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섬의 비밀2
생방송 전, 네크로는 정령왕의 하반신을 찾았다. 큼직한 상체완 달리 '에게' 소리가 나올 정도로 왜소한 하체였다. 제이크가 정령왕의 하반신이라고 알려주지 않았으면 사람 하체 닮은 나무뿌리겠거니 하고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하반신을 들고 정령왕이었던 존재를 찾아갔다. 하반신을 받은 정령왕은 연신 네크로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퀘스트 진행 방향은 네크로의 예상과 조금 달랐다.
- 하반신을 잃은 땅의 정령왕은 산봉우리로 하체를 대신했습니다.
- 오랜 세월 산봉우리와 결합한 탓에 둘이 한 몸이 되었습니다.
- 산봉우리를 없애야 하반신을 다시 몸에 붙일 수 있습니다.
"산봉우리를 파헤치면 정령석이 나온다. 정령석 천 개를 다 없애면 산봉우리가 힘을 잃고 흩어진다. 그러면 나는 다시 내 하체를 몸에 붙일 수 있다."
자기 하반신을 삼킨 땅의 정령왕이었던 존재는 정보를 주기는커녕 새로운 퀘스트를 내렸다. 땅을 헤집어 정령석을 찾아내려면 또 드워프들에게 맥주를 공급해야 한다.
그때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드워프 마을로 이동해 로그아웃했다. 반형운에게 전화를 걸어 정보를 얻어낸 네크로는 연극을 꾸몄다. 맥주에 영혼을 판 드워프들의 영혼 실린 연기로 정말 자연스럽게 대륙섬에서 탄광이나 광산을 찾는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헤이그 족장. 저 산봉우리에 정령석이 있어. 정령석을 가져오는 드워프에게 맥주 한 통씩 준다. 그리고 대륙섬 외곽의 드워프는 더 쉽게 맥주를 얻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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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팔기의 정예들은 자신들을 바투루라고 칭했다. 바투루는 몽골어인 바가투르에서 파생한 단어로 용사를 뜻했다. 다른 유저들을 밑으로 깔보는 기마병도 바투루들한테는 개기지 못했다.
단순히 캐릭터를 잘 키워서는 소용없고, 현실에서 어느 정도 형편이 되거나 권세가 있는 자들만 바투루에 소속했다. 아이템 맞추는 데 돈 펑펑 쓰고 수련장에서 스킬 숙련도도 마음껏 올렸기에 약한 놈은 없었다.
하나같이 페가수스나 드레이크를 탔고 몇몇은 황금색 털이 아름다운 왕족 그리핀을 탔다. 돈만 있으면 얻을 수 있는 페가수스나 드레이크와 달리 황금 그리핀은 혼자서 완성해야 하는 퀘스트가 몇 개나 되어 실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리고 하얀 몸에 머리만 파란 새를 탄 유저도 있었다. 입으로 벼락을 토해내는 벼락새는 레어 등급의 탈것으로 페가수스나 드레이크와 달리 숫자가 제한되었다. 사망 시 드랍할 확률이 있는 탈것으로, 평범한 유저라면 함부로 탈 엄두도 못 낸다.
"저기 난쟁이 마을 보인다."
드워프는 중국에서 난쟁이로 번역되었다. 유니콘은 독각수고 그리핀은 사자독수리였다. 드워프를 난쟁이라 칭하는 것 때문에 다른 나라 유저들은 중국 유저를 차별이 심하다고 비웃었다.
이게 드워프 마을이냐 싶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었다. 나무로 만든 집과 울타리도 대충이었다. 언제 지진이 덮칠지 모르는 삶을 이어가다 보니 장인 종족인 드워프도 대충을 배웠다.
"광산 지도가 필요한가?"
"혹시 우리보다 먼저 찾아온 자들이 있어?"
"그럼. 오늘만 해도 지도를 사간 무리가 셋이나 있어."
자존심 강하고 올곧은 드워프가 거짓말을 할 거라고 상상도 못 한 철혈팔기 유저들은 깜짝 놀랐다.
"지도 얼마야? 그리고 딴 정보 없어?"
"지도는 맥주로만 받는다. 지도 하나에 맥주 백 통이다. 지도를 사면 원하는 정보 조금 더 줄 수 있다."
벼락새를 타고 온 유저가 길드 채널로 맥주 백 통을 구매해 바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제길, 이 게임 NPC들은 학습 능력이 있어서 정말 짜증 나."
"앞에 온 병신들이 얼마나 호구 짓 했으면 NPC가 저렇게 대놓고 정보를 언급하며 거래하려 들까."
"사람 더 불러야겠어. 광산이나 탄광 찾는 사람 따로, 다른 세력들 방해할 사람 따로."
"우린 어느 쪽 할까?"
"방해하는 쪽이 당연히 더 신나지."
"근데 이쪽으로 올 놈들이면 왜국 오랑캐밖에 없잖아. 동맹이 아직 며칠 남은 거 같은데."
"보름도 더 남았다."
"국가에 소속하지 않은 길드들 좀 불러. 야마토 방해하게."
"광부 유저도 좀 부르자."
"대장장이도. 방금 알아봤는데 여기 난쟁이 아이템 수리 못 한대."
"기마병도 좀 부르면 좋을 거 같아. 걔들 말은 이동에 제한이 없잖아. 다른 세력들이 어디에 있는지 정찰하면 우리가 발품 덜 팔 수 있어."
현실 시간으로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상인 유저들이 도착해서 맥주로 지도를 구매했다. 어떻게 된 판인지 상인 유저가 직접 거래해도 가격 변화가 없었다.
"우리 바가지 쓴 느낌인데? 정상 거래면 가격 협상 스킬이 먹혀야 하잖아."
"친밀도가 전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니면 얘네는 특별한 NPC라든가."
지도에 푸른색으로 칠한 곳에 찾아가니 네크로의 생방송에 나오던 것과 비슷한 암반 지형이 보였다.
"궁극기 익힌 마법사들 일단 모여."
마법사들이 함께 '마법의 세계' 스킬을 사용했다. 온갖 마법이 튀어나와 바닥의 암반을 공격했다. 마법으로 한바탕 폭격하니 바닥이 꽤 많이 깨졌다.
"네크로도 별거 아니네? 이 바닥 엄청 깨기 쉬운 거였어."
그러나 몇 시간이나 공격해도 흙이 보이지 않자 바투루들은 흥미를 잃었다.
"야, 광부들 언제까지 도착이야?"
"굳이 광부 부를 필요 있을까? 난쟁이 고용하면 되지."
"제멋대로에 말도 잘 안 통하는 난쟁이보단 유저가 훨씬 낫지. 그리고 유저는 공짜잖아."
"그럼 우린 뭐해?"
"지도에 표시된 곳들을 하나씩 찾아보자. 누가 먼저 뒤집었는지 확인해서 표기하고, 혹시 작업하는 놈들 있으면 방해도 하고."
선발대로 출발한 정예들은 이런저런 유저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광산 혹은 탄광으로 통하는 단서를 알려주는 지도까지 있다는 말에 수뇌부는 더 큰 규모의 유저를 보내기로 했다. 광산은 제치더라도, 탄광 한두 개만 찾아도 상황이 순식간에 뒤집힌다. 연소탄 지출만 줄여도 철혈팔기는 남은 두 세력을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이 다른 곳에서도 똑같이 발생했다. 야마토나 가미카제는 물론, 여력이 없을 거로 판단했던 초인동맹과 만리장성도 적게나마 유저들을 보냈다. 오직 역천의 세력만 대륙에서 도시와 마을을 점령하고 수비 라인을 정비하는 데 몰두했다.
다만, 누구도 드워프들이 판매하는 지도에 누락이 심하다는 걸 몰랐다. 밑에 넓은 지역의 표기들을 대부분 지워 은근히 유저들을 'Y'자의 좁은 지형으로 몰아갔다. 유독 그곳만 파란 점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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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정령석 가격 얼마 안 돼. 내 생각엔 다른 용도 있을 것 같아."
맥주 넘겨주러 온 진돗개에게 정령석 하나 주고 가치와 용도를 알아보라고 했다. 결과, 비싼 물건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알았어. 정보 새로 얻으면 바로 알려줘. 그리고 다음에 올 때 그 정령석 갖다 줘."
혹시 퀘스트에 필요한 아이템일 수도 있어서 금고로 전송 못 했다. 다행히 투명 진주처럼 겹치는 아이템이어서 인벤토리에 한 칸만 차지했다.
"몹도 없는 곳이라니. 심심해 죽겠네. 그래서 맨날 치고받고 싸우는 건가?"
삼각형에 근접한 대륙섬에서 네크로는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조작된 지도에 속은 세력들은 꼭짓점으로 볼 수 있는 북쪽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게 싸웠다.
가미카제가 야마토를 방해하고, 철혈팔기가 가미카제를 방해하고, 야마토는 철혈팔기를 방해하는 초인동맹과 만리장성과 싸웠다. 초인동맹과 만리장성은 많은 유저를 투입하진 않았지만, 도시나 마을 확장을 멈추고 언제라도 대규모 유저를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
"그나저나 그쪽 땅 다 뒤집으면 밑으로 내려올 게 뻔한데. 정령석 빨리 캐내야지. 가격 좀 올려볼까?"
네크로는 헤이그 족장을 불러 정령석 하나당 맥주 두 통으로 가격을 올렸다. 유저와 달리 밤에는 시야가 제한되는 드워프였다. 정령석 가격을 맥주 두 통으로 올린 날 밤부터 드워프들은 무리를 지어 한 명이 횃불 드는 역할을 했다.
"형, 우리도 건너갈까?"
"갑자기 왜?"
"방금 야마토에서 암석 깨고 아이템 하나 얻었는데, 대장장이가 복원하니까 레전드 템이었대."
"좋은 소식 아니네?"
괴물이 소화하지 못하고 배설한 템이니 평범하진 않았을 것이다. 자칫 최근 배변한 곳이면 에픽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모든 세력이 더 많은 유저를 투입할 것이다. 레전드까지는 세력이 움직일 정도가 아니지만, 아직 네크로 외에 에픽 얻었다고 나선 유저가 없었다. 우연히 누가 에픽 아이템 얻으면, 훨씬 많은 유저가 몰려들어 네크로의 퀘스트가 방해받을지도 모른다.
'배가 아프기도 하고.'
내게 에픽 아이템이 네 개 있다고 해서 다른 유저가 에픽 얻었을 때 배가 덜 아프진 않다. 빙하시대 스킬의 어마어마한 위력을 확인했을 때 이미 검증된 부분이었다.
"건너와. 나는 좋은 아이템 나올 확률이 높은 곳을 알고 있거든. 돌 깨는 주술 폭탄 넉넉히 사 와."
정령석을 맥주로 바꾸는 건 용병인 그웩과 바미에게 맡겨도 된다. 뭘 잘 찾는 제이크나 게륵은 바위 깬 후에 필요했고 얀은 시야가 넓어서 접근을 빨리 알아챌 수 있다.
"형, 근데 방금 지진에 유저 3천 명이 죽었대. 부활하니까 각자 수도라는데?"
"나 지진 대처하는 방법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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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열한 지나 종족이."
철혈팔기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야마토는 '야마'가 돌았다. 기동력이 좋은 철혈팔기가 다른 세력들을 방해하고, 야마토는 주로 방어에 치중했다. 보름 가까운 기간 손발이 착착 맞았는데, 동맹석 효력이 사라지자 철혈팔기가 안면 몰수하고 야마토의 작업장을 덮쳤다.
"광부들은 빨리 마을로 도망쳐서 로그아웃해."
안타깝게도 대륙섬에서 죽으면 가장 가까운 인간 도시나 마을에서 부활했다. 지진에 죽으면 각자 수도에서 부활했고, 국가 소속이 아닌 유저는 마지막에 들른 마을 혹은 도시에서 부활했다.
광부 유저는 대부분 탈것도 없는 신세여서 돌아가 모셔와야 한다. 땅 파는 속도가 전투 유저의 스킬보다 못하지만, 마나가 떨어지면 쉬어야 하는 전투 유저와 달리 광부 유저는 꾸준했다. 게다가 가끔 크리티컬을 터뜨리면 엄청난 면적의 바위를 소멸하기도 했다.
아이템 세팅이나 스킬 위력은 철혈팔기가 훨씬 우위였다. 그러나 소규모 유저의 협력이나 서로 공격을 막아주고 맞아주는 부분에선 야마토가 훨씬 나았다.
"방금 가미카제에서 쪽지 보내왔다. 같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우리를 도와 철혈팔기의 본거지를 공격할 거라고 했다."
가미카제가 쪽지를 보낸 건, 우리 철혈팔기 공격할 테니 최대한 철혈팔기 최강 전투부대를 오래 붙잡아두라는 뜻이었다. 쪽지를 받은 야마토 간부도 미사여구로 감춘 가미카제의 속셈이 환히 보였지만, 유저들의 사기를 위해 아름답게 포장할 수밖에 없었다.
통역 모듈을 캡슐에 추가한 유저가 많은지, 아니면 길드 채널로 소식을 받았는지 철혈팔기가 몸을 빼려는 기미가 보였다.
"닌자 부대."
수십 명의 도둑 유저가 그림자 이동으로 철혈팔기 유저들 뒤로 이동했다. 날이 시퍼런 독 바른 비수를 등에 꽂고 도둑 궁극기 '칼날비'를 펼쳤다. 순수 물리 공격으로 여겨지기에 마법사를 비롯한 물리 방어력이 낮은 직업들은 즉사하거나 상태이상 몇 개씩 걸려 반항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본거지로 돌아가라. 여긴 내가 막겠다."
두꺼운 레전드 방패를 든 성기사가 외쳤다. 급히 탈것을 소환한 철혈팔기 유저들이 도망쳤다. 싸우면 철혈팔기가 이기는 전투지만, 본거지의 광부나 대장장이를 비롯한 유저들이 죽으면 암반을 뒤집는 데 큰 지장이 생긴다.
"파멸신."
성기사의 궁극기 파멸신. 적아구분 없이 아무나 공격하는 최강 소환수가 등장했다. 단일 소환수로는 아직 성기사의 파멸신을 능가할 존재가 나타나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낸 파멸신은 가장 가까운 성기사부터 공격했다. 성기사가 죽은 2분 뒤 파멸신이 사라진다. 방어력이 약한 성기사라면 파멸신은 겨우 2분짜리 스킬인 셈이었다.
"모두 성기사를 공격해라. 도둑과 사냥꾼 유저는 파멸신을 유인해라."
대부분 유저는 파멸신의 공격 한 번이면 죽음이고, 수비력이 강해도 석 대 이상 버티기 힘들다. 차라리 회피율이 높은 도둑이나 사냥꾼이 파멸신의 공격이 빗나가게 해서 더 오래 버틸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성기사가 두 손으로 방패를 잡고 방어에만 전념하자 죽이는 게 쉽지 않았다. 성기사의 패시브 중에 '빠른 치유'가 있는데, 생명력을 서서히 회복하는 물약 혹은 치유 스킬의 효과가 즉각 발현할 수 있다. 물약 자동 복용 아이템까지 있다면 정말 죽이는 게 쉽지 않다.
"이러다 우리가 다 죽고 성기사가 살아남으면 정말 큰 치욕이다."
"우리 다 죽이면 파멸신이 성기사 죽인다. 성기사는 이미 죽은 목숨이야. 우리 살 궁리나 해야 한다고."
"기회다."
파멸신의 강한 공격에 성기사의 가드가 풀렸다. 일본에선 닌자로 불리는 그림자 이동을 익힌 도둑 유저가 스킬로 성기사 유저와 방패 사이로 들어가서 수비를 방해했다. 단순한 방해에 그치지 않고 비수를 성기사 목에 꽂았다.
"사방으로 도망쳐라. 파멸신이 따라오면 계속 흩어져라."
레전드는 게임이었다. 단순히 방패를 몸에 붙이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기사 유저의 방어력이 형편없이 낮아졌다. 갑옷과 방패에 쏟아진 스킬들이 훨씬 큰 데미지를 입혔고, 성기사 유저는 버티지 못하고 대기실로 떠났다.
성기사 유저가 죽고도 파멸신은 2분이나 뛰어다니며 90명이 넘는 유저를 죽였다.
"이 스킬 밸런스 파괴야."
야마토 성기사가 파멸신 스킬을 사용한다 해도 소용없다. 두 파멸신은 서로 안 싸우고 유저만 찾아서 죽인다. 괜히 불렀다가 아군을 더 많이 죽일지도 모른다.
"전사 궁극기만 왜 이렇게 구려?"
진돗개의 동류가 야마토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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