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53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53

바빌로프와 그리고리는 잠자코 고개를 든 채 침묵을 지켰다. 어차피 반항해 보았자 이 두 침입자들을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의 이마에 댄 손에서 빛이 새어나오면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하자, 침입자들이 자기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두 사람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온 몸에서 진땀을 흘렸다.

“흐음.... 흠... 흠.... 일단 한 놈은 다 됐어. 그럼 다음.”

11번과 23번은 자리를 바꾸어 다시 브라트바의 보스와 2 인자의 기억을 읽어냈다. 몇 분 후, 침입자들은 갱스터들의 이마에서 손을 뗐다. 23번이 실망하는 기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이거 조금 난감하군. 생각만큼 기억을 잘 읽을 수 없어. 11번, 자네는 어떤가?”

11번도 역시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23번 자네도 알다시피 난 기억을 읽는 것엔 영 소질이 없었잖아. 사실 난 아무 것도 읽지 못했어. 그래도 자네는 조금은 읽었을 것 아냐?”

23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 두 놈 다 텔리님을 알고 있다는 것은 확인했어. 비록 짧은 순간의 장면만 본 것이지만, 이 두 놈들은 분명히 텔리님을 알고 있어.”

“그래?”

“여기 있는 바빌로프는 야외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텔리님을 본 적이 있고, 여기 덩치 큰 놈은 어느 어두운 장소에서 그분의 하익티스 몇 마리를 봤던 기억이 남아 있어.”

그 말을 듣고 11번은 아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놈은 텔리의 얼굴을 보았고 또 이놈은 하익티스를 봤다고? 그렇다면 분명하군. 그런데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다면 텔리 그 자식과 관련이 있는 거야! 아니, 협력하는 관계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것뿐이야? 텔리가 있는 장소라든지 그런 건 못 봤어?”

“그래. 나도 더 이상은 무리야.”

11번과 23번은 텔리처럼 남의 기억을 읽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지만, 11번은 아예 그 방면으로는 전혀 재능이 없었고 그나마 23번이 조금 읽어낼 수 있었다. 둘 다 텔리만큼 그 능력이 완벽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또, 23번은 그리고리의 기억 속에서 본 하익티스를 언급했는데, 그것은 텔리가 브라트바의 폐차장을 찾아왔을 때 바빌로프의 부하들을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괴물로 변하게 만든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11번은 바빌로프를 노려보며 물었다.

“이 잡종 같은 놈아! 너, 텔리를 알고 있지?”

“테... 텔리? 텔리라면 미스닉? 아니, 네놈들이 어떻게 그를 알고 있지?”

11번과 23번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스닉? 그건 또 뭐야? 너 왜 텔리 그 썩을 놈을 미스닉이라고 부르는 거지? 혹시 네놈은 텔리를 돕는 협력자냐? 바른 대로 말해!”

그러자, 바빌로프는 몇 초 동안 눈을 굴리며 현 상황을 빛의 속도로 분석했다.

‘이 녀석들, 대체 미스닉과 무슨 관계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보면 미스닉과 거의 같은 걸 보면 출신이 같거나 한때 동료 였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음.... 아니야. 이 키 작은 털보 거지가 왠지 미스닉의 이름을 말할 때 묘하게 그를 향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게 느껴진단 말이야. 그렇다면 혹시 이놈들은 미스닉과 원수 관계일까? 그렇담 난.... 아냐. 아냐. 이거 내 목이 걸린 일인데 진짜 신중해야 해야지.’

바빌로프가 머뭇거리고 있자, 11번의 눈이 뒤집혔다. 그는 바빌로프의 멱살을 잡더니 바로 코앞에서 그에게 소리 질렀다.

“이 새끼가 진짜! 야, 눈알만 굴리지 말고 빨리 불란 말이야! 너 텔리의 조력자냐고? 넌 그 새끼가 어디 있는지 아는 거지? 그 새끼, 지금 어디 숨어 있어? 당장 말 안하면 네 놈의 혀를 뽑아버릴 거야!”

바빌로프의 피범벅이 된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아.... 역시 그런 거였군. 흐흐.’

그는 감히 입 밖으로는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상반신이 꿀렁거릴 정도로 속으로 크게 웃었다.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데도 그렇게 여유를 보이는 바빌로프를 보게 되자 11번의 분노는 지붕을 뚫고 올라갈 지경이었다.

“너... 이 새끼가 진짜 죽으려고....! 좋아. 그럼 소원대로 죽여주마.”

11번은 주먹을 들어 올리더니 힘을 집중시켰다. 곧 그의 주먹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바빌로프는 그 빛나는 주먹을 보더니 긴장해서 숨을 헐떡거렸다. 혹은 코가 부러질 때 흘린 피가 굳어 그의 숨구멍을 막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지만 오히려 그의 정신은 더욱 또렷해진 것이다.

“하아... 하아... 당신 그 빛나는 주먹.... 마치 미스닉 같네. 혹시 미스닉의 친구인 거야? 그렇담 지금 당장 날 죽여! 더 이상 너희의 그 더러운 엉덩이에 키스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순간, 11번은 주먹에서 힘을 거두었다. 겁쟁이로 여겼던 바빌로프가 이 정도로 대차게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라고?”

“네 놈들, 미스닉, 그러니까 텔리란 녀석과 한 패지? 그 놈이 오늘 아침에는 내 부하를 죽이더니 이젠 너희가 날 죽이러 온 거냐? 자, 네 맘대로 죽여라. 이젠 정말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 날 죽여! 죽이라고!”

11번은 고개를 돌려 23번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봐, 친구. 방금 이 새끼가 말하는 걸 들었지? 텔리, 그 자식이 오늘 이 자식의 부하를 죽였다는데?”

“응. 나도 들었어. 아마 이 녀석들은 텔리를 돕는 입장은 아닌가 봐.”

바빌로프는 그 말을 듣고 격노했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뭐? 누가 누구를 돕는다고!! 그 텔리라는 놈을 내가 보기만 하면 아주 씹어 먹어도 모자를 판인데!”

11번은 또 한 번 23번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는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허어... 이거 이거, 이놈들.... 알고 보니....”

“...아군이었군.”

23번이 11번의 문장을 중간에 이어 받아 완성했다. 둘은 서로 뜻을 알겠다는 듯이 눈빛을 교환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11번은 다시 바빌로프에게 고개를 돌린 후 그에게 물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네 놈도 우리처럼 텔리에게 유감이 좀 있는 모양이구나.”

바빌로프는 손으로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11번의 손을 톡톡 두드렸다. 그는 숨이 막혀서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켁켁. 혀... 형님. 이 손... 손 좀 치워주십쇼. 잠깐만 숨을 돌리고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11번이 손을 내리자, 바빌로프는 폐병에 걸린 환자처럼 요란스럽게 기침을 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님들. 저기 제가 그렇게 불러도 되겠죠? 그런데, 형님들. 텔리인지 뭔지 하는 그 천하에 둘도 없는 악당 녀석을 어떻게 제가 돕는다고 말씀하십니까? 정말 억울합니다. 진짜 진짜 속상합니다!”

“어서 얘기나 해봐. 만약 네 놈이 시간을 끌려고 얕은 수를 쓰는 거라면 밝혀지는 순간 죽여 버릴 테니까 각오해.”

“알겠습니다. 제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말씀드리지요. 실은 저와 미스닉, 아니 형님들께서 텔리라고 부르시는 그 악당과는 정말 길고도 고통스러운 히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형님들께서 그 놈을 쫓으시는 게 맞는지 이 아우는 그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미스닉.... 그 놈이 언제 다시 저를 찾아와 절 죽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자식아! 빨리 얘기나 해! 우리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모르겠습니다. 전 형님들과 텔리의 관계를 확실히 알아야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라면 당장 죽이신다고 해도 말씀 못 드려요. 어차피 절 나중에 미스닉이 찾아와서 죽이나 형님들이 지금 죽이나 시간 문제인데요. 뭐.”

“맞아! 인마. 우린 텔리와 원수지간이야. 그리고 우리는 그 놈에게 너보다 훨씬 깊은 원한이 있어. 그래서 그놈을 찾으면 반드시 죽일 거야. 알겠어? 그러니 어서 정보나 내놓으라고!”

그제야 바빌로프는 안심이 되는지 씨익 웃었다.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는데 누런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짓는 그 모습이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다고 옆에 있는 그리고리와 비피는 생각했다.

“예, 그럼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형님들께서 그 녀석을 숨통을 끊으실 때, 저도 그 자리에 꼭 불러주십쇼. 저도 형님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그 놈에게 쌓인 빚이 많거든요. 예... 아주 많아요. 흐흐흐....”

바빌로프가 텔리와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리는 곁에서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의 보스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