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인 방해
"형, 크리스마스이브 계획 있어?"
"어, 미리 세워뒀지?"
"뭔데?"
"오우거 숲 정복."
늑대인간의 비수보다 더 예리한 발톱이 네크로의 목을 노렸다. 동맥이 지나가는 부위에 살짝 저린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미간을 가리킬 때 그 느낌과 비슷했다.
'이러니 자꾸 게임인 걸 까먹게 되지.'
허리를 숙여 늑대인간의 발톱을 피한 후, 지팡이로 코를 때렸다. 고통을 참지 못한 늑대인간이 깨갱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렸다.
"형, 좀 가르쳐 줘."
"코를 때리면 공포 상태이상, 목동맥을 때리면 스턴 혹은 내부 출혈, 심장 부위를 강하게 때리면 스턴. 다 말해줬잖아."
여섯 마리 늑대인간에게 포위되고도 네크로와 진돗개는 여유롭게 대화했다.
"오를 주식 사고 떨어질 주식 팔면 주식으로 부자 될 수 있습니다랑 뭔 차이야."
"너 주식도 했어?"
"아주 잠깐. 몇백 손해 보고 바로 털었어. 형은 안 했어? 아무리 봐도 주식 할 것 같은 사람인데."
"공식 못 만들었어. 그래서 포기했지."
"아래턱 목과 가까운 부분을 공격하면 뇌진탕으로 경직."
진돗개가 발길질에 약점을 얻어맞고 굳어버린 늑대인간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정확히 갈비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비수는 늑대인간의 심장을 두 쪽으로 갈랐다.
진돗개는 비수를 뽑지 않고 그대로 가슴에 박아둔 채 남은 손의 검으로 목을 벴다. 절삭이 옵션으로 달린 레어템으로, 상대가 반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격하면 절삭 특성이 더 잘 발휘된다.
목이 슥 잘린 늑대인간이 쿵 쓰러졌다. 엎드려서 비수를 회수하는 진돗개를 다른 늑대인간이 뛰면서 덮쳤다. 그러나 네크로가 휘두른 지팡이에 명치와 목을 연속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회수한 비수를 바로 심장에 꽂은 진돗개가 한숨을 쉬며 늑대인간의 목을 잘랐다.
"형만큼 컨트롤 되면 정말 좋겠다. 전사는 무기 두 개 쓸 수 있어서 컨트롤만 따라주면 정말 대박인데."
"양손 검도 하나 장만해. 그 팽이 스킬 쓸 때는 내구도 높고 공격력 높은 양손 무기가 훨씬 쓸모 있잖아."
"마음에 드는 검이 안 나오니까 문제지. 일반몹은 쌍수로, 보스몹은 양손 무기로 처리하는 게 효율적인데."
"노말템이라도 넉넉히 구해서 연습 미리 해둬. 감이라도 잡아둬야 할 거 아냐."
"아직 쌍수도 졸업이 멀었는데, 양손 무기는 좀 늦게 손댈 거야."
다른 곳에서는 동해와 현피가 돌쇠와 함께 늑대인간을 상대했다.
"형, 그나저나 시약 없어서 스킬 숙련도 못 올려 어떡해? 가뜩이나 보스몹으로밖에 못 올리는 숙련도인데."
"친밀도 조금만 더 올리면 너 직업 퀘스트 받을 수 있잖아. 그거 나한테 공유해 줘. 그렇게라도 숙련도 올려야지 어쩌겠어. 그리고 언젠가 숙련도 올리는 비약 퀘스트도 생길 거야."
"보름에서 한 달 사이에 길드 연합이 여기 도착한다는데."
"어차피 PK 안 되잖아. 그럼 걱정할 게 뭐야. NPC 친밀도나 도시 공적치가 우리가 엄청 앞서는데. 우리랑 시비 걸면 NPC들에게 밉보일 수도 있어."
"게임사는 돈 벌려면 분란을 조성해 유저끼리 싸움 붙여야 해. 그러니 어떻게든 우리끼리 싸우게 할 거야."
"내 생각은 달라. 규모를 키우려면 국가끼리 싸움 붙여야 해. 내년 4월에서 6월 사이에 일본이나 중국이 대륙으로 진출할 거야. 한국이 먼저 시작했다곤 해도, 머릿수나 여러 부분에서 밀리거든. 특유의 단합은 일본을 이길 수 없고, 머릿수와 자본은 중국에 안돼. 그러니까 그전까진 딱히 분란을 유도하진 않을 것 같아."
"다 잡았으면 와서 좀 도와줘. 잡담이나 하지 말고."
파티 채널로 대화했기에 대화가 다 들렸다.
"형들은 널 강하게 키우는 것뿐이야. 결코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란다."
동해가 몸을 휘청했다. 실제로 휘청한 게 아니라 상대하는 늑대인간을 유인하는 수법이었다. 반가운 기색으로 접근한 늑대인간에게 역으로 접근하며, 투심권으로 가슴을 때렸다. 내공으로 내부를 타격하는 투심권이 '내부 타격' 패시브 스킬과 맞물려 심장에 충격을 줬고, '일기관통' 패시브 덕분에 늑대인간을 즉사시켰다.
"잘 때리면 무인이 최강이네. 전사 나부랭이 겁나서 게임 하겠어?"
"그만 툴툴거리고 빨리 우두머리 잡고 퀘스트 끝내자. 너희 지금 71렙이라고 했지?"
"형 아직도 70이야?"
"응. 제이크가 내 경험치 나눠 받으니까."
제사 이후 현실로는 2개월 정도 흘렀지만, 게임 안에선 반년이 흘러 제이크가 12살 되었다. 때맞춰 나온 용병 시스템으로 제이크가 네크로의 용병이 되었다. 스킬은 이미 다 갖췄지만, 레벨은 겨우 32였다.
"근데 내가 용병을 택하는 게 아니라 용병이 주인을 선택하다니. 게임 너무한 거 아냐?"
그때 제이크가 늑대인간 사체 손질이 끝났다고 알려왔다. 네크로는 해골 전사와 좀비를 외치는 거로 간단하게 언데드를 일으켰다. 용병이 된 제이크는 몇 번 보는 거로 시체 손질하는 법을 익혔다.
"혈정 2개 나왔다."
늑대인간의 심장에서 낮은 확률로 발견되는 혈정. 우두머리 빼고 마을 하나 다 털었는데 겨우 2개 나왔다.
"이번엔 누가 갈 거야? 동해 아님 진돗개?"
"돗형이 해. 요즘 형 싸우는 거 구경하면서 배우는 게 많아."
늑대인간 마을의 늑대인간을 전부 잡으면 우두머리가 등장한다. 단, 이 우두머리는 일대일로 잡아야 한다. 여럿이 힘을 합쳐 잡으면 점령석을 마을에 꽂을 수 없다.
소환수나 용병도 인정하지 않기에, 직접 공격 스킬이 강타밖에 없는 네크로나 그저 네크로맨서인 현피는 아예 배제되고 동해와 진돗개가 엇갈아 시도했다.
우두머리와 진돗개가 마주 달렸다. 부딪칠 것 같던 둘이 좌우로 엇갈리며 스쳐 지났다. 우두머리 옆구리에 실선이 생겼지만, 금세 사라졌다. 상처가 많아지면 재생 능력이 떨어지지만, 초반에는 목을 잘라도 바로 다시 붙을 정도였다. 굳이 비수를 먼저 심장에 꽂고 머리를 자르는 것도, 절삭 옵션이 터지게 하려는 목적과 더불어 재생 능력을 하락시키려는 목적도 있었다.
우두머리가 몸을 채 돌리기 전에, 진돗개가 비수를 등 가운데 꽂았다. 팔이 꽤 긴 늑대인간이지만, 몸통도 크고 관절 유연성이 부족해 손이 닿지 않는 곳이다. 빠르게 새 비수를 꺼낸 진돗개가 우두머리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내면서 재생 능력을 지속해서 떨궜다.
"형, 우리 길드 언제 확충해?"
"지금 우리 길드 4레벨이지?"
대륙을 발견한 덕분에 길드 레벨이 단숨에 4가 되었다. 길드 레벨은 경험치가 아닌 명성으로 오른다. 그리고 명성이 떨어지면 길드 레벨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200명이던 길드원 중 절반을 쫓아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3레벨 이하로 떨어지지도 않는다.
"솔직히 유저보단 NPC를 길드원으로 받는 게 나을 것 같아."
"근데 NPC는 유저보다 TO 더 차지하잖아. 4레벨 길드라면 NPC를 40명밖에 못 받는다고. 게다가 NPC 길드원은 월급 꼬박꼬박 나가고, 죽기라도 하면 부활 비용도 나가."
"유저도 마찬가지야. 아이템 지원해주고 골드 지원해주고. 게다가 내가 부리고 싶을 때 일 있다고 접속 안 할 수도 있어. NPC는 그럴 일 없잖아. 과하게 부려먹지만 않으면 말도 잘 듣고."
"근데 5레벨 돼도 NPC 50명밖에 못 받잖아. 그리고 유저도 20명밖에 못 받아. 200명 규모랑 싸우면 너무 손핸데."
"그렇게 제한한 이유가 다 NPC가 유저보다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광전사."
눈이 뻘겋게 충혈되고 덩치가 커진 진돗개가 늑대 빗장뼈에 검을 꽂은 후 바닥에 박아버렸다. 자기 등과 팔을 허비는 늑대의 발톱을 아랑곳하지 않고 우두머리의 목 부위만 노렸다.
"미쳤다. 어떻게 목이 잘렸는데도 계속 반항할 수 있지?"
"게임이니까."
너무 현실 같아서 자꾸 까먹는데, 대륙은 중앙섬보다 현실성을 강화했을 뿐 게임을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다. 목이 잘린 늑대인간 우두머리는 머리와 분리된 몸으로 계속 진돗개를 공격했다.
"파멸."
광전사 스킬이 끝나자마자 파멸을 사용한 진돗개는, 비수를 우두머리 심장에 쿡 박아넣었다.
"파멸의 돌풍."
무기 세 개나 늑대인간 몸에 꽂아 넣은 진돗개는 파멸의 돌풍을 도주용으로 사용했다. 어차피 맨손이라 공격력도 얼마 안 나온다. 파멸의 돌풍이 회피율을 올려주는 특성을 이용해 우두머리의 마지막 발악에서 도망쳤다.
노말 망치를 꺼내든 진돗개가 잘라낸 우두머리의 머리를 내리쳤다. 출혈, 뇌진탕, 스턴, 공포 등 상태이상이 우두머리에게 연이어 걸렸다. 결국, 우두머리는 머리 잃은 몸을 꿈틀거리기만 하다가 사체가 되었다.
제이크가 돌아다니며 광석과 아이템 그리고 품질이 낮은 보석들을 찾아냈다. 아이템을 아예 안 주는 고블린이나 우크와 달리, 늑대인간은 가끔 맹수 송곳니를 갈아만든 비수나 목걸이 그리고 레어 귀걸이도 줬다.
"좋은 거 찾았다."
제이크가 칼로 쓱쓱 베어낸 늑대인간 우두머리의 귀가 귀걸이로 변했다.
"어금니 귀걸이다."
늑대인간이 주는 귀걸이는 어금니 귀걸이와 송곳니 귀걸이가 있다. 은행이 없고 감정 NPC도 없어서 아직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다들 세트 아이템일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돌아가서 퀘스트 완성하고 로그아웃한다. 내일은 오우거 숲 토벌 퀘스트 받을 거니까, 당분간 고생할 준비 하고."
"제길. 지난번엔 정말 아깝게 실패했는데. 그나저나 현실성을 강조한다면서 퀘스트엔 왜 쿨타임 두는 거야?"
"떨어진 신용 혹은 믿음을 회복하는 기간으로 이해해."
도시로 돌아가는 길엔 온통 밭이었다. 점령석을 꽂은 땅은 신의 가호로 몬스터들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설정인데, 우르크에겐 소용없다.
우르크가 몬스터가 아닌 종족으로 분류되는 것도 있지만, 우르크를 가호하는 용기의 신이 있기에 잊힌 신의 가호가 먹히지 않는다는 설정도 있다.
"와, 이 땅 모두 우리 덕분 아니야. 이런 거 보면 뿌듯함이 느껴져."
예전과 달리 활기찬 도시로 들어갔다. 갓 왔을 때와 비교하면 거리에서 뛰노는 아이들 숫자가 현저히 늘었다. 아기 낳아서 키우는 게 아니라 어디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처럼, 치안이 좋아지고 식량이 늘자 도시 인구가 거기에 맞춰 성장했다.
"진돗개, 오늘도 대련할 텐가?"
"시발, 내가 이름 바꾸는 서비스 나오면 반드시 바꾼다."
"제길, 내 앞에서 그딴 소리 하지 마."
자본주의의 거품이 빠지며 '현성네 피씨방'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
"왜, 어제 지고 나니 겁먹었나?"
용병 NPC가 진돗개를 도발했다.
"오늘은 전투 후유증으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어. 내일 혼내주지."
"네크로, 좀 더 유명해지라고. 그럼 내가 어려운 부탁 하나 하지."
용병왕. 푸줏간 백정처럼 생긴 용병들 우두머리가 네크로에게 말을 걸었다. 퀘스트는 있는데 네크로 명성이 부족하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도시 공적치는 이미 충족되었다는 뜻이다.
"현성네 피씨방, 마법사 모임에 들 생각 아직도 없는가?"
"부족한 실력을 더 갈고닦아야죠. 자격이 된다고 느껴지면 그때 도전하겠습니다."
왕족을 모시는 궁정 마법사에게 웃는 얼굴로 대답한 현피는 파티 채널로 투덜거렸다.
"왜 네크로 형은 초청 안 하고 나만 자꾸 괴롭히는 거야. 나사 회의처럼 못 알아들을 말만 하는 모임에 자꾸 초청이나 하고. 응해도 자격이 부족하다면서 정작 안 받아주면서."
'내가 힘이나 체력이 친화력보다 높아서 초청받지 못하는 건가?'
비룡의 투구 덕분에 친화력이 1 올라서 6이 된 것 제외하면, 네크로의 스탯은 그대로였다. 물론 초반부터 게임 18개월 한 성기사 스탯을 그대로 가져왔기에 안 오른다고 불평하는 건 정말 양심 없는 짓이다.
"동해, 저녁에 맨손 박투술에 관해 토론할 생각인데. 시간이 되는가?"
귀족을 모시는 기사단장. 상의만 금속 갑옷을 입었고 하의는 가죽 갑옷을 입어 무척이나 언밸런스한 모습이었다.
"꼭 참석하겠습니다. 딸기 여관에서 모이는 거죠?"
"잠깐. 이런 식이면 대륙에서는 닉네임 숨길 방법도 없잖아."
"그걸 이제야 알았어?"
호들갑 떠는 현피를 진돗개가 핀잔했다.
"이름 불릴 때마다 너무 부끄러워서 거기까지 생각 못 했지."
"야, 신전 또 변했다."
"신도 늘면 신전이 알아서 업그레이드되다니. 게임 설정인가 아님 신의 이적인가?"
"동해, 저녁에 가서 못 보던 기사 있는지 여겨봐. 내 생각에 용병이나 기사 그리고 마법사도 늘었을 것 같은데."
"오, 네크로 형제. 신의 빛이 더 많은 곳을 비추게 되었더군."
- 신앙 스탯이 6이 되었습니다.
'2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점령 퀘스트 반복했는데 겨우 1 올려주다니.'
"이번엔 어떤 일감을 고를 텐가?"
퀘스트 완료로 도시 공적치, 신전 공적치, 경험치, 명성 등이 올랐다.
"오우거 숲 정복 퀘스트를 주세요."
- 오우거 숲 정복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 오우거는 거대한 문명을 이룬 강대한 종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의 권위에 도전한 벌로 덩치도 작아지고 이성적인 사고 능력도 빼앗겼습니다.
- 오우거 숲에는 중앙섬과 통하는 포탈이 있습니다. 포탈을 활성화하면 중앙섬 은행과 대륙 은행이 연결됩니다.
- 오우거 숲의 우두머리인 '머리 둘 달린 오우거'를 제거하고 점령석을 꽂으십시오.
- 이 퀘스트는 연계 퀘스트입니다. 오우거 숲을 정복하면 포탈 활성화 퀘스트로 이어집니다.
"자, 너무 늦게까지 게임 하지 말고. 오우거 숲 퀘스트 하려면 바짝 긴장해야 하니까 최대한 푹 쉬어."
광전사 후유증 때문에 뭘 하기 어려운 진돗개와 수련장에서도 숙련도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네크로는 로그아웃했다.
현피는 수수료를 없애면서 현찰이 아닌 골드로도 결제할 수 있도록 바뀐 수련장으로 스킬 수련하러 갔다.
동해 역시 수련장에서 스킬 수련하다가 저녁에 토론 참석할 요량으로 게임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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