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두마수
추향 일행은 범 요괴의 꼬리로 검을 강화한 후 동해문을 수없이 괴롭혔다. 심지어 대소변을 볼 때 돌멩이를 던져 요해를 까는 등 입에 담기 부끄러운 만행도 저질렀다.
물론, 그 만행을 저지른 건 당연히 노계혼이다.
그리고 괴롭힘이 끝내 결실을 보았다. 배후로 짐작되는 사내가 동해문의 신호를 받고 찾아온 것이다.
추향은 순풍이를 펼쳐 대화를 엿들었다. 술사들이 기운으로 벽을 쳐서 방해하긴 했는데, 추향의 순풍이는 소리를 전해 듣는 게 아니라 특정 거리의 소리를 듣는 방식이어서 소용이 없었다.
"계약 위반이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계약은 끝났소. 그간 상황을 알려주시면 정산해서 잔금을 치르겠소."
백투산이 짧게 탄식했다. 금액과 비교해 참 쉬운 의뢰라고 여겨 덥석 수락했는데 이토록 곤욕을 치를지는 정말 몰랐다.
"원래 세 명이었고 나중에 한 명 추가됐습니다. 넷의 검법이 각자 다르지만, 뿌리는 하나가 분명합니다. 가장 약한 석 당주로 불린 자는 겨우 고수 소리를 들을 수준인데, 남은 셋은 제 수준으로 가늠하기 힘듭니다."
"절검문인지 아닌지 확인했소?"
"절검문은 아닙니다. 말씀하신 절검문의 검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절검문의 검은 절검문의 야장이 만든다. 같은 피가 흐르는 혈족이 비슷하게 생긴 것처럼, 절검문의 검 역시 일부 특징이 있다.
절검문의 특징이 있다고 꼭 절검문인 건 아니지만, 그러한 특징이 없다면 절대 절검문이 아니다.
"그럼 됐소."
방문한 사내는 잔금을 치른 다음 경공을 펼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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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대화할 수 있겠소?"
동해문을 기습하려는 추향 일행의 뒤에 이틀 전 동해문을 방문했던 사내가 홀연히 나타났다.
"철수."
노계혼의 지시에 따라 넷은 경공을 펼쳐 동해문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넷의 뒤에 나타났던 사내 역시 쉽게 따라붙었다.
"동해문인가?"
"아니오."
어느 정도 동해문과 멀어지자 넷은 멈춰서 사내를 포위했다. 사내는 넷의 퍼런 서슬에도 안색 하나 변치 않았다.
"노도문의 고수분들 맞으시오?"
"넌 누군데?"
추향이 치고 나왔다. 얼굴은 가려서 안 보이지만, 몸의 선이나 목소리로는 그저 소녀로 보였다. 그러나 술사들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 아는 사내는 허투루 판단하지 않았다.
"여러분을 고용하려고 하오. 사례는 명황성 기준에 다섯 배 얹어 드리겠소."
고용한 놈이 고용된 놈을 죽이고, 고용된 놈이 고용한 자를 죽이는 게 다반사인 명황성이다. 그래서 고용 비용이 중원 어디보다도 비싸다.
그런 비싼 의뢰금에 다섯 배를 더 얹는다는 말에 노계혼이 혹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지는 얘기 못 해주나?"
추향의 질문에 사내가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요괴를 잡는 일이오. 대가리 셋 달린 늑대 요괴 말이오."
낙양의 터줏대감인 삼두랑三頭狼. 이 안에서 가장 강한지는 몰라도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요괴임은 분명하다.
절검문이 황금 천 냥을 현상금으로 걸었음에도 여태껏 잡히지 않은 놈이다.
"잠깐. 절검문에 가져가면 황금 천 냥인데, 고작 삼백육십 냥을 받고 너희한테 넘기라고?"
"넷이서 잡을 수 있겠소?"
"그럼 우리 넷이 도우면 잡을 수 있단 얘기야?"
"그렇소."
"거절한다."
추향이 고민도 없이 거절했으나 사내는 놀란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삼두랑의 위치는 이미 파악했소. 그런데 능력 되는 술사가 없소."
"뭐야? 나더러 진법이나 치고 있으라고?"
"팔괘진이면 넉넉하다 싶었는데 실패했소. 그래서 구궁으로 바꾸려 하는데, 우리 기준에 맞는 술사가 근방에 당신밖에 없소."
그간 이들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실상은 몰래 도착해서 팔괘진을 치고 삼두랑을 잡는 시도까지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추향은 상대의 용의주도함에 치가 떨렸다.
"그럼 이 셋은?"
"당신을 지킬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날 믿어? 내가 갑자기 사라져서 진법이 무너지면 그쪽도 피해가 클 텐데?"
"그러려면 당신이 남은 여덟 술사가 합친 것보다 더 큰 기운을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우리한테 받을 황금 삼백육십 냥을 못 받게 되고, 평생 쫓기며 살아야 하오. 난 당신들이 멍청하다고 생각지 않소."
"하겠소."
노계혼이 나섰다.
"사제!"
추향의 외침에 노계혼이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저, 내가 장문이오."
추향이 발을 탕 구르며 씩씩거렸다. 그러나 사내는 둘이 해결을 볼 기회를 주지 않고 노계혼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잘 생각했소. 안전하고 확실하게 황금을 벌 기회를 놓치면 쓰겠소."
사내와 노계혼이 어깨 나란히 앞장서고 손청우와 석군이 뒤를 따랐다. 그리고 추향은 좀 더 거리를 두고 마지못한 걸음으로 어기적어기적 따라갔다.
"노도문은 처음 듣소."
"고작 수십 년 된 문파요. 그리고 난 노도문의 두 번째 장문인이오."
"그런 것 치고는 검법이 대단하오."
"과찬이오.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검법이오."
"그런데 왜 다들 가면을 쓰는 거요?"
"투구처럼 머리를 보호하는 역할이오."
"미안하지만, 얼굴 좀 볼 수 있소?"
"어려운 거 없소."
노계혼은 얼굴에 쓴 가면을 벗었다. 사내는 노계혼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으나 변장한 기미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내가 본 수천 장의 고수 그림과도 일치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강호엔 처음 나오시오?"
"아니오. 명황성이 생긴 초기부터 드나들었소. 그때도 가면을 써서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오."
명황성의 기운이 무공 증진을 돕는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물론, 일정 경지가 되어야 도움을 받지, 아니면 그냥 숨 쉬는 귀찮음을 없애주는 곳이다.
지금이야 많은 게 알려져서 어중이떠중이도 드나들지만, 초창기엔 고수가 아니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이에 사내는 노계혼에 대한 평가를 상향했다.
"그러다 문 열던 술사가 다른 무리랑 눈이 맞아 떠났소.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가 수련하다가 술사가 생겨서 다시 온 거요."
"저 사저라는 분 말이오?"
"사조 손녀요. 말이 사저지 정식으로 문파에 소속하지도 않았소."
고개를 돌려 추향의 위치를 확인한 노계혼은 짐짓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의뢰금은 문주인 나한테 일괄로 지급해 주시오. 그러면 내가 섭섭지 않게 사례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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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던 일은?"
"절검문이 아닌 걸 확인했습니다. 문주라는 자는 마교 출신으로 보입니다. 흑응조를 어설프게 익힌 것 같더군요."
"술사는?"
"사조 손녀라는 걸 봐선 역시 마교랑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주라는 자는 항주 말투를 쓰는 걸 보면 마교 출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기운이 차갑고 맑은 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경지는 넷 중에 가장 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정작 싸우면 문주라는 자와 술사가 이길 겁니다."
"화산파의 검법은 아닌가?"
"검법 자체가 화산파와 거리가 멉니다. 게다가 넷이 내공 심법이 다릅니다."
화산처럼 역사가 유구한 문파라면 같은 검법을 익혔는데 심법이 다를 순 없다. 그것도 넷 모두.
"그럼 됐다."
"사람을 붙여 엄중히 감시할 겁니다. 게다가 어차피 구궁진을 펼치기만 하면 한 명 빠져도 유지하는 데 문제없습니다."
"그럼 펼친 다음 돈 주고 떠나라고 해라. 시간이 촉박한데 괜한 변수는 없었으면 한다."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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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향은 작게 쌓은 제단 위로 올라가서 물에 빠진 사람처럼 팔을 허우적댔다. 추향의 몸에서 용솟은 기운이 제단을 통해 사라지는 게 보이지는 않지만, 감각으로 확실히 느껴졌다.
그런 추향과 스무 걸음 떨어진 곳에 노계혼과 손청우 그리고 석군이 검을 들고 있었고, 또 서른 걸음 밖엔 수십 명 무사가 뒷짐을 지고 엄숙한 얼굴로 서 있었다.
"좋은 소식이 있소."
느닷없이 나타난 사내가 노계혼에게 다가가 말했다.
"진법을 펼치기만 하면 의뢰금을 지급하겠소. 당신들은 바로 떠나면 되오. 진법을 유지하는 고생은 안 해도 되오."
원래는 진법을 다 펼친 다음 나흘 동안 유지해야 한다고 계약을 맺었다.
"바라던 바요."
"궁금하지 않소? 우리가 삼두랑을 잡을지 못 잡을지?"
노계혼이 피식 웃었다.
"삼두랑이 아직 새끼일 때 몇 번 본 적 있소."
사내의 표정이 살짝 경직됐다.
"놈이 여태껏 잡히지 않은 건 강해서가 아니라 도망을 잘 치기 때문이오. 그때 우리 술사가 혼자서 오행진을 치고 난리를 부렸는데 손바닥만 한 곳에서 놈을 찾지 못해 결국엔 놓쳤소."
"그래서 구궁진을 펼치는 것이오."
자존심이 살짝 상한 사내는 노계혼에게 안 해도 될 말을 했다.
"팔괘진도 실패했소. 놈 머리가 셋이니 삼재진 이상의 것이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셋에 셋을 곱해서 구궁진을 펼쳐야만 변화를 제한할 수 있었소."
"아. 그때 술사가 넷이 모자라다고 한 말이 그거였구나. 난 사람이 넷 모자란다는 줄 알았는데."
사내는 갑자기 노계혼에게 흥미가 일었다. 약 반 시진 뒤에 구궁진이 펼쳐지면 이별할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궁금했던 걸 질문했다.
"검 쓰는 자들은 모두 절검문에 가서 시험을 받길 원하오. 그대는 절검문에 가본 적이 있소?"
"내 사부께서 절검문과 사이가 안 좋소. 예전에 절검문이 내 사부께 큰 결례를 했소. 원한은 이미 해소했기에 소 닭 보듯이 하며 데면데면한 사이가 됐소. 그리고 우리 술사를 데려간 것도 절검문이오. 그러니 아무리 내 수준이 궁금해도 절검문을 찾아갈 수 없소."
"그대 사부는?"
"강호에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소. 그저 검극과 절검문주와 검을 섞은 적 있다는 점만 알아두시오."
"그럼 검극과도 사이가 안 좋은 것이오?"
사내는 잘하면 노도문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캐물었다.
"그건 잘 모르겠소. 검극 때문에 죽을 뻔했다는 것 같기도 하고, 검극 덕분에 살았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미워하는 건지 넘어야 할 산으로 보는지 나도 헷갈리오."
그때 수하가 다가와서 사내에게 호출 명령을 전달했다.
"이건 내 명패요. 천하의 표국과 전장 중 나랑 거래하지 않는 데가 드무오. 그러니 아무 전장이나 표국에 가서 이 명패를 내밀고 날 보고 싶다고 하면 며칠 안에 만날 수 있소."
명패를 전한 사내는 경공을 펼쳐 모습을 감췄다.
- 작가의말
흑막이 기획하는 일은 뭐~다? 주인공을 위해 차린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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