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이면 전생에 부부1
"오빠, 또 접속해? 피곤한데 좀 쉬지 그래?"
"잠깐 접속해서 처리할 일 있어. 너희도 자지 말고 일단 기다려. 중요한 얘기할 거 있어."
게임에 접속한 네크로는 바로 은행에 가서 아이템을 찾았다. 넉넉하게 준비하고 신전으로 향했다. 마침 헤아의 기도 시간이어서 조용히 기다렸다.
"네크로 형제. 그간 매우 바빴나 보군."
"오늘 결판 보려고요. 안정화가 충분히 되었겠죠?"
"그럼. 혹시 위험하면 내가 말해줄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게나."
레어 아이템이 연신 헤아의 손으로 넘어갔다. 현금으로 만 원씩 하는 템들이 녹아서 빛이 되어 알에 흡수되었다. 네크로는 속으로 계산했다. 지금까지 투입한 돈이 백만 원을 이미 넘었다.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야. 신의 보살핌이 틀림없어. 이제부턴 유일 등급 무구여야 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유니크 투구를 건넸다. 드래곤 레어에서 공짜로 얻은 거긴 하지만, 길 가다 주운 돈을 다시 잃어버렸다고 배가 안 아픈 건 아니다.
최근 유니크 가격도 하락했다. 심지어 일부 유니크는 백만 원 이하로 떨어졌다. 네크로가 건넨 투구는 그래도 300만 정도 받을 옵션은 되었다. 인기가 별로인 약초꾼 전용이어서 경쟁이 치열하지 않겠지만, 두셋만 경쟁 붙어도 가격이 더 뛸 수 있다.
"현황 확인."
- 드래곤의 알 부화율은 73%입니다.
유니크 하나로 부화율이 겨우 3% 올랐다. 네크로 가슴에서 피가 떨어졌다.
'전설까지면 억 단위 돈이 깨지는 거다.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유니크 달라고 내민 헤아의 손이 지옥 구덩이에서 내민 악마의 것처럼 느껴졌다. 대주교에게 어마어마한 불경을 저지르며, 네크로는 유니크 장갑을 건넸다. 동해가 이미 착용한 무신의 유산보다 못한 무인용 장갑이었다.
"현황 확인."
- 드래곤의 알 부화율은 79%입니다.
박하 차를 진하게 우려서 마신 것처럼, 괴로울 정도로 시원한 느낌이 치솟았다. 템의 종류나 옵션에 따라 부화율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찬 메시지였다.
'옵션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 옵션이 좋으면 부화율이 많이 오르지 않을까?'
신의 회초리를 꺼냈다. 한동안 네크로의 최애템이었지만, 네크로 외에 이 무기를 사용할 직업은 많지 않았다. 마법 멸살을 익힌 마법사라면, 마법 멸살로 순식간에 전사로 변해 근접 전투를 한다. 그리고 저주술사나 환영술사 같은 특별한 직업 아니면 근접전에서 위력을 보이는 신의 회초리를 사용할 일 없었다.
- 드래곤의 알 부화율은 88%입니다.
백만 원에도 팔기 힘들 정도로 옵션이 엉망인 수정구를 꺼냈다. 마법사용 수정구인데 옵션이 힘과 민첩 증가였다. 마법 멸살 마법사에겐 괜찮은 템이지만, 마법 멸살을 익힌 마법사가 이젠 천만에 육박하는 레전드 유저 중에 열이나 있을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 드래곤의 알 부화율은 91%입니다.
마찬가지로 가격이 싼 유니크템을 건넸다.
- 드래곤의 알 부화율은 94%입니다.
- 드래곤의 알 부화율은 96%입니다.
- 드래곤의 알 부화율은 97%입니다.
- 드래곤의 알 부화율은 98%입니다.
- 드래곤의 알 부화율은 99%입니다.
"전설 등급의 무구 하나면 되네. 그전에 안정화 작업을 잠시 해야겠어."
게임 메뉴를 불러서 현실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10시도 안 되어 시간은 넉넉했다.
레전드 아이템 몇 개를 놓고 고민하다가 하나를 선택했다. 비수를 사용할 사람은 진돗개밖에 없었다. 하지만, 드래곤 로드 레어에서 양손 무기 망나니의 유물을 얻은 후부터 진돗개는 쌍수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남은 템들도 쓸 사람은 없지만, 비수보다 훨씬 비싸게 팔릴 것으로 짐작되는 템들이었다.
'레전드템들 빨리 팔아야겠어. 시간 조금 흐르면 가격이 내릴 거야.'
레전드템은 웬만한 수익이 없으면 사용하기 어렵다. 감정 비용이나 귀속 비용이 어마어마한 건 둘째 치더라도, 수리 비용도 웬만해선 감당하기 힘들다. 파괴 불가 옵션이 달리거나 내구도 무한이 달리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평범한 유저는 운 좋게 레전드를 얻어도 팔아야 했다.
레전드템을 사용할 수 있는 유저의 숫자가 제한되었기에 시간이 흐르면 레전드템의 거품이 싹 빠질 가능성이 크다. 옵션이 별로인 망토가 3억 가까운 금액에 팔리는 일은 다신 없다.
"안정화가 끝났네. 무구를 넘기게."
"반드시 성공하는 거죠?"
아직 거품이 빠지기 전이어서 비수는 1억 정도 받을 거로 예상된다. 이미 처넣은 레어나 유니크만 해도 3천만 원 넘었다. 비록 게임방이나 아이템 판매 수익이 어마어마하지만, 1억을 우습게 볼 레벨은 아직 아니었다.
"반드시 성공해주겠네."
- 드래곤의 알 부화에 성공했습니다.
- 성룡이 부화했습니다.
- 신성한 기운이 넘치는 성룡은 현재 아기 단계입니다.
세인트 드래곤. 신전의 도움으로 부화해서인지, 신성력을 기반으로 하는 드래곤이 태어났다.
"드래곤 단계 설명."
- 현재 성룡은 0단계입니다.
- 1단계가 되면 전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 2단계가 되면 탈 수 있습니다. 2단계는 날 수 없습니다.
- 3단계가 되면 날 수 있습니다.
- 4단계가 되면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5단계가 되면 변신할 수 있습니다.
온몸이 검푸른 비늘로 덮인 성룡이 뒤뚱거리며 다가와서 네크로 다리에 볼을 비비적거렸다. 꼬리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짧았고 커다란 눈이 머리의 반을 차지한 듯했다. 몸통은 머리의 두 배가 되었고 배에도 비늘이 빼곡히 덮였다.
"신의 은총으로 태어난 드래곤에게 이름을 지어주시게나."
현피의 그리핀이나 동해 진돗개의 와이번은 이런 대접이 없었다. 탈것 중 최고 등급으로 추정하는 드래곤이어서 이름까지 지을 수 있었다.
"해동청이라고 하겠습니다."
검푸른 비늘 때문에 푸를 청자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역천이 국가 이름을 고구려로 한다고 했던 게 떠올라서 해동을 붙였다. 붙이고 보니 하늘의 제왕인 해동청이 되었다.
- 탈것 해동청과 맺어졌습니다.
- 직접 부화했기에 친밀도가 70으로 시작합니다.
- 너무 과하게 부리면 친밀도가 하락합니다.
- 0단계에서 1단계로 올리려면 마법 등급 무구를 먹여야 합니다.
"젠장. 끝난 게 아니었구나."
헤아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화를 버럭 내는 네크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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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뭔 중요한 얘기야?"
여행 중에는 피곤해도 피곤한 줄 몰랐는데, 여행이 끝나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성필은 쫙 벌린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크게 하품했다.
"일단 먹고 얘기하자."
매운 오리에 맥주 그리고 샐러드를 시켰다. 매운 오리가 입맛을 돋우고 맥주가 위를 부드럽게 녹였다.
"내가 너희한테 얘기 안 한 게 몇 개 있는데, 오늘이 기회다 싶어서 그래."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서 비운 후 캔을 찌그려서 휴지통에 버렸다.
"제주도에서 배틀넷이 날 찾아왔어. 나보고 꼭두각시 왕이 되어달래. 그래서 거절했어. 난 나라를 세우고 내가 왕이 될 생각이야."
"형, 잘 생각했어.","나도 찬성이야.","오빠, 난 공주 할래."
진지해지려던 분위기가 김연 때문에 박살 났다.
"아까 저녁 먹고 헤어진 후 난 역천 만나러 갔어. 내일 역천이 국가 세울 거야. 그리고 나더러 중앙섬에 유배 가라고 하더라."
"왜?"
"중국이나 일본 유저들이 내게 접촉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생각인가 봐. 중앙섬은 한국 유저밖에 출입하지 못하잖아. 저들은 중앙섬이 따로 있고."
"돈 준대?"
"어차피 왕이 되면 유저를 추방할 수 있어. 지배 길드가 제한 건 것과는 달리 아예 도시 출입이 불가능해. 그러면 우리가 갈 곳은 중앙섬밖에 없어. 거긴 역천 소유가 아닌 도시들이 있으니까."
추방된 유저가 도시에 억지로 들어가면 반역죄에 해당했다.
국가 등급에 따라 추방할 수 있는 유저 숫자도 제한되었다. 국가로선 횡포를 부릴 정도 권한은 아니었지만, 당하는 유저에겐 저항할 방법이 없는 최악의 기능이었다.
"우리도 다 가야 하는 거지?"
"응. 우리가 드래곤 산맥을 통해 대륙으로 통하는 길 뚫을까 봐 겁난대. 지금 바다는 역천이 꽉 잡고 있잖아."
"26억에 싸게 팔았어. 지금까지 갖고 있었으면 가격 장난 아닐 텐데."
"그럼 당분간 중앙섬에서 스킬 수련이나 하면서 바다가 풀리길 기다려야 하나? 역천이 해상 봉쇄에 실패하면 그땐 다시 대륙에 와도 괜찮은 거잖아."
"그 전에 다른 방법 찾아야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어."
"끝이야?"
"아니, 더 있어. 지난번 드래곤 레어에서 아이템 가져왔잖아."
"그래. 그건 각자 알아서 처리하기로 했잖아."
"나 레전트 템 다섯 개 주웠어. 유니크도 웬만큼 주웠고."
일행은 누구 입이 크나 경쟁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우리가 쓸만한 템은 없어. 모두 경매장에 올릴 거야."
"형, 조금만 기다려. 지금까지 국가가 다르면 서로 거래할 수 없었잖아. 그걸 곧 풀어버린대. 카페에 옛날 그 회원이 또 나타났어."
"우린 100골드가 13만 원인데, 일본은 1만5천 엔이잖아. 중국은 60위안이고. 가격이 다 다른데 어떻게 거래할 수 있어? 골드 가치가 다른데."
"그 다른 부분은 유니콘이 조절한대. 예를 들어 우리가 올린 템이 100골드에 팔리잖아. 그럼 실시간 환율 적용해서 일본이라면 90골드 정도 소모하고 중국이라면 110골드 정도 소모하는 식으로 균형을 잡는 거야."
"이거 비트코인 각인데?"
광해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성필이 격하게 반응했다.
"비트코인? 나 그거 삼백만 원 꼬라박았는데. 레전드도 곧 망한다는 뜻이야?"
"비트코인이 중국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게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는 거랑 돈세탁이었어. 그리고 뉴스에서 봤는데 마약 밀수하는 자들이나 불법 무기 거래상들이 추적이 어려운 비트코인으로 거래한다는 말도 있었어. 레전드도 국가 간 거래가 된다면 돈세탁이나 자금을 빼돌리는 게 가능하잖아."
"그래도 레전드는 기록이 남잖아."
"레전드 본부가 미국에 있잖아. 미국이 개인정보에 관한 법이 무척 엄격한 거 알지? 미국 법 적용하면 기록을 안 보여줄 수 있어."
"난 또 비트코인처럼 떡락한다는 줄 알고 놀랐잖아."
광해는 고민이 많았지만, 성필을 비롯한 넷은 별생각 없었다.
"그리고 나 탈것 생겼어. 드래곤이야."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으로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진짜?"
"응. 드래곤 레어에서 알을 얻었는데, 부화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해서 지금까지 비밀로 했어. 방금 드래곤 태어났어."
"구경해도 돼?"
"당연히 되지."
"아기들 갓 태어나면 어른이 못 만지게 한대. 드래곤은 괜찮아?"
"야, 이건 게임이야. 그리고 드래곤은 괜찮아."
"지금 접속해서 구경해도 되지? 얼마나 커?"
"일단 하던 얘기 마저 하고."
"레전드템 팔면 내가 80% 갖고 넷에게 5%씩 줄게. 그럼 그간 중앙섬에 갇힌 손해를 메꿀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드래곤이 5단계까지 있는데 지금 0단계야. 2단계 돼야 날 태우고 달릴 수 있고 3단계 돼야 날 수 있어. 그리고 4단계 되면 스킬 쓸 수 있고. 날 도와서 드래곤 좀 키워야겠어."
드래곤을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들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게임 접속하라 말해놓고 반형운에게 문자 보냈다.
[중앙섬 갑니다.]
조금 늦게 접속한 네크로를 일행 모두 눈 빠지게 기다렸다.
"해동청 소환."
머리 가슴 배의 삼등신 드래곤이 '짠' 하고 나타났다.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어려운 꼬리와 커다란 눈망울에 철벽이 꺅 소리 질렀다.
"형, 만져도 돼?"
현피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질문했다.
"파티라서 괜찮지 않을까?"
엉거추줌 다가가던 현피는 드래곤을 와락 껴안은 철벽에게 밀려났다.
"어머, 얘 몸 엄청 차가워."
"0단계에서 1단계로 만들려면 매직템 먹여야 해."
"그럼 2단계 되려면 레어템, 3단계 되려면 유니크템이야?"
"4단계는 레전드, 5단계는 에픽. 딱 맞아떨어지네?"
"퉤퉤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부화하는 데도 레전드 하나 들어갔는데."
"해동청 역소환."
일행의 마수에서 해동청을 구출한 네크로는 바로 포탈로 향했다. 굳이 오우거 숲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희망의 등대 안에만 해도 포탈이 여러 개 있었다.
각자 100골드씩 지급하고 중앙섬의 오아시스로 향했다. 예전에 정말 싸게 구매한 길드 하우스로 갔다.
"자, 다들 로그아웃하자. 내일부턴 우르크 마을 돌면서 매직 템이랑 레어 모으는 거야."
말을 마친 네크로는 바로 로그아웃했다. 곧바로 로그아웃한 넷은 드래곤 좀 더 구경하자고 성화를 부렸다.
"내일부턴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게임을 한다. 퀘스트나 던전 돌 때처럼 마음대로 로그아웃 못 할 일도 없잖아. 그리고 대륙으로 나가는 일은 좀 더 확실해지면 말할게."
푹 자고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깨어났다. 아침 겸 점심을 먹어치우고 나니 레전드 세상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었다.
"형, 우르크 제국이 해체됐대. 우르크들끼리는 서로 싸우지도 돕지도 않는다는데?"
"역천이 나라 세웠어. 이름이 고구려야."
"역천의 함대가 일본 야마토 길드의 배를 모조리 침몰시켰대."
"잠깐, 그런데 수도가 희망의 등대 아니잖아?"
"와, 대박. 우르크 제국 해체하자마자 도시 하나 점령해서 수도 만들었어. 지금까지 희망의 등대에 투자한 게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수도에 포탈이 없어. 배를 타고만 수도로 왕래할 수 있어. 다른 길드가 희망의 등대 빼앗아버리면 역천 길드 망하는 거 아냐?"
"수도 빼앗기는 것보다는 낫지. 그럼 나라가 망하는데."
"희망의 등대 빼앗겨도 괜찮아. 부두 3개 다 도시 밖이니까. 마나포가 있는 역천의 함대는 마음대로 부두 드나들 수 있어."
바다를 봉쇄하고 대륙 도시에 포탈도 없으니 누구도 대륙으로 향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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