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전 이벤트를 즐겨라2
"왜 또? 이벤트 기간엔 회의실로 안 부르기로 했잖아."
유니콘 영업팀의 분장 필요 없는 좀비들이 회의실을 어슬렁거렸다. AI는 사탕 문 어린아이 모습의 홀로그램을 만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좀비들이지만, 귀여운 아이에겐 마음이 약해졌다. 자주 사용하면 효과가 떨어지는 약점이 있지만, 일정 기간이 흐르면 떨어진 효과가 회복되기도 했다. 너무 빈번하게 써먹지만 않으면 된다.
"세상에 완벽은 없었습니다."
"버그는 아니라는 말이구나?"
문 팀장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버그를 수정하면 새로운 버그 혹은 문제가 터진다. 물론 대부분은 AI가 알아서 미연에 방지하지만, 세상에 완벽은 없다. 가끔 수정해서 생긴 문제 때문에 더 큰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에구, 또 저놈들이야?"
"넷이서 10만의 고블린 무리를 막고 있습니다. 고블린은 리자드와 마찬가지로 마을과 마을 사이는 경쟁 관계입니다. 저들이 서로 싸우는 걸 막으려고 10만 마리가 같은 마을이라는 설정을 적용했습니다. 그 결과, 고블린들은 도시로 달릴 생각 없이 저 넷을 죽일 생각에만 몰두합니다."
10만의 고블린 중 넷과 접촉할 수 있는 고블린은 소수다. 그런데 넷이 죽인 고블린 숫자가 어느 정도 기준을 넘어서자, 고블린들은 복수심에 불타 도시로 향하는 목적을 잊고 넷을 죽이려고 애썼다.
"해결책은?"
"하나는 목적의식을 아주 강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려면 마계의 지시로 만들든가 신을 등장시켜야 합니다."
"몬스터가 어길 수 없는 마계의 지시로 포장해서 당면한 적보다 도시 공격을 우선시한다는 말이지? 몬스터들의 신은 아직 설계가 안 끝난 거로 아는데."
"마계를 등장시키면, 우르크 제국 황실이 마계의 존재를 늦어도 반년 안에 발견할 겁니다. 지금까지 제국 황실이 마계를 발견하지 못한 건, 우리가 마계를 전혀 구현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레젠드 세상의 인과율로 따지면, 대륙을 통일한 우르크 제국 황실이 마계를 못 찾아내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럼 이 방법은 안 되겠네? 마계는 유저들 성장이 어느 정도 끝나고 등장해야 해. 그리고 불완전한 신은 마계보다 더 큰 문제야."
"하나는 파벌입니다. 마을에도 파벌이 존재한다는 식인데, 서로 적대하지 않지만 돕지도 않는 레벨로 관계를 설정하면 됩니다."
"요건 좀 그렇다. 10만이라도 유저들에게 안될 게 뻔한데 파벌로 나누기까지 하면 겨우 마련한 이벤트 퀘스트가 쓰레기 되는 거야."
"이 방식을 사용하면 우르크 제국의 분열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어서 저도 의견 제시 차원에서 언급한 것뿐입니다."
"또 하나는 어그로 리셋입니다. 2분 간격으로 어그로를 리셋해서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몹들은 도시로 달려가게 하는 겁니다."
"시뮬레이션해 봐. 악용할 여지는 없어 보이는데. 전투가 오히려 훨씬 재밌어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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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그의 손길에서 사랑을 느꼈다.
- 저분 도축업 종사자 맞으시죠? 최소 16년 해온 솜씹니다.
학익진은 어느새 원형진으로 변했다. 어차피 성벽에서 기다려봤자 유저들에게 밀려 자리도 배정받지 못하고 공격 스킬의 부족으로 큰 공도 세우기 힘들었다.
그래서 미리 나와서 요격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진돗개의 강한 주장에 총 160만 원을 지출해 넷의 가상현실 기기에 생방송 모듈을 추가했다.
순간 편집 및 화면 송출을 해주는 인공지능 임대료가 1회당 30만 원이다. 게다가 접속자가 적으면 유니콘에서 광고를 송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관객 100만 명이어야 기본 광고료 10만에 분배 수익 30만 해서 10만 원 벌 수 있었다.
가슴에 비수를 꽂고 동그랗게 도려냈다. 손을 쑥 집어넣어 심장을 뜯어냈다. 칼로 도릴 때 이미 혈관이 다 끊어져서 아주 쉽게 뽑아냈다.
바로 턱 밑에 구멍을 뚫고 뇌수도 정리했다. 손목의 부드러운 놀림 덕분에 세 번으로 고블린 뇌수를 비울 수 있었다.
그렇게 누가 봐도 빠른 속도로 제이크가 고블린 사체 하나를 좀비 재료로 만들었을 때, 이쪽에서 네크로가 배를 가르고 내장을 훑은 후 살을 베내고 가죽을 제거한 해골 재료를 세 개나 만들었다. 입신의 경지가 아닐 수 없었다.
"형, 주문. 해골 숫자가 부족해."
포위된 후 네크로는 손질에만 신경 썼다. 진돗개가 상황을 파악해서 좀비 혹은 해골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해골 전사."
수백 마리 해골 전사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몸에서 뭔가 쭉 뽑혀나가는 느낌 때문에 네크로는 손질을 멈췄다.
"템 착용."
주변에 널어놓은 노말템을 알아서 착용한 해골 전사들이 편제에 따라 자기 위치로 달려갔다. 마구잡이로 덤비는 고블린들보다 이들이 오히려 더 지성체 느낌이 들었다.
"동해, 좀비 쪽 시간 좀 벌어야겠어. 형, 좀비도 부탁해."
고블린 사체를 중앙으로 던지는 일에만 몰두하던 동해와 진돗개가 방어선이 무너져서 해골 마법사가 노출된 쪽으로 달려갔다.
"파멸의 돌풍."
해골 마법사를 향해 이빨을 보이던 고블린들이 쭉 빨려가서 고블린 조각으로 재탄생했다.
"용풍권."
스킬 특성으로 말미암아 공격 상대를 동해가 정하지 못하고 무작위로 때렸다. 최대한 많은 고블린에게 스턴을 주려면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가끔 스턴에 안 걸린 고블린이 생기기도 했지만, 진돗개와 돌쇠의 제지로 해골 마법사가 있는 라인까지 진출하지 못했다.
현피는 해골 전사와 좀비를 소환해서 전투 지역을 지정해줬다. 소환 네크에겐 정말 쓸모없는 편제 스킬. 그러나 현피는 모든 충고를 거부하고 네크로의 스킬을 따라 했다. 제작을 소환으로 바꾼 건, 직접 심장 꺼내고 뇌수 퍼내는 게 싫어서였다.
그래도 편제 덕분에 말을 더럽게 안 들어 먹는 소환수들에게 전투 지역을 지정해줄 수 있었다.
- 지루하다.
- 지루함.
- 템 정보나 공개하시죠.
접속자가 벌써 300만을 넘었다. 그러나 초반에 이미 진돗개가 준비한 레퍼토리는 다 동났다. 전투 장면이 격렬하긴 한데, 액션 영화라고 2시간 내내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자. 네크로 님이 유니크 템의 내장 스킬을 사용하시겠습니다."
"바람, 제발 바람이 나와라."
잔챙이들 상대로는 바람의 비룡이 최고다. 현피의 기도가 어떤 신에게 닿았는지 몰라도, 네크로의 스킬로 불려온 건 바로 바람의 비룡이었다.
- 오오. 짱 멋있다.
- 근데 별풍 어딨냐? 이거 할리우드 영화보다 나은데.
- 넷이서 도시를 노리는 악의 무리를 막으러 나섰는데, 둘이 사악한 네크로맨서야. 하지만, 네크로맨서도 인류애가 있었던 거지. 이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건만, 왕족과 귀족들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증원을 보내려고 하지 않아. 그때 아름다운 세비올라 공주께서 자신이 직접 부화해서 키운 용을 보내 이들을 돕게 하는 거야. 전투는 승리고 끝났고, 26억의 사나이와 세비올라 공주는 눈이 맞아 결혼했어.
- 그런데 아뿔싸. 26억의 사나이는 리치였어. 다들 거기에 뼈가 있다고 오해하는데, 사실 해면체는 뼈가 아니야. 리치가 되면서 남은 게 없었엉. 밤 생활에 불만을 가진 세비올라 공주가 이혼을 요청했고, 법원에선 26억의 사나이에게 13억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어. 그래서 26억의 사나이는 이름을 바꿨어.
- 반띵의 사나이로.
5분 동안 바람 쇼를 보인 비룡이 사라졌다. 5분 사이에 비룡이 해치운 고블린 숫자가 3천이 넘었다. 1초에 열 마리 이상씩 해치운 셈이다. 불의 비룡이라면 15초에 불 한 번 뿜어 기껏해야 천 마리 정도 죽였을 거고 얼음의 비룡은 300마리도 힘들었을 것이다.
"돗형, 이번엔 형이 쇼해야겠는데?"
곧 광고 시간이다. 볼 거 다 봤다고 유저가 퇴장하면 지금까지 노력한 게 허무해진다.
"여러분, 유니크 무기 공개합니다."
레어 무기 두 개를 인벤토리에 넣은 진돗개가 유니크 양손 검 '올곧은 용기'를 잡았다. 정보 공개 버튼을 누르자 아이템 정보가 화면 구석에 떴다.
- 와, 뭔지 모르지만 대단해 보여.
- 무려 세트 아이템.
- 제일 허접한 전사도 저 정도면, 다른 유저들 템은 얼마나 좋은 거야?
- 전사 허접이라니? 지금까지 보여준 컨트롤로는 전사가 넘사벽인데.
"광전사."
눈이 뻘겋게 충혈된 전사는 덩치와 함께 무기도 커졌다. 키 2미터의 돌쇠와 비슷한 덩치가 된 진돗개는 고블린 무리로 몸을 던졌다. 힘도 안 주고 대충 휘두른 양손 검에 고블린 다섯 마리가 잘려나갔다.
광전사 스킬 덕분에 힘이 8을 넘었다. 그래서 민첩이 +1 되었다.
'민첩 엄청 중요하구나.'
민첩이 공격력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걸 진돗개도 깨달았다. 특히 5와 6의 차이보다 7과 8의 차이가 훨씬 명확했다.
- 뭐야? 왜 광전사 시간이 저렇게 길어?
진돗개는 기회다 싶어 유니크 투구 '명경지수'의 정보를 공개했다. 채팅창이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잘 벼린 낫으로 수수 수확하듯이, 진돗개는 고블린을 학살했다. 심지어 광전사 스킬이 사라져서 약해진 상태에서도 파멸의 돌풍으로 고블린을 썰며 복귀했다. 후유증이 아이템과 패시브 스킬 덕분에 완화되었고, 힘이 +1 되면서 스탯 감소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혹시 아직 구독 안 하신 분들은 구독 버튼 한 번만 눌러주세요. 전사와 무인 그리고 전투 마법사의 전투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동 중이나 전투 대기 시간에는 질문도 받습니다. 중앙섬 각 사냥터 공략법도 정리해서 올려드릴 겁니다."
그때 파티 채널로 현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길드 연합이 도시에서 출발했대."
고블린을 이미 3만 마리 가깝게 해치운 시점에서, 다들 작지 않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좀비와 해골 전사만 만드는 네크로의 피로가 남은 셋보다 훨씬 컸다.
"왜 이제야 출발했대?"
시청자들과 대화해야 하는 진돗개를 제외하고 남은 셋은 파티 채널로 말했다.
"역천이 요격하겠다고 했는데 NPC가 반대했대. '당신은 훌륭한 지휘자는 맞지만 용맹한 전사는 아니다'라면서."
"게임 대단하다. 편법으로 명성 올렸다고 전사가 아닌 지휘자 취급을 하는구나."
역천이 편법으로 명성을 쌓아 이번 퀘스트의 수비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직접 전투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기에, NPC에게 지휘에만 능한 군사 타입으로 인식되었다.
"고블린이 3만 마리나 줄어드니까 NPC도 동의했나 보구나."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니기도 한 레전드. 고블린이 성벽에 도착하기 전에 3만이나 줄었고 아군 희생은 0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결국 NPC가 역천의 출전 요구를 승낙하게 했다.
물론 NPC 의견을 무시하고 멋대로 출전할 수 있지만, 어렵게 쌓은 친밀도와 여러 공적치가 깎이는 것을 무시할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현실이라면 정찰병이 왔다 갔다 하면서 상황을 파악해야겠지만, 게임이기에 고등급 NPC들은 궁예 못지않았다.
배를 타고 온 유저 2만 명에 포탈로 온 유저 수천 명이 있었지만, 여러 원인으로 이벤트 퀘스트에 참여한 유저는 5천 명에 못 미쳤다. 주말이나 휴일이 아닌 이유도 있고 곧 명절이어서 바쁜 이유도 있었다.
그래도 최소 60레벨에 마스터 랭크 유저 수천이 달려오니 고블린들이 최고급 한우처럼 살살 녹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가 조금 늦었죠?"
역천이 다짜고짜로 네크로를 안으면서 크게 외쳤다. 평소 나른하고 느긋한 말투가 아니어서 네크로 귀에는 어색하게 들렸다.
"못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약속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역천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지만, 네크로는 일단 장단에 맞췄다. 눈앞의 이 잘생긴 남자는 왠지 적대하기 껄끄러웠다. 두려움이 아닌 뱀이나 두꺼비 보는 듯한 징그러움을 느꼈다.
'남자 얼굴이 저렇게 생기면 징그럽긴 하지.'
"끝나면 전화 드리죠."
작전이었던 것처럼 꾸며 체면을 일부 만회한 역천은 곧바로 대규모 마법을 사용했다. 현재 PK를 금지하는 대륙이기에 도시 안에서 마법 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유저건 NPC건 소환수건 스킬 효과를 전혀 받지 않았다. 도둑의 소매치기나 벗겨먹기 같은 일부 특수 스킬을 제외하면.
그래서 범위 마법도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친화력은 정말 높구나.'
얼음 왕관을 얻은 후 친화력을 죽어라 올린 역천. 게다가 얼음 마법의 위력을 올려주는 '고드름 망토'도 있어 '엄동설한'과 '눈보라' 조합의 위력이 증폭되었다.
게다가 스킬 범위도 넓어 만 마리가 넘는 고블린이 즉사하거나 빈사에 빠졌다.
'다 된 밥상에 와서 밥주걱을 얹는구나. 이러면 협상이 편해지겠는데?'
역천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네크로가 짠 판에 와서 자신이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했으니 뭔가 내놓을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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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합시다. 내일은 당신들이 밖에 나가서 싸우십시오. 대신 마지막 날엔 오늘처럼 당신들이 성벽을 지키고 우리가 나가겠습니다."
반형운과 광해는 세 번째로 커피숍에서 만났다.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광해가 그나마 괜찮은 제안을 꺼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함께 성벽을 지키는 게 그렇게 힘든가요?"
"현시점에서 제가 데리고 있는 소환수 중 궁수가 천 마리고 해골 마법사가 5백입니다. 이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려면 성벽의 1/3을 저한테 주셔야 합니다. 그럴 수 있나요?"
"내일은 우리가 나가서 요격하고, 당신들은 흘린 몹이나 줍겠다? 근데 사흘째엔 20만 마리나 되고 몹 구성도 다르던데, 자신 있습니까?"
"패시브로 불사가 있습니다. 죽어도 템 내구도 좀 떨어지고 숙련도 조금 떨어지고 끝입니다."
"그렇게 하죠. 그리고 질문 하나 있는데, 당신들이 밖으로 나가 싸우는 거 NPC들이 반대 안 하던가요?"
"친밀도엔 등급이 있습니다. 일정 수준이 되고 나선 결과만 좋으면 답니다. 그리고 친밀도는 바로 쌓이는 게 아닙니다. 일정 기간에 걸쳐 천천히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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