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신충
얼핏 오독신충五毒神蟲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오독교가 귀하게 모시는 존재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실상은 오독교의 누구나 이를 갈며 어떻게든 없애려고 애쓰는 애물단지들이다.
붉은 뱀과 적안 오공이 차지한 영역만 해도 늪지의 일 할 가까이 된다.
비록 환골탈태는 못 했지만, 비약으로 감각이 발달한 무룡도 맨날 찔릴 정도로 은밀한 놈이 전갈인데, 검은 전갈의 독은 채 백 호흡을 버티는 것도 힘들 정도로 강하다.
푸른 섬여는 외관이 청개구리와 비슷하여 식탐이 강한 아이들이 잡으려다가 독으로 죽는 일이 가끔 벌어진다.
하얀 벽호는 소청룡을 먹이로 삼는다. 하얀 벽호만 처리하면 오독 중 가장 귀한 벽호의 독도 충분히 장만할 수 있다.
당연히 무룡의 제안에 난화봉과 장로들이 두 손 들어 찬성했다.
"호교장로. 여긴 독이 문제가 아니야. 안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없어."
난화봉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적안 오공이 사는 곳은 오독으로 덮였다. 오독 자체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문제는 오독으로 덮여 숨을 쉬기 힘들다는 것이다.
"괜찮아. 난 숨을 오래 참거든."
"그래도 얼마나 참는지 확인하고 들어가."
사람들의 만류로 무룡은 일단 허리에 밧줄을 묶고 안에서 얼마나 버티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적안 오공의 영역으로 채 스무 걸음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면면불식이 외호흡에서 내호흡으로 전환했다. 무룡의 전신 혈도에 저장된 내공이 숨으로 변했다.
'공력의 양만 따지면 최소 갑자는 넘었겠구나.'
무룡은 계속 밧줄을 흔들어 자신이 멀쩡함을 알렸다. 그런데 채 일각도 안 되어 밖에서 밧줄을 당겼다.
"무슨 일 있어?"
멀쩡한 얼굴로 나타난 무룡을 본 오독교 사람들이 입을 쩍 벌리고 아무 말도 못 했다.
"이틀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
그제야 이들은 무룡에게 닭의 피와 오공을 산채로 가둘 대나무로 짠 기다란 통을 건넸다.
오공의 천적은 닭이다. 그래선지 적안 오공은 닭을 먹기 정말 좋아한다. 오독교는 볏이 하얀 수탉의 피로 적안 오공을 유혹하기로 했다.
'습하고 더운 곳.'
무룡은 손을 앞으로 뻗어 습도와 온도를 느끼며 방향을 정했다.
오공은 보통 세 가지가 있다.
홍두는 등이 검붉고 배가 옅은 붉은색을 띠며 다리가 노랗다. 덩치가 오공 중에서 가장 크며 독성도 최고로 강하다.
청두는 등과 다리가 푸르고 배는 옅은 푸른색을 띤다. 크기는 홍두의 절반밖에 안 되며 독성도 약한 편이다.
흑두는 등과 다리가 검고 배는 옅은 노란색이다. 덩치는 청두보다 작으며 독성은 홍두와 청두 사이에 있다.
적안 오공은 셋 모두에 속하지 않는다. 등과 다리는 물론 배까지 검은 놈인데 머리에 붉은 눈알이 두 개 달렸다고 한다.
흑두라기엔 덩치도 크고 독성도 강해 자기 영역의 독을 흩어버리려는 오독교 사람들 목숨을 수십 명 해쳤다.
'여긴가?'
책에서 본 오공이 좋아하는 환경과 비슷했다. 무룡은 술병을 꺼내 뚜껑을 연 다음 닭의 피 몇 방울을 떨궜다.
곧 수백 마리의 오공이 나타나 닭의 피에 주둥이를 갖다 댔다. 아쉽게도 길이가 이 척이나 되고 머리에 붉은 눈알이 달린 놈이 없었다.
그 뒤로도 허탕을 몇 번이나 쳤다.
'중심으로 가자.'
시야는 제한되었으나 발달한 감각으로 방향을 비슷하게 가늠할 수 있기에 헤매지 않고 영역의 중심으로 직행했다.
거기에서도 적안 오공을 찾지 못하면 밖으로 나가서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한참 걷다 보니 갑자기 시야가 밝아졌다.
'여긴가?'
오독이 없는 공간이 나타났다. 고개를 들어 보니 출발할 때는 분명히 동녘이던 해가 어느새 중천에 떴다.
무룡은 조심스럽게 오독이 없는 공간의 중심으로 갔다. 거기엔 이파리는커녕 가지조차 없는 이상한 나무가 하나 있었다.
무룡은 뚜껑을 열고 피를 몇 방울 떨궜다.
바로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선 무룡은 어느새 나타난 적안 오공의 모습을 살폈다.
듣던 것과 달리 길이는 이 척에 못 미쳤다. 잘 쳐줘야 일 척 하고도 반 정도 되어 보였다. 등과 다리는 숯처럼 광택이 없는 검은색이고 대가리로 짐작되는 곳에 빨간 점이 두 개 있었다.
무룡은 몇 걸음 더 뒤로 물러난 다음 대나무로 짠 통을 꺼냈다. 닭의 피를 잔뜩 묻힌 헝겊을 죽통 안에 넣고 바닥에 평평하게 눕혔다.
몇 방울 안 되는 피를 핥아 먹고 입맛을 다시던 오공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무룡은 오공이 완전히 죽통 안에 들어가기를 기다려 뚜껑을 닫아버렸다.
자신이 갇힌 걸 어떻게 알았는지 적안 오공이 스스 소리를 내며 성질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닭의 피를 먹는 걸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면 식욕이 무엇보다 우선인 것 같았다.
'조금 기다리라고 했지.'
무룡은 바로 죽통을 들지 않고 기다렸다.
과연, 닭의 피를 먹는 데 여념이 없으면서도 오공은 독을 분비해 자신을 가둔 죽통을 녹이려 했다.
그러나 죽통은 칙 소리와 함께 누런 연기만 뿜을 뿐 전혀 손상이 없었다. 적안 오공을 가두려고 특수한 약물로 처리한 덕분이다.
독이 소용없자 다급했는지 오공이 쥐처럼 찍찍 울었다. 무룡은 적안 오공이 더는 독을 분비하지 않는 걸 확인하고 죽통을 잡았다.
그때 발꿈치에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채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눈앞이 캄캄해지며 몸이 휘청였다.
무룡은 억지로 버티지 않고 그대로 넘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발꿈치를 문 다른 적안 오공을 발견했다.
'암수 한 쌍이었어.'
무룡의 발꿈치를 문 건 길이가 이 척인 적안 오공이었다.
오공은 번식기에 음식은 물론 물도 섭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볏이 하얀 닭의 피에도 수컷만 끌려왔다.
죽통에 갇힌 수컷이 찍찍거린 건 암컷에게 구해달라고 외친 것이었다.
무룡은 어지러움을 참고 손으로 오공을 잡았다. 그리고 왼손으로 죽통을 세게 흔들어 안에 든 수컷을 죽통 밑으로 떨군 다음 입으로 뚜껑을 열었다.
오른손으로 잡은 암컷을 죽통 안에 밀어 넣은 다음 닭의 피를 안으로 콸콸 부어버렸다. 바로 뚜껑을 닫으려고 했는데, 오공독으로 시야가 좁아져 뚜껑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다.
임기응변으로 닭의 피를 죽통 안에 다 부어버린 무룡은 왼손으로 죽통을 흔들고 오른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무룡에겐 참 다행이게도 죽통 안에서 암컷과 수컷이 한데 엉켰는데 밖으로 나오려는 암컷과 달리 수컷은 죽통 바닥에 고인 닭의 피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그렇게 식탐이 무엇보다 중요한 수컷이 암컷의 탈출을 방해한 덕분에 무룡은 뚜껑을 무사히 닫을 수 있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오공의 독은 난화봉의 화봉장처럼 무작정 뭉치는 게 아니라 뭉친 성질을 유지한 채 천천히 확산했다.
'자환기공이 방해받고 있다.'
영문은 모르지만, 마환기공 혹은 자하신공 중 하나가 방해를 받아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무룡은 가만히 누워 숨을 거칠게 쉬었다. 오독으로 덮여 호흡이 불가능한 곳에서도 면면불식으로 버텼는데 맑은 공기가 가득한 곳에서 오히려 숨이 가빴다.
'운기하자.'
단전을 잃고부터 마환기공의 운기가 절로 되었다. 그래서 그간 운기를 따로 한 적 없었는데 갑자기 어려움에 부닥치자 기본부터 떠올랐다.
무룡의 의지가 얹어지자 마환기공이 좀 더 강하게 움직였다. 꽤 단단히 뭉친 오공의 독을 망치로 때려 부순 다음 각개격파했다.
'자하신공이 방해받고 있어.'
운기하며 내면에 집중한 무룡은 뭐가 문젠지 알아챘다. 독을 빠른 속도로 이백사십이 개 혈도로 돌리며 마환기공을 지원해야 할 자하신공이 잠잠했다.
'맨날 계혼에게 너무 빠르게 경지를 높이면 안 된다고 말해놓고 정작 난 아니었구나.'
자하신공의 도움으로 경지를 빨리 올린 마환기공은 강한 독을 만나자 부족함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무룡아, 넌 여전히 너무 부족하구나.'
후회가 밀물처럼 몰려왔다.
마환기공도 자하신공도 절로 움직인 것이었기에 무룡이 어떻게 할 도리는 없었다. 그러나 빠르게 경지가 오른 마환기공 때문에 한 번쯤은 낭패를 볼 거라는 각오는 있어야 했고 대비책도 마련했어야 했다.
'뭘 믿고 이리도 오만했느냐.'
그간 꽤 치열하게 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노력이 부족했다. 해결해야 할 상대가 무려 마교도 수백 년 동안 어쩌지 못한 괴물인데 너무 안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을 해결하지 못하면 마교 손에서 추영과 아이를 구해야 하고, 그걸로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마교에 들키지 않도록 숨거나 추적을 피해 도주해야 한다.
이렇듯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을 해야 함에도 자신이 너무 느긋했다는 생각이 들어 자책했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자.'
무룡은 자책을 그만두고 마환기공의 운기에 집중했다. 다행히 그간 복용한 독과 비약 덕분에 내성이 강한 것과 오공독이 퍼지는 속도가 느린 덕분에 만회할 시간은 있었다.
자하신공의 도움 없이 고군분투하며 마환기공의 기초가 튼실하게 변했다. 마환기공이 조금씩 강해지며 여유가 생겨 면면불식이 다시 이어졌다.
면면불식으로 좋은 기운만 체내로 들이자 오공의 독에 저항하는 능력이 더 강해졌다.
복수화福隨禍 화장복禍藏福.
복에는 화가 따르고 화는 복을 품는다. 세상에 좋기만 한 일은 없고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
정신을 늦게 차렸다면 자칫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경각심을 키웠고 마환기공의 성취도 더 탄탄해졌다.
그러나 오공독을 해결한 무룡은 바로 떠나지 않았다.
'자하신공의 운기를 방해하는 뭔가가 있다. 혹시 자하괴독이랑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무룡은 면면불식으로 체내에 들어오는 기운을 느끼며 오독이 감히 침범하지 못한 영역을 돌아다녔다.
'이 나무에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반 시진을 살펴도 특이한 점을 찾기 어려웠다.
'아니면 말지 뭐.'
무룡은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으로 나무를 잡고 끙 힘을 줬다. 가지도 잎도 없는 괴이한 나무는 별 저항도 없이 쑥 뽑혔다.
'이거겠지?'
뿌리 끝에는 무룡의 주먹만 한 혹이 달려 있었다. 손으로 잡고 흔들어 속이 꽉 찬 덩이라는 걸 확인한 무룡은 비수로 혹만 잘라서 품에 넣었다.
'마환기공을 수련할 때 써먹어야겠다.'
일을 마친 무룡은 방향을 잡고 부지런히 달렸다. 비록 경공을 못 펼치지만,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쉬지 않고 달린 덕분에 채 한 시진도 안 걸려서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오독교 사람들은 무룡의 손에 들린 죽통을 확인하고 기쁨에 겨워 비명을 질렀다.
"호교장로 만세!"
"독성 만세!"
무룡이 걱정되어 울었는지 눈과 코가 빨개진 덕구가 선창하자 난화봉과 오독교 장로들도 만세를 불렀다.
- 작가의말
무룡과 적안 오공의 혈투! 그러나 현장에서 발견된 피는 유전자 감식 결과 닭의 것으로 밝혀져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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