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스트 보상1
"오빠, 청이 어떻게 됐을까?"
철벽은 시종일관 해동청이 암컷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성이 해동이고 이름은 청이라고 주장했다. 네크로도 청을 먼저 생각하고 해동을 앞에 붙인 것이기에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현실 시간 68시간이 지나고도 네크로는 해동청을 소환하지 않았다. 갑자기 생긴 광산 아이템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나 가미카제한테 버림받을 것 같습니다. 우리 손잡을까요?]
뜬금없이 걸려온 역천의 전화에 마음이 기울었다. 네크로가 광산 아이템을 팔아치우고 게임을 접으려 했던 건, 너무 큰 판에 끼기엔 자신이 너무 보잘것없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은근히 대단하게 여기던 역천이 동맹을 청하니 자신감을 회복했다. 수천억이라는 액수가 주는 압박과 레전드의 거대한 스케일에 눌렸던 자존감도 되살아났다.
"해동청 소환."
"헐, 대박."
너무 큰 놀라움은 사고 회로를 멈춰버려서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인 말만 뱉게 했다. 네크로는 드워프 신 타루그가 말하던 선물이 뭔지 대뜸 알아차렸다.
해동청은 600만 불의 드래곤으로 변했다. 드래곤은 뼈만 합금이었다. 거기에 살이 붙고 비늘이 붙은 후 피 대신 마나가 흘렀다.
타루그가 어떻게 손을 썼는지 몰라도, 현재 해동청은 비늘까지 강철로 변했다. 조금 통통한 편이던 몸집이 수십억을 호가하는 스포츠카보다 더 날렵하게 빠졌다. 금속 비늘이 햇빛을 반사하는데, 눈 아프게 쏘는 게 아니라 은은한 빛무리로 해동청 몸 주변에 푸른 후광을 만들었다.
"야, 니들 뿔난 망아지랑 대가리 큰 도마뱀 안 치우냐?"
원래 가마 탄 양반보다 앞에서 길 트는 종놈이 더 설치는 법이다. 그리핀을 타고 다니면서 은근히 괄시받았던 현피가 얼싸 좋다며 셋을 구박했다.
해동청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저 멋지다 싶겠지만, 해동청이 레벨0일 때부터 봐온 셋은 놀라움이 훨씬 컸다. 그래서 현피의 도발에도 대응하지 못하고 그저 침 흘리며 해동청을 멍하니 쳐다봤다.
- 해동청의 육체가 신의 기적으로 합금이 되었습니다.
- 미스릴을 다량 함유했기에 신성력과 상성이 훌륭합니다.
- 4단계가 되어 스킬을 생성했습니다.
- '신성 브레스'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 '드래곤 피어'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 성장하며 더 다양한 스킬을 얻을 수 있습니다.
"드래곤 피어 확인."
쿨타임이 게임 시간 1일짜리 범위 스킬이었다.
"신성 브레스 확인."
쿨타임이 게임 시간 2시간짜리 스킬로, 단일 개체를 상대로 한 스킬이었다. '야생' 드래곤처럼 범위로 사용할 순 없었다.
'적중한 상대는 게임 시간으로 1시간 동안 생명력을 회복할 수 없음.'
해동청이 먹어치운 에픽 비수의 옵션 중 하나가 신성 브레스로 넘어갔다.
"진돗개, 길드원 모집 공고를 내. 대장장이만 받을 거야."
광산 위치는 네사모 길드가 점령한 도시로 정했다. 욕심만 앞서서 덜컥 도시를 점령한 네사모 길드는 길드원들이 십시일반 골드를 사서 운영비를 어렵게 충당했다.
도시 이름을 네사모로 바꾼 만행이 괘씸해서 무시하려다가, 즐기자 길드가 점령한 도시가 아닌 동맹 세력이 점령한 도시에 광산을 유치하는 것도 꽤 홍보 효과가 좋을 듯하여 네사모 도시에 하급 광산을 만들기로 했다.
도시에 광산이 생기고 금속이 특산물이 된다면 세금을 더 많이 할당할 수 있고 인구 성장도 빨라진다. 파산으로 지배 길드에서 쫓겨나는 참사는 막을 수 있다.
대장장이 유저들의 실력이 일천하여 대륙에 진출한 유저가 쓸 템을 만들기는 요원하지만, 10만 규모의 NPC 군대를 유지할 생각이기에 노말템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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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 만세."
네사모 길드원들은 네크로가 자신들이 점령한 도시에서 광산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자, 네크로 님의 자비에 힘입어 우리의 심장은 다시 뛰게 되었다. 그러나 긴장을 늦추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내일부터 그간 멈췄던 신전 기부를 재개한다. 각자 능력껏 그리고 양심껏 기부하자."
신전도 자본주의 물을 먹었는지, 기부해서 공적치를 쌓아야 점령석을 생산했다. 점령석으로 소유를 확실히 한 토지만 경작할 수 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매일 기부해야 했다. 도시 운영이 힘겨워서 한동안 끊었는데, 이제부터라도 기부 금액을 올려서 더 많은 점령석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현실 시간으로 오후 3시에 네크로 님이 오랜만에 생방송 하신다고 공지했다. 다들 게임 하느라 바빠서 못 보더라도 꼭 화면은 켜놓자. 3원밖에 안 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자고."
"길장, 3원에서 네크로님이 30% 가져가니까 정확히 0.9원이야."
"치욕이군. 문과한테 지적받다니."
오아시스에서 붉은 코 코볼트 만 마리가 넘어왔다. 이들을 먹여 살리는 건 당분간 네크로가 책임지지만, 어느 정도 틀이 잡히면 네사모 길드에서 책임져야 한다.
"자, 도시가 발전해서 세금이 많아지면 그간 여러분이 했던 희생은 모두 보답받을 수 있다. 지배 길드에 떨어지는 세금으로 집 사고 차 사는 건 당분간 힘들지만,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건 가능하다. 그리고 네크로 님을 믿고 따르면 우리 모두 부자 될 수 있다."
"나 저번 주말에 소개팅 나가서 네사모 길드원이라고 하니까 여자가 애프터 받아주더라."
"세상이 변했어. 예전엔 게임 하는 티도 못 내고 숨겨야 했는데, 요즘은 여자들이 레전드 하는 남자랑 대화하는 걸 좋아해."
"야, 거기 지방 방송. 길장이 연설하는데 감히 길드 채널로 대화해?"
"자꾸 그러면 다음 길장 투표 때 다른 사람 찍을 거야."
"공개 채널로 하라고. 좋은 말씀을 NPC도 들어야 할 거 아냐."
스펙이 딸려서, 외모가 단정치 못해서, 전공이 안 맞아서, 숫기가 부족해서, 떨려서 면접 때 더듬거려서. 그 외에도 수많은 이유로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등골 브레이커라는 오명을 썼던 청년들.
동료를 위해 희생하고, 남보다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앞서가려고 머리를 쓰고. 고작 게임이지만 고작 게임이 아니었다. 사회가 이들에게 주지 못한 노력할 기회, 자신을 증명할 기회, 자신을 알아갈 기회, 자신을 돌아볼 기회 등을 게임이 줬다.
천성이 게으른 사람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더욱 노력하게 됐고 자신을 조금씩 변화했다.
"우린 게임 폐인이 아니다. 우리는 레전드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다들 자부심을 느끼고 더욱 열심히 하자. 게임을 그만둔다고 해도 다른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부지런함을 뼈에 새기자. 아자아자 화이팅!"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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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네크롭니다. 개인 퀘스트 하느라 오랜 기간 생방송 못했네요. 대륙섬에서 잠깐 인사드린 거 빼면 정말 오랜만입니다."
순식간에 시청자가 300만을 넘었다. 게임에 접속한 유저들이 꽤 높은 비율로 네크로의 생방송을 시청했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간 공개한 적 없었던 제 탈것을 오늘 여러분께 소개하겠습니다. 해동청 소환."
채팅창이 폭발했다. 특히 게임에 접속한 유저들의 반응이 격렬했다. 오타 하나 없고 문법을 정확히 지킨 한글은 대부분 게임에 접속한 타 서버 유저들이 친 내용이었다.
"드래곤입니다. 획득 경로는 당연히 비밀이죠.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아예 따라 하기 힘든 방식으로 얻은 거여서 말씀드려도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럼 제가 탑승해 보겠습니다."
네크로를 태운 해동청이 하늘을 날았다.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정교하게 빚어진 작은 섬들, 흰 구름과 쾌청한 하늘, 모든 게 아름다웠다.
"육지형."
섬에 내린 해동청이 날개를 접고 육지형으로 전환했다. 해동청이 달리는 모습은 슈퍼카처럼 빠르면서도 가벼웠다. 섬을 횡단한 후 바다 위를 한참 달린 해동청은 날개를 펴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게다가 전투도 할 수 있습니다."
사냥터가 있는 섬에 착륙한 후 네크로는 해동청만 전투하게 앞으로 내보냈다.
"가장 즐기는 공격이 머리에 난 뿔로 상대방을 허공에 띄우는 겁니다."
일반 드래곤보다 머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큰 해동청이 네 다리를 잽싸게 놀려 달려가서 뿔로 몹을 받아버렸다. 허공에 뜬 몹을 덥석 물고 머리를 몇 번 턴 후 도로 공중으로 던졌다. 빠르게 달려서 추락하는 몹을 뿔로 받았다.
해동청은 지금까지 봤던 드래곤들처럼 뿔이 길고 날카롭지 않았다. 짧고 굵으며 뭉툭한 뿔은 몹의 몸에 구멍을 뚫지 못했지만, 강한 타격을 내부로 전달해 괜찮은 공격력을 뽐냈다.
해동청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전투가 반가운지 날아차기와 바닥에 쓰러뜨려 두 앞발로 마구 때리는 공격도 선보였다. 그레이트 웜을 상대하는 건 전투가 아닌 도주뿐이었고, 대륙섬의 산봉우리에서 반항도 안 하고 경험치도 안 주는 반쪽짜리 정령들을 처리한 게 최근 전투였다.
"원래 그런 종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반 드래곤보다 머리가 큽니다. 그리고 꼬리가 짧습니다. 비율로만 따지면 악어 꼬리보다 훨씬 짧죠. 보통 드래곤은 악어 꼬리보다 훨씬 긴 데 말입니다."
아직 소금성의 조선소에서 바다로 나가는 배를 만들지 못했기에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던 섬 몬스터들이 해동청이라는 재앙을 맞이했다. 싸우면서 점점 전투 기술이 늘어 돌려차기도 했다. 해동청에겐 약한 상대들이어서 스킬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두 화면으로 나누겠습니다. 저랑 제이크가 낚시 시합을 할 겁니다. 저는 9강 낚싯대를 사용하고 제이크는 7강 낚싯대를 사용합니다. 남은 화면은 해동청의 전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화면을 골라 보시기 바랍니다."
귀한 고기를 낚으면 세라프가 나타나서 구매하는 장면도 생방송으로 보여줬다. 시합 결과는 당연하게도 제이크의 승리였다. 최대어, 마릿수, 무게, 가격 모두 네크로가 밀렸다.
"우리가 세운 국가는 이름이 WORLD입니다. 전 세계 모든 유저를 환영합니다. 개인의 자격으로 와서 국가에 소속되어도 좋고, 길드나 세력으로 와도 좋습니다. 능력이 된다면 마을 혹은 도시를 점령해도 됩니다. 최대한 함께 즐거운 게임 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다만, 과한 욕심으로 많은 마을과 도시를 점령해서 파산하는 길드는 없었으면 합니다."
지난번에 공중파 예능에 나간 이후 호감을 쌓아 유저가 부쩍 는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어차피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포탈이 희망의 등대 아니면 네크로의 오아시스였다.
이미지가 좋아진 건 방송 덕분이 맞지만, 유저가 늘어난 것도 무조건 방송 덕분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서 해동청을 팔아 생방송 하면서 유저를 끌어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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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저 왕 새끼 좀 어떻게 해봐. 나 미쳐버리겠다."
배틀넷은 왕궁을 나와 자기 저택에 돌아가자마자 화부터 냈다. 길거리에서 왕 욕하면 명성이 하락한다. 그래서 꾹 참다가 저택에 돌아와서 욕했다. 저택에 NPC가 전혀 없기에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
"형님, 화 좀 가라앉히시고. 우리도 슬슬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응?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만리장성이 국가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하는 걸 동의했습니다. 여기엔 메시지가 숨어있습니다."
"시발, 말 꼬지 마. 왕도 말이 안 통해 짜증 나는데 너까지 지랄할 거야?"
"우리가 버리는 패라는 뜻입니다."
"거의 400억 가까이 투자하고 버린다고?"
"400억은 약속 금액이었고, 실질적으론 아직 200억도 되지 않았습니다."
매달 10억에서 15억 사이 돈을 보내왔다. 100억은 확실히 넘었지만, 200억까지는 거리가 멀었다.
"자세히 말해 봐. 솔직히 나도 느낌은 안 좋았는데 돈이 다달이 오니까 무시하고 있었거든."
"만리장성이 왕의 혈통을 꼭 얻어낸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만약 왕의 혈통을 못 얻으면 NPC 왕을 옹립해야 합니다. 우리랑 같은 국가 될 생각이면 국가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못 하게 막았을 겁니다."
"맞아. 중국이 대한제국 밑으로 들어오진 않겠지."
어머니가 화교이기에 짱개라고 욕하진 않았다.
"며칠에 한 번씩 뭔가 시키고 그 결과를 서면으로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통해 NPC 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데이터를 뽑는 게 분명합니다."
"이 새끼들이 날 마니또로 생각했다는 거지?"
"마루타입니다."
"시발 새끼. 아는 게 많아서 좋겠다."
"아마 이후 지들이 국가 세운 후 우리 보고 따까리 하라고 하거나 왕국 포기하고 자기들 국가로 들어오라고 할 겁니다."
"돈만 제때 주면 뭔 대수야?"
"형님, 이젠 우리도 버는 돈이 쓰는 돈보다 많습니다."
"뭔 소리야?"
"지금 도시 세 개에 마을 열 개 점령했잖습니까. 거기서 나오는 수익이 어마어마합니다."
"어디서 수익 나오는데?"
"목재. 인간 도시와 마을이 늘면서 목재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세라프에게 목재 파는 것만으로도 우리 흑잡니다. 만리장성이랑 결별할 궁리도 하셔야 합니다."
"순순히 우릴 놔줄까?"
"일단 결별도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죠. 초인동맹이 하는 짓거리 좀 보세요. 마을이랑 도시를 팔고 자기 길드에 상납하게 하잖아요. 만리장성도 우리가 돈 버는 걸 알면 상납하라고 지랄할 겁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원을 줄일 수 있어."
지원금이 들어올 때마다 몇천씩 몰래 뒷주머니를 챙겼다. 지원금이 줄면 배틀넷만 손해다.
"역천은 껄끄러우니까 네크로랑 손잡아볼까? 우리 박박 긁으면 20만은 되잖아?"
"역천은 만리장성이랑 별다를 게 없어요. 그냥 지 꼴리는대로 결정하고 설명도 없이 지시만 내릴 거예요."
"그런데 거리가 너무 멀다."
"이대로도 괜찮으니까 최대한 버티다가 밀리면 네크로 쪽으로 가는 거죠. 도시 몇 개 마을 몇 개 점령하고 네크로 왕국에 소속되는 겁니다."
"네크로를 허수아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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