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쌍수
무룡이 동굴 안으로 발을 들이자 문이 절로 닫혔다.
그리고 자하괴독이 자하신공 일 단계를 완성한 무룡을 공격했다.
자하괴독의 공격은 아주 은밀하고 조심스러워서 노혼은 수련 내내 독의 공격을 느끼지 못했다. 무룡 역시 마환기공이 알아서 움직이지 않았다면 자하괴독이 자신을 해치려 하고 있음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동굴에서 약 쉰 걸음 걸은 무룡이 갑자기 멈췄다.
'더 들어가면 위험하다.'
무룡은 자리에 깔개를 깔고 앉은 다음 정신을 집중해 맹룡도의 방식으로 기운을 움직였다. 마환기공은 알아서 움직이게 놔두고 자하신공 이 단계의 운기법으로 내공을 돌렸다.
단전은 심장과 같은 존재다.
혈액은 심장의 팽창과 수축으로 힘을 얻어 혈관을 따라 전신을 순환한다. 마찬가지로 단전은 기운을 뱉고 빨아들이는 거로 내공 수련은 물론이고 외공 수련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무룡처럼 특이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사람에겐 진리처럼 적용되는 사실이다.
맹룡도는 인간이 내공만 알고 혈도나 단전의 존재에 전혀 지식이 없을 때 만들어진 운기법이다. 혈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며 점점 탄력을 받았던 맹룡도는 단전 이론이 성립된 이후 서서히 잊혔다.
단전을 이용한 정교한 운기법이 쏟아져 나오며 수련에 굳센 의지와 높은 집중력이 필요한 맹룡도를 찾는 사람이 사라진 탓이다.
단전을 이용한 운기법 역시 아무나 익힐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건 아니었지만, 맹룡도와 비교하면 팔팔 끓는 국과 식은 죽을 마시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게다가 단전은 대량의 내공을 저장하여 수련 효과를 수백 배로 높였다.
맹룡도는 외부의 기운을 끌어다가 몸속에서 돌린 다음 아주 적은 양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시 밖으로 나간다.
수련자의 자질과 수련 환경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이기에 무당산이나 곤륜산처럼 수련 효과가 좋은 곳에선 자리싸움으로 유혈사태가 자주 발생했다.
단전의 존재를 발견하고 단전 호흡법과 단전 운기법을 만든 뒤 누구도 기운이 풍부한 곳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신을 고도로 집중하고 기운을 돌려야 하는 맹룡도를 익히려 하지 않은 이유다.
그렇기에 원래대로라면 자하신공처럼 단전 의존도가 높은 심법을 맹룡도로 구현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무룡은 마환기공을 익혔다.
마환기공은 전신 혈도에 내공을 저장한다. 혈도 하나하나만 보면 단전의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천 개가 넘은 혈도를 다 합치면 얘기가 다르다.
그리고 단전이 깔끔하게 사라진 것도 무룡에겐 불행 중 아주 큰 다행이었다.
단전이 아예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덕분에 무룡의 자하신공은 운기가 되었다. 만약 단전의 잔재가 조금이라도 남았으면 자하신공은 운기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운이 단전이 있던 곳을 그대로 지나치며 내공이 전혀 쌓이지 않기에 수련 의미가 전혀 없고, 무룡이 자의로 수련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말이다.
'수련 효과가 수백 배 좋다.'
마환기공은 혈도마다 내공을 저장한다. 그리고 자하신공 일 단계를 이루며 단련된 이백사십이 개 혈도가 그 주축이 되었다. 다른 혈도보다 단련이 훨씬 잘 되었기에 많은 기운을 품은 덕이다.
내공이 적어 노혼처럼 일기관통을 이루지 못했던 무룡이다. 그러나 마환기공 덕분에 맹룡도로 일기관통을 쉽게 이뤘다.
첫 번째 혈도는 마지막 혈도의 내공을 받는 동시에 자기가 품은 내공을 두 번째 혈도로 보낸다.
두 번째 혈도는 첫 번째 혈도가 보낸 내공을 받는 동시에 자기가 품은 내공을 세 번째 혈도로 보낸다.
단전의 내공을 받아 다음 혈도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품은 내공을 보낸다. 약간 편법이긴 하지만, 무룡은 맹룡도로 운기하여 일기관통을 이뤘다.
편법이기에 깨달음이 부족한 무룡이 일기관통의 형태를 흉내 나마 내게 되었고, 그 흉내 덕분에 경지가 전혀 깊어지지 않았으나 자하신공의 성취는 빠르게 높아졌다.
'자하신공을 영원히 대성할 수 없겠구나.'
꼭 감은 무룡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 편법을 사용하면 자하신공 구 단계까지 반년도 안 걸린다. 깨달음과 상관없이 시종 일기관통의 상태에서 수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련이 없어 얻을 깨달음도 없고, 그렇기에 자하신공을 대성하는 일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 되었다.
'대신 추영과 아이를 구할 수 있다.'
자하신공을 대성해야 자하괴독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무룡은 영약을 빠르고 확실하게 흡수하는 체질이 되었다. 덕분에 자하단을 복용해도 채 숨을 열 번 쉬기도 전에 사라진다. 자하괴독에 확실히 저항하려면 자하신공 구 단계를 완성하는 길밖에 없다.
컥 소리와 함께 무룡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자하신공의 구 단계를 이루고 자하동의 비밀을 풀면 추영과 아이를 구할 수 있다는 기쁨과 자하신공을 대성할 기회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슬픔이 겹치며 일시적으로 심마가 생긴 것이다.
오 년 정도 기한을 넉넉히 잡고 천천히 수련하면 자하신공을 대성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무룡이 느끼는 상실감은 꽤 컸다.
비록 지금은 무인보다 의원 신분이긴 하지만, 강호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강해질 기회를 버린다는 건 자존심이 강한 무룡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추영은 청백지신을 지키려고 가위로 자궁을 찔렀다.'
무룡은 추영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무룡의 두 번째 목숨과도 같은 마환기공을 가르쳤고 면면불식도 가르쳤다. 무룡의 목숨을 보전하려고 자발적으로 마교에 잡혀가려 했고 정말 죽을 길밖에 없는 상황에서 꾀를 부려 무룡의 목숨을 구했다.
무룡에겐 그저 아내가 아니라 가장 친근한 벗이며 어머니 같은 존재기도 하다.
근력이나 내공과는 다른 특별한 힘이 무룡의 몸에 깃들어 몹쓸 심마를 쫓아냈다.
목구멍과 코에 남은 잔혈을 밖으로 뱉어낸 무룡은 다시 수련에 집중했다. 심마가 왔다가 사라져서 그런지 정신이 고양되어 수련 효과가 훨씬 좋아졌다.
특별한 환경과 특별한 사람이 만나 내공과 외공이 동시에 그리고 빠르게 진도를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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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일으킨 무룡은 뚜벅뚜벅 앞으로 걸었다.
자하신공은 벌써 여덟 번째 단계를 완성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닌 자하구가 작용하여 단계를 완성하면 알아서 혈도가 추가되었다. 덕분에 노을이 들어오는 공동에 가지 않고도 새로운 단계를 계속 수련할 수 있었다.
'걱정 많이 할 텐데.'
동굴에 들어오고 석 달이 지났다. 그간 무룡은 음식을 전혀 안 먹고 물 한 모금 삼키지 않았다.
들고 온 음식은 문에서 쉰 걸음 정도 되는 곳에 그냥 뒀다.
아마 손청우는 문 앞에 쌓인 채 사라지지 않는 음식 때문에 무룡을 크게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걱정이고, 무룡은 돌아가서 자신이 무사함을 알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은 그저 빨리 공동으로 가서 자하동의 비밀을 풀고 싶은 생각이다.
'마환기공의 끝을 봤다.'
무룡이 구 단계의 완성까지 반년을 보긴 했지만, 그건 정말 모든 게 순조로웠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마환기공의 완성에 힘입어 반년도 안 걸리게 생겼다.
단전이 사라진 점, 비약으로 백화쟁염의 경지를 이룬 점, 천하의 어떤 독보다도 강하고 영리하며 조심스러운 자하괴독과 하루 열두 시진을 쉬지 않고 싸운 점.
그 외에도 많은 요소가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내가 중수법으로 타격하는 수련을 하지도 않았는데 마환기공이 끝을 봤다.
마환기공이 십 성의 경지에 이르며 백화쟁염의 경지가 명실상부해졌다.
이론상으로 무룡의 모든 혈도가 단전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으나 실질적으론 정말 잘 단련된 몇 개 혈도가 단전 역할을 분담하고 나머지 혈도들은 그대로였다.
정석적인 과정을 거쳐 지금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절대 보일 수 없는 현상이다. 여러 상황이 교묘하게 맞물려 빠르게 성취한 탓에 이룬 성과와 비교해 모든 부분이 부족했다.
그래도 자하신공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되어 석 달 만에 팔 단계를 완성했다.
물론, 경지나 깨달음은 여전히 자하신공 이 단계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예전엔 아무 저항도 안 받고 공동으로 바로 들어갔는데 이번엔 석 달이나 걸렸다.
무룡은 공동에 발을 들이자마자 깔개를 깔고 앉았다. 공동의 자하괴독은 여기까지 오는 통로의 것보다 수십 배 강했다.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른 마환기공이 자하괴독에 힘겹게 저항했다.
그간 거의 쉬지 않고 사용한 덕분에 매우 능숙해진 맹룡도가 무룡의 의지에 호응해 몸속의 기운을 움직였다.
노혼은 일 단계에서 이 단계로 넘어갈 때 세 개의 혈도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자하구로 단계를 높인 무룡은 여섯 개 혈도가 추가되었다.
마찬가지로 이 단계에서 삼 단계로 넘어갈 때 노혼은 여섯 개, 무룡은 열두 개가 추가되었다.
구 단계를 완성한 노혼은 단전을 빼면 총 삼백오십 개 혈도가 운기 경로에 포함됐다. 그러나 무룡은 사백오십팔 개 혈도가 운기 경로에 포함되었다.
인간의 단전으로는 내공을 쏘아 사백오십팔 개 혈도를 차례대로 지나 다시 단전으로 돌아오게 하는 게 불가능하다. 삼화취정이나 오기조원의 경지에 이르러도 반드시 해낸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면면불식과 마환기공과 맹룡도 그리고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단전 덕분에 무룡이 해냈다.
사백오십팔 개 혈도가 동시에 내공을 받고 보냈다. 각자 받는 속도와 보내는 속도가 달라 처음엔 어수선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같아졌다.
'자하구 덕분인가?'
마환기공이 자하괴독과 싸우면서 혈도의 기운을 움직이는 바람에 자하신공 수련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무룡은 석 달 만에 자하신공의 팔 단계를 완성했다.
지금도 훨씬 강해진 자하괴독과 싸우며 마환기공이 천 개가 넘은 혈도에 기운을 넣고 빼고를 반복하고 있는데도 자하신공 구 단계 수련에 별 지장이 없었다.
'자하구 빼고는 해석할 방법이 없다.'
무룡의 자질이 뛰어나다고 여기기엔 벽파공과 자하신공을 익히는 데 걸린 기간이 너무 길었다.
'사부가 돌보신 건가?'
원래 독무곡으로 돌아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던 무룡이 생각을 바꿔 오독교로 가지 않았다면 자하구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 계기가 된 게 바로 노혼과 같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계혼이었다.
'뭐가 됐든 곧 자하동의 비밀을 풀 수 있겠구나.'
무룡은 자하신공의 구결 중에 자하동의 비밀이 숨어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문 두 개와 통로 두 개 그리고 공동 하나가 전부인 자하동에 뭔가를 숨겼다면 노을이 들어올 때와 자하신공을 운기했을 때 벽에 나타나는 글자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무룡은 자신이 수백 개 혈도를 의지로 움직여 똑같은 호흡으로 내공을 받고 전달하게 하는 와중에도 한가하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자하동에 들어오고부터 수련하면서 사고하는 게 버릇이 되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 작가의말
마환기공 대성. 자하신공 구 단계 수련.
우리 무룡이가 강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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