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신 구하기2
우크 대현자가 주문을 중얼중얼 외웠다. 999개 조각이 알아서 자기 자리를 차곡차곡 찾아갔다. 일반 우크와 다르지 않은 크기의 조각상이 생겨났다. 지금까지 본 바알드로의 조각상이 다 갓난아기 크기였던 것과는 완전히 대조되었다.
"자, 3층으로 가서 이 조각상에 오우거의 신을 담아오게. 고블린의 신은 내가 미궁을 떠나면 자연스럽게 풀려난다네."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3층에 갇힌 오우거의 신을 조각상에 담으면 우크 대현자가 풀려나고, 그렇게 되면 미궁에 눌린 고블린의 신도 풀려난다.
네크로와 철벽이 미궁 밖으로 나오자 진돗개와 현피가 반색했다. 수만 마리 규모로 리젠하는 1층이어서 둘만 남으니 꽤 무서웠다. 그러나 성기사인 둘만 미궁에 진입할 수 있었고 진돗개와 현피는 들어갈 수 없었다.
"추종자 소환."
진돗개와 현피가 올 때 인벤토리를 철괴와 미스릴로 꽉 채우고 온 덕분에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해도 추종자 숫자가 얼마 줄지 않았다. 1층 보스몹인 거인 우크를 쉽게 해치운 후 2층에 진입했다.
"머피의 법칙이야?"
중간 보스인 거인 우크는 얼마 리젠하지 않았지만, 3층으로 향하는 관문을 지키는 오우거 주술사는 벌써 리젠했다.
"제길. 거지몹 주제에 리젠은 또 빨라요."
어렵게 잡은 몹이어서 꽤 기대했는데 제이크의 칼질은 모두 실패했다. 혹시나 해서 사체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지만, 사체는 사라지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주면 최소 레전드야. 유니크 따위면 제이크가 실패 안 했지."
"추종자 역소환."
"형, 추종자 없으면 우리 힘들어."
"죽음의 군단."
오우거 주술사는 힘 8에 민첩 6 그리고 체력과 친화력이 10인 괴물이었다. 지금은 네크로의 망치도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했다. 추종자를 또 희생하기 싫어서 죽음의 군단을 불렀다.
전투가 길어지면 몹이 약해진다. 첫 전투에선 기껏해야 오우거라는 생각에 얕보고 추종자와 함께 덤볐는데, 이번엔 죽음의 군단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일행도 뒷짐 지고 구경만 했다.
오우거 주술사의 지팡이가 붉은 가루를 흩날렸다. 가루에 접촉한 언데드들이 각각 다른 저주에 걸렸다. 다행히 언데드여서 저주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저주는 육체 능력을 비트는 것과 정신에 자극을 가하는 저주가 대부분인데, 언데드에겐 효과가 미약했다.
방패병들이 지팡이에 맞아 볼링핀처럼 쓰러졌다. 궁수들의 화살은 오우거 주술사의 가죽에 흠도 내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기마병도 딱히 데미지를 주지 못했고 도부수들도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그러다 전황이 변한 건 소환 시간 5분을 남겨두고 대장군이 움직였을 때였다. 대장군이 친위대와 독전대를 데리고 앞장서자 오우거의 가죽에 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설탕 본 개미처럼 언데드들이 까맣게 몰려와서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에만 전념했다.
게다가 사제들이 이상한 스킬을 사용해서 몸집을 불린 후 일반 병사들을 오우거 주술사에게 던졌다. 대부분 그저 부딪히고 마는데 일부는 어떻게든 몸에 매달려서 이빨로 물고 무기로 찌르면서 데미지를 주려고 애썼다.
"철벽, 준비해."
저주 주술을 주로 사용하는 오우거 주술사에겐 철벽이 딱이었다. 죽음의 군단이 역소환될 무렵 철벽이 신의 불을 뒤집어쓰고 천벌과 도발 스킬로 주술사를 잡아뒀다.
"광전사."
진돗개가 광전사 스킬을 사용하고 오우거 주술사의 발목을 공격했다. 신의 불에 천벌에 도발. 셋만으로도 오우거 주술사 눈에는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
철벽을 후려치는 지팡이를 망치로 때려서 카운터에 성공했다. 지팡이가 날아가자 오우거 주술사가 당황했다. 물리 공격도 주술도 지팡이에 의지하는 부분이 꽤 컸다.
"충격파."
그리핀을 타고 오우거 얼굴 앞을 스치며 현피가 충격파 스킬을 사용했다. 진돗개가 발목 찍어 약하게 만든 덕분에 오우거 주술사를 힘겹게나마 쓰러뜨렸다.
"제길, 결국 머릿수가 중요하네. 형 아이템 스킬 아니었으면 오우거 주술사 절대 못 잡아."
아무리 네크로의 망치가 공격력이 강하다 해도 초반에는 거의 데미지가 안 들어갔다. 대형과 초대형 사이에 있는 오우거 주술사는 진공이나 절대영도 같은 스킬도 잘 저항했다. 그나마 훼멸이 먹히긴 하는데, 그것도 치명적인 데미지는 주지 못했다.
죽음의 군단이 분전해서 오우거 주술사를 지치게 했기에 일행이 그나마 쉽게 눕힌 거였다. 유저로 치면 최소 500명을 갈아 넣어야 오우거 주술사를 약하게 만든다. 유저라면 멍청하게 죽을 때까지 안 버티고 적절하게 교대하겠지만, 그 정도 수준의 유저 500명을 모아 이가 딱딱 물리게 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철벽과 현피가 쓰러진 오우거가 못 일어나게 계속 방해했다. 진돗개는 광전사 스킬 끝날 때까지 공격에만 전념하다가 스킬이 끝나자 뒤로 물러섰다. 네크로는 오우거가 누워있을 땐 공격하고 오우거가 몸을 일으키려 할 때는 철벽과 현피를 도와 도로 눕히는 데 열중했다.
"흐읍, 파."
조용히 있던 바미가 도움닫기로 높이 뛰어오른 후 레어 창을 던졌다. 진돗개의 양손 검은 그렇게 가죽에 안 박혔는데 바미의 레어 창이 심장에 푹 박혔다.
"이럴 땐 동해가 있어야 하는데."
진돗개가 툴툴대며 달려와 검면으로 창 자루를 때렸다. 창이 쑥 박히면서 오우거의 피통이 출렁였다. 그리고 상태이상도 여러 개가 동시에 터졌다.
"추종자 소환."
피통이 하도 커서 몇이 때리려니 어느 세월에 끝날지 암담했다. 그래서 작은 피해를 감수하고 추종자를 불렀다. 해골 기사나 죽음의 기사는 말귀를 잘 알아먹는 편이었는데, 추종자는 타이탄 빼고 말이 안 통했다. 타이탄은 알아서 자기 보신을 잘하는데, 기사나 전사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공격에 더 열중했다.
"오오, 제이크 이번에 칼 제대로 뽑았다."
전과 똑같은 칼을 뽑았지만, 제이크의 각오가 조금 남달라 보였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었는지, 이번엔 아이템 두 개를 얻어냈다. 하나는 붉은 액체가 담긴 병이었고 하나는 레전드 아이템이었다.
"신발은 일단 은행으로 보내."
붉은 액체는 '오우거 신혈'이었다. 아마 오우거들은 신을 죽이고 누군가가 저걸 통해 신이 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일행이 쓰러뜨린 거구의 오우거 주술사일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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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에 도착하니 몹이 없었다. 네크로와 철벽은 서로 바라봤다.
"신을 조각상에 담는 법을 우크 대현자가 안 알려줬지?"
"난 오빠가 아는 줄 알고 신경 안 썼어."
"돌아가서 물어보고 다시 오자."
"내가 안다."
다행히 현피의 용병 바미가 나섰다. 바미는 창을 들고 조각상에 구멍을 냈다. 그리고 그 안에 오우거의 신혈을 부었다.
"이걸로 부족하다. 이 피에는 주술사의 힘과 신성력만 담겨있다."
말을 마친 바미가 창을 자기 가슴에 박았다. 해부학 지식이 전혀 없는 일행이지만, 흘러나오는 피의 양으로 창이 심장에 꽂혔음을 누구도 의심하지 못했다.
"나는 마법사 아버지와 사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사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부모의 피의 영향으로 재생력이 형편없었다. 대부분 오우거는 화를 참는 법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화를 잘 참는 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자랐다."
심장에서 창을 뽑아낸 바미는 투창 자세를 잡더니 피가 묻은 창을 힘껏 던졌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창이 턱 멈추더니, 창날에 묻은 피가 창문 유리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흩어졌다.
"흐어어, 흐어어어."
공기 99%의 소리가 나더니 뭔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바미, 괜찮아?"
용병이어서 죽어도 부활한다. 하지만 신과 관련한 일이어서 현피는 무척 걱정되었다.
"내가 계속 기다려왔던 순간이다. 난 신의 품에 안길 자격이 생겼다. 난 괜찮다."
오우거 신이 조각상에 깃들었다.
"나를 배반한 일족의 아이구나."
"난 당신을 배반한 적 없고, 나의 부모도 당신을 배반한 적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주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짧고도 긴 시간이 흘렀으니 멍청한 너희도 신이 어떤 존재인지 조금 깨달았겠지."
"다른 자들은 몰라도, 내겐 신이 그리운 존재였습니다."
- 창술사 바미의 직업이 오우거 성기사로 전직합니다.
- 바미의 무기가 단창과 방패로 변합니다.
- 스킬도 상응한 변화를 보입니다.
- 오우거의 신이 바미에게 축복을 내렸습니다.
- 신의 축복이 바미와 연결된 '현성네 피씨방'에게도 미칩니다.
남은 메시지는 현피에게만 들렸다.
- 유니크 직업 토템 주술사로 전직할 수 있습니다.
- 직업 전환은 한 캐릭터당 한 번만 적용됩니다. 이번은 신 급 캐릭터의 개입으로 특별히 또 한 번의 직업 전환이 허락되었습니다.
- 승낙하시겠습니까?
"형, 토템 주술사로 전직하겠냐고 묻는데? 원래 이미 전직해서 다신 안 되는데 특별히 이번만 된대."
"설명 들어봐."
"토템 주술사 설명."
- 토템 주술사에 관한 정보는 없습니다.
"설명 안 해줘."
"그럼 그냥 해."
진돗개가 짜증을 냈다.
"수락."
웬일인지 현피가 고분고분 진돗개 말을 들었다.
- 아군의 힘을 북돋는 땅 토템, 아군의 몸을 가볍게 하는 하늘 토템, 아군의 체력을 강하게 하는 물 토템, 아군 친화력을 높이는 불 토템.
- 토템 주술사는 패시브 스킬이 없습니다.
- 전투 마법사의 탈것이던 그리핀이 야생으로 돌아갑니다.
- 오우거 신이 보상으로 현성네 피씨방에게 탈것을 줍니다.
"벼락새 소환."
하얀 몸통에 머리만 푸르고 등이 유달리 넓은 커다란 새가 소환되었다.
"야, 이거 레어 등급이래."
"뭘 새삼스럽게. 우리 드레이크도 다 레어 등급인데."
일반 드레이크와 달리 진돗개와 동해의 드레이크는 덩치도 크고 비행거리도 멀었다. 게다가 전투에서 사용하는 스킬도 다양했다. 하지만, 지능이 낮아서 여럿이 함께 전투할 땐 역소환하는 게 돕는 거였다.
탈것은 죽으면 부활에 걸리는 시간이 등급에 따라 다른데, 유니콘이나 해동청은 부활에 걸리는 시간이 좀 길었다. 그래서 철벽은 유니콘을 전투에 부르지 않았고, 네크로는 약한 몹을 상대할 때만 해동청을 소환했다.
우크 대현자의 생각과 달리, 우크 조각상에 들어간 오우거 신은 여전히 오우거 신이었다. 서버 전체에 드워프의 신이 생겼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우거 왕국이 곧 탄생할 것임을 모든 유저에게 알렸다. 유저는 오우거로 종족을 전환할 기회를 얻었다.
물론, 한 번만 도전할 수 있는 퀘스트에 성공해야 했다.
다시 1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우크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우크에게 저주를 내린 오우거 신이 풀려난 덕분인지, 그냥 오우거 신이 떠나면서 우크를 다 없애고 갔는지 정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럴 수가. 우리가 오우거에게 속은 것인가?"
1층에 가니 미궁이 사라지고 우크 대현자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우크 신상이 움직여 1층에 올라오자 대현자는 미궁을 떠났다. 그러나 여전히 오우거의 신인 것을 알고 망연자실했다.
"고블린의 신은?"
"나를 죽이려다가 오우거 신이 말리니까 그냥 떠났다."
"갈 곳이 있는가?"
"갈 곳? 글쎄. 대부분 우크 혼혈이 죽은 지금, 내가 갈 곳은 어딜까?"
"우리 길드에 소속되어 운영을 도우면서 신을 더 공부할 생각 없는가? 우린 조만간 대도서관을 지어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모을 작정이다."
진돗개가 NPC에게 먹힐만한 문장으로 우크 대현자를 꼬셨다.
"그래. 우크 종족의 미래를 위해 좀 더 연구해야겠어."
"이름이 뭔가?"
"우리 우크는 개인 이름이 없다."
"이름 하나 지어라."
길드에 등록하려면 이름이 필수였다.
"그럼 내 이름을 우자르라고 하지. 신이 깃드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름을 우자르로 지은 우크 대현자는 진돗개가 길드로 가입시켰다. 현피와 진돗개가 음흉한 눈길을 주고받는 걸 보니 길드 사무를 모두 우자르에게 맡길 생각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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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보상으로 네크로와 철벽은 병충해와 자연재해에 강한 씨앗을 얻었다. 소금성과 그 주변 마을들은 농업에 거의 올인하다시피 했다. 둘이 얻은 씨앗은 소금성과 주변 마을에 골고루 나눴다.
철벽의 레벨업을 위해 다음 사냥터를 물색할 때, 반형운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정보 하나 드리죠. 우르크 제국의 도시 중 절반이 인간 혹은 기타 종족 손에 넘어갔을 때, 우르크들이 대규모 반격을 시작할 겁니다.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았던 우르크 왕들이 움직입니다.]
"아직 시간이 꽤 남은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드워프들이 도시를 건설했고 유저들이 점령한 마을이 소도시로 성장한 게 꽤 됩니다. 우르크가 점령한 도시가 대륙에 존재하는 도시의 50% 이하만 되면 바로 우르크끼리 싸우면서 통일 전쟁이 될 겁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수만, 수십만씩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진짜 백만대군이 움직입니다. 그것도 우르크 제국을 대표하는 최정예 군대들이 말이죠.]
"알겠습니다. 준비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역천은 우르크들이 대일본제국을 공격할 때 뒤통수칠 계획이다. 다른 나라 국왕인 네크로는 수비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공격할 때는 네크로도 역천 길드와 힘을 합쳐 공격할 수 있다.
"돗개야, 길드 자금 허용하는 대로 식량 사들여."
진돗개에게 식량 매입을 지시한 후 다미안에게도 식량 비축을 지시했다. 그리고 네사모 성에서 생산한 광물을 당분간 팔지 말고 창고에 쌓아두라 명했다. 대장장이 유저들이 만든 노말템은 어차피 NPC 군대를 무장하기도 힘들 정도로 물량이 적었다. 망가지면 녹여서 다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현실과 달리, 레전드에선 템이 파괴되면 그냥 사라졌다.
'가미카제 길드는 레전드를 쉽게 보고 있어.'
가미카제가 최근 NPC 군대 규모를 급격히 늘리는 건 누구나 아는 뉴스였다. 가미카제 길드의 어려움을 모르는 네크로는 자금 활용이 엉망이라고 판단했다.
'지금은 군량미 비축할 시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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