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랑황작
바다로 뛰어든 추영과 무룡은 바로 입을 맞췄다. 신혼이라 너무 애틋해서가 아니라 추영이 가의신공으로 대부분 내공을 잃은 바람에 면면불식으로 물속에서 호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엔 추영이 자신의 숨을 나눠 무룡을 구했는데 이젠 그 반대가 되었다.
둘은 일심동체가 되어 발로 물을 차며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다 물길을 탐색하는 중에 묶어둔 밧줄을 발견했다.
둘은 밧줄을 잡고 세찬 물살에 저항하며 전진했다. 겨우 삼십 장도 안 되는 거리지만, 둘에겐 삼십 리처럼 느껴졌다.
'추영의 희생이 참으로 크구나.'
천애고도로 갈 때 훨씬 긴 시간을 추영의 내공으로 둘이 버텼다. 그런데 무룡은 벌써 힘에 부쳤다. 면면불식의 화후가 부족한 것도 분명히 있지만, 자하신공 일 단계를 이루고도 내공이 그때의 추영보다 훨씬 적은 탓이다.
그래도 용케 버텨 다시 배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배에 오른 둘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천산자가 있던 방향을 살폈다.
워낙 욕심이 많은 늙은이어서 둘이 살아있는 걸 알면 배를 돌려 찾아올지도 모른다.
다행히 천산자를 태운 배는 제멋대로인 물길에 쓸려 이미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갔다. 유속이 빨라 배의 속도가 빠른 것도 있지만, 바위섬이 많고 안개도 심해 시야에 제한이 컸다.
"낭군은 하늘이 절 구원하라고 내려보낸 신인神人 같습니다."
추영이 눈물을 흘렸다.
도주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때도 마음 한구석은 늘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마교가 귀한 벽력탄으로 진법을 파훼하면서까지 자신을 쫓아올 때는 한 점 희망도 볼 수 없는 암흑이었다.
그런데 점혈하고 묶어두기까지 한 무룡이 나타났고, 섣불리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니라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까지 참다가 등장해서 판세를 뒤집었다.
한 수 만에 검이 부서지고 천산자의 판관필에 죽을 운명이었지만, 출현 자체로 생로를 열었다. 추영은 자하동의 비밀을 언급하며 무룡의 목숨은 물론 자신도 구원했다.
"아니오. 낭자 덕에 내가 몇 번이나 살았소."
첫 만남이 좋진 않았지만, 추영이 아니었으면 몇 번 죽었는지 모른다. 백번 양보하여 추영과 천노에게 잡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평생 부족한 단전으로 자하신공을 완성하려고 헛심을 뺐을 것이다.
어쩌면 울화로 심마가 도져 내공이 폭주하며 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낭자의 기지 덕분에 이렇게 살았소."
이대로는 천산자의 손에 죽든지 아니면 평생 노예처럼 부려지든지 둘 중 하나다. 천산자의 나이가 많아 어서 죽기를 기다려도 되긴 하나 추영에게 악감정이 깊어 죽음을 감지하면 먼저 둘의 목숨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추영이 꾀를 부려 선원들을 움직였다. 재물에 대한 탐욕과 천산자를 못 믿는 마음에 선원들은 목숨을 부지하면서 재물까지 챙길 계획을 짰다.
더 다행인 건 이들 중에 인물이 없지 않아 처음의 계획대로 배 두 척을 모두 침몰시킨 게 아니라 하나를 암초에 걸어 천산자를 유인하고 하나만 가라앉히기로 했다.
바닷물에 잠기면 안 되는 소금과 비단 등 귀한 물품이 있었던 게 추영과 무룡에겐 천운이었다.
그렇게 선원들이 모두 도망치고 나니 천산자도 살 가능성을 높이려고 둘을 자유롭게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무룡이 물길을 탐색하는 사이 천산자에겐 배를 만들게 시켜서 자신들이 벌인 짓을 모르게 했다.
그리고 출발하자마자 일부러 암초로 유도해 뱃전에 구멍을 내서 천산자가 둘을 쫓아내게 했다. 만약 추영과 무룡이 바다에 뛰어들어 도주했다면 자하동의 비밀에 대한 집착으로 둘을 쫓아왔을지도 모른다.
사마귀는 매미를 노릴 때 뒤에 참새가 다가와도 모른다. 추영은 자하동이라는 매미를 천산자라는 사마귀에게 보여주고 재물과 안전이라는 매미를 선원들로 이뤄진 사마귀에게 보여줬다.
선원들도 천산자도 추영의 뜻대로 움직였고, 뒤에서 모든 걸 지켜보던 참새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
"바로 다녀오겠소."
허리에 밧줄을 맨 무룡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물길을 알아내는 사이 암초에 밧줄을 묶어두는 일만 한 게 아니다.
채 가라앉지 않고 암초들에 낀 원래 타던 배로 가서 음식을 담은 상자들을 꺼내 바다 밑에 숨겨뒀다.
무룡이 바다에서 건진 상자는 바로 뜯어 안에 음식을 꺼내 갑판에 널었다. 잘 밀봉하긴 했으나 상자 자체가 나무로 만든 거여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바닷물에 젖었다.
충분한 시간이 있어 재물은 물론 술과 음식까지 대부분 챙긴 현재 배와 달리, 천산자가 탄 배는 시간이 촉박해 음식 대부분이 그대로 남았다.
안타까운 점은 놈들이 평소 많이 마셔 없앤 술은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내공을 대부분 잃은 추영을 생각하면 어서 빨리 비라도 오길 기원해야 한다.
음식을 다 건져낸 무룡은 추영의 지시에 따라 배를 뜯었다. 정말 괜찮은 것들은 천산자가 첫 배를 만드느라 다 뜯어냈기에 재료를 구하는 데 조금 애를 먹었다.
결국, 무룡이 밧줄을 몸에 묶고 바다에 잠긴 배에 가서 꼭 필요한 것들을 뜯어와서 겨우 재료를 장만했다.
이번에 추영이 설계한 배는 특이했다. 마치 배 세 척을 붙인 듯한 모습이고, 배들을 연결한 작대기가 밖으로 삐져 나가 바위섬과 부딪치는 걸 최대한 방지했다.
그리고 밀봉한 빈 나무 물통도 처음 배엔 선창에 넣었는데 이번엔 배 밖에 밧줄로 묶어 고정했다.
"최소 바위섬과 세 번 부딪칠 수 있고 암초는 두 번 정도 견딜 수 있을 겁니다."
천산자는 마교가 쫓아올까 봐 다급한 것도 있고 자신이 고수라는 자부심도 있어 굳이 많은 대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공이 거의 없는 추영과 내공도 경험도 부족한 무룡은 최대한 안전을 위한 대비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음식도 크게 셋으로 나눠 서로 붙은 세 배에 나눠 싣고 일부는 천에 싸서 몸에 지니기로 했다.
"언제 출발할까?"
"비가 한 번 크게 온 다음."
지금 배는 암초에 걸리긴 했으나 고약한 뙤약볕이 괴롭히지 못하게 그늘이라도 만들어준다. 덕분에 최대한 참고 물을 적게 마실 수 있다.
작은 배에도 차광막을 만들긴 했으나 물살에 쓸려 몇 번 충돌하다 보면 계속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니 이 배를 떠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양의 담수를 확보해야 한다.
둘은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채 사흘도 안 되어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무룡과 추영은 타고 갈 배를 밧줄로 꼭꼭 묶어 잘 고정한 후 최대한 많은 물통과 그릇을 밖으로 내놨다.
장대 같은 빗줄기가 갑판을 때렸다. 추영과 무룡은 옷을 입은 채로 갑판에 나가 빗물을 받아 마시고 몸에 소금기도 씻어버렸다.
인간의 악행이 도를 넘었는지 하늘이 호통치며 벼락을 자꾸 던졌다.
"왜 애꿎은 바다에 지랄이야. 나쁜 인간은 다 땅에 사는데."
그간 꾹 눌러뒀던 설움이 북받치는지 추영이 낮게 중얼거렸다.
"낭자. 벼락이 내릴지도 모르니 물기 없는 곳으로 가서 몸을 피하시오."
그러나 무룡의 다정한 목소리에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낭군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봄꽃처럼 화사하게 웃은 추영이 채 갑판이 뜯기지 않은 곳 선창으로 가서 비를 피했다. 무룡은 그릇에 찬 빗물을 가죽 주머니나 술을 담았던 항아리에 모으느라 갑판 위를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낭군, 그만 돌아오세요."
우렛소리가 점점 커지고 벼락도 잦아졌다. 무룡의 안전이 걱정된 추영이 담수가 충분하다는 생각에 무룡을 불렀다.
그때 굵은 벼락 하나가 괴이하게 뒤틀리더니 암초에 걸려 세찬 폭풍에도 꿈적 안 하는 배를 때렸다. 물기가 적은 곳에 숨은 추영은 괜찮지만, 갑판에 있던 무룡은 벼락의 여파에 몸이 굳은 채 털썩 쓰러졌다.
당황한 추영이 갑판으로 달려가서 무룡이 무사한지 살피려 했다. 그런데 벼락에 맞은 시점에 큰 파도가 때리면서 암초 사이에 낀 배를 끄집어냈다.
암초에서 해방된 배는 거센 풍랑을 맞아 방종한 움직임을 보였다. 다행히 배가 크게 흔들리는 와중에 무룡은 배 밖이 아닌 선창으로 떨어졌다.
"낭군. 정신 차리세요."
추영이 무룡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컥."
원래 깨려고 했었는지 추영의 싸대기 덕분인지 무룡이 눈을 번쩍 뜨며 멈췄던 숨을 다시 쉬었다.
"낭자 덕분에 또 살았소."
무룡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공치사를 했다. 직통은 아니지만 꽤 굵은 벼락이었는데 마환기공 덕분에 타격을 덜 받았다. 그리고 멈췄던 숨은 추영이 가르친 면면불식 덕분에 기적적으로 다시 트였다.
무룡이 멀쩡한 듯 보이자 추영은 황급히 얼굴을 닦았다. 비바람이 거세 눈물 흘리는 게 티도 안 날 텐데 무룡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 마음에 미처 생각이 못 미쳤다.
"낭자 얼굴이 오늘따라 아름답소."
폭풍에 격랑에 폭우까지 겹쳤다. 우레와 벼락도 잊으면 섭섭하다는 듯이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뱃전은 멀쩡하지만, 갑판은 반 이상 뜯긴 배가 파도와 바람에 밀려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돈다.
그러나 추영과 무룡의 세상은 평온했다. 폭풍우도 격랑도 뇌전도 모두 남의 나라 일이라는 듯이 서로를 응시하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낭군께 잘해줬을 걸 그랬습니다."
"나도 속으로 낭자 욕을 많이 했는데 미안하오."
"저도 낭군이 멍청하다고 많이 험담했습니다."
무룡이 벼락을 맞는 바람에 놀라고 비에 체온을 뺏긴 추영은 얼굴이 창백했다. 그 창백한 아름다움이 연민의 감정을 일으키고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했다.
밖의 상황도 현재 처지도 잊은 무룡이 자신의 입술을 추영의 입술에 갖다 댔다. 추위로 바르르 떠는 추영이지만, 입술은 따뜻했다.
추영은 추위 때문인지 무룡의 품에 파고들었다. 무룡은 추영의 차가운 몸을 꼭 보듬어 안았다.
무룡의 체온은 용암보다 뜨거워 추영을 녹였다. 그리고 추영 역시 차가운 몸으로 무룡을 뜨겁게 달궜다.
차가운 빗속에서 기이한 운명으로 만난 남녀는 뜨겁게 하나가 되었다.
- 작가의말
당랑황작은 코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자들을 비웃는 말입니다. 문피아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돈을 아끼지 말고 제대로 된 디도스 서비스를 사용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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