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매인심
가류는 밖으로 나갈 때 무룡을 대동하지 않았다.
무룡이 제자 신분을 얻은 지 얼마 안 되고 의술이라곤 침을 간단하게 가르친 걸 빼면 뭔가를 알려준 적도 없다.
게다가 무룡은 대제자가 되어 독무곡을 관리한 지 일 년 만에 가류의 방을 은자로 가득 채웠다.
예전 대제자들이 가류의 무관심에 용기를 얻어 횡령을 많이 한 것도 있지만, 무룡의 수단이 빼어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가류는 무룡만은 예외로 하여 늘 독무곡에 남겼다.
외출이 잦아진 가류를 대신하여 전폭적으로 독무곡을 관리하며 무룡은 인심을 쌓는 데 정성을 들였다.
제자든 일꾼이든 무사든 가리지 않고 누군가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섰다. 능력이 되면 끝까지 돕고 능력이 부족한 일에도 최대한 성의를 보였다.
풍족한 재정으로 가끔 잔치도 열고 정기적으로 옷과 신발을 사서 나눠줬다.
덕분에 추종자가 부쩍 늘었고 흘궁을 비롯해 목숨을 걸고 따르는 제자들도 생겼다.
"사형, 성녀의 소식을 알아냈습니다."
그중 하나가 마교에서 성녀의 소식을 물어왔다. 무룡이 독무곡에 온 지 삼 년이 조금 안 된 시점이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교주나 소교주를 조사하다간 역모의 죄를 뒤집어쓸 수 있다. 성녀의 소식을 캐는 건 들켜도 존경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둘러댈 수 있다."
직접 세세겁화봉으로 가서 조사하자니 무룡이 성녀와 함께 있던 자라는 걸 아는 사람이 최소 수십 명이 된다. 칼로 얼굴을 훼손했고 살도 많이 빠졌지만, 괜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자들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고, 의심을 안 받기 위해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었다.
조만간 큰일이 터질 것 같은데 교주나 소교주를 캐면 문제가 되니 그나마 괜찮은 성녀의 소식을 탐문해 미리 어떤 사고가 생길지 알아내자는 것이었다.
"믿기 힘든 소식이지만, 성녀가 자해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약 이 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무룡과 함께 있던 제자들이 경탄을 질렀다.
흘궁처럼 반란에 연루되어 중원에서 도망 온 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도 집안에서 자랐다. 마교도들이 성혈의 가문에 느끼는 감정은 장안 백성이 황제에게 느끼는 경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사형은 안목이 대단합니다. 성녀가 자해할 정도면 분명히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녀는 무사하다느냐?"
무룡은 머리가 어지러워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속이 메스꺼웠다. 등허리는 이미 식은땀으로 푹 젖었고 가슴은 무거운 바위로 누르는 듯 갑갑했다.
생각 같아선 당장 세세겁화봉에 달려가서 추영이 무사한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으나 인내하지 않으면 복수도 행복도 없다.
"무사합니다. 그러나 자해 이후로 누구도 성녀의 모습을 보진 못했습니다."
"모습을 못 봤는데 무사한지 어떻게 알아?"
무룡이 거칠게 질문했다.
"무사하지 않다면 성화전에 있는 자들이 그냥 있지 않았겠죠. 성녀를 제물로 바치기 싫어서 백만 교도가 자원하여 괴물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성녀가 자해든 뭐든 변고가 생겼다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꽤 그럴듯한 추론이라 무룡도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추영의 처지가 별로 좋지 않은 건 분명하여 조바심이 일었다.
'침착하자. 기회는 한 번이다. 섣불리 움직여 일을 그르치지 말자.'
마음을 다잡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천애고도에서 자신이 잘 인내한 덕분에 천노의 손에서 추영의 목숨을 구했던 걸 끊임없이 떠올리며 충동을 눌렀다.
"사형, 뭔가 준비를 해야지 않겠습니까?"
"준비랄 게 뭐가 있겠느냐. 어딜 가도 자리 잡을 수 있는 돈, 적의 목숨을 취할 독, 우리 몸을 치료할 약이면 된다."
"독무곡의 길이가 이백 리나 되는데 우리만 아는 안전하게 숨을 은신처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원래 독무곡은 약초와 독초가 지천으로 널린 곳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쉬지 않고 캔 바람에 발품을 팔아 먼 곳으로 가서 채집하거나 돈을 주고 사들이는 게 훨씬 나은 곳이 되었다.
"잠깐. 근데 왜 독무곡에선 약초와 독초를 밭에서 재배할 생각을 안 했지?"
무룡의 질문에 제자들이 웃었다.
"사부도 아무 관심 없고 대제자들도 돈 뜯어먹고 도망칠 궁리만 했으니깐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인데 누가 장래를 생각하겠습니까."
웬만한 곳에선 대부분 사람이 출세를 원한다. 그러나 독무곡에서 출세하면 확실한 권력이 생기는 대신 언제 죽을지 모른다.
"좋다. 약초와 독초 재배를 구실로 믿을 만한 제자들만 뽑아서 은신처를 만든다. 술과 건량 그리고 의복 등을 충분히 비축하여 만일을 대비한다."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정 방법이 없을 땐 이들을 희생해서라도 뭔가를 도모할 생각이다.
지금 모든 사람에게 잘해주는 건 인심을 사기 위함도 있지만, 자신의 불손한 마음 때문에 미안함을 느껴서 보상하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무룡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은 진심으로 무룡을 따르고 무룡과 함께 더 나은 장래를 꿈꾸며 행복하고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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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잔뜩 치민 가류 앞에 무룡이 작은 상자 세 개를 내놓았다.
가류가 구하라고 분부한 물건 중 셋이었다.
"역시 너밖에 없구나."
가류는 홍안섬여紅眼蟾蜍를 잡으려다 제자 수십 명을 잃었다. 그러고도 놓쳐버려서 화가 잔뜩 치민 상황이다.
다른 때와 달리 채찍질을 하지 않은 건 써먹을 만한 제자가 너무 없기 때문이다.
"남은 제자 중에 경공을 익힌 자가 몇이나 되느냐?"
"경공을 익힌 자는 없습니다. 그나마 제가 체력이 좋아 산도 잘 타고 경공을 익힌 자들하고 비슷하게 달립니다."
"널 대신하여 곡을 관리할 만한 자는 있느냐?"
"창고를 관리하는 흘궁이 그간 도움을 많이 줬습니다. 제가 자리를 비워도 잘 대처할 겁니다."
십수 년 동안 재료를 모았고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그중 홍안섬여는 시간을 들이거나 돈만 많으면 구할 수 있는 재료들과 달리 찾기가 어렵고 잡는 건 더 어렵다.
남은 재료는 몇 년 안에 구할 자신이 있기에 어렵게 찾은 홍안섬여를 꼭 잡아야 한다.
"좋다. 다음엔 너도 나와 함께 간다."
약초나 독초를 캐는 거야 도구 몇 개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홍안섬여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독물을 잡으려면 준비해야 할 게 많다.
다행히 무룡이 그간 곳간을 잘 채운 덕분에 준비는 빠르게 끝났다.
"이번에 홍안섬여를 잡는 데 크게 기여한 자들은 내가 특별히 소원을 들어주겠다."
가류의 말에 제자들이 술렁였다.
먹고 살기 막막하거나 밖에서 거지처럼 살던 자들이 독무곡에 온다. 독무곡에서 재주를 배우고 무공도 익혔지만, 세상은 힘으로만 사는 게 아니다. 다시 밖에 나가도 잘 살 자신이 있는 놈은 이미 독무곡에 없다.
이번 기회에 홍안섬여를 잡으면 거금을 요구하여 독무곡을 떠날 수 있다.
세상은 힘으로만 사는 게 아니지만, 돈의 힘은 조금 다르다. 돈만 많으면 궁벽한 마교의 세력권이 아니라 중원의 번화한 도시로 가서 살 수도 있다.
신분 관리가 엄한 장안은 어렵더라도 소주와 항주 그리고 양주와 같은 온갖 향락이 넘치는 도시로 가서 부귀와 풍류를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가류를 따라 독무곡을 떠난 제자들은 하루 만에 십수 개 무리로 나뉘었다.
무룡을 따르는 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독무곡에서 무룡의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들과 달리 가류와 함께 자주 외출한 자들은 무룡에게 고마울 일이 별로 없다.
게다가 경공을 익힌 자신들과 달리 땀을 뚝뚝 흘리면서 힘으로 뛰는 무룡의 모습에 따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다른 무리에 끼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거나 큰 은혜를 입은 자들만 무룡과 힘을 합치려 했다.
보름을 쉬지 않고 달린 일행은 곤륜산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늪지에 도착했다.
바로 그 희귀하다는 홍안섬여를 발견하고 놓친 곳이다.
가류는 제자들에게 어떻게든 홍안섬여를 산 채로 잡으라고 명한 후 홀로 경공을 펼쳐 떠났다.
남은 제자들은 홍안섬여를 잡을 함정을 파고 미끼를 넣었다. 일부는 함정을 파는 데 급급해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홍안섬여의 흔적을 찾았다.
무작정 함정을 만들고 미끼를 넣어 홍안섬여가 걸려들길 바라는 게 아니라 홍안섬여의 흔적이 있는 곳에 함정을 만들어 성공률을 높이려는 것이다.
무룡의 무리는 후자에 속했다.
"운으로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야. 먼저 놈이 자주 나타나는 곳부터 찾아야 해."
홍안섬여는 이름 그대로 눈이 빨간 두꺼비다. 그러나 빨간 눈이 대가리가 아닌 꽁무니에 붙었다는 게 그냥 두꺼비와 다르다.
눈이 세 개인 홍안섬여는 독성이 아주 강하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일반 두꺼비와 달리 안 움직이는 사물도 다 본다.
"두꺼비는 기본적으로 사냥꾼이다."
뱀 앞에선 먹잇감이지만, 메뚜기나 파리에겐 강력한 사냥꾼이다.
"평소엔 몰라도 먹이를 사냥할 땐 주변을 경계하기보단 먹이에 집중한다."
가류의 서재에 있는 책을 전부 탐독한 무룡의 머리에는 홍안섬여를 잡을 계획이 차곡차곡 세워졌다.
"무턱대고 찾아다닐 게 아니라 홍안섬여가 좋아하는 먹이가 많은 곳을 우선 찾는다. 그곳에선 홍안섬여는 누군가를 경계하기보다 사냥에 집중할 것이다. 우린 그런 곳을 찾아 홍안섬여를 확인한 후 함정을 판다."
밧줄로 서로의 몸을 묶은 무룡의 일행은 발이 푹푹 빠지는 늪지를 계속 돌아다녔다. 먹이가 진짜 많아야 홍안섬여가 경계심을 최대한 늦출 것이기에 웬만큼 괜찮은 곳도 무룡의 눈에 들지 못했다.
"저기에선 홍안섬여가 있어도 못 잡아. 우린 홍안섬여를 구경하러 온 게 아니니까 확실치 않은 곳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가끔 다른 무리와 마주치기도 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무룡의 무리를 그저 무시하는 자들도 있고 은근히 도발하는 무리도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도움을 청하는 무리도 생겼다.
"사형. 기영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 작가의말
홍안섬여라는 이름은 제가 그냥 상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2010년에 콜롬비아에서 눈이 루비를 닮은 두꺼비가 발견되었고 중국에서 홍안섬여라고 이름을 달아줬네요.
이 글을 2010년 전에 썼다면 선지자가 될 텐데 말입니다. 그땐 대출 무느라 회사 열심히 다닌 무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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