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살인
가류의 채찍이 무룡의 등을 때렸다. 웬만한 사람이면 피부가 뒤집히고 살이 갈라졌을 텐데 무룡의 등은 심하게 출렁이기만 했다.
"저들의 말이 사실이냐!"
대제자가 선수를 쳤다. 무룡이 알아낸 게 전혀 없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간 창고에서 약초와 독초를 빼돌린 사실을 고발했다.
고발자는 그간 무룡을 따르던 제자 중 둘이었다.
"거짓입니다."
가류가 채찍을 다시 휘둘렀다. 글도 많이 알고 의술이 고명한 가류지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몹시 무식했다.
물증을 따지고 증인의 말이 진실한지 가리는 것보다 무작정 매로 다스려 자백을 받아내려 했다.
무룡은 속으로 묵묵히 숫자를 셌다.
"저들이 거짓말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다."
오십까지 센 무룡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어떻게?"
가류가 채찍질을 멈추고 질문했다.
"장부를 확인하면 됩니다. 창고에 어떤 종류의 물건이 얼마 들어오고 나갔는지 창고지기가 정확히 기록하고 그걸 장부로 정리합니다. 들어온 물건에서 나간 물건을 제하면 재고가 확인됩니다. 장부에 적힌 재고와 창고에 실제로 남은 물건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면 저들이 거짓말을 한 게 탄로 납니다."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대제자나 무룡처럼 쓸모가 큰 자들에겐 아끼는 마음이 있다.
평소라면 계속 채찍질을 하며 자백하라고 윽박질렀겠지만, 이미 오십 대나 때린 터여서 무룡의 말을 한 번 들어주기로 했다.
"창고지기한테 재고품을 일일이 확인해서 보고하라고 해라. 장부하고 한 글자라도 차이가 나면 오늘 네 목숨을 취하겠다."
약 반 시진이 걸려 창고에 남은 품목들을 적은 종이가 올라왔다. 가류는 직접 장부와 일일이 대조했다.
손이 정교한 무룡이 정성 들여 조작한 장부는 창고지기 본인마저도 자신의 필체가 아니라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가류는 참을성이 부족하여 채 절반도 확인하기 전에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이놈들. 감히 거짓말로 사형을 모함해?"
독무곡의 서열은 제멋대로다. 무룡은 독무곡에 온 지 이 년도 안 되고 정식 제자는 일 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류의 신임을 얻어 열 명 안에 드는 높은 서열을 차지했다.
서열이 높으면 가류를 근처에서 모시며 수시로 매질을 당해 목숨이 위태롭지만, 시비가 걸렸을 때 가류가 더 높은 확률로 편을 들어준다는 장점이 있다.
"제자도 증거가 있습니다."
채찍질에 당한 두 제자는 고통을 못 이겨 입으로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필사적으로 외쳤다.
"말해."
두 제자는 품에서 은자를 꺼내 바닥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무지렁이 사형이 창고의 약초와 독초를 훔쳐 판 돈이라며 우리한테 나눠준 겁니다."
"해명해 보아라."
가류는 이미 오십 대나 때린 무룡에게 해명할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했다.
"창고가 텅 비고 급히 모은 약초 중에 오래되어 약효가 미미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사실인가?"
창고지기가 황급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사실입니다."
"그래서 전 약효가 거의 사라진 약초를 서역 상인들한테 팔았습니다."
"훔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 돈으로 다시 품질이 좋은 약초를 사서 창고에 넣었습니다."
"사실이냐?"
가류의 질문에 창고지기가 맞는다고 말했다.
"그럼 저 은자는 어디서 생긴 것이냐?"
"약초를 구하려면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제가 한꺼번에 많은 양을 파니 발품을 덜었다고 좋아하며 가격을 좀 더 치렀습니다. 그리고 서역 상인은 많습니다. 다음에도 자기한테 팔아달라고 부탁한다는 의미로 돈을 찔러줬습니다."
가류는 두 제자가 바닥에 내려놓은 은자를 보며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약초를 파는 자도 많습니다. 당연히 자기 약초를 사달라고 돈을 찔러줍니다. 저는 그 돈의 일부를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고생하는 사제들한테 좋은 옷이나 사 입으라고 나눠줬습니다. 약초를 싸게 사고 비싸게 팔며 남긴 이문과 나머지 뇌물은 하나도 안 건드리고 사부 침실에 뒀습니다."
가류는 채찍을 휘둘러 무룡이 가리킨 곳에서 묵직한 상자를 끄집어냈다. 뚜껑을 여니 족히 스무 냥이 넘은 은자가 있었다.
"쓸모없는 약초를 팔아서 좋은 약초를 사고 이문도 남겼다는 말이지? 훌륭하구나."
말을 마친 가류가 채찍을 휘둘러 무룡을 고발한 두 제자를 때려죽였다.
"이자들이 하도 그럴듯하게 말해 제가 깜빡 속았습니다. 제 선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사부님까지 번거롭게 한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대제자가 급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같은 실수를 저지르면 그땐 목숨을 취할 것이다. 그만 나가 보아라."
무룡과 대제자 그리고 창고지기가 주검을 들쳐 메고 가류의 방을 나왔다.
주검 처리를 창고지기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간 무룡은 평소와 달리 상처에 약을 바르지 않았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뇌물을 들고 대제자의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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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웅크리고 끙끙거리며 자는 무룡을 건장한 사내 둘이서 끄집어냈다. 일 년에 적어도 열 달은 안개가 자욱한 독무곡에서 흔치 않은 강한 햇살이 무룡의 눈을 괴롭혔다.
"놈! 네 짓이냐?"
가류가 채찍을 잡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평소 같으면 채찍질부터 하고 봤겠지만, 어제 오십 대나 맞아 퉁퉁 부은 무룡의 몸을 보니 손이 나가지 않았다.
무룡이 평소 건강한 모습이었다면 다짜고짜 열 대 정도 후리고 봤겠지만, 지금 더 때리면 진짜로 피를 토하고 죽어버릴 것 같았다.
"제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대제자를 네가 죽였느냐?"
무룡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가 바로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제자는 밤새 통증으로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사형의 일은 전혀 모릅니다."
가류는 멍청하지 않다. 그저 귀찮은 걸 싫어해서 채찍질로 쉽게 풀려는 경향이 심할 뿐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없진 않다.
알면서도 마음에 두지 않았을 뿐, 대제자가 무룡을 질투하고 경계하는 걸 모르진 않는다.
아침에 대제자의 죽음을 확인하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게 어제의 모함으로 채찍질을 수없이 당한 무룡이었다.
"사부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현장을 보고 흉수를 잡아보겠습니다."
만사가 귀찮긴 하지만, 창고의 물건을 훔치거나 대제자가 죽은 일까지 모른 척하면 독무곡이 난장판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흉수를 반드시 밝혀 엄벌해야 하기에 평소와 달리 무룡의 청을 순순히 들어줬다.
대제자는 자신의 집에서 죽었다. 입과 코와 눈은 물론 귀까지 검은 피가 흘러나와 굳은 걸 보면 독살이 분명하다.
큰 충격으로 내부가 박살 나며 피가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진 게 아니면 저런 죽음은 독밖에 없다.
"문은 흉수가 부순 것입니까?"
"나다. 안으로 빗장을 걸어서 열 방법이 없어 내가 부쉈다."
"그렇다면 흉수는 어떻게 안으로 들어갔고 또 어떻게 밖으로 나와서 빗장을 걸었을까요?"
화가 치민 가류가 무룡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네가 밝혀내야지 나한테 물어서 어쩌자는 것이냐!"
채찍에 맞아 쓰러진 무룡은 엉금엉금 기어 가류와 멀어졌다. 평소엔 가만히 채찍을 받던 무룡이 도망가자 화가 치민 가류는 채찍을 휘두르는 손에 힘을 한층 더 줬다.
퍽 소리와 함께 대제자의 주검이 있는 침대 한 귀퉁이가 채찍에 무너졌다.
"저, 저."
대제자의 침대 밑에는 온갖 약재가 가득했다. 몇 년 동안 창고지기와 결탁해 조금씩 빼돌린 귀한 약초와 독초들이었다.
가류는 쩔룩거리면서 침대로 다가가 대제자의 주검을 바닥에 끌어낸 뒤 침대를 완전히 뜯었다.
산삼과 하수오를 비롯한 귀한 약초와 금은표귀초와 같은 구하기 힘든 독초로 가득했다.
"사부, 조심."
무룡이 몸을 날려 가류 앞을 막았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난 가류는 채찍으로 무룡의 팔을 감은 후 얼굴이 자신을 향하게 돌렸다.
"칠홍지주七虹蜘蛛?"
새끼 때는 흰색으로 백지주로 부른다. 성체가 되면 검은 줄이 생겨 흑백지주로 부르고, 나이를 채우면 거미줄로 고치를 짓고 수면에 든다. 그러고 나온 게 삼색지주다. 몸 전체는 푸른색인데 등에 붉고 노란 줄무늬가 생긴다.
극독을 품은 삼색지주부터 독거미로 분류한다.
그렇게 고치를 짓고 태변할 때마다 색이 하나씩 늘어 칠홍지주가 되면 한꺼번에 소 백 마리도 죽일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독물이 된다.
발견하기만 어렵고 잡는 건 쉬워서 품은 독에 비해 구하기 꽤 쉬운 놈인데 지금 무룡의 얼굴에 붙어 있다.
"금은표귀초 때문에 이놈이 끌려온 거구나."
칠홍지주가 태변하면 투명한 거미가 된다. 웬만한 고수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기척이 적어서 경지가 높은 무인을 암살하는 데 가끔 쓰인다.
칠홍지주가 투명 거미가 되기 위해선 독초를 먹어 치워야 하는데 금은표귀초가 그중 하나다.
"창고지기를 데려와."
무룡을 침대에서 끄집어냈던 건장한 두 사내가 경공을 펼쳐 사라졌다가 곧 창고지기를 끌고 왔다.
"저것들에 대해 할 말이 있느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가류는 채찍을 휘둘러 창고지기의 머리를 터뜨렸다.
"오늘부터 네가 대제자다."
"정성을 다해 사부님을 보필하겠습니다."
무룡이 바닥에 이마를 연신 찧으며 부르짖었다.
"창고지기로 추천할 사람이 있느냐?"
"제자가 아는 사람 중 글을 읽고 쓰는 자는 한 명밖에 없습니다."
"데려와라."
무룡은 아픈 몸을 이끌고 흘궁을 찾아왔다. 무룡에게 쉬운 책부터 읽으라고 조언을 건넸던 제자로 아는 글자가 꽤 많았다.
"아니. 저놈이 글을 안다고?"
"어머니가 서역인이고 아버지는 현령이셨습니다. 반란에 연루되어 도망쳤고 저만 살아서 독무곡에 몸을 의탁했습니다."
"풀을 가릴 줄 아느냐?"
"약 달이는 일을 십 년 했습니다."
그렇게 흘궁은 독무곡에서 대제자 다음으로 위세가 대단한 창고지기가 되었다.
무룡은 그간 몰래 진행했던 일의 규모를 키워 약초를 대량으로 사고 서역 상인들한테 파는 것으로 이문을 남겨 독무곡의 재정을 살찌웠다.
"혹시 여기 적힌 물건들을 구할 수 있다면 돈을 아끼지 말아라."
가류는 직접 약초를 구하러 떠나면서 무룡에게 신신당부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작가의말
어느 날 갑자기 제가 답댓글을 안 달면 ‘이놈이 끝내 자기가 쓴 소설에 끌려들어 갔구나’라고 상상력을 발휘하지 마시고 ‘서버 문제로 접속을 못 하는구나’라고 상식적인 판단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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