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05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05

“와아.... 미쳤다.”

곰곰이 건수가 한 말을 듣고 난 뒤 싸이언스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아니, 와..... 와! 난 몰랐어. 정말 몰랐다. 그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그런데 오늘 너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던 거네. 사랑도 깨지고 우정도 깨지고. 와아.... 이런 상황을 뭐라고 말해야 하냐?”

“아이... 됐어. 다 끝난 일이야... 으으으...”

건수는 너무 빨리 술을 마신 탓인지 취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예전에 양꼬치 집에서 처음 술을 마셨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는 결코 술에 취한 기분을 좋다고 여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왠지 더 술을 마시고 싶었다. 어디서 얼핏 듣기로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끊기기도 한다던데, 될 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도 그러고 싶었다.

“싸이엉쓰.... 아아.... 술을 더 마시고 싶다아.... 술을 마시면 휠름이 끙킨다덩뎅.... 나도 마시고 또 마셔서 좐슨이랑 있었덩 일들.... 그 기억... 휠름을 다 끄너내고 싶다공......”

싸이언스느 그 말을 듣고 허공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하하하. 인마. 그건 술을 맨날 마시는 사람이 취하면 그 전 날 일을 기억 못한다는 뜻이고. 너가 말하는 건 기억 상실인데, 기억력 감퇴까지 가려면 얼마나 알코올에 빠져야 하는 지 알아?”

건수는 게슴츠레 눈을 뜨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혀가 꼬인 발음으로 대꾸했다.

“오우... 구래? 구렁 거였떠? 으억으억. 난 그거또 모르고..... 에휴.... 인생 헛싸랐넹..... 어휴,.. 멍청하다... 내가 저응말 멍청해.”

싸이언스는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소주병을 세어보았다.

“병이 하나... 둘... 셋... 넷... 어이구. 그래도 우리가 꽤 마셨는데? 야, 건수야. 안 되겠다. 이제 우리 집에 가야 되겠다. 야.”

“왱? 앙됑! 좀 더 마시고 싶엉...... 잊고 싶엉. 휠름 끊기고 시퍼엉. 으흐흐흑....”

슬슬 술주정을 제대로 시작하려는 것 같은 친구를 보자, 싸이언스는 곤란한 얼굴로 뒷통수를 긁었다.

“아이, 참. 이놈이 완전히 슬픔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네. 그럼 딱 한 병만 더 할까? 아무래도 이왕 빠질 거라면 슬픔보다는 술독이 낫지.”

싸이언스가 그렇게 말하고 의자에서 일어서는데, 편의점 주인이 다가와서 그에게 말했다.

“이봐, 내일 일 안 해? 저 친구는 완전히 취했네. 취했어. 아휴, 그만 마시고 집에 들어가.”

“아... 아닙니다. 오늘 좀 마셔야 될 것 같아서요. 죄송한데, 딱 한 병만 더 하고 들어갈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편의점 주인은 한 번 더 그를 말렸다.

“이미 많이 취했어. 날씨도 쌀쌀해지는데, 이만 들어가. 나도 이 불경기에 자네가 술 한 병 더 마셔서 매상 올려주면 좋긴 한데, 주말도 아니고 주중에 젊은이들이 취해서 길거리에서 휘청거리고 그러는 거, 그거 보기가 좀 그래. 그리고 내일 직장 가야지. 일 안 할 거야?”

그런데 싸이언스가 편의점 주인을 자세히 보자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엥? 잠깐만요. 사장님, 어디서 뵀던 분 같은데? 아아아... 사장님 혹시?”

그러자 편의점 주인 역시 싸이언스를 알아보고 눈이 커지는 것이었다.

“어? 뭐야? 넌 가구집 아들이잖아. 맞지?”

집에 들어가라고 타이르던 편의점 주인은 예전에 그와 도원광이 안주 하나만 놓고 계속 리필해서 먹던 호프집 주인이었던 것이다.

“네, 맞아요. 사장님은 그 때 호프집 사장님 아니세요? 골뱅이 리필.... 저랑 제 친구에게 후라이드 한 마리 해주셨잖아요?”

“아, 맞네. 그 진상들. 누가 곱창 하나에 소주를 네 병이나 마시는 가 봤더니, 진상, 너였구나. 그런데 너가 왜 또 여길 왜 와? 하이고.”

“와, 사장님, 편의점도 하시는 거였어요? 반가워요!”

“아니, 가뜩이나 호프집 정리하고 편의점 하는 거였는데, 이 마저도 장사가 잘 안 돼서 죽을 맛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가구점 리필, 널 또 보게 되다니. 아, 짜증나!”

“에이, 왜 그러세요. 제가 앞으로 여기에 와서 매상 많이 올려드리면 되죠. 헤헤헤. 그런 의미로, 소주 한 병 더!”

“됐어. 인마! 빨리 가! 진상, 너한텐 안 팔아. 그깟 소주 한 병 더 팔면 뭐해. 뭐 얼마나 남는다고. 자꾸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어서 돌아 가! 그리고 내 가게로 오지 마, 인마.”

“아이, 장사가 그렇게 안 되신다면서 왜 손님을 쫓아내시려고 그래요? 제가 앞으로 여기만 이용할께요. 흐헤헤헤.”

싸이언스는 넉살좋게 웃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편의점 주인이 입고 있는 베스트에 달려 있는 명찰을 보았다.

“어? 사장님 성함이... 점장, ‘피 시방?’”

싸이언스가 이름을 언급하자, 편의점 점장은 부끄러운지 재빨리 손으로 명찰을 가렸다.

“왜?! 내 이름이 피 시방이다. 시방 그게 뭐 어때서?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인데 문제 있냐?”

“아니요. 그게 아니라, 사장님, 그럼 편의점을 하실 게 아니죠. PC방을 하셨어야죠!”

“뭐야? 이 자식이 정말 사람을 놀리나? 야, 어린 놈이 감히 어른 이름 가지고 장난치나? 야, 인마! 그럼 가구점하는 너희 아버지 성함은 가 구점이냐? 엉? 너가 가가야? 가가?”

싸이언스는 손을 들어 휘저으면서 자신이 말하려던 것은 그런 게 아니라고 오해를 풀려고 했다.

“그게 아니고요. 사장님. 한 번 주위를 보세요. 요기, 요 지역에만 편의점 5 개에요. 그런데 무슨 수로 장사가 잘 되겠어요. 번화가도 아니고 회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완전히 한적한 곳인데. 게다가 맨 나중에 들어오신 거면 더 불리하죠. 에이, 이건 센타가 잘못했네. 왜 여기에 또 편의점을 내라고 허락했지?”

“야, 인마! 너가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사장님, 여긴 PC방이 하나도 없는데, 성함대로 PC방을 하셨어야죠. 여기 사람들이 전부 저 아래 있는 PC방까지 내려가서 하고 온단 말이에요. 어디 보자. 상가 지하에 임대라고 붙여놨네. 딱이네. 딱이야.”

“갑자기 PC방이라니?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아유, 성함대로 그걸로 가세요. 아니, 그냥 생각만 해보세요. 저처럼 이 동네 토박이시라면서 그걸 모르셨네. 이 정도면 운명적이네. 하하하.”

‘응? PC방이라고....?’

피 사장은 원래부터 귀가 얇은 사람이었는지, 싸이언스의 말을 듣고는 조금 화를 누그러뜨렸다.

* * *

싸이언스와 편의점 피 사장이 밖에서 떠들고 있을 때였다. 3 대의 스포츠카가 굉음에 가까운 큰 음악소리와 함께 편의점 앞에 와서 섰다. 그 안에서 5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일시에 차에서 내렸다. 맨 앞에 있던 청년이 다른 4 명에게 욕을 섞어가며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씨X! 핸드폰을 강남 어디에서 잃어버렸는데, 그걸 주운 년이 자기가 와본동에 산다고 여기까지 찾아오라고 하잖아. 난 핸드폰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클럽 안에서 있다가 거기서 잃어버린 줄 알았다니까. 병신같이 거길 존X게 뒤지고 있었네. 하아... 씨X! 근데 그 미친년이 전화는 또 존X 안 받아. 내 핸드폰 X창나게 전화를 걸었는데 안 쳐받다가 다 늦어서 받더니, 귀찮게 여기까지 오라고 하잖아. 아이, 씨X년!”

“하... 새끼. 그까짓 핸드폰, 그냥 새 거 하나 사면 되지. 뭐 그런 거 때문에 미쳤다고 강남에서 여기까지 와? 아무튼 우리 전부 다 여기 데려왔으니까 약속대로 2 차는 너가 쏘는 거야. 그런데, 야, 김일용. 너 옛날에 여기 살았다고 하지 않았냐? 근데 동네가 좀 그런데? 왜 이렇게 어두워? 크크크.”

“X까! 새꺄. 여긴 내가 어렸을 때, 잠깐, 아주 잠깐만 살았던 거야. 그 다음엔 난 하와이로 유학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아무튼 와본동에 다시 오니까 더 기분이 X같아지네. 에이, 씨X!”

“알았으니까, 일단 술 좀 깨게 에너지 드링크부터 우리한테 하나씩 돌려. 그래야 2 차 가서 또 마시지. 케케케.”

싸이언스는 스포츠카에서 내린 5 명의 청년 중 맨 앞에 있는 청년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맙소사! 그는 옛날 고등학교 때 그의 친구였던 김 일용이었다. 그렇다. 교실에서 좐슨을 왕따시키고 심지어 폭력까지 가하다가 건수에게 걸려서 크게 혼나게 되어서 병원신세까지 지게 되었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 불량청소년이 이제 어른이 되어 그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닌가. 몇 년 만에 보게 된 친구였지만, 반갑게 인사를 하기는커녕 재빨리 고개를 딴 데로 돌렸다.

‘다행이다. 내가 먼저 저 녀석을 알아보았어. 만약 여기 건수가 있는 걸 알게 되면 상황이 안 좋아 질 것 같아. 건수가 빨리 일어나야 되는데, 이걸 어쩌지?’

그는 술에 취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건수에게 다가가 그를 깨웠다.

“야.... 야.... 인마, 빨리 일어나. 우리 지금 빨리 가야 돼. 일어나. 일어나.”

아, 그런데 이걸 어쩌나. 건수는 술에 완전히 취해 조금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