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환기공
무룡은 직접 깎은 목검을 들고 파도와 맞섰다.
보통 검이라 하면 검신이 납작하고 양쪽에 날을 세운 무기를 말한다. 그러나 무룡의 목검은 입방체 모양이었다. 벽파검법을 수련하며 최대한 파도의 힘을 느끼려고 접촉면이 넓은 특이한 형태의 검을 깎은 것이다.
그 외에도 편을 닮은 검신이 둥그런 검도 있고 길이가 칠 척이나 되는 긴 검도 있다. 파도가 몰아치는 힘을 다양하게 느껴 벽파검법의 이해를 높이려는 처절한 노력이 낳은 산물이다.
파도가 겹겹이 몰려왔다. 무룡은 악 기합을 지르고 마주 달리며 검을 휘둘렀다. 예전에 넷부터 시작하던 것과 달리 처음부터 가장 빠른 속도로 임했다.
아주 당연하게도 파도가 승리했다.
종일 파도와 싸우느라 기진맥진한 무룡은 검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햇볕이 유난히 잘 드는 곳에 목검들을 쭉 널어놓은 다음 호수로 가서 소금기를 씻어냈다.
"무룡. 자하신공 일 단계를 완성한 것 같은데, 아니야?"
최근 수련에 열중하느라 밥 먹을 때를 빼면 얼굴을 보기 힘든 추영이었다.
"그런 것도 느껴져?"
"네 얼굴이 요즘 환해서 혹시나 해 물어본 거야."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느낌은 그래."
"그럼 이거 익혀."
추영이 얇게 자른 나무판 수십 개를 건넸다.
"마환기공魔煥氣功이야. 마교는 물론 천하에서 가장 강한 외공일걸."
무룡은 나무판을 순서대로 읽었다. 가장 강한 외공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가장 괴이한 외공일 가능성은 컸다.
"이거 수련 방법이 너무 이상한데?"
"괜찮아. 내가 하루에 한 시진씩 짬을 내서 도울게."
"몽둥이와 채찍으로 때리다가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는 수련 방법이라니. 그리고 독도 먹어야 한다고? 마지막 단계는 내가 중수법으로 오장육부를 타격. 이러고도 사람이 살 수 있어?"
"그래서 네가 자하신공 일 단계를 완성할 때까지 기다린 거잖아. 대부분은 몽둥이와 채찍을 못 버텨 폐인이 되거든. 버틴 자들은 한둘 빼고 칼과 창에 죽어. 마지막 한둘은 독에 죽어 내가 중수법까지 갈 일도 별로 없어."
"나 그냥 벽파검법을 수련하다가 자하동에 가서 자하신공을 완성할래."
"멍청이. 넌 단전이 너무 약해."
"약한 단전으로 자하신공 일 단계를 이룰 수 있을 거 같아?"
"넌 원래 단전이 약해. 그런데 후천적인 단련과 천노의 약으로 단전을 키웠어. 지금 네 단전은 대부분 사람보다 강해."
무룡은 추영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런데 네 남은 혈도들이 너무 강해. 네가 단전을 추궁과혈 받아서 남은 혈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한, 넌 영원히 자하신공의 끝을 이룰 수 없어."
무룡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확신을 하고 덤비는 게 아니라 그저 꼭 자하신공의 끝을 보겠다는 뚝심으로 흔들림 없이 밀어붙이고 있을 뿐이다.
"단전이 약하고 다른 혈도가 강한 체질. 외공을 익히기에 최고잖아. 그런데 자하신공 일 단계를 완성할 정도로 단전이 강해. 남은 혈도는 그런 단전이 약하게 여겨질 정도로 강하고. 너라면 우리 추씨 가문에서도 단 한 명만 익혀낸 마환기공을 이길 수 있어."
"잠깐. 왜 이긴다는 말을 쓰는 거야?"
"수련은 자신과 벌이는 싸움이라고 하잖아. 그런데 마환기공은 자신이 아니라 마환기공과 싸워야 해."
"좋아. 해보자."
추영의 말이 무룡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겉으론 표현하지 않지만, 무룡은 누가 자기보다 잘난 꼴을 잘 보지 못한다. 자신이 한낱 무공에 질 리가 없다는 생각에 의욕이 불끈불끈 솟았다.
'단순하기는.'
예상대로 무룡이 넘어오자 추영은 속으로 한심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담담한 기색을 유지하며 몽둥이를 들었다.
"천노의 채찍을 맞으며 히죽히죽 웃을 때부터 네가 이 무공과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을 했어."
추영이 말하다 말고 얼굴을 붉혔다. 고르다 고르다 왜 하필 천생연분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부끄러웠다.
"그래서 진심으로 네 수련을 돕겠다."
말을 마친 추영이 몽둥이를 힘껏 휘둘러 무룡을 때렸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무룡은 피하지 않고 마환기공의 구결대로 운기하며 몽둥이를 고스란히 받았다.
아팠다.
"원래 첫날부터 이렇게 수련 강도가 높아?"
복날의 개가 불쌍한 눈으로 바라볼 정도로 흠씬 두들겨 맞은 무룡이 질문했다. 천생연분이라는 말을 쓰고 제풀에 부끄러웠고, 그걸 감추려고 추영이 과하게 때렸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아니. 일단 네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아보려고 강하게 한 거야. 내일부터 힘을 조절할 거야."
매일 이렇게 때리면 든든한 몸을 타고나고 자하신공 일 단계를 이룬 무룡이어도 골병이 든다.
"평소엔 운기해도 소용이 없어. 맞을 때만 효과가 있어. 그러니 평소에는 다른 수련을 해."
그러나 무룡은 추영의 말을 흘려들었다. 일단 익숙해져야 맞을 때도 제대로 운기할 수 있다. 그래서 자하신공과 벽파검법을 수련하는 시간을 빼면 늘 마환기공을 운기했다.
약 한 달 동안 마환기공을 수련한 무룡이 의문을 제기했다.
"왜 방향이 안 느껴지지?"
"무슨 방향?"
"금강불괴 쪽인지 반탄기공 쪽인지 말이야."
추영이 못 참고 풉 웃어버렸다.
"마환기공은 금강불괴 쪽이 아니야. 그리고 반탄력도 안 생겨."
"응? 외공을 익히는 이유가 반탄기공 때문인데."
내공이 일정 수준에 이른 무인은 대부분 외공을 수련한다. 내공만 수련해 호신강기를 얻는 건 대다수 무인에게 꿈같은 얘기다.
강호에는 외공을 수련해 내공과 결합한 반탄기공을 얻는 편법이 널리 쓰였다.
"상대가 하나를 때리면 하나를 맞고, 둘을 때리면 둘을 맞아라."
마환기공의 구결을 풀이한 말이다.
"저항은 본능이나 본능마저 뛰어넘어야 진정한 불괴가 된다."
역시 마환기공의 구결 풀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수련해도 반탄기공이 안 생긴다는 거지?"
"응. 대신 일정 경지만 이르면 칼에 베이지 않고 창에도 찔리지 않아."
무룡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금강불괴잖아."
"아니야. 마환기공의 특성이야. 금강불과와 달리 베이고 찔리지 않을 뿐, 타격은 그대로 받아."
칼에 베이지는 않지만, 칼이 때린 힘은 받는다. 창에 뚫리지 않지만, 창이 찌른 힘은 몸이 감당해야 한다. 아예 아무 영향도 안 받는 전설의 금강불괴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리고 마환기공 수련을 한동안 쉬어야 할 거야."
"왜?"
"네 몸이 변화할 시간을 줘야 해. 둔기의 공격에 알아서 대응하게 몸이 조금씩 바뀔 거야. 바뀐 다음 다시 자극해야지 바뀔 때 자극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변할 수 있어."
무룡은 마환기공의 수련을 쉬는 대신 벽파검법의 수련 시간을 늘렸다.
마환기공 수련이 효과가 있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힘도 강해지고 외부의 타격을 받았을 때 견디는 능력도 강해졌다.
'이거 진짜 대단한 무공이다. 그리고 벽파검법이랑 상성이 좋아.'
모든 공격을 고스란히 받으며 저항하지 않는 마환기공은 벽파검법과 천생연분이었다.
공격 일변도의 벽파검법은 상대의 맞공격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거나 연속성을 잃는 때가 가장 위험하다.
마환기공을 대성하면 상대의 공격을 무시하고 자기 공격을 정확히 펼칠 수 있다. 그리고 허초로 무룡을 속이려던 자들도 아무 대응도 보이지 않는 무룡 때문에 계산이 빗나가 허둥댈 가능성이 크다.
"너 진짜 마환기공을 익히려고 타고난 것 같아."
채 보름도 안 되어 무룡은 다시 마환기공 수련을 재개했다. 추영은 그간 바닷물에 담가 더 단단해진 몽둥이들로 무룡의 몸을 골고루 두드렸다. 무룡은 익숙하게 운기하여 몽둥이가 몸을 때린 힘을 전신 혈도로 분산해 흡수했다.
"잘하면 해가 넘어가기 전에 머리도 단련할 수 있겠어."
인간의 머리에는 사혈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시력과 청력 등 감각과 관련한 혈도가 많다. 자칫 잘못 때리면 눈이 안 보이거나 귀가 먹을 수도 있어 쉽게 단련할 수 있는 부위가 아니다.
그러나 마환기공이 일정 경지에 이르면 머리도 단련할 수 있다. 때린 곳은 머리지만 힘은 전신이 나눠 받기에 그리 위험하지 않다.
'자하신공과 마환기공 그리고 벽파검법. 이 셋만 경지에 이르면 사부의 복수를 할 수 있다.'
벽파검법은 살인 검법이다. 원래는 그저 괜찮은 수준의 연환검이었지만, 노혼이 협의행의 육 년 동안 살인검으로 완성했다.
거기에 상대의 모든 공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환기공이 있으니 범이 날개를 단 셈이다. 상대의 대응을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초식을 정확히 펼칠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장점이다.
"네가 마환기공을 가르쳤는데 난 보답할 게 없네. 혹시 원한다면 자하신공 구결을 알려줄게."
"그거 아무나 막 가르쳐도 돼?"
"너만 익히겠다고 약속하면 돼."
"나만? 내 아이도 못 익히는 거야?"
"응. 너만 익혀야 해."
"그냥 죽어!"
추영이 갑자기 몽둥이를 휘두르자 무룡은 황급히 경공을 펼쳐 도망쳤다. 추영은 가끔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곤 하는데 왜 그랬는지는 한 번도 시원하게 얘기해준 적이 없다.
무룡도 이젠 그러려니 하고 일단 피했다.
'아직 애도 없으면서 왜 화를 내지?'
무룡은 추영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단맛이 강한 과일을 찾아 뛰어다녔다. 나무가 아닌 풀에서 자라는 이 과일은 싹을 틔우고 두 달 만에 열매를 맺는다.
열매를 한 번 맺고 죽어버리기에 다른 과일과 달리 찾는 수고가 작지 않다.
'멍청이. 입을 두 번이나 맞췄는데.'
추영은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며 화를 풀었다. 남궁세가에 이어 섬으로 올 때도 입을 맞췄는데 무룡은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추영을 대했다.
거기에서 오는 섭섭함이 가끔 폭발했다.
'고자는 아니던데.'
무룡은 아침마다 자신이 고자가 아니라고 몸으로 웅변했다.
- 작가의말
무룡아,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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