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7 부.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32 화

잃어버린 것과 찾은 것 – 32

건수는 자신이 마음속으로만 생각한 것을 귀신같이 알고 말하자 깜짝 놀랐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기까지 한 것이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아, 잠깐만. 건수가 한 번 혼났으니 더 이상 이디레이아 앞에서 자꾸 귀신 얘기를 하면 안 되겠지? 그녀는 싸늘하게 식다 못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건수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 강남 성형외과의 선전물이 뭘 뜻하는 거지? 설마 이렇게 완벽하게 아름다운 내가 성형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닐 테고 말이야.”

“아아아...... 그... 그게...”

건수는 눈을 깜박깜박 거리면서 말을 더듬었다. 그가 눈을 깜박거릴 때마다 그의 눈에서 뿜어내는 빛도 마치 자동차 깜박이등처럼 깜박거렸다.

“그건, 여신님은 말씀하신 대로 완벽하게 아름다우시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모... 목표가 되시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생... 생각한 겁니다.”

이디레이아는 실소를 터뜨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엉성하게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기는. 하긴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흐흠흠.”

그녀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중요한 본론을 얘기하려고 했다. 아마도 그것이 그녀가 건수 앞에 나타난 이유 같았다.

“사실 당신과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긴 편도 아닌데 쓸 데 없는 얘기를 했군요. 내가 당신 앞에 이렇게 나타난 이유는 내 외모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겠다는 게 아니고요. 당신에게 알려줄 게 있기 때문이에요.”

“제게 알려주실 게 있다고요?”

“지금 당신에게 일어난 몸의 변화에 대해서 많이 혼란스러울 겁니다. 또 우울해하고 있다는 것도요.”

“제 몸의 변화요? 제가 우울해한다고요?”

“네. 지금 당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군요. 당신이 그 변화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다음 보름달이 뜰 때, 검은 방에 들어가서 케르케로우스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보려고 하는 것도요. 그럴 것 없습니다. 지금 내가 짧게 알려줄 게요.”

“검은 방에 들어갈 거라고요? 그렇다면 여긴 검은 방이 아니라는 건가요?”

“아니죠, 여긴 검은 방이 아닙니다. 여긴 당신의 머릿속입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당신의 의식 속에 내가 심어 놓은 공간입니다. 당신이 깨어나면 당신과 만나서 얘기하기 위해 내가 준비한 공간이지요. 즉, 당신의 의식 속에 있는 나의 공간인 겁니다. 지금 당신은 기절한 상태이고요. 왜냐면 그 상태가 의식 속에서 나와 소통하기 가장 좋은 상태이기 때문에.....”

“네...? 전 지금 여신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제 머릿속에, 그러니까 의식 속에 왜 이디레이아님께서 계시는 건가요?”

이디레이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하아.... 내가 시간이 많지 않다고 하는데도..... 쯧쯧쯧. 야, 자꾸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그냥 내 말을 좀 들어. 어떻게 된 게 너랑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면 진도가 안 나가. 너가 무슨 어린 발명왕 에디슨이야? 뭘 다 알려고 해? 너가 알고 싶은 게 뭐야? 깨어났는데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게 궁금했던 거 아니야? 왜 그렇게 됐는지 알기 싫어? 응?”

“아, 아닙니다. 알고 싶습니다. 전 그만 말할 테니 제발 말씀해주세요.”

이디레이아가 자신 몸의 변화에 대해 그 원인을 알려주겠다는 말에 건수는 질문하기를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외견상으로 보다시피 당신의 몸은 예전의 당신의 몸이 아닙니다. 그 육체는 너무 손상이 심해서 회복이 불가능해보였는지, 검은 방이 당신에게 새로운 육체를 준 겁니다.”

“예? 왜 케르케님이 제게 새로운 육체를 주셨을까요? 말씀대로라면 전 사실 예전의 제가 아닌 거잖아요?”

“네, 맞아요. 지금의 당신은 예전의 당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언제 케르케로우스가 당신에게 새로운 몸을 줬다고 했나요? 검은 방이라고 했잖아요.”

“그야 케르케님이 검은 방의 주인이시니까, 그 분이 주신 것 아닙니까?”

“하아....”

이디레이아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검은 방의 주인이라..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주인이라면서 검은 방이 뭔지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는 그냥 그곳에서 살고 있는 거지요. 하지만 검은 방의 바닥에 뭐가 있는지는 그도 몰라요. 당신이 스톤헨지 유적지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먹고 자고 한다고 해서 스톤헨지가 당신 겁니까? 거기 있는 돌들이 왜 그렇게 배치되었는지, 무엇에 쓰였는지 다 알겠어요? 케르케로우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서 살고 있지만 자기가 뭘 발밑에 깔아놓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에요.”

“저, 누가 스톤헨지 같은 유적지에서 그럴 수 있겠습니까? 유적지에선 취사나 아영이 금지되어 있을 텐데요.”

“아아악! 얘가 진짜 자꾸 내 말을 끊네. 미치겠다. 정말! 지금 유적지 규칙이 중요하니?”

이디레이아가 짜증을 내며 흥분하자 건수는 급히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 사과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흘기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더 알고 싶은 게 있거든, 원래 계획대로 보름달 뜨는 밤에 검은 방으로 들어가서 그 늑대에게 물어보던가요. 아무튼 당신의 원래 몸은 내가 가지게 되었어요. 그게 내가 얘기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 말을 듣자, 건수는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예? 제 원래 몸을 여신님께서 가지게 되셨다고요? 아니, 왜요?”

“그야 검은 방이 내게 양도했으니까요. 어차피 당신은 그 몸을 더 이상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입니까?”

“아니, 아니요. 잠시 만요. 제 몸이라니까요! 그렇다면 제가 가져야죠!”

“어차피 인간의 육체는 소멸과 생성을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것. 세포의 재생 주기에 따르면 4 개월 정도 지나면 인체세포의 80%는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는데, 10개월 전의 당신 몸이 당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미 몇 년마다 당신은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아참, 내가 이런 걸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쓰읍. 또 얘 페이스에 말려 들어서 내가 말실수를 하고 말았네.”

건수는 강하게 고개를 흔들며 여신에게 말했다.

“안됩니다! 전 예전의 제 몸을 반드시 되찾아야겠어요!”

“호호호... 호... 호.. 호..”

이디레이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도 방금 말실수를 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 그럼요.... 원래 몸을 찾아야 하는 게 당연하죠. 세포주기니 뭐니 하는 내가 했던 이상한 얘기는 잊어요. 부모님께서 주신 소중한 육체인데, 당연히 찾아야죠.”

“네! 당연히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 어서 가져가신 제 몸을 돌려주세요.”

그런 건수의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디레이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조금 느긋해진 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죠? 당신의 몸은 여기에 없습니다. 이미 엘리시움으로 옮겼어요. 그러니 당신이 원래 몸을 되찾고 싶다면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예? 엘리시움이라뇨! 그... 그게 말이나 됩니까?”

건수는 갑자기 호흡이 빨라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자신의 몸을 허락도 없이 이 여신이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억울한데 다시 찾으려면 다른 세계로 가서 가져오라니.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