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19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119

“저... 그것은....”

텔리가 자신이 보고 있는 일일 드라마, 천사의 오후에 대해 묻자, 알렉시스는 빠르게 눈을 깜박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아, 실수했다. 은근슬쩍 그 엔터테인먼트 주제에 대해 대화를 유도한다는 것이었는데, 처음부터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버리고 말았어. 덕분에 텔리님의 주의를 단 번에 끌 수는 있었지만....’

텔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물었다.

“뭐냐고? 알렉시스. 내가 보는 드라마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지?”

그러자 그녀 앞에 서 있던 미스터 황이 입을 열었다. 그는 그녀가 그 드라마에 대해 언급을 시작할 때부터 무슨 말이 나올까 신경 쓰고 있었는데, 버벅대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아니, 텔리님이 속상하시다고 하는데 쓸데없이 그 드라마 얘기는 왜 또 꺼냈어? 괜히 사람 긴장하게. 쯧쯧쯧.”

텔리는 가만히 있는데 옆에서 미스터 황이야말로 쓸데없는 말을 하며 떠드는 것이 아닌가. 알렉시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째려보았다.

‘저 간사한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이때를 틈타서 날 곤란하게 만들려고 하는 건가!’

미스터 황은 마치 알렉시스를 비웃듯이 입꼬리를 내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뭐 딱히 할 말도 없나 보네.”

그 말을 듣고 잠자코 기다리던 텔리도 고개를 쓱 돌리자, 마음이 급해진 알렉시스는 몹시 흥분해서 말했다.

“할 말이 없긴 누가 할 말이 없어? 텔리님, 그 드라마가 진행되어가는 방향에 불만이 많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까짓 거, 직접 한 번 천사의 오후를 제작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뭐? 내가 천사의 오후를? 드라마를 제... 제작하라고?! 아아! 마... 말도 안 돼!”

얼떨결에 그런 얘기를 꺼낸 알렉시스는 말을 마치면서 ‘아차’ 싶었다. 흥분한 나머지 아무 말이나 뱉어버렸으니 이걸 어떡하겠는가. 이미 말한 것, 주워담기에는 늦어버린 것이다. 엄청난 실수를 해버린 것을 깨닫고는 속으로 자신을 원망했다. 허나 난처한 기색이 그녀 얼굴에 드러나기도 전에 텔리가 보인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미스터 황은 피식거리며 그녀 말에 대꾸했다.

“에이, 그게 말이나 돼? 텔리님이 무슨 수로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거야? 그것도 한국 드라마를? 밥만 먹고 살인을 하는 신이신데 그 무슨 얼토당토않는 말이야. 아니,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면 내가 벌써 그렇게 제안했겠지.”

“으으음....”

알렉시스 역시 자신이 실수로 내뱉은 말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나 텔리는 두 눈을 반짝거리며 목소리를 높여 얘기했다.

“그래. 너 말 잘했다. 그런 좋은 아이디어를 너도 가지고 있었다면 아까 말해주지 않았지? 정말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말이야!”

“네? 좋은 아이디어요?”

미스터 황은 황당하다는 듯 텔리에게 되물었다. 알렉시스 역시 의외의 결과가 나오자 조금 얼떨떨해졌다.

“그럼 좋은 아이디어지 않고. 만약 내가 그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비로소 맘에 드는 결말을 볼 수 있을 것 아니냐. 주인공 정욘도 병이 안 걸리게 할 수도 있고. 후후훗.”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에요! 그 드라마는 이미 작년에 다 끝났는데! 이미 결말이 난 걸 어떻게 바꾸냐고요. 그나마 그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시지도 않았잖아요. 다 보고 나서 말씀하시던가. 완전히 어이없네. 하! 알렉시스, 넌 뭐하러 쓸데없는 얘기를 한 거야? 여배우라면서 그런 것도 몰라? 뭔 수로 끝난 드라마를 다시 만드냐고?”

그 말을 들은 텔리의 시선이 다시 알렉시스에게 모였다.

“그래. 알렉시스. 그건 쾅식이 얘기가 맞다. 어떻게 다 끝난 드라마를 제작하라는 거야? 병에 걸린 정욘은 어떻게 살릴 거냐구?”

그녀는 혀를 내밀어 말라가는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제가 그.... 그렇게 말씀을 드린 것은....”

그녀가 다시 말을 더듬기 시작할 때였다. 옆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까를로가 헛기침을 하더니 갑자기 대화에 끼여들었다.

“흠흠. 그 얘기는 혹시 후속작을 만든다는 거 아닐까요?”

“후속작?!”

텔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알렉시스와 미스터 황을 번갈아 보며 감탄했다.

“후속작! 옳지! 그런 게 있구나! 시즌 2! 와우! 뭐야, 죠셉 친구, 이 놈. 띨띨하게 생긴 땅딸보 녀석이 좋은 아이디어를 냈잖아? 정말 그걸 뜻한 거야? 알렉시스?”

“아, 아. 그럼요. 예. 그렇죠. 예.”

신나서 떠드는 텔리를 보고 알렉시스는 그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미스터 황은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말도 안 돼요. 미국도 아니고 한국의 일일 드라마엔 시즌제라는 게 없다고요. 더우기 천사의 오후는 아침 드라마잖아. 한국에서도 아침 드라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안 봐요. 아니, 누가 본다고 그런 드라마의 속편을 만들어? 그리고 만든다고 하면 돈은? 제작비는 누가 댈 건데?”

“시끄러!!”

텔리가 큰 소리로 미스터 황에게 호통을 쳤다.

“가만 보니까 너! 쾅식이, 너 인마 자꾸 부정적으로만 얘기해? 그래서 무슨 역사가 이뤄질 수 있어? 앙! 알렉시스가 다 생각한 게 있겠지! 너 쾅식이 인마. 너처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 몰라? 자꾸 마음을 모아서 일을 추진해 봐야할 것 아냐!”

“아니, 이게 무슨.... 왜 팩트를 알려드리는 절더러 뭐라고 하세요? 여기서 한국에서 온 사람은 나밖에 없고 실상을 그렇지 않다고 알려드리는 건데!”

“아이, 시끄러. 넌 잠시 입 좀 닥치고 있어!”

“으윽.”

텔리가 미스터 황의 발언을 묵살한 후 다시 알렉시스를 바라보았다. 눈을 반짝이며 웃고 있는데, 한눈에 봐도 몹시 기뻐서 흥분한 상태로 보였다.

“자, 알렉시스. 말해줘. 무슨 계획이야? 천사의 오후 시즌 2 만드는 거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빨리 말 좀 해봐.”

그렇게 텔리가 기뻐서 떠드는 모습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가 한 마디 한 마디 더 조잘거릴 때마다, 아무 계획이 없었던 알렉시스는 속이 타들어갔다.

“아, 예.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던 건 바로.... 에.... 그러니까...”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가만히 있던, 아니, 가만히 있어야 할 까를로가 또 다시 대화에 끼여들었다.

“언급하신 소프 오페라의 시즌 2의 성공률이 불확실하다면 원 타임 딜로 영화화는 어떻겠습니까?”

텔리의 눈이 커졌다.

“으잉? 영화? 오... 그건 심지어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간 거 아냐? 야아! 끝내준다! 너 이름이 뭐였지? 아, 그래. 까를로였지. 야, 얘가 뭘 좀 아네! 하하하하!”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것인가. 모든 대화를 자신이 다 하겠다고 한 알렉시스는 실제로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벌인 일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속으로 몹시 떨렸다. 그녀가 보기에 까를로는 전혀 떨지 않고 있었다. 그는 텔리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아직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