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환신공
자하신공은 아주 특이한 무공이다.
대부분 심법은 단전에서 여러 갈래의 내공이 나가 각각 다른 경로로 흐른 다음 단전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자질이 부족하면 아예 익히기조차 어렵다.
여기에서 자질은 운기에 필요한 감각과 여러 갈래의 내공을 동시에 돌리는 집중력 등을 말한다. 심법 수련이 가장 큰 효과를 얻으려면 내공들이 함께 출발해 동시에 단전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단전에 큰 자극이 되고, 자극을 받아 단련된 단전이 더 많은 내공을 품고 뱉으며 가까운 혈도부터 단련한다.
단전을 최대한 자극하고 가까운 혈도부터 조금씩 강해지며 전신 혈도를 단련하는 게 대부분 심법의 방식이다.
자하신공은 아니다.
단전에서 출발한 기운은 이백사십이 개 혈도를 차례로 경유하여 단전으로 돌아온다.
입문 자체가 어려운 건 여타 심법과 똑같다. 시작부터 내공을 제어하여 이백사십이 개 혈도를 순서대로 지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입문이 어려운 대신, 일단 운기에 성공하면 그다음부터는 그저 시간만 필요하다.
초반의 고생으로 운기의 길을 만들면 굳이 여러 갈래의 내공을 제어하는 대부분 심법처럼 집중할 필요가 없다. 단전에서 출발한 내공이 딱 정해진 시각에 돌아오지 않아도 되기에 굳이 감각이 뛰어나지 않아도 된다.
웬만해선 입문조차 어렵지만, 운 좋게 성공하면 그 뒤로는 탄탄대로인 자하신공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하신공은 내공을 한 갈래만 운용한다. 그래서 일 단계를 익힌 무룡의 내공이 신공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적었고 위력도 평범했다.
웬만한 고수들이 장법을 펼칠 때 최소 세 갈래 내공이 단전에서 출발해 다른 경로를 통해 손바닥까지 간다. 셋 중 하나만 손바닥에 도착해도 무공을 펼치는 데 지장이 없고, 셋 다 도착하면 장법의 위력이 강화된다.
그러나 자하신공은 자칫 운기에 실패하면 단전의 내공이 손으로 가지 않아 야심 차게 펼친 공격이 평범한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
최소 오 단계 이상은 되어야 진정한 위력이 나오는 무공이 자하신공이다. 노혼의 자질이 훨씬 뛰어나다고 하지만, 화진악이 오 단계 이상으로 익혔다면 노혼에게 화산제일검 자리를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자하신공이 마환기공과 만났다.
마환기공은 전형적인 외공 수련법을 따르지만, 수련 초반부터 운기해야 하는 내수형內修型 외공이다.
약물이나 매를 견디는 것으로 혈도를 자극해 점차 강해지는 대부분 외공과 달리, 처음부터 내공이 있어야 수련할 수 있다.
처음엔 의도적으로 운기해야 하지만, 자주 맞다 보면 혈도들이 알아서 타격을 주변으로 분산한다.
즉, 마환기공은 한 갈래 내공만 운영하는 자하신공과 달리 모든 혈도가 단전인 것처럼 주변 혈도로 타격을 나눈다.
나누는 게 내공이 아닌 외부나 내부에서 온 타격이긴 하지만, 몽둥이나 채찍으로 후리든 독이든 내가 중수법이든 기운으로 볼 수 있다.
단전을 잃고 마환기공에 합류했던 자하신공이 생명의 위협을 마주하고 제대로 힘을 합쳤다.
무룡의 몸을 해치려는 기운을 자하신공이 혈도들을 통해 돌렸다. 그러나 그저 돌리는 게 아니라 마환기공의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주변으로 분산했다.
그렇게 분산한 독을 견디지 못한 혈도들이 일부는 주변으로 분산하고 일부는 무작정 토했다. 혈도들이 토한 독은 다시 자하신공의 운기 경로에 합류했다가 또 주변 혈도들에 분산되었다.
동시에 마환기공이 독의 일부를 내공으로 전환해 힘겹게 싸우는 혈도들에 공급했다.
'안 죽었어.'
가류는 흥분으로 손발을 부르르 떨며 무룡을 지켜봤다.
이 약을 만드는 방법은 가류가 천방기사天方奇士라는 사람으로부터 얻어냈다.
이 대단한 약은 체질에 따라 추가하거나 빼는 것들이 있고 일부 재료도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간 가류는 독성이 조금 약한 재료들로 환골탈태역근세수비약을 여러 번 만들어 제자들에게 먹여 실험했다.
그 결과를 갖고 천방기사와 함께 고민하며 만든 게 지금 이 약이다. 천방기사는 성공을 오 할로 점치는 동시에 더 나은 약을 만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몸이 노쇠해지는 느낌이 든 가류는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생각에 대대적으로 재료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끝내 오매불망 꿈에도 그리던 약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침에 발견한 이상한 자국으로 변덕이 생겨 무룡에게 절반을 마시게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양을 충분히 만들었기에 남은 절반으로도 넉넉하다.
'몸이 죽었다가 살아나기를 반복하고 있어.'
자하신공과 마환기공이 동시에 작용하는 바람에 무룡의 몸은 현재 난장판 그 자체였다. 마구 날뛰는 독을 자하신공이 휘어잡아 운기 경로로 돌리고, 그런 독을 마환기공이 몸 전체에 끊임없이 분산했다.
그러나 독을 감당하기 힘든 혈도들이 주변 혈도들에 독을 일부 보내고 대부분은 무작정 토해냈다.
토해진 독들이 또 날뛰고 자하신공이 또 독들을 끌어오고.
그래서 가류는 무룡의 몸에 있는 기운들이 사실 아주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빛, 빛이 난다.'
아무리 자하신공과 마환기공이 대단하다고 해도 비약이 품은 힘에 대응할 수 없다. 수백 가지 약과 독을 섞어 사람의 몸을 아주 교묘하게 죽이도록 만든 약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근원을 지키고 죽은 몸을 다시 살리는 효과도 있다.
인간의 정기신이 머무르는 상단전과 중단전과 하단전을 약의 기운이 보호했다. 그런데 하단전이 사라져서 상단전과 중단전만 지키면 되었다.
무룡의 영대靈臺와 장심藏深에서 자색의 불이 활활 타올랐다.
셋 중 하나만 못 지켜도 실패하는 약이다. 그래서 실패 확률이 구 할에 가까운 거다. 정확히 계산하자면 실패할 확률이 팔 할 칠 푼 오 리다.
그리고 이건 단지 계산일 뿐이고, 체질까지 고려하면 거의 십 할 죽는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무룡은 상단전과 중단전만 지키면 되기에 실패할 확률이 칠 할 오 푼에 머물렀다.
그리고 단순한 계산과 달리 셋을 지켜야 할 힘이 둘만 지키면 되기에 성공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조금만, 조금만 더 지켜보자.'
자하신공과 마환기공, 사라진 하단전, 보기 드물게 튼튼한 몸. 그간 가류의 채찍질과 다양한 독으로 잘 단련된 전신 혈도, 좋은 기운만 몸에 들이는 면면불식.
이러한 것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무룡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줬다. 그러나 사정을 전혀 모르는 가류는 자신도 빨리 비약을 마시고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고 싶었다.
'확신이 서면 그때 마시자. 급하면 안 돼.'
가류는 자신을 계속 달래며 단지로 향하는 눈길을 무룡에게 잡아뒀다.
비약의 독은 그냥 독이 아니다. 사람의 몸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철저하게 죽인 다음 역순으로 하나씩 살려내 환골탈태를 이루도록 정성 들여 설계한 대단한 물건이다.
그런 대단한 상대와 싸우다 보니 마환기공의 성취가 빠르게 상승했다. 그렇게 성장한 마환기공을 자하신공이 드디어 인정했다.
자하신공과 마환기공이 진정한 하나로 결합했다. 여전히 서로 성질이 다르지만, 각자 역할을 분담해 하나처럼 움직였다.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룬 자하신공에서 시냇물처럼 작은 가지들이 수없이 뻗어 나갔다. 그렇게 뻗은 가지들이 또 가지를 뻗어 무수한 실개천을 만들었다.
전형적인 단전의 기운을 전신으로 보내는 외공의 형태다.
그러나 자하신공은 내공 심법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몸속에서 제멋대로 흘러 다니거나 혈도들이 꽉 잡아두지 못한 기운들을 뺏었다.
그러나 뺏은 기운을 단전으로 보내지 못하고 그저 순환할 수밖에 없었고, 마환기공이 외공답게 자하신공의 기운을 전신으로 분산했다.
내공과 외공이 모두 경지에 이르러야 보일 수 있는 모습이며, 삼화취정이나 오기조원과 마찬가지로 대단하게 여겨지는 백화쟁염百花爭艶의 경지다.
정기신의 삼화가 하나가 되는 삼화취정이나 오행의 기운이 절대적 균형을 이루는 오기조원과 달리 백화쟁염은 오히려 통합이 아닌 분산으로 간다.
몸의 혈도 하나하나가 강해져 외공으로는 등봉조극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순수한 육체적 경지여서 깨달음이 필요한 삼화취정이나 오기조원보다 낮게 평가받지만, 대단하고 희귀한 경지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영대와 장심을 자색 불로 보호하며 무룡의 몸이 죽었다 살아나기를 무수히 반복했다. 그 과정에 바르지 못한 것들이 교정되고 넘치는 부분이 덜어지며 부족한 부분이 채워졌다.
꼬박 사흘이 지나서 무룡이 눈을 떴을 땐 흘궁을 비롯한 제자들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통곡하고 있었다.
"뭐야?"
무룡이 입을 열어 말하자 제자들이 화들짝 놀라 발버둥을 치며 무룡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사부는?"
혹시 어디서 듣고 있을지도 몰라 가류라고 칭하지 않고 조심했다.
"귀신 아니지?"
흘궁이 질문했다. 언젠가부터 꼬박꼬박 존칭을 사용했는데 놀란 나머지 예전처럼 편하게 말했다.
"왜 귀신이라고 생각해?"
"네 심장이 멈췄고 사부가 약을 들고 사라졌다."
무룡은 오른손을 들어 자기 심장 부위에 댔다. 느리지만 힘 있는 심장의 고동이 느껴졌다.
"환골탈태는 아닌가 보네?"
몸에 내공이 넘치지만, 단전은 여전히 허전했다. 진짜 환골탈태라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기에 단전도 복구되어야 한다.
"맞아. 사형 얼굴의 상처가 다 사라졌어."
손으로 만지니 얼굴이 매끈했다. 큰 흉터가 진 명치도 아기 살결처럼 보드라웠다. 잘하면 수련으로 단전을 다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며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지금 웃을 때야?"
흘궁의 핀잔에 무룡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렇지. 빨리 사부 행방을 찾자."
밖으로 우르르 나간 일행은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가류의 행방을 물었다. 연공실로 들어간 것 같다는 말에 은밀한 곳으로 가서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다.
"그간 모은 재물을 들고 도망치자."
"아니야. 그간 키운 약초와 독초들이 아깝지도 않아?"
"목숨이 훨씬 아깝지."
무룡이 일행을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내가 살았다는 건 독인이 든 부분을 가류가 먹었다는 거야. 그리고 난 특별한 외공을 익혀서 독에 내성이 강해."
결정은 쉬웠다.
"연공실로 가서 확인하자. 숨이 붙어있다면 우리가 끊는다."
- 작가의말
단전이 씨앗도 뿌리도 없이 깔끔하게 사라진 덕에 무룡은 환골탈태역근세수비약을 먹고도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아랫글은 이과만 보시기 바랍니다. 문과를 위해 준비한 출구는 왼손편에 있습니다.
상단전이 멀쩡할 확률 50%, 중단전이 멀쩡할 확률 50%, 하단전이 멀쩡할 확률 50%.
이 셋을 곱하면 전부 멀쩡할 확률이 12.5%로 나옵니다. 즉, 죽을 확률이 87.5%입니다.
그러나 세 단전을 보호했다고 하더라도 몸이 멀쩡할 확률이 50%.
결국 목숨을 부지할 확률은 6.25%밖에 안 됩니다.
무룡은 상단전이 멀쩡할 확률 50%, 중단전이 멀쩡할 확률 50%.
수학적으로 25% 확률로 멀쩡합니다. 그러나 세 단전에 1씩 가야 할 기운이 둘로 나뉘었기에 1.5씩 가게 되었습니다.
살아날 확률이 50% 정도 커져서 상단전이 멀쩡할 확률이 75%, 중단전이 멀쩡할 확률이 75%입니다.
무룡이 살아날 확률은 순식간에 56.25%로 커졌습니다.
거기에 자환신공 덕분에 몸이 멀쩡할 확률이 100%.
가류가 수십 년 고생해 연구하여 자기 체질에 맞춰 지은 약인데 무룡의 생존 확률이 오히려 가류보다 조금 높습니다.
무룡이 이 글의 주인공이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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