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VS 일본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에르제베트를 죽이고 얻은 진영기는 타이탄 20기 만들고도 남을 양이었다. 스킬이 실패해도 재료만 사라지고 영기는 그대로 남아있기에 네크로는 돈을 퍼부어 타이탄 숫자를 27기로 늘렸다.
우자르가 갇혔던 '신벌 받은 우크' 던전 1층에서 타이탄 레벨을 올렸다. 일단 타이탄을 만렙으로 키운 후 철갑 기사와 전사를 만들기로 했다.
그레이트 웜과 대치할 때 스킬 숙련도를 어마어마하게 받았다. 덕분에 추종자 제작과 추종자 강화를 제외한 남은 스킬은 모두 그랜드 마스터 숙련도를 꽉 채웠다.
제작과 강화도 타이탄 덕분에 엄청 올랐다. 숙련도 올리는 비약을 보상으로 주는 퀘스트를 병행하면 몇 달 안에 100레벨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천의 전화 한 통이 네크로의 기분을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황급히 로그아웃하고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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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과 철혈팔기가 손잡았다고요? 확실합니까?"
"확실하다고 봐야죠. 만리장성과 철혈팔기가 힘을 합쳐 가미카제를 공격한답니다. 원래 동남부에 있는 성을 돈 받고 만리장성에 팔려고 했습니다. 어제 만리장성이 갑자기 협상 테이블을 엎었습니다."
역천은 귀족 NPC에게 대부분 권한을 빼앗겼다. 그래서 어차피 국가를 멸망해 귀족들을 떨어내야 했다. 가미카제 자리를 차지하려는 만리장성과 짝짜꿍이 잘 맞았는데, 갑자기 만리장성이 협상을 중단했다.
급히 알아보니 만리장성과 철혈팔기가 손잡은 기미가 여럿 보였다.
"가미카제와 손잡는 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악수입니다. 철혈팔기나 만리장성이 당신을 공격할 때 가미카제와 연합하는 것과 가미카제가 공격받는데 연합하는 건 다른 문젭니다."
만약 철혈팔기가 WORLD를 공격한다면 가미카제와 손잡아도 탈이 없다. 일본 세력이 네크로를 돕는 것이니까. 그러나 일본이 공격받고 네크로와 역천이 돕는 건 다른 문제다.
"민심을 잃으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일파로 욕먹을 땐 돈으로 세력을 단합했다. 가미카제와 결별하고 나선 돈 쓰는 걸 줄이고 여론을 조성해 친일파 이미지를 은근히 벗었다.
고려신문도 일본을 비판하는 기사를 차츰 늘여가며 이미지 쇄신을 시도했다.
지금에 와서 역천이 가미카제를 도우면 세력이 크게 위축할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공격받으면 나는 가미카제랑 함께 당신을 돕는 겁니다. 그러면 얘기가 다르죠."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사람 꼼짝 못 하게 하네요."
"인터넷 보면 중국 무시하는 사람 정말 많은데. 솔직히 수천 년 문명사회를 구축한 나라가 멍청이만 있을 수 없죠. 게다가 십수억 인구를 생각해 보세요. 0.1%만 똑똑해도 나라가 굴러갑니다."
"초인동맹도 묶였습니다. 철혈팔기와 만리장성이 힘을 합쳐 일본 길드를 때려 부순다는데 딴짓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식량이나 아이템 지원한 게 들키면 꽤 많은 유저가 등 돌릴 겁니다."
"골치 아프군요."
광해는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 누르고 무슨 실수를 했는지 되짚어봤다.
'개와 고양이처럼 태생적으로 친해지기 힘든 거야.'
고양이는 꼬리 세우면 싸우자는 거고 그르릉거리면 호감의 표시라고 한다. 반대로 개는 꼬리를 흔드는 게 좋다는 거고 짖는 건 경계의 표시다.
개가 좋다고 꼬리를 흔들면 고양이는 싸우려는 줄 알고 꼬리를 세운다. 고양이가 그르릉 호감을 표하면 개는 경계하며 짖는다.
광해는 국가를 유지하는 게 목적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만리장성은 광해와 손잡으면 철혈팔기와 가미카제가 붙어먹을까 봐 걱정했다. 동시에 광해와 철혈팔기가 연합하는 것도 경계했다. 만리장성에 있어 광해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먹기는 겁나고 남 주자니 배 아프고.
철혈팔기는 아예 광해를 무시했다. 무척 정교한 게임이지만, 레전드라고 현실과 다르지 않다. 유일하게 돈줄이 없는 국가여서 장기전에 취약하다. 그래서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런 철혈팔기도 걱정되는 게 있었다. 가미카제와 역천 그리고 네크로가 힘을 합쳐서 철혈팔기를 공격하고, 만리장성과 초인동맹이 침묵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확장해야 할 때가 있고, 멈추고 반석을 다져야 할 기간도 있다. 철혈팔기는 일본과 한국 세력을 상대로 소모가 너무 크면 다음 확장할 시기를 놓칠 것 같아서 불안했다.
두 세력의 고민을 살피면 결국 교집합에 네크로와 가미카제가 있었다. 눈을 가린 욕심을 걷고 바라보니 가미카제라는 정말 괜찮은 대안이 있었다.
철혈팔기와 만리장성은 힘을 합쳐 가미카제를 치기로 했다. 도시 점령은 만리장성이 하는 거로 합의 봤다. 대신 광산과 탄광에서 만리장성이 조금 양보하기로 했다. 초인동맹에도 어느 정도 지분을 줘서 중립을 고수하게 하고, 가미카제와 더불어 역천 길드도 밀어버리기로 했다.
비록 광해와 반형운이 보유한 스킬이 어마어마했지만, 철혈팔기나 만리장성은 감수하기로 했다. 광산과 연소탄을 보유하면 그 정도 손해는 메꾸고 남는다는 자신감이었다.
"내가 광산이나 탄광을 안 팔거나 초인동맹에 팔아버릴 수도 있는데."
"이광해 씨가 멍청이라면 그런 가능성도 있겠죠."
"외통수네요."
안 팔고 쥐고 있어봤자 소용없다. 경쟁 적수한테 가지만 않으면 되니까. 게다가 시간이 흘러 광산을 많이 발견할수록 광해가 보유한 광산 아이템 가치는 하락한다.
초인동맹에 탄광과 광산을 다 넘겨줘도 소용없다. 만리장성과 철혈팔기는 초인동맹을 해체할 때까지 공격할 명분을 얻는다. 그리고 초인동맹은 네크로가 보유한 탄광과 광산 아이템을 모두 소화할 그릇도 되지 못했다.
"결국, 힘이 약하니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소용없네요."
"머리야 누구나 하나씩 공평하게 있으니깐요. 그리고 가미카제를 공격하는 건 다른 효과도 있습니다. 드워프가 생산한 무구를 독점으로 사들이는 거 얼마나 버틸 수 있습니까?"
우르크의 공격이 시들해졌다. 아이템 소모가 확 줄었다. 눈치가 보여 가미카제에겐 팔지 못하고, 철혈팔기나 만리장성은 아마 최소한의 양만 사갈 것이다. 역천도 자금에 한계가 있고 초인동맹 역시 많은 양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북미 세력이 사가기로 했습니다. 가미카제도 허수아비 길드를 내세워서 사가겠죠. 버틸 때까지 버텨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국가에 소속한 세력들도 자금이 허락하는 한 구매할 겁니다."
"저들을 엿먹일 방법이 없을까요?"
반형운은 살짝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강대한 적을 쓰러뜨리고 싶은 맹수의 본능이 꿈틀댔다. 그리고 그건 광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없는 건 아닌데. 역천 길드가 욕 좀 먹어야 할 겁니다."
"말씀해 보세요."
"지금 가진 도시들 그냥 포기해야 합니다. 가미카제가 먹어치우게 말이죠."
반형운과 헤어진 후 초패왕과 연락했더니 이미 중국으로 돌아갔다. 자신들은 절대적 중립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반형운에게 하급 탄광 하나에 하급 광산 하나 주기로 했다. 그 대가로 반형운은 가미카제를 연락해서 자기들 도시를 전부 점령해도 괜찮다고 했다.
물론, 가미카제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건 잊지 않았다.
만리장성과 철혈팔기가 미처 준비를 마치기 전에 가미카제는 동북부로 가서 도시를 점령하느라 '여력이 부족한' 고구려의 도시와 마을을 급습했다. 도시 창고마다 가득 찬 식량과 아이템들이 가미카제의 숨통을 틔웠다.
가미카제가 희망의 등대까지 함락한 후, 역천 길드는 동북부에 고구려를 다시 세웠다. 고구려는 가미카제에 '복수심을 불태우며' 빠르게 확장했다.
북미에서 왕의 혈통을 보유한 FreeDom 길드가 철혈팔기가 버리고 간 대륙 북부로 갔다. 역천 길드와 달리 조금은 느리게 확장했다.
만리장성과 철혈팔기가 현실 시간으로 4개월짜리 동맹을 맺고 교토 성에 칼끝을 겨눴다. 수도는 아니지만, 수로와 육로가 교차하는 교통 요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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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초롱이라고 합니다. 진짜 팬이에요."
"안녕하세요. 동해 형 광햅니다. 귀한 성이네요. 혹시 함우진 선수 알아요?"
"아니요. 뉴스에서 처음 봤어요."
오랜만에 집에 손님이 왔다. 김연과 동해와 파티를 맺고 다니는 화염 마법사였다. 살상력이 무척 강하지만 쿨타임이 긴 화염구 스킬 빼면 평범했다. 아이템도 평균 수준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저기 소파에 편히 앉아계셔요. 음식 곧 나갑니다."
"와. 남자분들이 음식 만드시네요?"
"잘하는 사람이 만드는 거죠."
"나도 음식 잘해. 근데 오빠들이 더 잘하는 것뿐이야."
광해는 한식 위주로 만들었고 성필은 화력을 키워 중식을 만들었다. 음식이 거의 완성될 때 주문한 치킨과 회가 도착했다. 차갑게 얼린 맥주와 막걸리를 꺼내 각자 취향대로 따랐다.
"가미카제가 제발 오래 버텨줬으면."
"내가 살다 살다 일본 응원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성필이 한탄했다.
"야마토 길드 사람들이랑은 그래도 잘 지냈잖아."
"일본이 싫은 거지 일본 사람이 싫은 건 아냐."
"그게 뭐야?"
"일본 사람은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어. 그러나 일본은 싫어. 이게 내 공식 입장이야."
성필의 억지 덕분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제길. 양쪽 다 제대로 벼르고 나왔구나."
유니콘에서 세 길드에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생중계했다. 네크로와 에르제베트의 전투에서 양측 합쳐 120만 정도 병력을 동원했다.
지금 철혈팔기와 만리장성만 해도 120만 병력을 이끌었다.
가미카제도 100만을 동원했다. 북미나 유럽 유저들은 일본이 전범 국가라고 싫어했지만, 아프리카나 남미 그리고 동남아에선 일본을 좋아하는 유저가 꽤 많았다.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있고 일본의 원조를 받은 나라 국민도 있었다.
"서로 잔꾀 안 부리겠지?"
"당연하지. 철혈팔기와 만리장성은 어렵게 이겨도 김빠질 거야. 가미카제는 비슷하게 싸워주기만 해도 사기가 오르고 유저들이 몰리겠지."
시작이 절반이다. 이번 전투의 양상에 따라 이후 전쟁 양상이 갈린다. 철혈팔기와 만리장성이 어렵게 이긴다면 이후 전투도 어렵게 진행될 거다. 어느 한쪽이 쉽게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연속 무너질 것이다.
"드래곤 알 부수는 건 막혔는데, 뭔가 새로운 거 없을까?"
"수작 부려도 바로 막힐 거야. 전쟁터를 특수 필드로 대륙에서 분리했잖아. 이상한 수작을 부리면 인공지능이 바로 반응해서 막아버릴 거야."
"왠지 기시감이 느껴져서."
만리장성 진영에서 키가 3미터 정도 되는 괴한이 나섰다. 온몸을 로브로 꽁꽁 감싼 괴한이 주문을 중얼중얼 외웠다.
"설마, 마나 동결?"
"마나 동결이 꼭 중국 길드에 유리한 것도 아닌데. 왜 저럴까?"
"그건 직업 비율을 따져보면 돼."
광해의 말에 모두 집중했다.
"만리장성에는 합격술 익힌 무인이 3만이 있어. 마나가 동결돼도 패시브는 작용하잖아. 3만 무인이 뭉치면 그 위력이 어마어마하지."
"그럼 전투가 되게 시시하게 끝나지 않을까?"
"가미카제엔 사냥꾼과 전사 그리고 도둑이 많아. 도둑은 마나 없으면 쓸모없지만, 전사와 사냥꾼은 상관없어. 게다가 가미카제는 6만 NPC 군대를 전부 궁수로 키웠어."
"형 생각엔 누가 유리해?"
"철혈팔기에 3만 기마병이 있잖아. 왜 공성전에 쓸모없는 기마병을 데려왔을까?"
"형, 그냥 시원하게 말해줘."
"가미카제 더러 나오지 말란 뜻이야. 양쪽 합치면 2백만이잖아. 그럼 가미카제가 성문 열고 나올 법도 하거든. 50만 정도가 나와서 임시 신전을 공략하고 남은 유저들이 성을 지키는 거지. 철혈팔기나 만리장성이 공성하러 오면서 수비 전술까지 짜겠어? 더구나 두 세력에 소속한 길드가 수백 개는 되는데. 일일이 지휘하기도 힘들잖아. 그래서 기마병을 세워놓고 가미카제가 밖으로 나올 가능성을 차단한 거지. 지휘자로선 변수를 최대로 줄여야 해. 안 그럼 돌발 상황에 작은 실수로 승패가 기울 수 있거든."
"철혈이랑 만리가 짜온 전술대로 전투 진행하려 하고, 가미카제는 상대가 준비한 전술을 쓸모없게 만들어 적을 혼란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지?"
"그렇지. 혼전이 되면 명령 체계가 간단하고 확실한 쪽이 이득을 볼 거야."
"마나 동결."
음식과 대화에 더 집중하던 일행은 다시 화면에 눈길을 박았다.
"음. 저게 효과가 얼마나 지속하는지 아는 사람?"
"몰라. 야마토는 저런 존재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이러면 저들이 어떤 아이템 스킬 보유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잖아."
"우리 생중계보다 훨씬 재미없는데?"
투석기가 등장했다. 동해 말마따나 재미없기는 하지만, 스케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커다란 교토 성을 투석기로 포위하고 바위를 날렸다. 상인 유저들이 인벤토리에서 바위를 끊임없이 꺼냈다.
"저거 버그 아냐? 바위가 왜 인벤토리에 들어가?"
"돌 목수가 가공하면 아이템 되니까. 저게 겹치기까지 하면 유니콘이 곧 조치하겠지."
수성 측인 가미카제도 투석기를 무척 많이 동원했다. 공성 측의 절반 정도 크기의 바위를 날려 상대 투석기를 파괴하는 데 열중했다. 잘 키운 전사나 성기사는 투석기의 바위에 맞아도 높은 확률로 생존한다. 도둑이나 사냥꾼 그리고 마법사 같은 존재가 앞에 나서서 알짱거릴 일은 없으니 투석기를 부수는 게 답이었다.
"야, 일단 먹자."
병력은 미동도 하지 않고 투석기끼리 바위만 주고받았다. 가미카제는 성안에 날아 들어온 바위를 쪼개서 다시 돌려주는 여유까지 선보였다.
"형. 만약 저 마나 동결 우리한테 쓰면 어떻게 상대할 거야?"
"나랑 연이가 날아가서 임시 신전 점령하면 되지. 스킬 없으면 누가 우릴 죽여."
김연이 턱을 치켜들고 우쭐댔다. 김연이 막다가 죽으며 광해가 나서면 된다. 유니크 갑옷 맞추고 레어 방패를 든 덕분에 광해의 방어력도 김연 못지않았다.
"좀 더 멋진 방법 없어?"
"그건 가미카제가 대응하는 걸 보면서 고민해야지. 마나 없이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 누구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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