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부. 루시 - 37 화
루시 – 37
“케르케님. 제가 검은 방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던 말씀은 분명히 기억해요. 다만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잖아요. 제가 왜 검은 방의 열쇠를 가지게 되었나요? 그거, 지금 제가 모습이 바뀐 것과 관계가 있는 거죠, 그쵸?”
“아암. 관계가 있고 말고.”
“역시! 역시 그랬구나!”
건수는 드디어 현재 달라진 모습에 대해 진실을 알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뻤다. 그는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럼, 어서 알려주세요. 제가 왜 이런 모습이 된 건가요? 잘 모르겠지만, 전 지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어요. 절 낳아주신 부모님도 처음엔 절 몰라보셨고요. 제 친구들도 그랬다고요. 속은 옛날과 똑같은데, 밖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요? 혹시 다른 사람과 몸이 바뀐 건가요? 그럼, 누구랑 바뀐 거예요?”
건수가 흥분하면서 한 발짝씩 다가오자, 케르케로우스는 뒤로 크게 물러섰다.
“야! 너, 거기에서 스톱.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마. 그리고 흥분하지 말고 하나씩 짧게 물어봐. 네가 자꾸 흥분하면서 내게 말을 거니까, 어제 일이 생각나잖아. 내가 살다 살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은 일은 처음이었는데, 그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내게 남겼는지 알아?”
“아, 제가 또 실수했네요. 죄송합니다. 케르케님.”
건수는 무안해져서 머리를 긁었다. 그가 너무 스트레스를 줘서 죽어버린 케르케로우스가 부활하고도 트라우마까지 생겼다니까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미안했다.
“일단, 왜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 말해주마. 네 말대로 넌 새로운 사람이 되었어. 정확히는 새로운 육체를 가지게 되었다. 놀랍지?”
“놀라고 말고요! 제가 처음에 제 모습을 확인했을 때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아세요?”
“그렇구나. 뭐,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꽤 놀랐을 거야.”
“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전에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불새군이 큰 난리를 피우자, 너와 내가 함께 싸웠잖아. 살육의 신, 텔리도 가세했었고. 그리고 또 왜 있잖냐. 베토케로우스라고. 그 시커멓고 덩치가 무지무지 큰 늑대 말이다. 그 늑대가 내 형인데, 여기 세상에 오면 안 되는데, 굳이 찾아와서는 막 난장을 피웠지. 그리고 나중에는 엘리시움에서 불새의 대사제와 부하들도 왔었고. 알고 보니, 그 불새군 놈들은 우연히 검은 방으로 들어왔던 거였단다. 그런데, 그놈들이 그냥 검은 방을 통과하면 될 것을, 생난리를 피워서 말이다. 뭐, 그 녀석들 때문에 검은 방 안에서 일이 좀 생겼는데, 그때, 암흑이 자극을 받아서 보통 화가 났던 게 아니었거든. 어휴, 암흑이 막 흥분해서 터져 나오고, 아래층에 있는 수호자도 깜짝 놀라서 출동하고 막 그랬어. 아이고,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그 정도면 여기 세상 사람들이 놀라고 그랬을 거 같은데. 그게 어떻게 잘 넘어갔는지 나도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단다.”
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수호자님은 어제 처음 뵈었어요. 그리고 한국 강원도에서 크고 무서운 검은 늑대와 그 부하인 검은 늑대들을 만난 일도 기억나고요.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제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온몸에 하얀빛을 내시던 케르케님의 몸이 불타고 있었던 것······. 그리고, 지구에 온 새로운 불새군의 대장 같은 어떤 할아버지와 부하들이 쓰러져계셨던 신수님께 다가오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들을 막으려고 앞에 나섰는데, 그 불새군의 긴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가 뭔가 번쩍이는 걸 제게 던졌어요. 전 그걸 얼굴에 맞았는데,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었죠. 그때, 아주 아팠는데···. 아, 정말 죽을 만큼 아팠어요. 그리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건, 그게 전부에요.”
“그래. 그때, 그 일로 넌 한 번 거의 죽을 뻔했거든. 보통의 인간이라면 절대 살 수 없었을 거야. 예전에 네가 내게 물려서 조금이나마 내 힘이 네 몸으로 흘러 들어갔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무튼, 그 후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그건 다음에 자세하게 말해줄게. 결론적으로는, 네가 쓰러져 있었던 그 부근에 있던 모든 이들이 전부 사라졌단다. 검은 방의 암흑이 흘러나와 그 부근에 있던 모든 이들을 전부 삼켰었어. 물론 너도 포함해서 말이야.”
“예? 제가 암흑에 삼켜졌었어요? 그래서요?”
“그리고 넌 이 검은 방으로 다시 끌려들어 오게 되었지. 넌 미약하나마 겨우 살아있는 정도였는데, 곧 죽을 것 같았어. 아니, 이 지구의 의사들이었다면 널 보고 죽었다고 판단했을 거야. 왜냐면 이미 숨을 쉬고 있지 않았었거든.”
“세상에!”
건수는 자기가 숨이 멎었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의학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했었다니, 그런데도 지금은 어떻게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는지 점점 궁금해졌다.
“케르케님, 그런데 제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었나요? 숨을 쉬지 않았다면 죽었다는 거잖아요?”
“그래. 이 세계의 기준으로는 그게 죽었다고 하는 거겠지. 하지만, 아직 네 생명의 정수가 네 영혼을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널 살리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지만, 내 힘으론 널 도저히 살릴 수 없었다.”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된 건가요?”
“그래서 네게 새로운 몸을 주게 된 거야. 이미 널 자기들의 일부로 흡수하기로 결정했었던 검은 방의 암흑은 반대했지만, 내가 우겼다. 넌 이미 검은 방에 들어와 있었고, 생명의 불꽃이 꺼지기 일보직전이었기 때문에, 네가 죽기만 하면 자기들 것이 될 것이니, 나더러 참견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내 생명의 정수를 주고 새로운 몸을 갖게 해달라고 했지. 내 생명의 정수라면 널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거든. 처음에 암흑은 그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냈었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했지. 그들은 시간을 질질 끌면서 네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다. 뭐, 그들의 입장에선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거지.”
건수는 그 말을 듣고 수호자가 검은 방의 아래층에서 자신에게 해줬던 얘기를 떠올렸다. 그는 케르케로우스가 자기의 몸을 건수에게 양보했다고 했었다. 그 결과, 케르케로우스가 죽게 되어서 다시는 부활할 수 없다고 했었다. 늑대 신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암흑 중에서 내 의견을 수긍한 녀석들도 있었던 것 같아. 바로 내가 있는 이 층에 있는 암흑들이었는데, 그들은 나와 함께 한 세월이 워낙 오래되었으니까, 내 말을 들어주기로 했었어. 원래는 검은 방의 모든 암흑이 다 함께 결정해야 할 문제였는데, 네가 가진 시간이 워낙 부족했다. 그래서 이 층의 암흑들만 믿고 난 일단 검은 방의 시간을 늦춘 다음, 내 생명의 정수를 네게 주는 작업에 들어갔단다. 사실, 그게 검은 방의 주인인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자 유일한 거였어.”
“이 층의 암흑이요? 생명의 정수요? 아, 아닙니다. 신수님. 하시던 말씀을 계속 해주세요.”
케르케로우스는 건수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만 하고 있었다. 건수는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자꾸 그의 얘기를 끊고 질문을 했다가는 정말 중요한 얘기를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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