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요건 버그 아님1
준비에 며칠 걸렸다. 그리고 초인동맹의 유저들이 집결하기 전에 네크로는 혼자서 구에룩 후작을 찾았다.
"오, 용맹한 네크로 백작. 내가 쓸모 많은 노예를 30만 데리고 있는데 가격만 적당하면 네크로 백작에게 넘기겠다."
'백작? 우르크 무투장? 이거 버그 아니지 않을까?'
"반가운 거래다. 어떻게 거래할지 말하라."
"여기 노예 문서다. 노예 소환 외치면 노예가 나온다. 80만 골드 주면 이 문서 주겠다."
"거래."
반투명한 창이 생겼다. 네크로는 80만 골드를 올리고 덜덜 떨리는 손을 내렸다. 반대편에 노예 문서가 올라왔다. 입으로 정보를 외치니 30만 노예의 노예 문서라는 설명이 들렸다.
"확인."
영혼 같은 80만 골드가 사라지고 인벤토리에 30만 노예를 소환할 수 있는 노예 문서가 들어왔다. 네크로는 전송 버튼을 눌러 문서를 금고로 전송했다. 가쁘던 호흡이 안정되었고 등허리에서 느껴지던 차가운 소름이 사라졌다.
'제길. 역천 진짜 대단하구나. 수십억 수백억 마구 쓸 수 있는 그 배짱이 참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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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랑 목걸이가 특별합니다."
"신화 등급 아이템입니다."
상대를 배려하여 에픽이라는 단어 대신 신화 등급을 선택했다. 인공지능의 통역 능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직접 사용해본 적 없는 네크로는 통역이 쉽도록 단어를 선정했다.
"길드원들도 소수지만 하나하나 호랑이 기상이 보이는 정옙니다."
"스탯이나 아이템은 조금 부족하지만, 전투나 퀘스트 경험은 정말 많은 유접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스탯이나 아이템은 비슷해질 거니 경험이랑 컨트롤로 차이가 나겠죠."
"마스터 등급부터 만들 수 있는 공성 병깁니다. 대장장이 유저한테 투자한 돈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유저 다섯 명이 전부인 즐기자 길드와 달리, 초인동맹 세력은 유저 18만 명에 온갖 공성 병기를 다 동원했다. 뭔 놈의 전투 준비가 며칠씩 걸리나 싶었는데, 거대한 투석기와 쇠뇌 그리고 충차를 보니 바로 이해되었다.
"중국은 예로부터 수많은 나라로 분열하여 전쟁이 잦았습니다. 생산력이 부족한 상태에 인구가 많으니 해결책이 전쟁밖에 없었죠. 손자병법을 비롯해 수많은 병법서를 만들어냈고 지금까지 이어진 것도 꽤 많습니다.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는 비록 우리와 적대하던 화하족이지만, 그의 우수함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자서와 함께 오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들어준 자가 손무다.
"비록 대륙에서 공성전은 처음이지만, 신풍 길드의 공성전 영상을 구해 봤습니다. NPC에게 가장 잘 먹히는 건 역시 성동격서입니다."
초인동맹의 대표는 닉네임이 초패왕이었다. 초패왕은 진시황 사후 진나라를 멸망한 영웅 항우다. 초나라의 귀족이었던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한 후 천하를 수십 개 나라로 나눠 다스리자고 주장했다. 그러다 결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에게 패해 사면초가나 패왕별희 등 2천 년 후에도 회자하는 이야기를 남기고 쓸쓸히 퇴장했다.
미신을 잘 믿는 중국인이 그런 비운의 인물을 닉네임으로 삼는다는 건 자신감이 넘친다는 뜻이었다.
"헐, 대박. 나 자신감 완전 없어졌어."
파티 채널로 현피가 혀를 내둘렀다. 진돗개 역시 끙 앓음 소리를 냈다. 동해나 철벽은 별생각 없이 재밌는 구경에 푹 빠졌지만, 둘은 거대 세력의 위용을 확인하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라 세우면 군대를 보유할 수 있어. 그러니 걱정할 거 없어."
네크로도 상상 밖의 모습을 보여주는 초인동맹의 위력에 속이 떨렸지만, 동생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먼저 투석기들이 장독 크기의 바위를 발사했다. 해적들이 사용하던 작살 발사기보다 작지만, 위력은 몇 배 되는 쇠뇌 발사기들은 우르크 지휘관만 노렸다.
투석기와 쇠뇌로 성벽에 늘어선 우르크들을 어느 정도 제압하자 유저들이 앞으로 우르르 달렸다. 대부분 유저는 나무로 만들고 철판으로 전방을 보강한 전차를 탱크처럼 앞세우고 달렸고, 일부 유저는 전차보다 몇 배나 큰 충차를 밀고 성문을 향해 돌진했다.
우르크들이 활을 쏘고 돌이나 짧은 창을 던졌지만, 몇 가지 버프를 받고 방패까지 든 성기사 유저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우르크들은 인간이 쌓은 성벽에 의지합니다. 제국이 수십 년 되어서 공성 병기도 다 낡고 고장 났죠. 그리고 공성전이나 수성전을 하는 방법을 대부분 까먹었습니다."
"게임이니까 시간이 흐르면 자동으로 그런 방법들을 터득하겠죠?"
"그럴 겁니다. 드워프를 비롯한 제작 종족으로부터 공성 병기를 구매할지도 모르고요."
네크로는 상대에게 뭔가 숨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지식을 뽐내려고 애썼다. 뭔가를 숨겨서 뒤통수쳐도 될 정도로 둘의 세력이 비슷하지 않기에, 실력을 대놓고 자랑하는 게 나은 선택이었다. 괜히 숨기느라 상대에게 얕보이면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진다.
검은 깃발이 마구 요동쳤다. 정면에서 강한 압박이 들어오자 우르크들이 다른 성벽에 있는 우르크를 불렀다. 인벤토리에서 나무 사다리를 꺼낸 유저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상인 유저도 전쟁에 써먹을 수 있군요. 한 수 배웠습니다."
전차에 유저 두 명 정도 태울 수 있는데, 방패를 든 성기사 한 명과 상인 유저를 태웠다. 성벽에 가까워지자 상인 유저들은 일반 유저보다 훨씬 큰 인벤토리에서 십수 미터가 되는 사다리를 꺼내서 넘긴 후 부랴부랴 뒤로 도망쳤다.
가끔 마스터 랭크로 보이는 상인 유저는 넓이가 2미터 이상 되어 여럿이 함께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꺼냈다. 수많은 사다리가 성벽에 걸쳐지자 사냥꾼 유저들이 출발했다. 성벽 위의 우르크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전사 및 성기사 유저들만 신경 쓰는 틈을 타서 저격으로 하나씩 목숨을 앗아갔다.
성벽에 오르는 유저가 차츰 늘자 검은 깃발이 점점 큰 폭으로 저어졌다.
"성동 했으니 이번엔 격서 해야겠습니다."
초패왕의 곁에 있던 유저의 입술이 빠르게 움직였다. 채널을 바꿔가며 복잡한 지령을 내리는 듯싶었다.
사면에서 성을 포위하고 있던 초인동맹 유저들이 갑자기 성 뒷면으로 달렸다. 은신 스킬을 익힌 도적 유저들이 우르크가 적어진 틈을 타서 은밀히 성벽을 넘어 수비군을 제압한 후 성문을 열어버렸다.
"그림자 이동 익힌 암살자들인가요?"
"그렇습니다. 방어력을 포기하고 민첩과 공격력에만 모든 걸 쏟아부은 유저들이죠. 정상적으로 게임 즐기는 유저라면 선택하기 힘든 스킬 조합입니다."
그런 자들이 수천 명이나 된다니. 초인동맹이 스케일이 큰 건지, 중국 거대 세력들 스케일이 다 이 정도 되는지 네크로는 무척 궁금했다.
유저들이 성안으로 침입하자 정면 수비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우르크들이 황급히 성벽을 버리고 도시의 집무청으로 향했다.
"우르크들은 투항이라는 게 없습니다. 도망도 안 치고요. 그리고 이젠 우두머리를 죽여도 모든 우르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십만 우르크가 모두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초패왕의 친절한 설명에는, 고작 유저 다섯이서 수십만 다 죽이려면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겠냐는 말이 숨어있었다.
'드래곤, 추종자, NPC 군대, 용병 길드를 통한 사병 육성. 제발 이 중에 하나라도 터져줘야 하는데.'
물론, 넷 모두 당장 어떻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전부 시간이 꽤 걸리고 자금 투자도 만만치 않았다.
"비슷하게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시청은 직접 해결하셔야죠."
"넷이서 잘할 수 있지?"
"그럼, 형이 안 나서도 우리 해낼 수 있어."
넷이 용병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초패왕이 네크로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안 들어갑니까?"
"전사 유저가 길드장입니다. 어차피 도시 점령은 길드장 몫이니까 굳이 제가 갈 필욘 없습니다. 그리고 부탁 하나 있습니다."
"부탁이라뇨?"
"저희 길드 상인 유저들 좀 키우려고 하는데, 마법 등급 아이템을 우리 상인들에게 팔아줄 수 있습니까? 잡화점에 파는 것보다 가격이 나을 겁니다."
"그건 저희가 부탁드려야죠. 지금은 10골드라도 따져가며 써야 하는 시기거든요."
"형, 쉽지 않아. 친위대 다 해치웠는데 후작이 장난 아냐."
"아이템 스킬 아끼지 마. 어차피 다음 도시는 후작이 없으니까 우르크만 다 죽이면 점령이야. 쿨타임 계산 말고 전부 쏟아부어."
네크로가 없다고 전력이 크게 떨어질 정도로 일행이 형편없진 않았다. 그러나 지휘자이자 든든한 정신적 버팀목인 네크로의 부재는 전투가 조금씩 삐걱거리게 했다. 뭔가 할 때 네크로가 있으면 생각 없이 지를 수 있는데, 넷만 있으니 이 스킬 쓸까 말까 고민하면서 자꾸 타이밍을 놓쳤다.
"넷이서 5분이라. 수준 높은 유저들이군요."
- 즐기자 길드가 소금성을 점령했습니다.
- 교통이 발달한 소금성은 바닷가에서 생산한 소금을 저장하고 유통하는 무역 도시였습니다. 강을 거슬러 소금을 쉽게 운반할 수 있습니다.
"형, 골드 76만이야. 형 말대로 골드 다 회수했어."
"그거 노예 구매할 자금이니까 함부로 쓰면 안 돼."
거리가 가까워서 파티 채널로 대화할 수 있었다. 비록 네크로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지만, 우르크 손을 거쳐 지금은 길드 자금이 되었다. 개인 소유로 돌려도 되지만, 칼을 뽑은 만큼 무나 썰다 끝낼 생각은 없었다. 네크로는 우르크 제국 백작 지위를 이용해 계속 인간 노예를 사들이기로 했다.
즐기자가 지배 길드 되자 바로 은행을 비롯한 시설이 생겨났다. 도시 발전 정도에 따라 일부 건물은 생기지 않았다. 다행히 도시 발전 정도가 그렇게 나쁘지 않아 포탈은 셋이나 생겼다. 도시가 발전하면 알아서 포탈이 더 생길 거고 도시가 파괴되면 포탈이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즐기자 길드의 상인들이 포탈로 등장한 후 초인동맹 세력의 유저들로부터 매직 아이템을 우선으로 샀다. 여력이 되는 상인들은 잡템을 사기도 했다. 초인동맹 세력에도 상인이 있지만, 정말 돈줄이 위태로운지 잡템이나 아이템을 즐기자 길드 상인들에게 넘기는 걸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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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의 발전 정도가 여기보다 더 높은 것 같은데, 왜 소금성을 수도로 정하는 겁니까?"
"오아시스 주변에는 사냥터가 많습니다. 거긴 개발하지 않고 사냥터로 남길 예정입니다. 소금성 주변은 전부 점령석으로 밭을 만들 생각입니다."
"형, 시작하자."
네크로는 노예 문서를 꺼냈다.
"노예 소환."
갑자기 50만이나 되는 인간 노예가 나타났다. 남자 여자 아이 노인 골고루 다 있었다.
"평민 전환."
- 평민이 되면 노예 문서가 영영 사라집니다. 이후 이들은 자유 의지로 당신의 영지 혹은 국가를 이탈할 수 있습니다. 정말 노예를 전부 평민으로 전환하시겠습니까?
"전환."
노예에서 평민이 된 인간들은 가족 단위로 모였다. 초패왕이 그 모습을 보고 침음성을 흘렸다. 성을 공격할 때 인간 노예가 안 보였다. 나라를 세워도 인구 얼마 안 되겠거니 했는데, 어디서 노예 50만이나 나타났다.
추가된 20만은 초인동맹이 세 번째 성을 공격할 때 가까운 우르크 도시로부터 구매했다. 탈것이 없어 달려갔다가 달려오느라 꽤 고생했다.
"국가 선포."
진돗개의 말에 메시지가 바로 반응했다.
- 현재 도시 세 개를 점유했습니다. 조건을 충족합니다. 국가 이름을 정하십시오.
"WORLD."
여러 서버의 소외당한 유저들을 받아들여 강대한 세력들에 대항하려는 목적으로 국가 이름을 월드로 지었다.
- WORLD 맞습니까?
"확인."
- 국가 이름이 WORLD로 정해졌습니다. 수도를 정하십시오.
"소금성."
- 소금성을 수도로 정하셨습니다. 결정하셨습니까?
"확인."
- 현재 소금성 인구는 53만 명입니다. 수도가 되면서 인구가 10배로 늘었습니다.
- 수도가 되면서 도시가 확장했습니다.
- 수도가 되면서 특산품이 생겼습니다. 소금성의 특산품은 소금과 절인 생선 그리고 투명 진주 세공품입니다.
- 소형 조선소 시설이 생겼습니다. 현재 기술로는 바다로 나가는 배를 만들 수 없습니다.
- 국왕 조건에 부합하는 유저가 있습니다. 해당 유저를 국왕으로 추대하겠습니까?
"확인."
진돗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서버 유저들에게 들릴 수 있게 메시지가 WORLD 왕국의 탄생을 공지했다.
- 레전드 두 번째 국가가 탄생했습니다. 국가 이름은 WORLD입니다.
- 국왕은 1서버 유저 네크로입니다.
- 수도는 소금성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네크로에게만 들리는 메시지도 있었다.
- 오아시스의 인구가 3배로 늘었습니다.
- 푸른 호수의 인구가 3배로 늘었습니다.
- 희망의 등대 용병 길드가 본거지를 소금성으로 이주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이후 용병 길드의 NPC들은 소금성 소속이 됩니다. 소금성을 제외한 곳에서의 사망은 영원한 죽음으로 귀결됩니다.
- 헤아 대주교가 소금성으로 신전을 옮길 것을 천명했습니다. 새로운 신의 조각상을 완성하면 대주교를 비롯한 신전 고위 성직자들이 소금성으로 이동합니다.
- 국가 퀘스트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항은 도움말을 참조하십시오.
네크로는 세금 관련 메뉴로 들어가서 세금의 15%를 가죽제품으로 몰았다.
"가죽 제품에 세금 최대치로 몰았습니다. 이후에도 서로에게 득이 되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초패왕의 웃음은 조금 어색했다. 네크로를 과소평가했음을 여실히 느꼈고 영문 모를 패배감에 고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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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 길듭니다. 과연 알려준 정보가 정확하군요. 약속대로 20만 골드 보내드리겠습니다."
네크로는 20만 노예를 사들인 성에 현금이 50만 골드 이상 있음을 야마토 길드에게 알려주고 점령 후 20만 골드를 보상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야마토 길드는 손해 볼 게 없는 일이라 선뜻 수락했다.
야마토는 원래 목표로 했던 도시 말고 네크로가 알려준 도시를 점령하고 국가를 선포했다. 국가 명 야마토. 네크로가 국왕이 되고 반나절 만에 세 번째 나라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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