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침신의
장안으로 향하는 관도에 한 쌍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어깨가 딱 벌어지고 가슴이 두꺼우며 허리가 잘록했다. 다리가 길고도 굵고 걸음걸이에 힘이 있으나 그리 빠르지 않을 걸 보니 무인은 아니고 천생 신력을 타고난 듯했다.
커다란 덩치에 안 어울리게 등엔 약초가 가득한 망태와 약 달이는 도구를 멨고 가슴에는 침통으로 보이는 대나무 통 세 개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런 남자 곁엔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버들 같은 소녀가 있었다. 뒤에서 보면 비 맞은 한 떨기 꽃송이 같아서 아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러나 발걸음을 재촉해 소녀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은 하나같이 기겁하며 자빠졌다.
한쪽이 크고 한쪽은 작은 짝눈이었고 눈썹도 희미하여 없다시피 했다. 높은 코는 왼쪽으로 삐뚤어졌고 윗입술이 둘로 갈라진 언청이였다.
게다가 누르께리한 피부엔 검붉은 반점이 가득하여 가까이하면 무서운 병이 옮을까 봐 두려웠다.
"이젠 괜찮은 거 맞지?"
목소리는 의외로 시원했다.
"응. 내가 죽기 전엔 잠잠할 것이다. 그새 형님이 방법을 찾는다고 하셨으니 거기에 기댈 수밖에."
거구의 사내는 용케 목숨을 건진 무룡이었고 추악하기 그지없는 소녀는 무룡의 딸 추향이었다.
둘은 남은 가족을 구출하러 장안으로 가는 길이다.
추영은 아들과 딸 쌍둥이를 출산했다. 아들은 추영과 함께 자랐으나 딸은 마교에서 따로 키웠다.
마교 교주가 검극에게 당하고 사라진 후, 정의연은 어렵지 않게 세세겁화봉을 점령했고 추영과 아들을 잡아갔다.
추영은 성렬태후聖烈太后로 추대받았고 아들은 허수아비 황제가 되었다.
추향은 소교주가 보호했는데, 천방기사가 무룡을 구하려면 추향이 꼭 필요하다고 데리고 나왔다.
추향의 자질과 총기가 마음에 든 천방기사는 사흘을 애걸복걸하여 제자로 받아들였으나, 시작부터 삐뚤어진 둘의 관계는 일반적인 사부와 제자의 사이와 크게 달랐다.
주로 천방기사가 추향에게 이걸 제발 배워달라고 애걸하는 쪽이었다.
"황궁이라면 뭔가 방법을 알지 않을까?"
수백 년이나 굳건하게 천하를 지배한 제국의 창고라면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우리 가족이 다시 모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무룡도 추향도 가족과 쭉 떨어져 있은 건 똑같다. 그나마 추향은 어느 정도 세상을 알게 되자 소교주가 자초지종을 얘기해 줬지만, 무룡은 아는 것조차 얼마 없었다.
어차피 언젠간 죽을 텐데 괜히 발버둥 치지 말고 가족이 상봉하여 오순도순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무룡과 추향은 제국의 황제와 황태후를 황궁에서 꺼낼 목적을 지니고 단둘이서 장안을 향해 걸었다.
"얼굴을 조금 고쳐야겠다."
무룡의 말에 추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숙였던 고개를 쳐들 때 벌써 얼굴이 바뀌었다.
아주 흉측하던 얼굴이 무난한 얼굴로 바뀌었다.
"장안엔 왜 왔소?"
"의원입니다. 당연히 환자 보러 왔지요."
"곁에 그 여자는?"
"딸입니다."
추향이 얼굴을 평범하게 바꾼 덕분에 성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만약 반점이 가득한 얼굴이었으면 전염병을 의심해 안으로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추향이 얼굴을 추하게 바꾼 건 뛰어난 미색 때문에 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룡의 설득으로 얼굴을 바꾸기 전까지 유혈 사태만 최소 열 번은 일었다.
"무슨 수로 황궁에 들어가?"
황궁은 건물이 크고 담장만 높은 게 아니었다. 이젠 누구도 부인 못 할 고수가 된 무룡도 황궁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기운을 느꼈다.
"일단 이름을 알려야지."
무룡은 추향을 데리고 의총義塚으로 갔다. 의총은 죽은 사람을 묻기 전에 임시로 거치하는 곳인데, 보통은 관아에서 타살로 의심하는 주검이나 감옥에서 죽은 자들을 잠깐 둔다.
"여기서 뭘 하겠다는 거야?"
"죽은 사람을 일으켜야 황궁까지 바로 이름이 알려지지."
천성이 심심한 걸 싫어하는 추향은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바닥에 있는 돌을 걷어차며 불만을 표했다.
무룡은 그런 딸이 귀엽기도 하고, 이젠 스물이 다 되는 처자가 여전히 아이 심보인 게 조금 걱정이기도 했다.
"딸은 어떤 남자가 좋아?"
"난 수련해서 신선이 될 건데? 신선이 되면 남녀의 구별이 사라진다고 사부가 그랬어."
남자는 신선이 되면 양물과 고환이 사라진다. 여자는 자궁과 외음부가 사라진다. 가슴은 그대로지만.
즉, 남자나 여자나 신선이 되면 허리 아래는 똑같이 된다.
옥황상제의 여동생이 하계의 남자한테 반해 아이를 낳았는데 그게 바로 눈이 세 개인 관구의 수호신 이랑신이다.
그리고 여동생은 화산에 눌려 지내는 형벌을 받았고, 장성한 이랑신이 도끼로 화산을 쪼개 어머니를 구출한 이야기가 민간에 미담으로 널리 퍼진다.
남자든 여자든 범심凡心이 동하는 걸 극히 경계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고된 수련으로 없앤 생식기는 범심이 동하면 다시 생긴다.
다시 생긴 생식기를 또 없애는 건 처음보다 수십 배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신선이 자기 마음을 다잡지 못해 하계에서 평생을 지내며 지선地仙으로 불린다.
그에도 예외는 있었으니, 바로 순양으로 불리는 여동빈이다. 순양공을 익힌 여동빈은 신선이 되고도 물건이 그대로여서 수많은 풍류사를 민간의 이야깃거리로 남겼다.
그리고 구천현녀도 있는데, 구천현녀 역시 신선이 되고도 수많은 남자와 염문을 뿌렸다.
여동빈이나 구천현녀는 정말 드문 경우기에 추향은 아예 혼인에 관해 생각지 않았다.
'추씨의 대가 끊기겠구나.'
추씨 가문은 여자를 낳으면 성을 물려주고 남자를 낳으면 아버지 성을 따르게 했다.
마교 소교주가 바로 그랬다. 추영의 친오빠인 소교주는 아버지 성을 따라 사마의 성씨를 썼다.
은은하면서도 애절한 통곡 소리가 둘의 대화를 끊었다.
"나으리, 나으리. 우리 애의 억울한 죽음을 꼭 밝혀주시오. 나으리."
얼굴이 퍼렇다 못해 검게 보이는 주검이 달구지에 실려 왔다. 달구지 곁에는 관복을 입은 포졸 두 명이 있었고,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달구지를 따르며 대성통곡했다.
"와. 저 여자 아빠랑 동갑이야."
추향은 검은 머리를 찾기 힘든 노파가 무룡과 같은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엄마도 머리가 하얗진 않겠지?"
무룡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엄마 주변 사람들이 머리가 하얄 거다."
"어때?"
"아직 안 죽었어. 독 때문에 심장이 느리게 뛰고 숨이 가는 것뿐이야."
거리가 가까워지자 달구지에 실린 남자의 상태가 확연히 느껴졌다.
"누구시오?"
두 포졸은 성큼성큼 다가오는 무룡을 경계하며 곤장을 꽉 잡았다. 내공은 전부 암혈 중 하나인 고호혈孤虎穴에 숨겼으나 타고난 기운과 큰 덩치가 상대에게 위압감을 형성했다.
"의원이오. 죽은 지 반 시진 안 된 거 맞소?"
"맞습니다. 맞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여인이 울먹이며 말했다.
"그럼 내가 깨워보지."
두 포졸은 무룡의 말을 믿지 않았으나 오는 내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애달프게 울던 여인으로 마음이 약해진 탓에 제지하지 않았다.
가슴의 침통을 연 무룡은 신중하게 침을 골라 먼저 심맥에 속한 혈도들에 꽂았다. 심맥을 해결한 다음엔 뇌호혈을 중심으로 머리의 혈도들에 꽂고, 이어서 오장육부와 관련된 혈도들에 침을 꽂았다.
"다리를 절지도 모르겠소."
"네?"
"다시 살릴 수 있는데, 한쪽 다리를 절지도 모르겠다고."
두 포졸은 무룡의 말에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지금이라도 제지해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했다. 괜히 구한답시고 주검의 상태를 엉망으로 만들어 흉수를 잡지 못하면 문책당할 가능성이 크다.
"무슨 짓이오?"
무룡이 갑자기 비수를 꺼내자 두 포졸이 기겁하여 몽둥이로 무룡을 견줬다.
"독을 빼려고 하오."
무룡은 피독주를 소매로 가린 채 손바닥을 주검에 대고 이리저리 쓸었다. 조잡한 독은 피독주를 피해 도망을 쳤으나, 주요 혈도는 이미 침으로 보호하고 있어 길은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무룡이 남긴 길을 따라 도망치다 보니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
무룡은 비수를 들고 때를 기다리다가 사내의 발바닥 용천혈을 힘껏 벴다. 역한 냄새를 풍기는 시꺼먼 피가 밖으로 뿜어졌다.
검은 피가 다 빠지자 무룡은 약초를 이겨 발바닥에 붙인 다음 하얀 천으로 꽁꽁 싸매줬다.
"독이 모두 발바닥으로 갔소. 아마 다리 쪽에 독이 조금은 남을 것이오. 운이 나쁘면 왼쪽 다리를 절 수도 있으니 내가 주는 처방대로 약을 꼭 먹이시오."
무룡은 붓을 휘갈겨 처방을 써서 아직도 눈물이 멈추지 않은 백발 여인에게 건넸다.
"아빠, 그거 귀한 건데."
무룡이 주검 입에 약을 넣어주려 하자 추향이 적절하게 나섰다.
"사람 목숨보다 귀한 게 어딨더냐."
말을 마친 무룡은 약을 입에 넣은 다음 물을 천천히 부었다. 물에 녹은 약이 천천히 배로 들어가 위와 장을 통해 흡수되었다.
"에구머니나."
눈치만 보며 아무것도 못 하고 있던 두 포졸이 뒤로 넘어졌다. 퍼렇게 질렸던 주검이 갑자기 꺼억 트림을 해버린 탓이다.
"아이고, 신선이여. 신선이셨구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백발 여인이 웃는 얼굴로 눈물을 쏟으며 무룡에게 절을 계속 올렸다.
"네 차례다."
추향은 멸화장을 펼쳐 장에 있는 약 기운을 묶어놨다. 원래대로라면 그대로 대소변과 함께 배출될 기운이었는데, 멸화장으로 봉인한 탓에 몸에 남게 되었다.
아주 강력하게 봉인한 게 아니어서 약 기운이 조금씩 흘러나올 것이고, 지속하여 남자의 몸을 치유할 것이다.
"피의 흐름이 멈춰서 몸이 허약하오. 따뜻한 물에 적신 천으로 몸을 닦아줘야 하오."
포졸 하나가 다급히 의총으로 달려가서 물을 끓이라고 외쳤다.
"이 은혜를 어찌 갚겠습니까. 신선께서 이 비천한 여인에게 은혜 갚을 길을 알려주십시오. 머리카락을 잘라서라도 어떻게든 꼭 갚겠습니다."
"난 무천애라고 하오. 여긴 내 딸 무추향이오. 오늘 장안에 왔는데 딱히 머물 곳이 없소. 비 피할 지붕만 있으면 되니 잠시 신세 져도 괜찮겠소?"
"아이고. 누추한 곳에 어찌 신선을 모시겠습니까. 친척들을 불러 돈을 모아 큰 객잔에 모시겠습니다."
"아니오. 당신 아들도 계속 살펴야 하니 집구석에 누울 자리만 내주시오."
그때 주검이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포졸이 기겁하며 쓰러졌고, 겨우 그쳤던 여인의 울음이 다시 터졌다.
- 작가의말
황궁에서 황태후와 황제를 구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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