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8 부. 루시 - 11 화

루시 – 11

11번은 번개같이 달려나가더니 몸을 날려 옆의 벽에 발을 짚고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가 팔을 번쩍 들자, 그의 손끝에서 번쩍이는 빛이 났다.

‘쉬이익-’

그가 팔을 휘두르자 그의 손끝에서 나온 빛은 마치 채찍처럼 구부러지며 달려오는 하익티스의 머리를 때렸다. 그러자 괴물의 검붉은 색의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피를 뿌리며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바닥에 떨어뜨린 수박과도 같았다. 11번은 머리 없이 바닥에 쓰러진 괴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원, 어디 병신같은 게 감히 덤벼대고 지랄이야.”

건수는 끔찍한 광경을 보고 고개를 돌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곁에 서 있던 23번이 초조한 듯 입과 턱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잘 들어. 늑대의 사제. 이거 상황이 보통 상황이 아니다. 넌 잘 모르겠지만 저건 하익티스라고 하는 건데, 비록 우리에게는 대단치는 않지만, 상당히 귀찮은 괴물이야.”

“하익티스요?”

“그래. 다름 아닌 텔리님의 생물학 병기······. 뭐 그런 거 같은 거지.”

“생물학 병기라고요!”

“굳이 말하자면 사람들이 그런 것에 감염이 되어 완전히 다른 생물이 되어버린 것인데, 더 자세히 말해줄 시간은 없다. 왜냐면 저게 하나 우리의 눈에 띄었다면 이 일대는 전부 저런 게 득실거린다는 의미거든. 저것들은 살아있는 것들이라면 뭐든지 앞뒤 재지 않고 마구 달려들기 때문에 보통 귀찮은 것이 아닐 수 없어. 그러니 서둘러야 한다는 의미다. 우린 여신님의 명령으로 이곳을 청소하러 왔지만,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이 지역을 다 커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23번은 시선을 건물의 문에 향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일단 이디레이아님께서 말씀하신 주소에 있는 것들만이라도 깨끗하게 치울 수밖에 없겠어. 그리고 11번, 저 녀석의 성격은 내가 잘 알아. 예전부터 워낙 다혈질이어서 이미 발동이 걸린 다음엔 이성을 잃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그 말은, 나 혼자 건물 안에 들어가서 텔리님께서 어지럽히신 걸 치워야 한다는 뜻이다. 또, 그동안에 넌 혼자 남아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한다는 거지.”

“저, 저 혼자서요? 저런 이상한 괴물이 날뛰는데요?”

“시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니까. 일단 가급적 11번의 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있어. 너가 그의 시야 안에 있다면, 위험할 때 그가 널 도와줄 수 있을 거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재빨리 건물의 닫힌 문으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건수는 붙잡을 새도 없이 자리를 피하는 23번의 뒷모습을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니,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일이야? 자기들 멋대로 나를 여기로 데려오더니, 이젠 이 만큼 위험해졌는데도 나더러 내 몸을 스스로 지키라고?’

건수는 고개를 돌려 11번을 찾았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있던 그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 * *

건물 안으로 들어간 23번이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사방을 컴컴하게 물들인 어둠이었다. 내부는 창문도 하나 없는 곳이라서 조금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시 자리에 서서 자신의 눈을 어둠에 적응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밀실에서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었다. 게다가 그가 이곳에 첫발을 들인 순간부터 코를 찌르는 피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나직이 말했다.

“이런 바보 같은······.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야. 인간들처럼 어둠에 눈을 적응시키려고 하다니. 급한 마음에 정신이 없었군.”

그렇게 말한 후 그는 손으로 자신의 목 주변을 만지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뭔가를 잡아서 집어 올리는 시늉을 했는데, 놀랍게도 그의 얼굴의 피부가 스윽 위로 벗겨지는 게 아닌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그러는 중에도 목에선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부 가죽 아래에는 보통의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 예를 들어 근육이라던지 뼈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그저 검은색의 공백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츠팟!’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의 검은 공백이 잠시 한 쪽면으로 일그러지나 했더니 내부에서 번쩍하며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러자 그는 벗겨놓았던 피부를 다시 아래로 내렸다. 그랬더니 그의 피부 아래에서부터 은은한 빛이 스며 나왔다. 비교하기에 좀 우습지만, 그건 마치 갓을 씌운 램프의 불빛 같았다. 그는 울퉁불퉁해진 피부의 목 부분 가장자리를 손으로 꾹꾹 눌러 붙이면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 정도밖에 할 줄 모른다니 난 정말 바보 같단 말이야. 도대체 텔리님은 왜 처음부터 나 같이 한심한 놈을 부하로 삼으셨던 걸까? 나보다 자질이 훨씬 뛰어났던 녀석들이 있었는데도.”

아마도 그 얘기는, 방금 그가 빛을 내는 방식보다 훨씬 간편한 방법이 있다는 의미였을까. 아무튼,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그리 만족하지 않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그가 얼굴에서 나오는 빛으로 주위를 밝히자 그리 어렵지 않게 곧 전등의 스위치를 찾았다. 스위치를 올리자마자 주위가 환해지면서 바닥에 어지럽게 찍힌 여러 피 묻은 발자국들과 고인 핏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 발자국들······. 그럼,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와야 하는 거지. 텔리님, 과연 당신은 여기 계셨던 게 분명하군요.”

그는 고개를 들어 안쪽에 있는 또 하나의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시체는 없다. 텔리님이 지나가셨던 곳치고는 너무 깨끗해. 그렇다면 저 문 안쪽에 뭔가 더 있겠군.”

그가 문을 열고 안쪽의 방으로 들어가자, 그의 발에 뭔가가 툭 하고 차이는 것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사람의 머리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 놀라서 펄쩍 뛸 일이었지만 23번은 별 것 아니란 듯이 그것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라. 그래, 이게 좀 더 그럴듯한 그림이겠지.”

물론 그곳엔 그 잘린 머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 방 안이 고깃덩어리처럼 찢겨 있는 시체로 가득했다. 아까 이곳에 있었던 두 마피아와는 상반되게 23번은 어떤 동요도 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피로 물든 바닥에서 비교적 깨끗한 곳을 찾아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두 손을 바닥에 대고 마치 기도하는 듯이 입으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곧 그가 앉은 자리의 바닥이 출렁거리며 액체처럼 변하는 것이었다. 또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그 바닥은 빠르게 색이 검게 변하면서 마치 강이나 바다의 표면처럼 변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범위가 넓어졌다. 곧 그 검은 액체는 건물의 바닥을 다 뒤엎고 이번엔 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때까지도 23번의 중얼거림은 멈추지 않았는데, 검은 액체가 벽을 넘어 천장까지 물들일 땐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이 종이 살육의 신께서 허락하신 권한으로 숨겨진 비밀의 문을 열겠사오니, 부디 제 청을 들어주시옵소서!”

그가 그렇게 소리치자, 검은색으로 물든 주위가 삽시간에 작고 둥근 원형으로 좁혀지며 방안의 모든 것을 그 안으로 빨아들였다. 수많은 물건과 시체들, 그리고 벽과 바닥에 있던 핏자국 등등 한 번 검은 색으로 물들었던 곳에 있던 모든 것이 단 한 번에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곳은 마치 이사 나간 빈방처럼 비어 있게 되었는데, 23번은 내실을 한 번, 문밖의 외실을 또 한 번 둘러 본 후 조용히 문을 열고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피 묻은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있던 바닥은 오직 한 사람의 발자국만을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