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독현교
"명심해라. 수련을 열심히 하면 안 된다."
무룡이 신신당부했다.
"주의하겠습니다."
언뜻 들으면 절대 정상이 아닌 대화지만, 무룡과 계혼 모두 진지했다.
화산을 떠나 고작 두 달도 안 된 사이에 계혼의 벽파공 성취가 삼 성에 이르렀다. 무룡이 자하동에 들어가기 전에 팔 년 가까이 수련하고도 채 일 성에 이르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성과다.
특히 바다를 한 번 경험한 이후 내공이 붙는 속도가 어마어마하여 주화입마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바다 상대로 싸운다고 생각지 말고 배운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겸허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름을 모르는 현위가 쓴 투서는 강남동도 도지사의 저택에 보냈다. 도지사가 귀찮다고 그냥 두고 볼지 오군 군수를 협박해 돈을 뜯어낼지, 아니면 현위의 예상대로 군대를 끌고 가서 다 뒤집을지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
그렇게 소금이 나는 섬에서 고된 노역을 하던 자들의 부탁을 들어준 무룡과 계혼은 잠시 헤어지기로 했다.
무룡은 오독교가 있는 늪지로 가서 돈으로 사든지 훔치든지 뺏든지 해서 자하동의 문을 녹일 독을 얻고 계혼은 전당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가서 무공을 수련한다.
계혼은 벽파공 수련과 검법 수련은 최소화하고 무룡이 천애고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파도를 몸소 느끼며 벽파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치중해야 한다.
"이건 해독약, 이건 내상약, 이건 금창약이다. 헷갈리지 말아라."
오독교五毒敎는 현교玄敎로도 불리는데 실제로 종교가 아니다. 이들은 오공과 독사와 전갈과 벽호 그리고 섬여를 일컫는 오독을 연구하는 집단으로 외부와 교류가 활발하지 않다.
절검문과 더불어 천하의 오대비문으로 불리긴 하나 거주지나 문파의 구성 등은 강호에 잘 알려졌다. 배타적인 성향으로 외부와 접촉을 꺼리는 탓에 오대비문의 한 자리를 차지하긴 했으나 절검문처럼 신비한 문파는 아니다.
무룡은 본인이 독을 무서워하지 않으나 해독은 별로다. 진정 독공의 고수라면 내공으로 타인의 몸에 숨은 독도 인도하여 배출할 줄 알아야 하는데 무룡은 내공 자체를 움직이지 못한다.
계혼이 중독되기라도 하면 약초도 별로 없는 상황에 무룡은 해독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계혼은 따로 수련하러 가고 무룡만 오독교를 찾아가기로 했다.
서로를 걱정하며 작별한 두 사제는 각자 목적한 곳에 무사히 도착했다.
계혼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바람에 물길이 훨씬 복잡한 항주만에서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고 수련했다.
벽파공과 검법 수련은 간단히 하고 종일 밧줄을 몸에 묶은 채 바다의 파도와 강의 물살이 만나는 곳에서 몸으로 물의 변덕스러움을 느꼈다.
무룡은 지름이 사백 리나 되고 독충이 득실거리는 늪지에 겁 없이 들어갔다. 곤륜산 자락에서 홍안섬여를 포획할 때 이미 충분히 경험했기에 발이 푹푹 빠져도 당황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 사는 거지?'
늪지는 인간이 사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음식과 물도 넉넉히 준비해서 들어왔지만, 종일 걸어도 머리카락 하나 안 보이니 마음이 갑갑했다.
갑자기 발목이 따끔했다. 고개를 숙여 확인하니 전갈이 무룡의 발목에 침을 꽂고 꼬리를 넓혔다 좁혔다 하면서 독을 주입하고 있었다.
'날 죽인 다음 알을 슬려고 그러는 거겠지?'
전갈이 주입한 독은 무룡에게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그러나 무룡은 얼굴을 굳힌 채 우두커니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창이나 칼도 막아내는데 왜 전갈의 꼬리는 못 막았지?'
창으로 찌르고 칼로 베도 흠집 하나 안 나는 무룡이다. 그런데 고수가 휘두른 창이나 칼보다 강할 수 없는 전갈의 독침은 살에 박혔다.
추영도 몰랐던 마환기공의 약점이다.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공격엔 마환기공이 늦게 발동한다.
내가 중수법으로 수련하는 단계까지 거치면 이 약점도 사라지지만, 그 단계까지 익혀낸 건 추영의 가문에도 한 명밖에 없고 그마저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 초입에서 멈췄다.
'내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이면?'
'돌을 매달고 깊은 바다에 던지면?'
마환기공을 익힌 자신을 죽일 확실한 방법이 수없이 떠올랐다.
'독이다. 내가 믿을 건 독뿐이다. 마환기공과 벽파검법으론 추영과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도 지키기 어렵다.'
독을 다 쓰고 홀쭉해진 전갈이 독침을 빼고 잽싸게 도망쳤다. 자신을 깨우쳐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무룡도 굳이 도망가는 놈을 쫓지 않았다.
무룡은 오독교의 행방을 찾아 계속 늪지를 헤맸다. 그리고 휴식할 때마다 침을 꺼내 자신의 몸을 군데군데 찔렀다. 본인이 찔러서인지 몸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인지 침도 살에 곧잘 박혔다.
'가류 정도 고수만 돼도 침으로 찌른 다음 내공을 투사하면 내장이 토막 난다.'
갑자기 후문영이 떠올랐다.
'후문영도 침 같은 가는 걸 배에 꽂은 다음 내공을 주입해 터뜨린 게 아닐까?'
무룡은 자신의 가설을 바로 부정했다. 후문영이 세 살배기 꼬마도 아니고, 상대가 몸에 침을 꽂고 내공을 투사할 때까지 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룡은 경황이 없어 자세히 살피지 않았지만, 후문영의 수하들은 외상이 없는지 꼼꼼히 찾았었다.
'소교주는 믿을 만한 사람인가?'
왠지 후문영의 죽음에 큰 비밀이 있을 것 같고, 그걸 알면 추영과 아이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무룡의 능력으론 절대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 후문영과 같은 편으로 보이는 소교주에게 성화령이 없다는 말을 알려주고 정보를 얻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금침회혼법으로 혼미 상태에서 깨우고 의형제를 맺은 후엔 얼굴은커녕 서신조차 통한 적이 없다. 관심법을 익힌 것도 아니니 당연히 소교주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무슨 놈이냐?"
갑자기 꽤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 소리에 무룡은 깜짝 놀랐다.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건 맞지만, 이렇게 가깝게 접근했는데도 모르는 건 이상하다.
특히 걸을 때 기척이 안 날 수 없는 늪지여서 무룡은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보다 걱정이 컸다.
"오독교를 찾아왔소."
사내들이 갑자기 무기를 꺼내 무룡을 엎쳤다. 무룡은 늪지에 오독교만 산다는 말을 들은 적 있기에 검을 뽑지 않고 손으로 대처했다.
그러나 권각술을 전혀 익힌 적 없어 검 없이 벽파검법을 펼치는 셈이 되었다.
"확실하다. 검을 안 쓴다."
오독교의 사내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외치고 공격에 살초를 섞기 시작했다.
'그럼 검을 써주지.'
무룡은 긴 팔을 휘둘러 시간을 번 뒤 검을 뽑아 들었다.
"신분을 숨기려고 검을 들었다."
무룡은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안 쓰면 확실하다 그러고, 쓰면 가짜라 그러고. 이미 무룡을 적으로 상정하고 모든 행동을 무조건 거기에 맞춰가는 행태다.
"오독교는 손님을 이딴 식으로 대접하는가?"
"손님? 도둑놈이겠지."
무룡은 힘을 삼 할 정도 빼고 검을 휘둘렀다.
오독교 사내들은 기세가 대단하고 힘도 셌지만, 초식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자세도 엉성하다. 내공만 높고 무공은 제대로 안 익힌 자들이 분명했다.
"검을 꽤 쓰는데?"
"우리가 너무 약해서 저놈이 잘 쓰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왜 검에 집착하는지 모르지만, 저들은 무룡을 적으로 몰기 위해 자신들의 실력을 비하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당신들의 적은 검을 안 쓰는가 보군."
무룡은 허공에 벽파검법에서 보기에 가장 그럴듯한 만경벽파의 초식을 연거푸 펼쳤다.
"초식만 그럴듯하게 익힌 놈이다. 검에 내공이 안 실렸어."
목적이 있어 찾은 게 아니라면 진짜 팔다리 하나 정도는 부러뜨리고 싶은 얄밉기 그지없는 놈이었다.
"말로는 설득이 어려우니 부득이하게 실례하겠소."
말을 마친 무룡이 검을 강하게 휘둘러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의 무기를 하나씩 부쉈다.
"아닌 것 같은데?"
"아닌 게 아니야. 우리에게 접근하려고 특별히 검법을 익힌 첩자가 분명하다."
진짜 저 고집을 쇠랑 함께 불에 넣고 어느 게 먼저 녹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독진을 펼쳐라."
똥고집이 꽤 지위가 높은지 남은 사내들이 고분고분 지시에 따랐다.
"독무."
무룡을 포위한 사내들이 허공에 가루를 뿌렸다.
빨간 건 섬여 독이다. 섬여의 독은 액체 상태일 때 누런색이 대부분이지만, 말려서 가루가 되면 갈색에 가까운 붉은색이다.
검은 건 오공 독이다. 전갈과 달리 독을 많이 쓴 오공은 죽어버리기에 오독 중에서도 귀한 취급을 받는다.
푸른 건 뱀독이다. 대부분 뱀의 독은 푸르지 않지만, 강한 것들은 말리면 일반적으로 푸른색을 띤다.
하얀 건 벽호의 독이다. 벽호의 독은 채취가 어려워서 주로 탈피한 허물이나 잡아 죽이고 뗀 독낭을 가루 내는 것으로 얻는다. 그래서 희다.
전갈 독은 딱히 하나의 색으로 규결되지 않았다. 대체로 갈색이긴 하지만, 조금 다른 색이 꽤 섞였다.
'이게 독공이구나.'
가류는 독을 잘 다루지만 기본은 의원이다. 그래서 심후한 공력에도 불구하고 내공으로 독을 움직이는 독공을 익히지 않았다. 무룡으로선 처음으로 독으로 싸우는 걸 본 셈이다.
그 대상이 본인이어서 그저 구경하는 것보다 훨씬 실감이 났다.
허공에 퍼진 독들이 바람마저 저항하며 무룡의 몸에 들러붙었다. 특수한 처리를 했는지 피부에 닿은 독이 빠르게 흡수되었다.
'다섯 독이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이들이 쓰는 독은 하나하나 따지면 아주 대단하지 않다. 그러나 서로 싸우고 부추기며 다섯이 합친 것보다 훨씬 강한 독성을 발휘했다.
"얘기도 안 들어보고 손속이 너무 과한 거 아니오?"
독이 하도 강해서 무룡도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만독불침?"
무룡을 적이라고 줄곧 우기던 사내가 얼빠진 얼굴로 말했다.
- 작가의말
저도 소싯적에 얼굴 대충 생기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너무 잘생기면 오히려 인생이 피곤하다고요. 그때 어른들 말씀을 안 들었던 걸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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