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물교환
독은 어렵다.
인간이 내공을 발견한 건 삼천 년 전이다. 그러나 내공을 이용할 방법을 찾은 건 천 년도 안 됐고 체계화한 건 이백 년 전이다.
내공을 연구하는 과정에 몸을 여러 방식으로 자극하다가 외공이 생겼다. 외공은 내공보다 빠르게 체계화되었지만, 내공이 깊이 연구되고 널리 알려지면서 점차 외면을 받았다.
이렇듯 내공과 외공이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기까지 긴 시간이 흘렀다.
독은 내공보다 먼저 발견되고 사냥에 쓰였지만, 내공처럼 깊이 연구된 적이 없어 지금도 여전히 정립된 이론이 없다.
독은 활과 화살과 비슷하다.
한 번 쏜 화살은 회수하여 재사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촉이 망가지거나 대가 부러지거나 하여 대부분은 한 번 쓰고 버린다.
독 역시 한 번 쓰면 회수할 가능성이 작다. 독사나 전갈 등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면 회수가 가능하지만, 인간이 제작 혹은 가공한 독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일반적이다.
독이라는 큰 범주에서 볼 때, 뱀독은 화살이고 독은 활이다. 독이라는 활로 뱀독이라는 화살을 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기에 독은 활이기도 하고 화살이기도 하다.
활은 한 번 쓰고 망가지지 않지만, 화살은 대체로 일회용이다. 명궁이 되려면 활 수십 개를 부러뜨리고 화살 수만 대를 쏘아야 한다.
독을 연구하기도 어렵지만 연마하기가 더 어려운 이유다. 독이라는 활을 잡기도 어렵지만 화살을 구하는 것 역시 힘들다.
뱀독, 전갈독, 오공독, 섬여독, 벽호독. 대표적인 오독만 해도 크게 다섯이지만 안으로 파고들면 뱀독만 최소 수백 가지로 나뉜다.
활은 하나지만, 화살이 굵고 얇고 길고 짧고 무겁고 가볍고 제각각이어서 웬만큼 연습해서는 독이라는 활에 익숙해질 수 없다.
다행이라면 인간은 지식의 축적이라는 게 있어 문자와 언어로 후대에 선대의 지혜를 물려줄 수 있다. 덕분에 오독교 같은 단체는 직접 체험한 것 이상으로 독에 대한 지식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여기서는 침을 이만큼 꽂은 다음 살짝 뽑아줘야 해. 민감한 혈도여서 계속 침을 꽂아두면 오히려 병이 생길 수 있어. 그래서 한 번 찔러준 다음 뽑아서 침을 혈도 근처에 두고 위협만 하는 거지. 위협을 받은 혈도가 활발히 움직이면 몸이 허약해서 기운이 없는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둔감한 혈도는 침을 꽂아두고 실질적으로 위협해야 한다. 그러나 민감한 혈도는 지속적인 위협에 폭주하여 오히려 병을 만들 수 있기에 찌른 다음 근처에 두고 위협만 가해야 한다.
자신을 한 번 찌른 침이 근처에 있으면 혈도는 불안을 느끼게 되고, 그 불안감으로 주변의 기운을 모아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단전보다는 아니지만, 모든 혈도는 기운을 쌓아두려는 본능이 있다. 위협을 받은 혈도가 주변으로부터 기운을 모으면 주변 혈도들이 거기에 반응한다.
뺏기기 싫은 혈도들이 힘을 써서 자기 기운을 지키노라면 자연스럽게 주변 기운을 모으게 된다.
그렇게 정확한 혈도를 자극하여 원하는 혈도들이 활동하게 하는 것으로 아픈 증상을 완화하고 한발 더 나아가서 치료하는 게 침술이다.
"좋아. 훌륭한 강의였다. 덕구는 호교장로에게 적혈사의 독을 내주어라."
덕구의 입을 통해 오독교가 보유한 독 중에 독무곡에서 만든 음양강수보다 더 강한 놈이 없음을 알아냈다.
무룡은 낙심하지 않고 두 가지 해결책을 찾아냈다.
하나는 독을 공부하여 음양강수를 강화하는 방법을 얻는 것이다. 하나는 강해져서 추영과 아이를 마교의 마수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두 가지 해결책은 같은 방향으로 통했다. 무룡이 당장 강해지는 방법은 역시 독을 배우는 것이다.
독을 무기로 써도 좋고, 독을 연구하다 단전을 회복할 방법을 찾아도 좋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오독교의 지식은 문자보다 언어로 전해진다. 무감정한 책과 달리 인간의 입으로 지식을 들으려면 뭔가를 내줘야 한다.
더 안타까운 건 외부와 근절된 오독교에선 무룡의 품에 있는 은자 오십 냥의 가치가 그리 대단하지 않다.
무룡은 자신의 침술과 의술을 가르치는 거로 오독교의 독을 배우기로 했고 교주 난화봉과 벌인 협상에 성공했다.
무룡은 덕구한테서 받은 적혈사의 독을 바로 입에 털어 넣었다.
'확산이 빠르고 체액과 혈액에 잘 녹는다. 심장을 비롯한 장기를 공격하여 몸을 약하게 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다.'
그간 쌓은 지식으로 무룡은 적혈사의 독을 빠르게 분석했다.
'신경독의 성질은 전혀 없는 것 같고, 혈액독으로 분류할 수 있겠구나.'
신경神經은 정기신 중에 신이 지나는 곳으로 알려진 신비한 경맥이다. 기가 흐르는 경맥은 수련에 따라 흐름을 바꿀 수도 있지만, 신경은 아니다.
다친 혈도는 치료와 단련으로 회복할 수도 있지만, 손상된 신경은 영원히 되살리지 못한다.
신경독은 마비 혹은 혼절을 유발해 무력화하는 대신 살상력은 부족하다. 그러나 독이라는 게 그렇게 깔끔한 존재가 아니어서 대부분 생물독은 여러 가지 성질을 복합적으로 지녔다.
'약한 존재일수록 혈액독의 비중이 높고 강한 존재는 신경독이 많다. 상대를 죽여야 먹을 수 있는 놈과 저항 능력만 없으면 먹을 수 있는 놈의 차이다.'
정해진 일과를 마친 무룡은 오독장의 연구에 몰입했다.
그냥 몸으로 익히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내공을 운기 할 수 없는 무룡은 머리 아프게 구결을 들여다보며 상상해야 했다.
오독장의 초기 단계는 내공으로 독을 감싸 몸에 저장하고 장법을 펼칠 때 꺼내 쓴다. 자칫 충격으로 내공이 흔들리면 독이 발작해 본인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단계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독을 나눠 저장한다. 독을 작은 덩어리로 나눠서 저장하면 실수로 한둘이 발작하더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중급 단계에 이르면 독을 분해하여 저장한다. 독을 무해한 여러 성분으로 분리하여 몸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 조합해 사용한다.
독을 분해하는 데 지식과 감각이 필요하고 분해한 성분을 저장하는 것도 일이어서 중급 단계에 이른 자가 드물다.
실수로 일부 성분이 몸에 흡수되면 정작 필요할 때 독을 조합할 수 없는 약점도 있다.
고급 단계는 난화봉의 화봉장처럼 임의로 성분들을 조합해 자신만의 독을 만든다.
조합 방법을 알려줘도 쉽게 따라 할 수 없기에 구결 따위도 없이 본인의 재능과 노력으로 어두운 길을 더듬어 나가야 한다.
어차피 익힐 수 없는 무룡이기에 주로 고급 단계를 연구했다.
오독교는 중급 단계의 독을 분해하는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독을 미리 분리하여 따로 흡수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모든 독은 아니지만, 흔한 독은 대부분 끓이고 식히는 과정을 통해 여러 성분으로 나눌 수 있다.
무룡은 그렇게 분리한 성분들을 조합하는 거로 여러 성질의 독을 만들어 연구하며 음양강수를 강화할 방법을 찾으려 했다.
"독성. 뭐 새로운 발견이 있습니까?"
덕구가 붓과 종이를 들고 질문했다. 첫인상과 달리 덕구는 독무곡에 몇 없는 중급 단계에 이른 고수다. 그리고 그런 고수 중에서 유일하게 글을 배운 자다.
심지어 교주인 난화봉마저 자기 이름조차 못 쓰는 독무곡에선 독보적인 석학이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걸 일곱과 둘과 하나 비율로 섞으니 몸에 넓게 퍼질 때까지 독을 느끼기 어려웠다."
"어느 놈의 역할일까요?"
"둘의 역할인 것 같구나."
오독교는 대부분 사람의 수명이 채 사십도 안 되는 곳이다.
독이란 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몸을 야금야금 축낼 수밖에 없다. 난화봉처럼 스물도 안 된 나이에 오독장을 고급 단계까지 익혀내면 몰라도, 대부분 사람은 겉만 건강하고 속은 골병이 들었다.
그래서 장로라고 해도 이립을 겨우 넘긴 자들이 많고, 교에서 꽤 높은 지위인 덕구 역시 난화봉의 아버지뻘로 생각했던 게 무안하게 무룡보다도 어렸다.
이들에게 오독불침과 백독불침을 넘어 만독불침으로 추측되는 무룡의 존재는 구원과 같았다.
오독불침은 물론 백독불침도 독이 몸을 해치는 걸 완전히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백독불침을 뛰어넘은 만독불침의 경지가 진짜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독교 사람들에겐 큰 희망을 준다.
그리고 무룡의 침술은 몸을 건강하게 바꿔 독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거로 오독교 사람들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
그런 존재가 독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겠다고 하니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독교는 석학인 덕구를 곁에 붙여 무룡의 연구를 돕게 하고 분해한 성분을 무제한으로 제공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반년이 되었다.
'슬슬 떠나야겠구나.'
오독교는 주로 오독을 다룬다. 그러나 오독의 하나인 뱀만 해도 수백 가지 독이 있다. 하나로 뭉뚱그리는 전갈의 독도 세세한 차이를 따지면 수천 가지가 된다.
덕분에 무룡은 독에 대해 넓게 배우고 깊이 연구할 수 있었다.
'오독신충을 잡아야 해.'
음양강수를 강화할 방법은 이론뿐이지만 무룡은 꽤 확신을 가졌다.
만나고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 몇 명 없다는 검은 전갈, 오독교 사람들도 발길을 절대 안 하는 깊은 늪지에 사는 붉은 뱀, 소청룡으로 불리는 푸른 벽호를 먹이로 삼는 하얀 벽호, 얼핏 청개구리로 오해할 수도 있는 푸른 섬여, 나무와 사체가 썩으며 생긴 오독汚毒이 가득해 시야조차 불분명한 오지汚地에서 사는 적안 오공.
이 다섯의 독을 얻어 분해한 후 필요한 성분을 얻으면 음양강수의 부식성을 몇 배로 강화할 수 있다.
'침술 밑천도 다 털렸고.'
무룡의 침술은 기본이 탄탄하고 전장에서 꽤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필경 배운 시일이 짧고 본인도 깊이 연구하지 않았기에 더 가르칠 게 남지 않았다.
"교주께 뵙자고 전해라."
난화봉의 교주전은 교주 외에 덕구만 출입할 수 있다. 그래서 난화봉을 찾을 때면 늘 덕구가 안으로 들어가 말을 전했다.
"무슨 일입니까?"
"오독신충을 잡아 연구해야 할 것 같구나."
무룡의 말에 덕구는 기쁜 얼굴로 난화봉이 있는 교주전으로 달려갔다.
- 작가의말
침술에 관해 아는 게 없습니다. 침술 관련 내용은 제 나름대로 상상한 겁니다. 너무 그럴듯해서 진짜로 여기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독장에 관한 설정을 풀었습니다. 독과 오독장을 익히기 어려운 이유는 수련 환경을 조성하기 어렵고 수련 과정에 죽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오독교처럼 오랜 기간 연구하여 비교적 안전한 방법을 찾은 단체가 아니면 독을 배우고 연구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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