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진호
'공원파와 비슷하다.'
무룡은 서문문검이 사용한 절검참마가 공원파와 비슷한 초식임을 알아챘다.
'원래부터 아는 초식일까 아니면 공원파의 수련을 도우며 익힌 걸까?'
절검문은 여동빈이 세운 문파다. 그래서 천검산장을 찾아가 공원파의 수련을 부탁할 때만 해도 당연히 상대가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보다 경지나 검에 대한 이해가 훨씬 높은 서문문검이 공원파보다 수준이 낮은 초식을 사용하는 걸 보고 문득 의심이 들었다.
"독무곡주, 놈이 쇠뇌를 녹이고 있어. 뭐 방법이 없을까?"
소교주가 실실 웃으며 무룡에게 말을 걸었다.
'머리 굴리지 말자. 당장 해결할 일에 집중하자.'
잡념을 털어버린 무룡은 소교주에게 질문했다.
"머리에 박힌 쇠뇌가 다 녹으면 오살진이 사라져?"
"그렇지."
"가류가 한 일이 쇠뇌가 독에 안 녹거나 느리게 녹게 하는 거였겠지?"
"맞아. 그런데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녹고 있어. 만약 녹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고 가정하면 이틀을 못 버틸지도 몰라."
그때 허공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렸다. 무룡도 소교주도 대화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
"교주만 익히는 무공 고산타종敲山打鐘이다. 상대의 몸을 울려 전체를 공격하는 무공으로, 격산타우보다 경지가 더 높은 장법이다."
격산타우는 격공장의 최고 경지로 여겨진다. 그런 격산타우보다 더 높은 경지를 무룡은 들어본 적도 없다.
"전체를 두드릴 수 있다면 하나를 두드리는 것도 가능하다. 고산은 전체를 공격하는 걸 말하고, 타종은 요해만 때리는 걸 말한다."
산이 있다. 그리고 종이 있다. 고산타종은 산을 때려 전체를 울리게도 할 수 있고, 산을 때려 종만 울리게도 할 수 있다.
'마환기공의 천적이구나.'
몸 전체를 공격하여 마환기공의 손발을 어지럽게 한 다음 한 곳을 집중하여 때리면 미처 대응할 겨를도 없이 큰 상해를 입힐 수 있다.
물론, 무룡의 경지와 수준이 상대보다 높으면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상대는 무공이 하늘에 닿았다는 마교 교주이며, 나이도 백 살이 넘었다.
내공이나 경지는 물론이고 경험만 해도 무룡이 발끝에 미치지 못한다.
교주의 준비 기간은 서문문검보다 훨씬 길었다.
"독 안개가 사라졌어."
무룡은 그제야 이룡의 몸을 감쌌던 안개가 모두 사라졌음을 확인했다. 여러 곳에 정신이 팔려 커다란 변화를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소교주도 쇠뇌가 녹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이유를 알아챘다. 괴물은 밖으로 내보낸 독을 모두 회수하여 쇠뇌를 녹이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심장이 세 개나 사라진 탓에 위기를 느껴 여태껏 보여주지 않은 행동 양상을 펼친 것이다.
약 반 각이 조금 넘은 시간이 흘러 교주의 준비가 끝났다. 무룡은 자신이 품은 것보다 훨씬 거대한 기운을 느끼며 손발이 떨렸다.
교주는 몸에 뭉친 거대한 기운을 신중하게 움직여 손바닥을 통해 쏘아냈다.
"고산진호敲山震虎다."
소교주가 중얼거렸다.
산을 두드려 범을 놀라게 해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는 말이다. 인간들이 범을 사냥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다.
미리 함정을 판 다음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 호랑이를 함정으로 유도해 잡는다.
초식의 이름은 아주 적절했다. 교주의 기운은 괴물의 몸에 침투한 후 몸 전체를 진동했다.
괴물은 대가리가 고정된 바람에 위치를 바꾸는 거로 진동을 피할 수 없었다. 작게 몸부림치다가 전혀 소용없음을 깨달은 괴물은 몸속에서 떨림을 만들어 교주가 만든 진동에 저항했다.
괴물의 심장들이 그 떨림의 중심이 되었다. 교주는 괴물의 몸에 생긴 변화를 주시하다가 갑자기 진동의 빠름을 바꿨다.
교주가 만든 진동이 괴물의 심장 떨림과 같게 변했다. 그리고 타종이 시작됐다.
"일타一打!"
괴물의 몸 전체를 흔들던 진동이 괴물의 심장에 모였다. 갑자기 강해진 진폭에 괴물의 심장이 경직됐다.
"이타二打!"
그리고 심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진동이 생겨 괴물의 몸 전체에 퍼졌다.
"결타結打!"
동시에 교주는 주먹을 한 번 더 뻗어 경직된 괴물의 심장에 새로운 진동을 불어넣었다. 몸 전체와 상반되는 진동이 가해진 심장은 순식간에 부서져 가루가 됐다.
"푹 쉬어야겠어."
기운의 소모는 위력보다 적었다. 그러나 자기 몸도 아닌 커다란 괴물의 몸을 진동시키느라 정신력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고산진호의 초식을 펼친 교주가 십 년은 더 늙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한쪽에 가서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했다.
"체면 때문에라도 최선을 안 할 수 없군."
서문문검이 보여준 초식이 간결했다면 교주가 보여준 초식은 치밀했다. 호승심에 불이 붙은 검극이 밟고 있던 검을 괴물에게 쏘았다.
검이 사라진 검극이 표홀한 움직임을 보이며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무룡도 소교주도 검극을 지켜볼 정신이 없었다.
'심검이다.'
심검이 어떤 건지, 심검이 뭔지, 심검이 어떤 형태인지 전혀 모른다. 그러나 무룡도 소교주도 보는 순간 심검을 떠올렸다.
날개 돋친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누비던 검이 괴물의 등을 훑으며 머리에서 꼬리 방향으로 날았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멈췄다.
경공으로 치면 강호 전체에서 다섯 안에 들 정도의 고수만 보여줄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멈춘 검에 커다란 그림자가 생겼다. 빛으로 이뤄져서 그림자라고 부르는 게 모순이었지만, 딱히 다른 호칭이 떠오르지 않았다.
"멸滅!"
검극의 외침은 성대를 떨어낸 것이 아니었다. 검극의 마음에서 검에 전해지는 소리였고, 괴물과 가까운 곳에 머문 무룡과 소교주만 들었다.
검에 생긴 그림자가 괴물의 비늘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괴물의 몸이 끓는 기름에 넣은 얇은 밀가루 반죽처럼 기포 비슷한 것이 생겼다.
"넌 천리를 거스르는 사악한 존재다. 그러니 멸할지어다."
검극이 이마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외쳤다. 서문문검이나 교주와 비교하면 낭패한 모습이나, 보여준 경지와 수단은 검극이 최고였다.
"도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룡이 입을 열자 검극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품은 힘이 크더라도 한낱 미물인 건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여 심검을 펼쳤는데, 괴물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아우, 어쩌려고?"
"남은 목숨은 형한테 맡길게."
말을 마친 무룡이 허리에 찬 용아를 뽑은 다음 괴물 가까이 접근했다.
"뭐야!"
경탄은 소교주가 질렀지만, 놀란 사람은 혼자가 아니었다. 기운을 회복하던 서문문검과 휴식을 취하던 교주 모두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무룡의 용아에 영롱한 빛이 맺혔다. 그러더니 무룡의 몸이 갑자기 사라졌다.
동시에 검극의 몸도 사라졌고, 괴물이 아가리를 커다랗게 벌리고 귀에 들리지 않는 비명을 한껏 질러댔다.
"뭐지?"
교주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놀란 나머지 평소 쓰던 가면을 완전히 벗어 던졌다.
"숨은 쉬는 건가?"
서문문검은 무룡을 부축한 검극에게 질문했다. 교주 사마영은 확실한 선배여서 반존대를 했지만, 검극은 연배도 얼마 차이가 안 나고 배분도 비슷하여 편하게 말했다.
"용케 살았다."
검극은 어려서부터 사생아라고 핍박을 많이 받은 탓에 성격이 삐뚤어져 사부 빼고 모두에게 하대했다. 심지어 아버지인 남궁가의 전대 가주도 너라고 호칭하며 반말로 쏘아붙이기 일쑤였다.
"어떻게 된 거냐니까?"
교주가 재차 다그쳐 물었다. 서문문검의 초식이야 며칠 더 고민하면 대비책이 나올 듯하지만, 방금 무룡이 보여준 한 수는 피하는 것만 가능하고 막을 순 없다.
지금이야 경지의 차이가 커서 미리 감지하고 피하는 게 되지만, 진법에 갇히거나 피할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에 무룡을 만나면 목숨이 더는 자기 것이 아니다.
"공간계 검술로 보인다. 나랑은 다른 길이어서 전혀 모르겠다."
심검의 방향으로 걸은 검극이기에 공원파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서문문검은 무룡이 펼친 게 공원파라는 걸 알았지만, 그냥 수련도 아니고 괴물의 심장을 터뜨릴 정도로 위력이 강한 초식을 불과 며칠 사이에 연속으로 펼쳤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경지는 부족해도 위력은 천하에서 견줄 자가 없겠는데.'
"괴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룡이 무사함을 알고 빠르게 심정을 수습한 소교주가 질문했다. 그제야 교주도 서문문검도 주의를 무룡에게서 괴물로 돌렸다.
"심장이 반 개 남았군."
심검과 공원파의 합이 좋았다. 무룡의 공원파가 심장을 하나 제거하여 괴물을 흔든 덕분에 심검의 위력이 훨씬 강하게 발현되었다.
심장 하나를 깨끗이 지웠을 뿐이 아니라 마지막 심장에도 꽤 큰 타격을 입혔다. 완전히 소실되지 않아 꽤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긴 하지만, 심장이 모양을 다시 갖춰도 입은 타격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반만 남은 거나 다름없다.
"난 여력이 없소."
서문문검이 교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운이 부족하여 절검참마의 초식을 다시 펼치는 건 절대 안 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검극 역시 방금 심검을 펼쳤다. 기운의 소모도 크고 마음도 지친 상태다.
모두의 눈이 교주에게 모였다. 고산진호의 초식으로 정신력을 크게 소모했으나 기운은 아니다.
정신력이라는 게 원래 극한 상황에서 짜낼 수 있는 종류의 힘이기에 남은 반 개 심장을 해치울 사람은 교주밖에 없다.
"놈의 사체는 마교 몫으로 하겠다."
교주의 말에 검극과 서문문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교주는 바로 정신을 모아 고산진호의 초식을 준비했다.
아까와 별반 차이가 없는 막대한 양의 기운이 교주 몸에 모였다. 정신력의 소모가 심하여 준비 기간이 아까보다 훨씬 길 거로 여겨졌다.
모두가 위와 같은 생각을 떠올릴 때, 교주가 움직였다.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교주는 손바닥으로 검극의 명치를 때리고 있었다.
"이화접목移花接木."
나직한 읊조림과 동시에 검극과 무룡의 몸이 바뀌었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교주는 천멸장天滅掌으로 무룡의 명치를 힘껏 때렸다.
동시에 서문문검이 움직여 소교주의 진로를 막았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발생했다. 교주의 공격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얻어맞은 무룡은 입으로 선홍색 피를 뿜어내며 뒤로 훨훨 날았다.
"제길."
교주가 낭패한 소리를 질렀다. 어느새 검극의 검이 교주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함정이었구나."
기습이라고 생각했는데 함정이었다. 심기를 부려 검극을 처단하려던 교주가 도리어 당했다.
검극은 함정이고 절검문주와 무룡은 산을 두드려 교주를 함정으로 몬 몰이꾼이다. 그게 의도했든 아니든.
- 작가의말
고산진호는 함정으로 범을 사냥하는 방식으로 최소 수백 명을 동원해야 하고, 산이 크면 수천 명이 필요합니다. 총이 나온 다음에야 범이 별거 아니었지만, 화살도 잘 안 박히는 두꺼운 가죽으로 한때는 범접 불가의 상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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