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16 화

루시 – 16

텔리는 씨익 웃더니, 알렉시스에게 한마디 했다.

“야, 알렉시스. 네가 지금 하는 얘기가 얼마나 웃긴 얘기인지 너 자신이 한 번 생각해봐. ‘이게 걱정이 된다, 저게 걱정이 된다’ 이러는데, 걱정하긴 뭘 걱정해. 너 설마 내 분신이 혹시 어떻게 됐기라도 했을까 봐 걱정하는 거야? 그건 날 모독하는 건데.”

알렉시스는 텔리를 행해 바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신이시여.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모독하겠습니까? 전 다만 주인님의 1조가 공격한 장소를 제외한 나머지 두 곳의 증거를 불태우지 못했던 것이 우려가 될 뿐입니다.”

텔리 옆에 서 있는 분신이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인마. 내 말이 그 말이야. 네가 그런 무리한 계획을 세웠고, 또 띨띨하게 일을 처리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처음에 누가 나한테 시간을 벌기 위해 하익티스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더라?”

“아, 그건...... 바로 제가......”

이번엔 텔리가 “킥”하고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너잖아. 너. 네가 두 번째, 세 번째 장소로 이동할 시간을 벌어달라고 그렇게 요청했던 거 아니었어? 그래서 네 말대로 했더니, 지금 상황이 이게 뭐냐. 네가 기어코 증거를 없애야 한다고 불 질렀던 첫 번째 장소와 네 말을 듣고 내가 풀어 놓은 하익티스 때문에 도시의 거리들 여기저기가 봉쇄돼버리는 바람에 3조가 제때 못 돌아오고 있는 거 아냐. 그것도 알고 보면 다 네 탓인데, 왜 넌 혼자 잘난 척하면서 쟤네들한테 지랄하고 난리야?”

“그··· 그건······. 주인이시여. 전 다만 규율을 지키려고 했을 뿐입니다. 다른 뜻이 없었습니다. 하오나, 제 계획이 미흡하여 신을 우려케 하였사오니, 전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신을 모시는 입장에서 그것은 중대한 규율 위반입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하는 말을 듣자, 텔리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아으··· 재미없어. 하여간 알렉시스는 맨날 규율, 규율, 그런 말만 해. 야, 지금 우리가 지구에 있는데, 넌 뭔 놈의 빌어먹을 규율 타령이야. 머리도 좋지 못해서 세웠던 계획이란 것도 영 변변치 않던데, 솔직히 네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충고할 수준이나 돼?”

“하지만 증거인멸의 규칙은 신께서도 잘 아시는 것입니다. 이곳 지구에 파견된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신도 그 약속을 꼭 지켜야 하는······”

“떽! 쓸데없는 소리! 그런 얘기는 너 혼자 있을 때 어디 한쪽 벽이나 바라보며 하란 말이다! 하여간 넌 흥을 깨는 데에도, 짜증을 내게 하는 것에도 정말 소질이 뛰어나. 어으.”

기분이 안 좋아진 텔리가 알렉시스를 나무라는데, 옆에 서 있던 그의 분신이 또 한 번 껴들었다.

“맞아. 본체. 미스터 황이 저 꼴로 나타나서 오래간만에 재밌었는데, 저 계집애가 뭐라고 하는 바람에 흥이 깨졌어.”

“내 말이. 근데 저 쓰러진 마피아 놈도 완전 또라이다.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치근덕거린 거잖아. 그래놓고는 또 몇 대 맞고 약골처럼 쓰러진 것 좀 봐라. 이거, 완전 코미디 아니야? 후후훗.”

“안 되겠다. 다시 일어나 싸우라고 해. 난 여장남자에게 $100 건다. 넌?”

“엥? 나도 내 사제에게 걸어야지. 쟨 내 능력을 받은 앤데, 설마 보통 인간인 마피아 애보다 못하겠냐? 음··· 그런데 너나 나나 어차피 한 몸이잖아. 또 네가 돈이 어디 있어? 우리끼리 내기를 해봤자, 어차피 한 쪽의 돈으로 하는 거 아냐? 그럼 그게 무슨 소용이야?”

“엥? 그러네. 아아, 역시 흥이 사라지니 뭘 해도 다 재미없어졌다. 이게 다 저 알렉시스 때문이야.”

“맞아. 알렉시스가 나빴어. 이잉. 쯧.”

알렉시스는 계획이 잘못된 것도, 텔리와 분신의 흥을 깬 것도 모두 자기 잘못으로 탁 돌리는 그들의 대화를 듣자니 보통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저 더욱 고개를 아래로 숙일 뿐, 더 이상의 대꾸는 하지 않았다. 잠깐 짜증을 내던 텔리는 풀이 죽은 알렉시스를 놀리는 것이 재밌었는지 눈을 내리깔고 말을 이어갔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깟 변변치 못한 신들이 상의해서 만든 그런 규율 따위, 내가 알 게 뭐야. 그놈들, 내가 기회만 생기면 다 죽여버릴 수 있는 녀석들인데. 그런데도 넌 그저 앵무새처럼 규율을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지. 하도 들어서 지겹다고 하는데도 항상 똑같은 얘기만 하고 말이야. 내가 너 때문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 규율을 만든 신들을 확 다 죽여버릴까 싶다. 으휴.”

“네? 신이시여. 종이 우매하여 그 말씀의 진의를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저히 잘 모르겠습니다.”

“뭘 못 알아들어. 말한 대로지. 죽일 거야.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면 그놈들을 싹 다 없앨 거라고. 그동안 생각해 보니, 내가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이 지구에 형과 함께 유배당할 대단한 이유도 없었어. 그게 다 그 이상한 법을 만든 다른 신들 때문이 아니냐. 그놈들은 지들이나 알아서 잘 살지, 왜 건방지게 남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그러는 거냐고. 내가 뭐하러 그놈들이 만든 법을 성실하게 지키고 있었지? 내 결론은, 난 놈들을 다 없애버리고 새로운 법을 만들 거야.”

“오, 맙소사. 주인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전부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녕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자신의 말 때문에 그 규율을 만든 신들을 죽여버리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텔리의 말을 듣고 알렉시스는 놀라서 식은땀을 다 날 정도였다. 신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니, 텔리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건 추후에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장차 엘리시움에서 피바람이 불지도 모르는 일이 되었으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눈을 질끈 감으며 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텔리는 그녀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죽을 신들이 있다면 어차피 다 자신의 손으로 추수해야 하는 법이고, 털어서 먼지 나올 자가 없는 것처럼 엘리시움의 어떤 신이라도 잘못을 저지른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을 텐데 언젠가는 그들이 반드시 그를 만나는 날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었다. 알렉시스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니 자신의 말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는 중인데, 텔리는 눈에 그것이 훤히 보이는 것이었다.

“에··· 또, 뭐. 알렉시스, 네 덕에 나도 앞으로 참 바쁘게 되어버렸다. 너같이 고상한 인간을 타락시킨 악법을 만든 신들을 다 없애버려야 한다니 말이다. 생각해 보니, 고맙네. 네 덕분에 이런 결정에 이르게 되었으니 난 앞으로 한동안 직업을 잃을 일이 없겠다.”

“아아, 신이시여. 절 그냥 죽여 주시옵소서.”

“훗훗훗. 뭐, 너도 나중에 죽을 때가 되면 어련히 내가 알아서······ 아, 잠깐만.”

텔리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자신에 이마에 손을 갖다대었다.

“오, 방금 나의 분신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가 기다리던 3조가 거의 다 왔다고 하네. 근처다. 곧 여기에 도착할 거야.”

그 후 몇 분이 지났다. 텔리의 말대로 3조가 탄 차가 조용히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