜨려면 며칠이 더 남았는데 그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뭘 하고 있어야 할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세 식구가 함께 지내기엔 좁아 보이는 지하 원룸인데, 군데군데 짐들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혹시 그의 부모만 여기서 살고 있는 입장이라면 나름 아늑한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기까지 여기서 그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를 괴롭히는 생각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부모는 주말에도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자기는 젊은 나이에 그냥 방바닥에 누워 아무 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스스로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음. 이거 그냥 가만히 누워 있는 것도, 넋 놓고 쉬고 있는 것도 꽤나 고역이네. 어렸을 땐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들어서 이러고 있으니까 왜 그렇게 부모님 눈치가 보이지?’
하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부모는 그가 한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몇 년이나 기다려서 아팠던 아들을 되찾았는데 그가 다시 1 년 가까이 행방불명 상태가 되자 몹시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다 큰 아들을 마치 어린 아이 대하듯 혼자서는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건수는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일주일 동안이나 집 안에서만 꼼짝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주일이나 되니까 슬슬 좀이 쑤셨다. 그는 요즘 부쩍 빨리 자라는 수염과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집으며 말했다.
“아유. 왜 이렇게 수염이랑 머리카락은 빨리 자라는 거야? 그냥 이렇게 집에서만 있으니까 더 빨리 자라는 것 같네.”
그의 말대로 집에서만 있어서 체모가 빨리 자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에 한 번, 혹은 이틀에 한 번 면도를 했던 예전과 달리 이젠 하루에 세 번이나 면도를 해야 했다. 어찌된 일인지 몇 시간만 지나도 수염이 꽤 길게 자라는 것이었다. 물론 머리카락도 마찬 가지였다.
“내 몸이 정말 이상해졌어.....”
‘따르르릉~ 따르르릉~’
그가 귀찮음을 극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면도하러 화장실로 가려고 하는데, 그의 핸드폰 벨소리가 들렸다. 그는 핸드폰 화면에 뜬 발신인을 확인했다. 싸이언스였다.
“여보세요. 건수냐? 응... 내가 며칠 전에 말했던 거 있지? 그게 오늘인데 너도 갈 거지? 한 1 시간 후에 만나는 건 어떨까? 원광이가 차를 가지고 온다고 했었어.”
“응? 그게 뭐였더라? 내가 그 때 좀 정신이 없어서 자세히 못 들었거든? 그리고 난 웬만하면 그냥 집에 있을까 하는데....”
“야, 안 돼~ 오늘 좐슨이 데뷔하는 날인데 그 축하하는 자리에 너가 빠지면 어떡해? 그러지 말고 너도 같이 가자. 아니, 너도 가야지.”
“아... 그게 내가..... 음.”
건수는 차마 싸이언스에게 부모님이 아무 데도 가지 말라고 해서 못 갈 것 같다는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다 큰 성인인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원광이가 자기 집 차를 가져온다니까 가는 길도 좀 편할 거야. 무엇보다 오늘을 위해 노력했을 좐슨 녀석을 생각하면 친구인 우리들이 그 자리를 비울 수 없지.”
“하아.... 그런데 어디로 간다고 그랬지? 너무 먼 곳이면 내가 좀 가기가 힘들 것 같아서 그래.”
“파주. 먼 곳 같지만 자동차로 가면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야.”
요즘 들어 밤낮없이 잠만 자고 있던 건수는 며칠 전에 자고 있다가 싸이언스의 전화를 한 통 받았었다. 그런데 잠결에 통화해서 그랬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친구 좐슨과 관계된 일이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참석하는 것 같은데 자기 혼자 그 자리에서 빠지기도 좀 곤란한 상황 같았다.
“그래. 알았어. 싸이언스, 그러면 1 시간 후에 보자.”
“좋았어. 그럼 내가 너희 집 앞에 가서 전화할 테니까 준비해.”
건수는 통화를 마치고 이발을 위한 가위를 들고 화장실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 * *
한참 도로를 달리고 있는 도원광의 차 안에는 건수와 세 친구들이 타고 있었다. 일 주일 만에 다시 얼굴을 보게 된 그들은 서로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건수도 실로 오랜만에 친구들과 예전처럼 어울리게 된 것이어서 그런지 즐거워했다. 도원광이 룸미러로 뒷 좌석에 탄 건수와 싸이언스를 보며 말했다.
“아니, 싸이언스. 너 건수한테 오늘 일을 제대로 말했던 거 아니었어? 어떻게 저 녀석이 하나도 모를 수가 있냐고.”
“아냐. 내가 분명히 다 말했어. 이 자식이 자고 있다가 전화를 받아서 기억 못했다고 하잖아.”
건수가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야, 난 정말 몰랐었다. 오늘 좐슨이 데뷔 시합을 한다니. 그것도 프로 레슬링이라니. 하하하. 난 정말 꿈에도 몰랐었어! 좐슨이 그런 걸 준비하고 있었다니 말이야. 정말 의외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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