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난진
"예두야, 저 모자란 년들이 엄마를 바보로 아는 것 같지?"
추향은 예두의 머리에 볼을 마구 비볐다.
"컹."
늑대로 태어나서 인간의 말을 하는 건 어렵다. 그런데 알에서 나기 전부터 부모와 떨어졌고 진법에 갇혀 세상과 격리된 공간에서 태어났기에 요괴의 말도 전혀 모른다.
명황성의 요괴가 세상에 풀려난다면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요괴의 말을 깨닫겠지만, 지금은 도무지 말을 익힐 방법이 없다.
그래서 웬만한 인간을 훨씬 상회하는 똑똑한 머리를 지녔음에도 간단하게 짖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그럼 괴뢰술傀儡術을 펼쳐 저들을 속여야겠다."
괴산이노가 돌로 만든 인형을 다루는 법술도 크게 괴뢰술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추향은 둘의 잡스러운 재주와 달리 정통 괴뢰술을 익혔다.
"털 몇 개 빌리자."
음양오행의 기운을 듬뿍 타고 태어난 예두의 털을 첨가하면 실패할 법술도 성공하고, 성공한 법술은 더 훌륭해진다.
예두는 자신의 아름다운 털이 뽑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추향이 하려는 놀이가 재밌어 보여 마지못해 수긍했다.
추향은 잘 깎은 목각 인형에 붓으로 그림을 그린 다음 자기 몸에 마구 비벼 냄새를 묻혔다. 비록 자신을 유인하는 현녀문 제자들을 멍청이라고 놀리긴 했지만, 추호도 얕보는 마음이 없었다.
냄새를 정성껏 묻힌 다음엔 정성을 한껏 들여 색칠했다. 색이 풍부할수록 많은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
색칠까지 끝낸 다음엔 부적을 붙였다. 시중에서 쉽게 보는 싸구려 부적이 아니라 금을 비롯해 온갖 귀한 금속을 얇게 펴서 만든 귀한 놈들이었다.
부적까지 다 붙인 다음엔 인형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침을 꽂은 채 시를 읊고 노래도 불렀다. 모르고 보면 미친년으로 의심할 행동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각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법술을 펼쳤다.
목각 인형이 꿈틀거리더니 채 반 각도 안 되어 추향이 되었다.
"어머, 너 이쁘다."
목각 인형이 말했다.
"콧소리 좀 빼. 재수 없어."
추향이 타박했다. 종속 관계가 확실하기에 목각 인형은 추향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랐다.
말투, 행동, 표정 등을 일일이 교정한 추향은 목각 인형을 은성진 밖으로 내보냈다.
밖으로 나간 목각 인형은 숨은 채 자신을 감시하는 현녀문 제자들이 있는 곳을 향해 손으로 욕했다.
아쉽게도 마교에서만 쓰는 욕이어서 현녀문 제자들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더는 안 속아."
말을 마친 목각 인형이 경공을 펼쳐 도망쳤다. 기겁한 현녀문 제자들이 호각을 불어 사람을 모았다.
은성진에 몸을 숨긴 추향은 눈을 꼭 감고 모든 감각을 목각 인형에 집중했다. 덕분에 실력이 추향보다 훨씬 못한 목각 인형이지만, 거의 반 시진이 지나서야 현녀문 제자들에게 잡혔다.
"네 강아지는?"
찰싹.
성급하게 질문한 현녀문 제자가 덩치가 웬만한 사내보다 우람한 노파한테 따귀를 맞았다.
"오호. 노리는 게 내가 아니라 강아지구나. 덕분에 좋은 걸 알았네? 진짜 고마워."
목각 인형이 약을 한껏 올린 덕분에 기밀을 누설한 현녀문 제자는 따귀를 몇 대 더 맞아야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구나. 네 강아지는 어디 있느냐?"
"내게 남은 마지막 무기인데 쉽게 말할 것 같아?"
목각 인형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팔다리를 묶인 건 기본이고, 혈도도 수십 개나 점혈 당했다. 게다가 봉혈침도 여덟 개나 꽂아 검극이어도 빠져나갈 틈이 없을 것이다.
"이쁜 아이구나."
얼핏 보기엔 젊으나 자세히 보면 나이가 확연히 보이는 여자였다. 이쁜 얼굴이라고 할 순 없지만, 무척이나 단정하여 좋은 집안에서 좋은 것만 보고 자란 여자로 보였다.
"네 입을 열 방법이 우리한텐 최소 백 가지가 있다. 그런데 그런 자연스럽지 못한 방법은 늘 후유증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너는 총명한 아이니까 내 말이 협박이 아닌 걸 알 거야."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천방기사의 제자라고 해서 재기가 넘칠 걸 기대했는데, 사람 실망케 하는구나."
"쌤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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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향의 괴뢰술이 대단하다곤 하지만, 재료가 최상이 아니다. 그래서 추향은 목각 인형을 만들 때 성격을 조금 단순하게 정했다.
잡힌 게 진짜 추향이라면 훨씬 재치 있게 대응했을 텐데, 목각 인형은 뭔가 불리하면 감정적으로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마교에 난 추향의 소문도 그러해서 현녀문의 의심은 받지 않았다. 정작 추향으로선 이게 기뻐할 일인지 고민됐지만.
"평가 수정. 멍청함에서 약간 멍청함으로."
현녀문은 가짜 추향을 데리고 떠나며 일부 인원을 몰래 남겼다. 예두의 행방을 찾는지 아니면 추향의 진위를 의심해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허술한 조직이 아님은 확실했다.
"그런다고 내가 곤란한 일은 없고."
추향은 예두와 장난치며 즐겁게 지냈다. 어차피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목각 인형의 기척을 느끼기에 현녀문을 찾는 일은 문제없다.
외려 밖에 숨어서 예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현녀문 제자들이 훨씬 조급함을 느꼈다.
"대충 만들었다고 기분 나빠?"
추향은 이번엔 돌을 깎아 예두를 만들었다. 그러나 추향과 달리 부적도 평범한 걸 쓰고 제작 과정에 많은 정성을 들이지도 않았다.
"잡히기 전에 사라져야 하니까 이렇게 만든 거야. 이후 좋은 재료 있으면 예두 동생 하나 만들어 줄게. 약속."
'이후 좋은 재료 있으면'이라는 단서를 붙여 약속을 어길 경우까지 치밀하게 대비하면서 예두의 기분을 풀어준 추향은 가짜 예두를 밖으로 내보냈다.
예두가 나타나자마자 현녀문 제자들이 번개같이 달려왔다. 비록 하나같이 강호에서도 보기 드문 고수지만, 며칠 잠을 못 잔 탓에 얼굴에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보통 새벽이 가장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피곤한 자들에겐 정오가 지난 이 시각이 훨씬 노곤하지."
가짜 예두는 웬만한 경공 고수 부럽지 않은 몸짓으로 도망쳤다. 평소라면 진짜도 아닌 가짜가 포위망을 뚫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현녀문 제자들이 정신적으로 피로한 상태여서 틈이 꽤 컸다.
추향은 온정신을 집중해 가짜 예두를 조종하여 포위망을 뚫은 다음 근처의 큰 강으로 무작정 달리게 했다.
"잡아."
예두와 가까운 자들은 이를 악물고 경공을 펼쳤고 멀리 있는 자들은 발을 구르며 소리 질렀다. 예두와 추향을 잡는 일에 아주 큰 상이 걸렸기에 이들은 목숨마저 걸 각오가 있었다.
그러나 세상일이 각오로만 되면 불행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쏜살같이 달려서 강에 뛰어든 예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괴뢰술이 풀린 가짜 예두가 그냥 돌이 되어 강에 가라앉은 탓이다. 만약 현녀문 제자들이 의심해서 강바닥을 훑었다면 여전히 그림이 남아 있는 돌을 찾아내 속았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상에 눈이 멀어 그저 예두를 찾는 데 집중하느라 사람 손으로 깎아 형태가 자연스럽지 못한 돌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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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향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은 천수천안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비록 오행수를 놓쳤다는 말이 있었지만, 천수천안에겐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그림자들을 소집해 좋은 소식을 전한 천수천안은 오랜만에 명해冥海를 떠나 현녀문이 있는 부유도로 날아갔다.
'잠깐. 뭔가 놓친 게 있는데?'
오랜만에 하는 바깥나들이에 감상적으로 변했던 천안천수는 뭔가 중요한 걸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일이 연속으로 틀어지면서 머리가 복잡했기에 뭘 놓쳤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진짜 중요한 거였으면 생각났겠지. 별거 아닌가 보다.'
별거 아닌 일은 다름 아닌 화무룡과 사마귀였다. 실패한 후 급히 제단이 있는 방을 떠나서 그림자를 소집했고, 그 후엔 현녀문에게 추향과 예두를 잡으라고 지시하고 중원의 세력들을 움직여 마교를 압박하는 일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
그래서 둘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화무룡은 감롱에 갇혔고 사마귀는 만년한철을 단조한 법보로 묶었기에 은연중 괜찮다고 여겨서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수천 년을 산 요괴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버릴수록 강해진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사마귀가 신나게 염천공의 기운으로 사슬을 녹였다. 심지어 검극마저 기탄하는 오살공을 잃었는데 오히려 더 강해졌다.
객관적으론 오살공이 훨씬 강하지만, 사마귀의 체질이 안 맞고 경지도 부족하여 모든 위력을 내지 못했다. 더구나 사마귀와 오살공의 마음이 맞아야만 위력이 나던 때와 달리, 지금은 마사귀의 제어에 따라 무공이 펼쳐지기에 강약 조절이 가능했다.
"그런데 넌 이런 건 어떻게 알았어?"
염천공으로 사슬을 달군 다음, 빙천공氷川功으로 급히 식혔다. 아무리 손날에 내공을 실어 내리쳐도 끄떡없던 사슬에서 깡 소리가 났다.
"너도 책 많이 읽었다며?"
"읽긴 했지. 그런데 이런 건 없던데."
"마교에는 야장이 없어? 뜨거운 물건을 급히 식히면 쉽게 부러진다는 건 상식인데."
사마귀는 사슬의 한 고리만 달궜다 식히기를 반복하며 약해지게 했다.
"그런데 빙천공은 언제 배웠어? 그건 천산옹의 독문절기잖아."
"예전에 천산옹 손녀랑 혼담이 오간 적 있어. 서로 예물도 교환했는데, 정의연이 쳐들어오면서 흐지부지 끝났지. 그때 이겼으면 나도 이쁜 마누라 엉덩이 두드리며 살았을 텐데."
정의연의 소맹주가 되어 마교를 침공했고 오살공을 억제하느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사마귀를 혼절까지 몰아갔던 화무룡이 사마귀의 눈을 피했다.
"그때 예물로 받은 게 빙천공이었어. 천산옹의 한빙장寒氷掌보단 못하지만, 익힌 자의 응용에 따라선 훨씬 위력이 클지도 모르는 그런 무공이지."
한빙장은 냉기를 아주 강하게 뭉칠 수 있다. 그러나 빙천공은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한빙장이 빙천공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지만, 펼치는 자의 내공만 받쳐 주면 순환을 이뤄 한빙장과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일 수 있다.
"무공으로선 몰라도 쓸모는 확실히 한빙장보다 큰 거 같다."
만약 한빙장을 익혔다면 사슬을 달구고 식힌 후 내공을 회복하려고 한참 쉬어야 했다. 그러나 순환만 이루면 내공 소모가 극히 적은 빙천공이기에 거의 쉬지 않고 사슬을 달구고 식힐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그 감롱인데."
사슬의 고리가 약해짐에 따라 사슬에 실린 법력이 조금씩 소실됐다. 법력이 일정 정도 소실되면 법보가 아닌 그냥 만년 한철로 만든 쇠사슬이 된다.
그때가 되면 사마귀는 내공으로 사슬을 찢어 속박을 벗어날 수 있다.
"네가 열쇠를 찾아야지. 그간 봐온 천수천안이라면 열쇠가 분명히 이 안에 있다. 놈은 기억력이 좋지 않아 물건을 짝을 지어 두는 습관이 있거든."
- 작가의말
以假亂鎭 - 가짜를 진짜처럼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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