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물생심
"독성께선 왜 검술을 수련하는 겁니까?"
오독장을 익히는 오독교 제자들에게 있어 검이나 창은 좋은 무기가 아니다. 근접하여 스치기만 해도 상대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오독장이 있는데 열 번 베어도 반드시 죽인다는 보장이 없는 검과 창을 들 이유가 없다.
더구나 습한 늪지에선 아주 잘 만든 무기가 아니면 쉽게 녹이 슬고 무뎌진다.
"지금의 나를 만든 모든 걸 다시 떠올려 보려는 것이다."
적안 오공을 잡는 중에 느낀 바가 있어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벽파검법의 기초 동작부터 수련하고 있다는 장황한 설명이 싫어 대충 둘러댔다.
"여길 떠날 때 절 데려가면 안 됩니까?"
"왜?"
"넓은 세상을 보고 독성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덕구는 무룡을 독성이라고 여기며 떠받들지만, 절대 닿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긴 게 아니라 언젠간 자신이 이뤄야 할 경지를 먼저 밟은 선배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다.
오독교에서 지금껏 있은 적 없는 천재라는 난화봉이 오독불침조차 못 이뤘기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경외심을 품었다.
그러나 첫 만남에 무룡을 기어코 적으로 몰아갔던 뚝심의 소유자답게 자신도 독성의 경지에 언젠간 이를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호흡조차 어려운 곳에 들어가 여섯 시진이나 버티고 나온 무룡에게 완전히 감복했다. 만독불침을 이뤄도 숨을 못 쉬는 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내가 떠날 때 호교장로 자리를 물려줄게."
덕구가 아주 잠깐 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독성을 사부로 모시고 싶습니다."
"교주 허락을 받아."
고집이 조금이 아니라 너무 세서 문제긴 하지만, 오독교에서 글자를 가장 많이 알고 난화봉 외에 오독장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익힌 귀한 인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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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덕구야. 오공이 새끼를 낳았다."
오공은 난태생이다. 알을 배에 슬고 부화시키기에 새끼를 낳았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덕구도 한 수 접는 고집쟁이 난화봉과 논쟁하기 싫은 무룡은 묵묵히 교주전 근처에 만든 오공 우리로 갔다.
작은 오공 수십 마리가 바글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적안 오공을 닮은 새끼는 없었다. 아무래도 무룡이 뽑은 나무가 적안 오공을 만든 장본인인 듯했다.
"새끼들은 여기서 키우고, 악행이 하늘에 닿은 두 연놈은 황천길로 가야지."
난화봉이 이를 갈며 말했다.
만독불침으로 알려진 무룡이 우리에 들어가 두 적안 오공을 꺼냈다.
"오늘은 특별히 호교 장로도 교주전 진입을 허락한다."
무룡은 드디어 교주전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안에 들어갔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를 덜 한 탓에 입을 딱 벌리고 굳어버렸다.
교주전은 별천지였다.
밖에서 볼 땐 분명히 지붕까지 돌로 된 석조 건물인데 안에 들어오니 하늘이 보이고 햇살이 쏟아졌다.
바람은 솔솔 불고 온갖 싱그러운 내음이 코를 찔렀다.
겉에서 보며 짐작한 것보다 수십 배는 큰 공간에는 온갖 독과 책 그리고 짐작조차 가지 않는 괴이한 물건이 가득 쌓여 있었다.
'진법이 분명하다!'
무룡의 지식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진법밖에 없다.
그러나 적안 오공에 강한 적개심을 품은 난화봉은 무룡에게 경탄할 시간을 오래 주지 않았다.
"호교장로, 꽉 잡고 있어."
무룡은 난화봉이 시킨 대로 황동으로 만든 속이 빈 긴 대롱에 오공을 집어넣은 다음 꼬리 부분을 꽉 잡았다.
"나쁜 놈. 널 괴롭혀 죽일 거야."
난화봉이 가느다란 철사에 약물을 묻혀 대롱 안에 떨궜다. 적안 오공이 작은 틈으로 바람이 새는 듯한 비명을 지르더니 급기야 찍찍거리며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적안 오공을 구해야 할 짝은 무력하게 대나무로 만든 통 안에 누워 꼼짝도 못 하고 있다.
위기를 느낀 오공이 독액을 분비하고 입으로 독 안개를 토했다. 독액은 황동 대롱을 따라 밑으로 흘렀고 독 안개도 대롱 벽에 방울로 맺혔다가 크게 뭉쳐 흘러내렸다.
"호교장로, 약속대로 반반이야."
독을 다 토해낸 두 마리 오공이 축 늘어졌다. 목숨을 잃고 죽는 게 일반적인데 적안 오공은 용케도 살아남았다. 대신 대가리의 빨간 점 두 개가 사라져 더는 적안 오공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부끄럽게 되었다.
"이놈을 미끼로 청마靑魔를 잡자."
푸른 섬여는 청마로 불렸다. 두꺼비답지 않게 매끈하고 덩치도 상대적으로 작아서 멋 모르는 아이들이 뒷다리를 구워 먹으려다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다.
"섬여가 오공을 먹어?"
"없어 못 먹지."
난화봉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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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를 잡는 일은 꽤 시시했다. 놈은 끈으로 묶은 적안 오공을 먹으러 대나무로 짠 통에 들어갔다가 꼼짝도 못 하고 포획됐다.
일반 개구리나 섬여는 커다란 오공을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하기에 헷갈릴 염려도 없었다.
혹시 적안 오공처럼 한두 마리 더 있지 않을까 걱정되어 함정을 며칠 더 뒀는데 걸려드는 놈이 없었다.
"장로, 주둥이를 꽉 잡아."
섬여의 네 다리는 나무못으로 박아 고정했다. 무룡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섬여가 주둥이를 못 벌리게 꽉 잡았다.
"덕구야, 한 방울 흘리면 회초리로 백 대 때린다."
난화봉의 협박에 덕구가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구는 이미 난화봉에게 무룡을 따라 오독교를 떠날 결심을 알렸고 어렵게 허락받았다.
그런데 너무 일찍 말해버린 바람에 시시각각 난화봉의 구박을 받아야 했다.
난화봉은 아주 예리한 비수로 청마의 항문을 벴다. 가려운 곳 긁듯이 조심스럽게 살살 베어 독주머니가 드러나게 한 다음 고르고 고른 가시를 살짝 꽂았다.
가시나무는 늪지에 가장 많이 자라는 놈으로 잎이 달리지 않는다. 칙칙한 회색을 띠는 이 나무는 꽃도 피우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는다.
게다가 가시가 너무 많아 장작으로도 불합격인 놈인데 아무리 베도 잡초처럼 자라서 오독교도 포기했다.
이놈의 가시 중 간혹 속인 빈 놈이 있어 독을 뽑아낼 때 사용되곤 한다.
무룡이 주둥이를 꽉 막은 바람에 푸른 섬여는 독을 토해낼 수 없다. 덕분에 빵빵해진 독주머니가 속이 빈 가시를 통해 독액을 방출했다.
절반 정도의 독액을 배출한 독주머니가 홀쭉해졌다.
"흥!"
난화봉이 화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침으로 푸른 섬여의 몸 곳곳을 찔렀다. 인간으로 치면 사혈에 해당하는 곳이어서 푸른 섬여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생명의 위기를 느낀 푸른 섬여의 독주머니가 다시 독액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반나절을 괴롭혀 푸른 섬여의 몸통보다 몇 배나 많은 양의 독액을 뽑아냈다.
'누가 악당인지.'
겉만 보면 청개구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푸른 섬여다. 사지가 못으로 박히고 항문을 찢긴 채 침에 아프게 찔리는 섬여보다는 난화봉이 오히려 악당 같았다.
"좋아. 이놈으로 홍마紅魔를 끌어내자."
이름은 좀 유치하지만, 오독신충 중 남은 넷이 함께 덤벼도 안 되는 게 바로 붉은 뱀이다.
붉은 뱀의 영역에는 비슷하게 생긴 놈이 가득하다. 적안 오공처럼 다른 오공들과 아예 모습이 다르면 들어가서 찾기라도 할 텐데, 붉은 뱀은 외관만으론 평범한 독사와 다를 바 없다.
"홍마는 발견하는 즉시 죽여야 해."
붉은 뱀은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다. 대나무도 황동도 쇠도 모조리 녹이는 놈이다. 게다가 적안 오공처럼 안개를 뿜기도 한다. 힘들게 함정을 파서 유인해도 독으로 자신을 가둔 함정을 녹인 다음 안개를 넓게 뿜고 도망친다.
뱀을 죽이는 일은 무룡이 책임지기로 했다. 난화봉도 장법 외에 유엽도를 익혔다. 그러나 오독불침도 못 이룬 몸이기에 뱀에게 섣불리 접근했다가 독에 당해 한 줌 핏물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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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뱀이 푸른 섬여에 접근했다.
'이번엔 제발.'
이미 여러 놈이 왔는데 전부 아니었다.
꾸르륵꾸르륵.
사지가 못으로 박힌 푸른 섬여가 소리를 내 경고했다. 그러나 뱀은 전혀 두려움 없이 달려들었다.
푸름 섬여가 힘겹게 입으로 독을 토했다. 독주머니를 째지 않고선 다 채취할 수 없어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양이 독주머니에 남았다.
그러나 자신을 먹으려고 접근하는 뱀 몇 마리를 해치우느라 남은 독이 얼마 없다.
조심성 없이 달려들던 뱀은 섬여의 독이 머리에 닿자 푸른 연기를 뿜으며 즉사했다.
덕구가 기다란 막대기로 독에 머리가 녹아 사라진 뱀을 밀어 치웠다.
약 반 각이 더 흐르고 방금 죽은 놈과 비슷한 모양의 뱀이 등장했다. 놈은 푸른 섬여와 일 장 정도 거리를 두고 머뭇거렸다.
'함정인 걸 알고 있어.'
무룡은 뱀과 아주 정확하게 눈길이 마주쳤다. 놈은 지금 함정인 걸 빤히 알면서도 푸른 섬여를 먹고 싶은 욕심에 망설이는 것이다.
'뱀 따위가 머리를 쓰다니.'
그간 몇 번의 함정에 당한 붉은 뱀은 못에 박힌 푸른 섬여를 보고 상황을 눈치챘다.
독이 강하다고 칼이 안 박히는 건 아니다. 붉은 뱀도 칼에 제대로 맞으면 죽는다. 그러나 미끼가 하필이면 푸른 섬여여서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망설이던 뱀이 갑자기 움직였다. 섬여는 접근하는 뱀에게 얼마 안 남은 독액을 뱉었다. 그러나 섬여의 독은 이번에 아무 효과도 보지 못했다.
가까이에 접근한 뱀은 삼키는 데 급급해하지 않고 먼저 섬여의 다리를 끊었다.
"지금이야."
무룡의 외침에 덕구가 줄을 끊었다. 대나무로 만든 커다란 광주리가 떨어져 뱀을 가뒀다.
뱀은 당황하지 않고 섬여의 네 다리를 모두 끊은 다음 몸통을 꿀꺽 삼켰다. 그새 오독교 사람들이 양쪽에 무거운 돌을 매단 밧줄을 던져 광주리를 무게로 눌렀다.
몇 호흡 만에 섬여를 다 삼킨 뱀이 아가리를 커다랗게 벌리고 붉은 연기를 토했다. 특별한 약물로 처리했지만, 오래 못 버티고 대나무 광주리가 썩어 문드러졌다.
뱀은 늘 그랬듯이 안개로 몸을 감싸고 유유히 밖으로 기어 나왔다.
무룡이 몸을 날렸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뱀을 죽이려고 몸을 던진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다. 그러나 채 뱀에 닿기도 전에 목숨을 잃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무룡은 달랐다. 자하신공이 멀쩡하기에 오공의 것보다 훨씬 강한 독도 버텼다.
무룡이 펼친 만경벽파의 초식에 붉은 뱀의 머리는 몸통과 뜨겁게 작별했다.
"덕구, 옷 좀 갖다줘."
뱀의 독에 검은 물론 옷까지 잃은 무룡은 부끄러움을 못 이겨 오독교 사람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잽싸게 도망쳤다.
- 작가의말
실제로 오공은 고단백질이어서 닭이나 두꺼비나 개구리는 물론 개미들도 아주 사랑하는 식사감입니다. 뱀이 개구리와 두꺼비를 사랑하는 거야 뭐 상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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