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귀환
"교주다!"
사마영은 마교로 복귀하는 사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했다.
장기간 빛을 보지 못해 창백했던 얼굴도 사마귀와 비슷한 고동색으로 바뀌었고, 호의호식한 덕분에 살집도 넉넉히 붙었다.
게다가 옷이고 신발이고 모자고 죄다 비싼 것으로 맞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세상 험한 꼴 전혀 안 보고 산 부잣집 대감 느낌이 들었다.
"무사하셨군요."
마교 교도들은 오매불망 그리던 교주의 얼굴을 바로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얼굴이 하나같이 좋구나."
교주가 알은체하자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교도가 한둘이 아니었다.
"내 목소리가 닿는 가장 먼 곳까지 알려라. 혈교와 전쟁이다."
교주의 귀환으로 들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납게 바뀌었다. 적을 상대하는 데 무사와 일반 교도의 구분이 없는 마교다. 호미를 들면 농부고 그물을 들면 어부지만, 적이 있으면 누구나 무사다.
교도들에게 뜻을 전한 사마영은 바로 경공을 펼쳐 세세겁화봉의 교주전으로 갔다.
"어디 계시다 이제야 오신 겁니까?"
"난 사마영이다."
맑고 아름다운 사마영의 목소리에 놀라지 않는 장로가 없었다.
"교주. 목소리가 또 변했습니다."
"목소리가 아닌 사람이 바뀐 거지. 사마월의 종적은 아직도 못 찾은 건가?"
눈알을 굴리는 자도 있고 진심으로 놀라는 자도 있었다. 다들 구를 대로 구른 구렁이들이라 짧은 대화로 그간의 사정을 알아챈 것이다.
"죄는 묻지 않겠다. 난 사마영이니까."
자신감 넘치는 말에 장로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엄동설한에 발가벗고 밖에 나가도 이 정도로 춥진 않을 것이다.
"어떤 복안을 갖고 계시는지요?"
"어찌 알았는지 무룡이 혈교로 와서 날 구했다. 대신 본인이 위험에 처했지. 성화령을 깨우면 최소 백만 군세를 모아 혈교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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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모르느냐?"
사마영은 추영을 데리고 세세겁화봉의 가장 높은 곳으로 걸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네 이름이 왜 추영인지 아느냐?"
"들은 바 없습니다."
"내가 혼자 괴물을 죽이러 갔을 때, 네 모친이 이름을 바꿨다. 아들은 내 무사귀환을 기원해 사마귀로 바꾸고, 넌 맞이한다는 의미로 이름을 영으로 했다."
그러나 결국 교주는 돌아오지 못했다. 대부분 사람은 속았으나 추영의 어머니는 가짜를 단번에 간파했고, 추영의 영을 다른 글자로 바꿨다.
교주가 바뀌었음을 대놓고 말할 수 없어서 추영의 이름으로 암시한 건데, 별 효과는 없었다.
"혈교를 다 뒤집어서라도 무룡을 구할 거고, 그다음엔 사마월을 찾아 갈기갈기 찢어 들개 먹이로 줄 거다."
"낭군은 무사할 겁니다."
이미 한 번 생리사별生離死別의 고통을 겪었기에 추영은 담담했다.
"나도 죽일 자신이 없으니 당연히 무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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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낙관적인 판단과 달리 무룡은 어마어마한 궁지에 몰렸다.
교주전의 비밀 통로를 찾아 지하까지 오는 건 쉬웠다. 게다가 불사혈괴들이 알려준 방식으로 진법을 걸으니 위험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제단이 있는 커다란 공동에 다다르고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끈적한 피로 이뤄진 주술 병사들이 무룡을 공격했다.
무룡의 주먹질에 주술 병사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무룡이 부수는 것보다 주술 병사가 생기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오랜 기간 굶고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무룡은 빠르게 지쳤다. 물론, 지쳐도 내공 덕분에 평소와 같은 위력을 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몸 상태가 좋을 때보다 훨씬 집중해야 하기에 정신적인 피로가 너무 컸다.
그래선지 주술 병사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까지 며칠이나 걸렸다.
'이런 멍청한 놈. 형에 속다니.'
무룡은 겉모습에 속은 자신을 호되게 책망했다. 주술 병사는 수십에서 수백 명이 되어 무룡을 공격했지만, 결국엔 하나였다.
'생명의 의미는 순환에 있다.'
모든 생명은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의 순환을 이룬다. 소가 풀을 먹고 범이 소를 먹고, 죽은 범의 사체가 썩으면 풀이 먹는다.
무룡의 공격이 주술 병사에게 상해를 입힌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며칠 동안 상대가 약해진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은 건 지하 공동을 가득 채운 끈적한 피가 모종의 순환으로 생명력을 계속 얻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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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혈주血呪를 이길 수 있을까?"
불사혈괴는 많게 이천 년, 가장 어린놈도 오백 년 이상 되었다. 마중구문의 도움으로 미씨 가문을 위수로 하는 반란 세력이 득세하면서부터 불사혈괴의 숫자는 늘지 않았다.
그러나 피만 있으면 죽을 일도 없기에 줄어들지도 않았다.
"오랜 기간 관리하지 않았으니 약해졌을 거야. 그리고 어차피 제단에서 정혈단을 분리하기만 하면 된다. 괜찮은 외공을 익힌 것 같던데, 제단에 가기까지 버틸 거야."
"아쉽다. 마교 교주라는 놈이 단전을 다시 만들었으면 이렇게 어렵지도 않을 텐데."
"평범한 인간이 잃은 단전을 다시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우리를 죽일 정도로 강한 놈이긴 하지만, 인간의 한계는 벗지 못했지."
그때 가장 어린놈이 질문했다.
"그런데 왜 단전이 없으면 안 되지?"
"정혈단이 원래 단전이었거든. 그래서 단전이 없는 놈이 가까이 가면 정혈단에 먹혀. 간교한 미씨가 마교 교주의 단전을 뽑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지하의 제단으로 갈 재주는 그때 천하에 사마영밖에 없었으니까."
"그 젊은 놈이 사마영만큼 강할까?"
"사정이 달라졌다. 그간 사마영이 진법을 파헤치며 난리를 피운 덕분에 남화교를 보호하는 진법은 물론, 지하 공동의 진법도 약해졌다. 굳이 사마영이 아니어도 지하에 이를 수 있는 자가 강호에 최소 다섯은 된다."
"저 젊은 놈이 실패할 걸 대비해 강호에 소문을 퍼뜨려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
사마영을 도와 강호에 소문을 퍼뜨려 비천각주를 유혹한 게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사마영이 응비도를 얻은 다음 단전을 회복하면 거래할 생각이었다.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을 살았기에 고작 사십여 년의 기다림이 괴롭진 않았으나, 사마영이 진법을 벗어나 남화교 밖으로 나갔을 땐 어마어마한 허무감에 며칠 시달렸다.
그 탓에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무룡에게 접촉했다.
"단전이 없는 자가 정혈단을 제단에서 치울 방법이 아예 없어?"
"우리가 아는 바로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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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룡은 공간에서 검룡을 꺼냈다. 이는 추향이 고래의 뿔로 만들어 선물한 것으로, 오직 무룡한테만 보이고 느껴지는 특이한 공간이다.
크지 않은 공간에는 검을 빼면 모두 독이나 약 그리고 침통뿐이었다.
검을 잡은 무룡은 눈을 감고 숨을 멈추고 귀를 닫았다. 서서히 오감이 사라지고 무룡이 지워졌다.
그리고 주술에 저주받은 피가 느껴지고, 핵이 느껴졌다.
'공원파.'
무룡의 검에서 맑고 고운 빛 망울이 쏘아졌다. 그리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의 바다처럼 출렁이던 피가 잠잠해지더니 썰물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혈주의 끈질김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룡이 채 지친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다시 공동에 피가 차고 주술 병사들이 생겨났다.
'약해졌다.'
그러나 절망뿐인 상황에서도 무룡은 희망을 잡아냈다. 주술 병사는 아까보다 동작도 살짝 굼뜨고 타격도 약해졌다.
'사흘이면 공원파를 다시 펼칠 수 있다. 결국엔 내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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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다시 차오르지 않는 걸 거듭 확인한 무룡은 검을 공간에 넣고 제단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책에선 이걸 삼키라고 했는데, 그게 입으로 먹으라는 말은 아니었어.'
천환서고의 장점은 끝을 모르는 지식뿐이 아니다. 같은 단어도 쓰임이 다르면 받는 느낌이 다르다. 만약 그냥 책에서 읽었으면 주저 없이 정혈단을 집어 입에 넣었을 테지만, 천환서고를 통해 얻은 지식이기에 섣부른 짓은 자제했다.
무룡은 제단 앞에 선 채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정혈단이 요요로운 빛으로 무룡을 유혹했지만, 무룡은 태산 같은 굳건함으로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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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교를 이길 자신이 있습니까?"
추영은 무룡을 믿는다. 그리고 마교를 사랑한다. 사마영의 일시적인 분노로 교도들이 헛된 피를 흘리는 게 아닌지 걱정되었다.
"성화령에 관해 아는 바가 있느냐?"
"없습니다."
"성화령을 깨우면 혈교는 한여름의 눈송이와 같다."
"그럼 왜 성화령을 깨워서 괴물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추영의 말투에는 약간의 원망이 섞였다.
"성화령의 힘을 끌어내려면 삼십 일이 걸린다. 그 기간 괴물을 잡아둘 방법이 있었더냐?"
마교에서 연구한 도룡노가 바로 그 용도였다. 그러나 괴물의 독이 워낙 강해서 도룡노가 삼십 일이나 버틸 수 없다.
가류의 당시 역할이 바로 도룡노의 촉과 밧줄이 괴물의 독에 최대한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거였다.
"굳이 이렇게까지 일을 벌여야 합니까?"
"총명하구나."
사마영이 너그럽게 웃었다.
"혈교를 치는 거로 날 잡아 가뒀던 자들에게 선전포고하는 거다. 그리고 어딘가 숨은 사마월도 끄집어내고. 놈이 교주 자리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공석이면 몰라도 내가 돌아왔다는 걸 알면 안 나타나고 못 배길 것이다."
대화하는 사이 둘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동굴에 도착했다.
"비밀 하나 알려주마. 사실 저 불은 그냥 불이다. 밑에서 장작 같은 게 계속 올라와서 꺼지지 않는 것뿐이지."
말을 마친 사마영은 품에서 벼루를 꺼내 불에 던졌다. 예상과 달리 묵직한 벼루는 구멍으로 떨어지지 않고 불 위에 곱게 떠 있었다.
"그리고 성화령을 깨울 수 있는 유일한 불이다. 장작을 태우거나 다른 방식으로 얻은 불은 같은 화력을 지속해서 낼 수 없기에 성화령을 깨우지 못한다."
진짜 벼루라면 불에 들어가서 얼마 안 있으면 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벼루의 모습을 한 성화령은 조각나기는커녕 불에 달궈지지도 않았다.
"신이 진짜 있습니까?"
"어딘가는 있겠지."
말을 마친 사마영이 털썩 앉더니 등짐을 풀어 술과 안주를 바닥에 널었다.
"뭡니까?"
"몰라서 묻는 것이냐? 최소 보름은 걸리니까 술을 마시면서 시간이나 보내자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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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파는 자기들끼리 싸워?"
추향의 질문에 통천선사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둘 다 아미를 위한다고 생각한다."
"왜?"
"우린 마중구문이 악이라고 생각하고 찾아서 없애려 한다. 크게는 천하를 위함이고 작게는 아미의 존속을 위함이다. 아미도 화산파나 남궁세가처럼 놈들의 수족이 되어 개처럼 부려지는 건 바라지 않으니까."
"그럼 남은 자들은?"
"마중구문의 뜻이 중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줄 걸 주고 받을 걸 받는 거래는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바로 마중구문의 졸개가 됐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여론을 조성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호도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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